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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사회
반복되는 지방 의료기관 건립 무산, 지역 간 의료격차 커진다
  • 김지예 기자
  • 등록 2020-11-26 18:54:00
  • 수정 2020-11-26 20:4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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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적은 의료수요와 의료자원 불균형 탓 수익성 낮아 … 권역별 공공의료기관 건립, 지역수가제 도입 등 대안으로
중도금을 내지 못해 결국 무산된 충남 내포신도시 종합병원 조감도. 출처 충남도청.
지방의 공공의료원 및 종합병원 유치 사업이 삐거덕거리고 있다. 이달 20일로 예정됐던 대전의료원 신설방안에 대한 종합평가는 기약없이 미뤄졌고, 충남 내포시의 종합병원은 중도금 미납으로 첫 삽도 못뜨고 건설계약 해지를 당했으며, 충남 공주시 치매병원은 앞서 8월에 기획 단계에서 무산됐다.
 
반면 인구가 밀집된 경기도 지역에는 대형 대학병원들의 진출이 차질 없이 진행돼 대조적이다. 수익성을 고려해야 하는 병원의 입장에서는 의료 수요 등을 고려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지방과 수도권의 의료불균형이 더욱 커질 것이라 우려가 나오고 있다.
 
잇달아 차질 빚는 지방 의료기관 설립 vs 매끄러운 대학병원의 경기도 진출
 
기획재정부가 당초 지난 20일로 예정돼 있던 대전의료원 설립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 AHP(계층화분석법, analytic hierarchy process, 결정 기준의 가중치를 정량화해 정부나 기업의 의사결정에 반영하는 전세계적 절차 분석법) 분과위원회 개최를 추가 논의를 전제로 무기한 연기했다. 이에 12월로 잡혀 있던 예비타당성(예타) 조사 결과 발표는 내년으로 밀리게 됐다.
 
대전의료원 설립은 1992년 시립병원 설립추진 건의안이 대전시의회에 처음 제출된 후 20여 년간 추진된 사업이다. 허태정 대전시장은 “메르스와 코로나19 사태속에 감염병 컨트롤타워 구축을 위해서는 대전의료원 설립이 필요하다”며 “시민들의 20년이 넘는 숙원사업이자 대통령 공약사업인 대전의료원이 이번에야 말로 설립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대전의료원은 지난해 7월 열린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예타 1차 보고회에서는 경제성 기준치(1.0)를 넘지 못했다. 지자체는 코로나19 장기화로 공공의료 필요성이 높아진 만큼 KDI가 대전의료원 설립이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반려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2018년에도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추진이 중단된 적이 있다며 불안감을 표했다.
 
아예 병원 설립 추진이 무산된 곳도 있다. 지난 22일 충남도와 충남개발공사에 따르면 내포신도시에 암치료센터·종합병원을 건립하겠다고 나선 한국중입자암치료센터가 지난달 16일 기한이었던 병원 부지 매입비 2차 중도금 28억여원을 내지 못해 충남개발공사로부터 계약해지를 통보받았다. 이들은 지난 4월 16일 1차 중도금도 납부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중입자암치료센터는 지난해 10월 충남도·홍성군과 투자협약을 맺고, 3700억원을 들여 내포신도시 내 종합의료시설 부지 3만4212㎡에 2022년까지 300병상 규모의 암 치료 중심의 종합병원을 건립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사업성을 입증해 투자금을 모으는 데 실패했다.
 
이보다 앞서 8월에는 충남 민선7기 정부의 주요 공약인 공주시 치매안심요양병원 유치 계획이 예산 부족 등의 문제로 무산됐다. 당초 공주시는 2022년까지 384억원을 투입해 60세 이상 치매환자와 가족이 이용할 수 있는 200병상 규모의 치매안심요양병원을 신축할 계획이었으나 국비 예산 확보가 어렵고, 민간요양병원의 수익 악화 우려 등을 이유로 사업을 포기했다.
 
이와 달리 경기도 지역에 건립 예정인 대학병원들은 코로나19 상황에도 차질없이 진행돼 대조를 이뤘다. 의정부시에 지어지는 을지대병원과 광명시의 중앙대병원의 개원은 예정대로 내년에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아주대와 한양대는 각각 파주시, 안산시와 병원 건립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시흥시에 들어선 시흥서울대병원은 지난 8월 건립추진준비위원회를 개최했다.
 
병원 유치 과정에서 이견을 보였던 김포시와 경희대도 내홍을 극복하고 사업추진을 이어가고 있다고 지난 10월 19일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김기택 경희의료원장이 밝혔다.
 
의료수요 낮은 지방, 낮은 수익성에 지방 진출 망설이는 병원‧의료재단 … 지역 의료격차 심화 우려
 

이에 지자체가 치적을 위해 병원 설립을 무리하게 추진하면서 혈세와 행정력을 낭비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내포신도시 종합병원의 경우 중입자센터가 담보할 수 없는 외부 투자금을 끌어와 병원을 건립하겠다는 무모한 계획이었음에도 충남도와 충남개발공사가 제대로 이를 검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자체의 검증과 지원만으로 지방의 의료기관 건립이 순조롭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의료계는 지방의 의료수요가 극히 적어 재단에서 일정 규모 이상 병원을 지방에 짓는 것을 망설이게 된다고 설명한다.
 
의료계 관계자는 “신도시 등이 들어설 때 필수진료과를 운영하는 조건으로 병원을 유지하게 되는데 중대형 병원을 짓는 데 몇 년간 큰 돈을 투자해야 하는 재단 입장에서는 상업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사전 의료수요 타당성 조사에서는 대부분 결과가 좋게 나오지만 막상 병원을 지어 운영하다보면 대부분 적자에 허덕이게 된다”고 밝혔다.
 
중증질환 환자는 서울 대형병원을 찾아 가기 때문에 지방 의료기관의 의료수요가 실제 인구보다 더욱 줄어드는 게 가장 중요한 지방의료기관 활성화의 걸림돌이 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일례로 서울아산병원 입원 환자의 53%는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이 이어지면 경기‧수도권과 지방의 의료격차가 더욱 심해질 수 밖에 없다. 가뜩이나 심각한 의료격차가 더욱 심화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건보공단 권역별 300병상 이상 공공의료기관 설치 주장 … 병상 과잉 상황에서 민간병원 불이익 우려
 
차제에 지방의 의료시설을 공공의료기관이 전담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지난 18일 진료권역별로 300개 이상의 병상을 가진 종합병원급 공공의료기관을 마련해 지역 간 의료격차를 해소하고,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안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국내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이 2017년 전체 인구의 13.8%에서 2047년 38.4%로 가파르게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며 “중간 규모의 민간병원은 수익을 내는 게 어려워지고, 결과적으로 해당 지역의 의료시장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의료서비스는 의료보험 도입 후 민간병원 중심으로 의료 수요를 감당해 왔다. 지난해 12월 기준 전체 의료기관 4034개 중 공공의료기관은 221개로 5.7%이며 공공병상 수는 6만여개로 전체 병상 수의 10% 수준이다. 이는 일본의 27%, 독일의 40.7%, 프랑스의 61.5%와 비교해 한참 낮은 수준이다.
 
보고서는 민간을 중심으로 의료 공급이 이뤄지다 보니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과잉 및 과소 진료 문제가 나타나며, 국가적인 재난·재해 상황에서의 안전망도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또 공공병원이 안정적으로 정착하면 전 국민이 보건·복지 혜택을 고르게 누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의료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공공병원을 설립하는 데 드는 비용은 300∼500개 병상당 약 2000억원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의료계는 “국내 병상수는 이미 과잉”이라며 “의료수요 부족 문제 및 의료인력 부족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이 없는 한 병상 수만 늘린다고 될 일이 아니다”고 단언했다. 핵심은 의료인력의 효율적 배분에 달려 있다는 입장이다. 
 
국내 전체 병상수는 1000명당 12.3개로 OECD국가 중 두 번째로 많으며 평균(4.7개)의 2배가 훨씬 넘는 수준으로 과잉이라는 지적이 나온 지 오래다. 
 
지역의료기관에 금전 인센티브주는 ‘지역수가제 도입' 국회 의결 … 의료계 기대
 
이런 가운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지역의료수가제 도입이 논의되고 있어 만성적인 지방 의료기관의 적자를 개선하는 묘책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지난 25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제2법안심사소위원회는 수도권과 그 밖의 지역의 요양급여비용에 차등을 두는 일명 '지역수가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건강보험법안 개정안’을 수정 의결했다고 밝혔다.
 
강기윤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법안으로, 건보법 제47조 요양급여비용의 청구와 지급 등과 관련해 ‘지역별 의료자원의 불균형 및 의료서비스의 격차 해소 등을 위해 지역별로 요양급여비용을 달리 정해 지급할 수 있다’는 조항이 신설됐다.
 
당초 보건복지부는 “지역수가 차별화를 위한 법 근거 마련에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고, 본인일부부담금은 법에 의해 미리 정해지기보다는 전문가와 건강보험가입자 등 의견을 수렴해 탄력적으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며 '신중론'을 견지했다. 하지만 국회 보건복지위 위원들은 지역별 의료자원 배분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비수도권 지역에 개설·운영되는 요양기관에 금전 인센티브를 주자는 취지에 뜻을 모았다. 
 
이같은 법안개정에 의료계도 환영의 뜻을 밝혔다. 대한의사협회는 26일 성명을 내고 “국내 심각한 의료자원 분포의 불균형은 획일적이고 불합리한 보상체계 탓”이라며 “이번 개정안은 열악한 환경에서 지역보건의료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지역 의료인들에게 더 나은 처우와 보상을 보장하여 사기를 진작하고 어려운 의료기관 운영에도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건강보험 재정 수용성, 지역별 요양기관 형평성, 본인일부부담금 변화 등의 문제로 반발이 예상되는 데다, 수가제도 개선만으로는 지방에 필요한 종합병원 건립에 동력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지방병원의 수익을 보장할 수 있는 더 근본적인 대책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진규 대한지역병원협의회장(경기도 평택 PMC박병원 이사장)은 “새로운 병원을 지으려 혈세를 낭비하기보다 기존의 병원급 지방 의료기관에 직접 투자해 지방의료를 견인하는 역할을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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