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정의한 향정신성의약품(이하 향정)은 ‘인간의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며, 오용하거나 남용할 경우 인체에 심각한 위해가 있다고 인정되는 약물’이다. 오남용할 경우 신체적 또는 정신적 의존성을 일으키는 약물 또는 이를 함유하는 물질로서 의료용과 의료용으로 쓸 수 없는 물질로 나눈다.
식약처는 위해성이 강한 것부터 약한 순으로 가, 나, 다, 라, 마 목(目)으로 향정을 세분하고 있다. 마약류관리법에 의한 마약류 분류(출처 국립부곡병원 홈페이지)
가목은 의존성이 심각해 의료용으로 쓸 수 없는 물질들이다. 안전성이 결여돼 있다. LSD(lysergic Acid Diethylamide), Methcathinone 및 유사체, Kratom, JWH-018 및 유사체 등이 있다.
LSD는 맥각 알칼로이드에서 유도된 강한 환각작용을 가진 합성물질이다. 20~30µg으로도 환각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만큼 엄청나게 강력한 환각제이다. 2017년 10월 대전 유성구에서 LSD를 투약한 아들이 어머니와 이모를 환각 상태에서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나목은 매우 제한된 의료용 사용이 허용되는, 심한 신체적 또는 정신적 의존성을 일으키는 약물이다. 암페타민(Amphetamine), 메스암페타민(Methamphetamine), 메틸렌디옥시메탐페타민(3,4-methylenedioxymethamphetamine, MDMA), 케타민(Ketamine), 메틸페니데이트(methylphenidate) 등이 있다.
암페타민은 중추신경을 자극하는 각성제다. 미국에서 애더럴(Adderall)이란 약이 ‘공부 잘하게 하는 약’으로 미국 청소년과 대학생들 사이에서 인기다. 국내서는 1980년대 한창 퍼졌다가 이후 금지돼 있다. 이따금 미국에서 유학하고 귀국한 학생들이 반입했다가 문제가 되는 약물이다.
메스암페타민은 ‘필로폰’ 또는 ‘히로뽕’으로 알려진 각성제다. 일본에서는 각성제하면 ‘히로뽕’을 연결시킬 정도로 유명하다. 암페타민의 유도체로서 중추신경을 강력하게 흥분시키고 의존성이 매우 높다. 결정이 얼음처럼 희고 물에 잘 녹아 단속을 피하거나 범죄를 일으키는 데 악용될 수 있다. 지금도 해외 유입 불법 마약의 20%가량이 히로뽕이다.
필로폰은 노동을 사랑한다는 뜻의 그리스어 'philoponos'에서 따온 상품명으로 그만큼 근로나 학습 의욕을 강화시킨다는 의미를 담았다. 히로뽕은 필로폰의 일본식 발음이다.
MDMA는 메스암페타민과 화학구조가 굉장히 유사한 구조의 향정신성 물질이다. 일명 ‘엑스터시’(Ecstasy)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환각 작용이 강해 복용 후 30~60분이 지나면 서서히 환각작용이 나타나 6~10시간 지속된다. 엑스터시를 투여받고 밤새도록 나이트클럽 같은 데서 춤을 출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그래서 ‘도리도리약’이란 별칭도 있다. 이럴 경우 탈수증이나 심폐기능 저하로 치명적인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엑스터시는 희열감을 증폭시키고, 에너지를 넘치게 하며, 훈훈한 감정이 들게 한다. 감각을 왜곡시키고 시간 감각을 잃어버리게 한다. 기억상실증의 부작용도 크다고 알려져 있다.
2023년 4월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불특정 고교생을 대상으로 ‘공부 잘하게 만드는 음료수’라며 범죄조직 일당이 먹인 게 바로 필로폰과 엑스터시를 혼합한 것이었다.
케타민은 본래 마취제로 개발됐고, 수의학에서도 동물용 마취제로 많이 쓴다. 케타민은 미다졸람, 프로포폴과 함께 수면마취제 3총사로 불린다. 강력한 진통작용과 함께 환각작용을 가져 마약처럼 오남용되는 대표적인 향정 중 하나다.
케타민은 소량 투여 시 현기증, 운동기능장애, 어눌한 발음, 도취감 등을 유발할 수 있다. 중간량 투여 시 무질서한 사고, 비현실적 감각을 야기한다. 과량 투여 시 통각상실(마취) 및 기억상실을 보일 수 있다. ‘스페셜 케이’ 또는 ‘슈퍼 케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다목은 심하지 않은 신체적 의존성 또는 심한 정신적 의존성을 일으키는 약물을 말한다. 바르비탈류(Barbital, Barbiturates), Lysergic acid amine, 펜타조신(Pentazocine) 등이 있다.
라목은 의료용으로 사용하며, 다목보다 신체적 또는 정신적 의존성을 일으킬
우려가 적은 약물이다. 디아제팜(Diazepam), 로라제팜(Lorazepam), 미다졸람(midazolam), 플루니트라제팜(Flunitrazepam), 프로포폴(Proprfol), 졸피뎀(Zolpidem), GHB(Gamma-Hydroxybutyrate), 펜플루라민(Fenfluramine), 펜터민((phentermine). 카리소프로돌(Carisoprodol) 등이 있다.
디아제팜과 로라제팜은 전형적인 벤조디아제핀(Benzodiazepine) 계열 약물로 급성 불안 및 흥분의 완화, 진정 및 최면 작용, 항경련 및 근육이완 등 3대 효과를 가진다. 걱정을 덜어주고 발작을 줄여주며 트러블(잠꼬대) 없는 숙면을 유도한다. 장기간 투여하면 기억상실을 초래할 수 있다.
벤조디아제핀 계열은 바르비탈류와 마찬가지로 중추신경계 활동을 감소시키고, 심장박동 및 호흡을 줄이며, 이완 및 졸음을 유발한다.
미다졸람은 진보된 벤조디아제핀 계열로 뇌의 가바(gamma-aminobutyric acid, GABA) 수용체에 작용, 가바(GABA)를 통한 뇌 억제성(진정) 효과를 나타낸다. 효과가 빠르게 나타나고 짧은 시간 동안 효과가 지속되므로 내시경검사나 수술 전에 진정 목적으로 사용된다. 졸음이나 주의력 저하 등의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투여 후 자동차 운전이나 위험한 기계 조작을 하지 않도록 한다.
플루니트라제팜(대표 상품명 로슈 ‘ROHYPNOL’, 환인제약 ‘라제팜정’)은 벤조디아제핀 계열 수면제로 외국에서는 ‘데이트 납치(또는 강간)’(date rape) 범죄에 악용되고 있다.
프로포폴은 소수성 물질이라 대두유나 달걀 레시틴을 첨가해 에멀전 상태로 제제화해 주사한다. 걸쭉하고 탁한 흰색을 띠어 일명 ‘우유주사’로 알려져 있다. 많은 연예인과 유명인이 프로포폴 오남용으로 언론에 회자되고 있다. 프로포폴은 내시경검사나 간단한 시술에 마취 및 진정용으로 투여된다. 하지만 이를 수면용으로 악용하면 ‘짧은 시간에 깊은 잠을 잔 것’ 같은 숙면효과를 누리게 되고 일부에서는 기분이 좋아지는 환각 효과를 얻을 수 있어 차츰 중독성을 띠게 된다. 안전역이 좁은 편이어서 적정량 초과 투여 시 사망할 수 있다.
졸피뎀은 벤조디아제핀 계열에 속하지는 않지만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처럼 뇌의 GABA 수용체의 벤조디아제핀 수용기에 작용해 GABA 신경전달물질을 활성화시킴으로써 뇌에 대한 억제성 효과를 증가시킨다.
졸피뎀은 불면증의 단기치료에 사용되는 약물이다. 반감기가 2~3시간에 불과해 가장 안전하고 안정적인 최신 수면제로 알려져 있다. 여타 수면제의 반감기는 1~12시간으로 너무 길거나 짧고 심지어 개인마다 들쑥날쑥하지만, 졸피뎀은 효과가 빠르게 나타나 보통 투약 후 15분 이내에 잠들 수 있으며 수면 유지기간도 비교적 일정하다. 취침 바로 직전에 투여한다. 다만 수면유지 시간이 짧다는 평가도 듣기 때문에 서방형 제제가 나와 있다.
그러나 갑자기 투여를 중단하면 금단증상이나 반동성 불면증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투여를 중단할 경우에는 천천히 감량한다. 복용 후 전날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어지러움, 두통 등의 부작용을 겪을 수 있다. 심하면 몽유병 증상이나 수면 운전 같은 이상행동, 졸음, 환각, 선행성 건망증과 같은 인지장애를 동반하기도 한다.
GHB(Gamma-Hydroxybutyrate)는 일명 ‘물뽕’으로 알려져 있다.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버닝썬 사건’ ‘골프 도박 사기’에 동원된 게 바로 이 마약이다. 무색 무취하고 물에 잘 녹아 술이나 음료에 타서 권하기 쉽다. GHB를 비롯해 진정 및 수면 효과가 있는 거의 모든 향정신성의약품이 성범죄에 악용되고 있다.
마목은 가목부터 라목까지에 열거된 것을 함유하는 혼합물질 또는 혼합제제. 다만 다른 약물 또는 물질과 혼합돼 다시 제조하거나 제제할 수 없고, 그것에 의하여 신체적 또는 정신적 의존성을 일으키지 아니하는 것으로서 총리령으로 정하는 것(한외마약)은 제외한다.
향정신성의약품의 약효별 사용 영역
향정은 크게 불안증, 불면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비만 등 4가지로 사용하는 약효군을 분류할 수 있다.
불안장애 치료에 사용하는 벤조디아제핀은 불안장애의 1차 치료약물이 아니고 보조치료로 단기간 사용해야 한다. 범불안장애와 공황장애와 같은 불안장애의 1차 치료약물은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 SSRI)와 선택적 세로토닌·노르에피네프린 재흡수 억제제(serotonin and norepinephrine reuptake inhibitor, SNRI)와 같은 항우울제(불안장애 적응증을 겸비하고 있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음)다. 벤조디아제핀은 약물치료 초기에 불안증과 불면증을 완화할 목적으로 4주 내외로 사용하는 것을 권고한다. 벤조디아제핀은 향정으로서 오남용의 우려가 크고 내성, 의존성, 금단증상 발생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벤조디아제핀은 또 졸음, 피로, 집중력 저하, 낙상으로 인한 골절 등 일상생활에 여러 지장을 주고 과량 복용으로 인한 사망까지 초래할 수 있다. 범불안장애에 사용하는 벤조디아제핀으로는 alprazolam, lorazepam, diazepam 등이 있다. 공황장애에는 alprazolam, clonazepam 등이 쓰인다.
불면증에 사용하는 향정신성의약품으로는 Zolpidem, eszopiclone, zaleplon과 같은 ‘Z-drug’이 대표적이다. 기존 수면제인 benzodiazepine의 단점인 의존성, 내성, 금단증상이 적은 수면제로 개발돼 1980년대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불면장애는 수면의 개시가 어렵거나, 유지가 어렵거나, 또는 일찍 잠에서 깬후 다시 잠들기 어려운 ‘수면의 어려움’이 적어도 1주일에 3회 이상, 적어도 3개월 이상 계속될 때 진단할 수 있다.
수면장애(불면증)의 1차 치료로는 비약물요법인 불면증 치료를 위한 인지행동치료(Cognitive Behavioral Therapy for insomnia, CBT-i)가 시행되는 게 바람직하다. 불면증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생활습관을 교정하는 게 우선이다.
국내 의약품안전사용지침(Drug Utillization Review, DUR)에 의하면 벤조디아제핀 계열의 트리아졸람(trizolam)의 1일 최대 투여량은 0.25mg이고 최대 투여기간은 21일이다. 이에 비해 Zolpidem의 1일 최대 투여량은 10mg이고 최대 투여기간은 28일로 더 안전하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는 과잉행동, 충동성, 주의력결핍을 특징으로 하는 소아에게 주로 나타나는 정신질환으로 DSM-5 기준을 만족할 때 진단이 가능하다. 학령기 아동의 3~6%에서 나타나고 해마다 증가세다.
ADHD 약물치료 시 1차 치료로 중추신경자극제가 사용되는데 국내에서 ADHD 치료에 사용되는 유일한 중추신경자극제 성분이 메틸페니데이트(methylphenidate)로 마약류 관리법상 나목에 속한다. 그만큼 오남용 우려가 심하고, 의료용으로 제한해서 엄격히 사용돼야 한다는 의미다.
메틸페니데이트는 6세 이상의 환자부터 사용이 가능한데 6세 미만이라 하더라도 행동치료와 심리치료와 같은 비약물치료가 효과가 없을 때에는 허가외 (off-label, 비급여)로 사용할 수 있다. 이 약은 시냅스 간극에서 norepinephrine과 dopamine이 시냅스 전 신경세포로 재흡수 되는 것을 억제하여 대뇌피질과 대뇌피질하 구조물(subcortical structures)을 활성화하는 것이 기전을 갖고 있다.
외국에선 한국과 달리 amphetamine류도 ADHD 치료에 사용하지만 국내서는 사실상 중추신경자극제로는 유일하게 메틸페니데이트만 허용하고 있다. 메틸페니데이트는 오남용의 위험성이 커 전문가의 ADHD 진단 없이 ‘집중을 도와주는 약’, ‘공부 잘하는 약’ 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위험하다. 일부 극성스런 부모는 ADHD가 아님에도 일부러 진단을 받아 자녀에게 메틸페니데이트를 복용케 하고 있다. 반대로 ADHD 어린이가 이를 모르고 진단이 늦어져 뒤늦게 약물치료를 받거나, 부모가 향정(마약류)이라고 이 약을 터부시해 치료가 뒤처진다면 학교생활 부적응, 성적 하향에 이어 성인이 된 후 사회생활 부적응으로 평생 곤란을 겪게 되므로 적합한 대상이 ADHD 치료제를 처방받아 사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비만치료에 사용되는 향정신성의약품으로는 펜터민(phentermine), 마진돌(mazindol), 펜디메트라진(phendimetrazine) 등과 같은 중추신경자극제가 있다. 이들 약물은 식이요법과 운동요법에 반응하지 않는 체질량지수(BMI)가 30 kg/㎡ 이상이거나 또는 BMI 27 kg/㎡ 이상이면서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과 같은 다른 위험인자가 있는 비만환자에게 단기간 사용해야 한다. 이들 약물은 16세 이하에게는 안전성과 유효성이 확립되어 있지 않으므로 사용할 수 없고(연령금기), 다른 식욕억제제와 병용하지 않고 단독으로만 사용한다. 국내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에 의하면 이들 약물의 최대 사용기간은 28일이다.
하지만 청소년 사이에서 일명 ‘나비약’(대웅제약의 펜터민 성분 ‘디에타민정’ 모양이 나비넥타이 같아서 붙은 별칭)이 살 빼는 약으로 이름을 얻으면서 젊은층은 물론 16세 이하 청소년에게도 투여되고 있다는 뉴스가 나온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