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는 오는 2030년까지 B형과 C형 간염으로 인한 공중보건 위험 종식을 위해 매년 7월 28일 ‘세계 간염의 날’로 정했다. 우리나라도 간염 예방과 조기 진단, 치료율 향상을 위한 다양한 활동에 동참하고 있다. 세계 간염의 날을 맞아 이문형 강동경희대병원, 이효영 한양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의 도움말로 간염의 위험성과 조기 진단, 치료의 중요성에 대해 알아본다.
전세계 간세포암 약 80%는 B형 또는 C형 간염과 연관
간염은 간에 염증이 생기는 질환으로, B형간염과 C형간염이 대표적이다. 전세계적으로 B형간염은 약 2억9600만 명, C형간염은 약 5800만명이 감염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두 바이러스는 만성 간질환과 간세포암(HCC)의 가장 흔한 원인으로, 간세포암의 약 80%가 B형(60~65%)또는 C형 간염(15%)과 관련돼 있다. 문제는 간세포암이 초기 증상이 거의 없어 조기 진단이 어렵고, 간염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혈액, 체액을 통한 바이러스 감염이 주 경로
B형 간염(HBV)은 감염자의 혈액, 정액, 타액 등 체액을 통한 점막 또는 비점막 접촉으로 전파된다. 특히 출생 시 산모로부터 신생아에게 전달되는 수직감염이 국내를 포함한 고유병 국가에서 가장 흔한 전파 경로로 알려져 있다. 이밖에 감염자의 체액이 묻은 면도기·칫솔 등 생활용품 공유, 성접촉, 무면허 시술 등 일상생활 속 노출을 통해 전파될 수 있다. 항바이러스제를 통해 질환의 진행을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으며, 예방백신으로 감염 자체를 방지할 수 있다.
C형 간염(HCV)은 주로 혈액을 통한 전파가 중심 경로이며, 과거에는 수혈이나 주사기 공동 사용이 주요 원인이었다. 최근에는 비위생적인 문신 시술과 주사기 공유를 통한 약물 사용, 특히 교도소나 비공식 시술 환경에서의 감염 사례가 증가하는 추세다.
감염자의 절반 이상은 만성 간염으로 이행하며, 치료하지 않으면 간경변증이나 간암으로 진행된다. 최근 개발된 경구 항바이러스제는 8~12주 투여만으로 95% 이상 완치를 기대할 수 있어, 조기 발견이 치료 성패를 좌우한다. 현재 국가검진사업을 통해 C형 간염 선별검사가 시행되고 있다.
A형·E형 등 다양한 급성 간염도 주의… 위생관리와 백신이 예방 열쇠
A형과 E형 간염처럼 오염된 음식이나 물을 통해 전파되는 간염도 있어 여행이나 일상생활에서의 예방이 중요하다.
A형 간염은 걸렸다 하면 급성 간염을 유발한다. 대부분은 자연 치유되나 성인 감염 시 증상이 심할 수 있으며, 드물게 전격성 간부전으로 진행하기도 한다. 항체가 없는 20~40대 성인이나 해외 여행 예정자에게 예방접종이 권장된다.
E형 간염은 수인성 감염(오염된 물, 음식 등)을 통해 전염되며, 대부분 급성 간염으로 자연 회복된다. 돼지고기나 가공육 섭취를 통한 국내 감염사례가 보고된 바 있다. 국내 유병률이 낮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환자 수와 항체 양성률이 증가하고 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021년에는 494명의 환자가 신고돼, 이전보다 2배 이상 급증했다. 성인 인구를 대상으로 한 항체 조사에서는 전체 인구의 17% 이상이 E형 간염 항체를 보유한 것으로 보고됐다. 특히 임산부나 면역저하자가 감염될 경우 중증 간염으로 악화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D형 간염은 B형간염 바이러스가 있어야만 증식할 수 있는 특수한 형태로, 동시에 감염되거나 만성 B형 간염 환자 중 중복 감염되는 경우가 있다. 중복 감염 시 간 손상이 심하고 간경변증 진행 속도가 빨라 주의해야 한다.
기타 HSV, EBV, CMV 바이러스에 의한 간염
면역저하자에서는 A~E형 간염 외에도 단순포진바이러스 (HSV), 엡스타인바 바이러스(EBV), 거대세포바이러스(CMV) 등에 의한 간염이 발생할 수 있다.
HSV 간염은 간효소 수치의 급격한 상승과 함께 간부전까지 진행할 수 있으며, 빠른 항바이러스 치료가 중요하다. 주로 장기이식 후나 중증 면역저하자에게 발생한다.
EBV 간염은 젊은 층에서 감염성 단핵구증 형태로 나타나며 간효소 상승이 동반된다. 대부분은 특별한 치료 없이 회복되지만, 드물게 간부전으로 진행할 수 있다.
CMV 간염은 장기이식 환자, 항암치료 환자 등에서 발생하며 간뿐만 아니라 위장관, 폐, 망막 등 전신 장기에 침범할 수 있다. 진단 시 항바이러스제 치료가 필요하다.
간단한 혈액검사로 진단 가능
간염은 간단한 혈액 검사로 확인할 수 있다. B형간염은 표면항원(HBsAg)과 표면항체(HBsAb)를 검사해 감염 여부와 면역 상태를 알 수 있다. 표면항원이 양성이면 현재 감염 상태, 항체가 양성이면 백신 접종이나 과거 감염을 통해 면역이 생긴 것을 의미한다.
C형간염은 먼저 항체 검사(anti-HCV)를 시행한다. 이 항체가 양성으로 나올 경우, 실제 감염되었거나 과거에 감염된 적이 있다는 의미일 수 있다. 다만 드물게 위양성(실제 감염이 없는데 양성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정확한 확인을 위해 추가로 C형간염바이러스 RNA검사(HCV RNA)를 시행해야 한다. 이 검사를 통해 현재 바이러스가 몸 안에 있는지 여부를 알 수 있다.
혈액검사는 간기능검사 (AST, ALT, GGT, 빌리루빈 등)는 기본이고 바이러스 항원·항체 검사 (HAV IgM, HBsAg, HBsAb, HBcAb IgM, HCV Ab, HDV Ab IgM, HEV IgM 등), 정밀 바이러스 유전자 검사(HBV DNA, HCV RNA, HDV DNA 등)가 있다. 영상검사에는 복부 초음파, 복부 컴퓨터단층촬영(CT), 간 섬유화검사 등이 있다. 만성 간질환 환자의 경우 6개월 간격의 간암 감시 검사(복부 초음파 및 AFP 검사)가 권고된다.
B형 간염은 꾸준한 관리, C형 간염은 약물치료로 99% 이상 완치 가능
B형 간염과 C형 간염은 감기처럼 한 번 앓고 지나가는 병이 아니라, 만성으로 진행될 수 있어 꾸준한 치료와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B형 간염은 완치할 수 있는 약은 없지만,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하고 간 손상을 줄일 수 있는 항바이러스제가 있다. 약물치료는 적절한 시기를 놓치지 않고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정기적인 추적 관찰을 통해 투여 시기를 놓치지 않는 게 핵심이다. 항바이러스제를 복용 중이라면 반드시 주치의의 처방에 따라 꾸준히 복용해야 한다. 자의적으로 복용을 중단하는 것은 간 손상을 악화시키거나 치료 효과를 떨어뜨릴 수 있어 매우 위험하다.
C형간염은 최근 개발된 직접작용 항바이러스제(DAA) 덕분에 8~12주 정도의 약물치료만으로 99% 이상 완치가 가능하다. 특히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면 간경변이나 간암으로의 진행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어 조기 검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B형 간염, 치료 시기 놓치지 않으려면 정기검진 중요
40세 이상의 B형 간염 보유자는 6개월마다 정기적으로 혈액검사와 간 초음파 검사를 받아야 한다. 간 상태를 주기적으로 확인하면,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치지 않고 간암이나 간경변으로의 진행을 막을 수 있다. 국내서는 국가건강검진사업을 통해 B형 간염 보유자에게 간 초음파와 혈액검사를 무료 또는 10%의 본인 부담금으로 제공하고 있어, 적극적인 검진 참여가 권장된다.
C형 간염 방치하면 간암까지… 국가검진으로 조기 발견 추진
C형간염은 방치하면 간경변이나 간암으로 진행될 수 있는 위험한 질환이지만, 감염자 수에 비해 실제 치료받는 환자가 매우 적다. 대한간학회는 국내 C형 간염 감염자가 약 3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지만,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실제 진료받은 환자는 2만6395명에 불과했다. 전체 감염자의 약 8.8%로 10명 중 1명만 진료를 받은 수준이다.
이는 대부분 증상이 없거나 매우 경미하게 나타나 감염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고, C형간염 검사가 국가건강검진 항목에 포함되지 않아 조기 진단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2025년부터는 56세가 되는 국민(1969년생)을 시작으로, C형간염 항체검사가 국가건강검진에 포함돼 생애 한 번 무료로 검사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만성 간염은 간세포를 지속적으로 자극해 간섬유화와 간경변증을 유발하고, 이는 간암 발생의 주요 원인이 된다. 최근에는 알코올성간염, D형간염, 면역저하자의 CMV/HSV 간염 등에서도 간암 사례가 증가하고 있어 고위험군의 정기 감시가 필수적이다.
피로감? 감기 아닐 수도… 간 건강 점검해야
간염을 포함한 간질환은 뚜렷한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아, 단순한 피로감이나 식욕 저하를 감기로 착각하고 지나치기 쉽다. 이밖에 미열, 구역, 상복부 불쾌감 등 비특이적 증상만 나타나며 일부에서는 황달, 진한 소변, 회색변, 간통증 등의 증상이 동반될 수 있다. 이문형 강동경희대병원(왼쪽), 이효영 한양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이러한 증상 뒤에는 간기능 이상이나 만성 간질환이 숨어 있을 수 있어, 정기적인 혈액검사를 통해 간 수치를 확인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문형 교수는 “간기능 수치가 정상보다 높게 나올 경우, 반드시 소화기내과 전문의와 상담해 원인을 정확히 확인해야 한다”면서 “만성 간염은 수년간 특별한 자각증상 없이 진행되기 때문에 증상이 없더라도 정기적인 간기능 검사를 통해 이상을 조기에 발견하고 예방하는 것이 간 건강을 지키는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