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소아·청소년 5명 중 1명은 성인이 되기 전 1번 이상의 우울 삽화를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울 삽화는 일정 기간 기분 저하, 정신 및 행동 변화 등 우울증 증상이 나타난 사례가 있음을 뜻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6세~11세 아동의 우울증 진료 건수는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92% 증가했으며, 12세~17세 청소년은 57% 증가하는 등 국내 소아우울증 발생은 점차 증가하는 추세로 나타났다.
김재원 서울대어린이병원 소아정신과 교수는 “소아우울증은 방치하면 성인까지 영향을 미치는 만성 우울증으로 발전할 수 있어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중요하다”며 “소아에서 우울증 증상이 나타날 때 단순한 감정 기복으로 넘기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소아우울증 원인의 60%는 학업 스트레스, 가족·또래 관계 등의 환경적 요인이며, 나머지 40%는 유전적 요인이다. 소아우울증은 성인우울증과 비슷하게 식욕 저하, 불면증, 집중력 저하 등을 동반한다. 특히 공부에 집중이 안 된다고 호소하거나, 이전에 즐기던 활동에 대한 흥미나 의욕이 사라지는 아이들이 많다. 우울한 상태를 자각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우울감 대신 짜증이나 예민함이 나타나기도 한다. 성인과 달리 주의력결핍행동장애(ADHD), 품행장애, 불안장애 등을 동반할 수 있어서 체계적인 진단이 중요하다.
소아우울증에서 주목할 위험요인
또래관계의 어려움: 친구와의 갈등이나 학교폭력은 소아우울증의 중요한 위험요인이므로 또래관계가 잘 유지되는지 살펴야 한다. 또래관계에 다소 문제가 있더라도, 어릴 때부터 꾸준히 교류하는 좋은 친구 한두 명을 만들어 계속 유지한다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
SNS: 아이들이 SNS를 사용하다보면 우울증이나 자해·자살위험을 높이는 잘못된 정보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 소아청소년기에는 SNS를 사용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실제로 몇몇 외국에서는 연령 제한을 포함한 온라인 아동보호법이 속속 발휘되는 중이다.
소아 비만: 최근 발생률이 증가하는 소아비만은 정확한 인과관계는 입증되지 않았으나, 다양한 연구를 통해 소아 비만과 소아우울증은 서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두 질환 모두 적극적인 예방이 필요하다.
사춘기와 혼동하기 쉬운 소아우울증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들은 사춘기와 우울증 증상을 혼동하가 쉽다. 이를 구분하기 위해 아이의 변화를 관심 있게 지켜보는 게 필요하다.
사춘기에 흔히 발생하는 감정 기복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우울증에 의한 감정 변화는 지속적으로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며, 치료가 필요하다. 우울감이나 과민함이 2주 이상 지속되며, 우울증 경고 증상 중 4가지 이상이 나타나야 우울증이라 진단할 수 있다.
가령 초등학생 때까지 공부를 잘하던 아이가 중학생 때부터 갑자기 학업에 부진하다면, 부모가 가장 먼저 걱정하는 문제는 ADHD인데, 실제로는 소아우울증에 동반된 집중력 저하일 가능성이 높다.
김 교수는 “서울대어린이병원에서는 ‘DSM-5’(미국정신의학회 평가기준)과 ‘CDRS-R’(소아·청소년 우울증 중증도 평가도구)를 사용해 소아우울증을 진단하며, 우울증 이외의 정신과적 질환을 진단하기 위해 ‘K-SADS’ 라는 면접 도구를 사용한다”며 “CDRS-R 평가 결과, 40점 미만의 경증이면 심리치료를 우선 진행하고, 40점 이상(중등도 이상)이면 항우울제 치료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김 교수에 따르면, 항우울제 치료에 반응하는 환자는 60% 정도다. 일반적으로 치료 시작 8~12주째에 반응을 평가하고 지속 여부를 결정한다. 치료반응은 CDRS-R로 평가한 증상이 50% 이상 감소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하며, 반응이 있으면 같은 용량으로 6개월 정도 치료를 지속하고, 치료 중단을 목표로 점차 용량을 줄여나간다. 만약 반응이 없다면 약제 종류를 바꾸고 인지행동치료를 병행하게 된다.
김 교수는 “항우울제를 장기 복용할 경우, 부작용으로 자살 생각이 증가하는 것을 우려하는 이가 많지만, 연구에 따르면 장기 복용으로 인한 자살 생각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증가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항우울제 치료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훨씬 크다”고 설명했다.
소아·청소년은 감정을 표현하거나 조절하는 능력이 미숙한 경우가 많아서 ‘놀이치료’나 ‘정서조절 훈련’을 병행하는 경우가 있다. 치료에 동참하는 보호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므로 ‘가족치료’를 함께 실시하기도 한다.
신체질환이 있는 소아우울증 환아의 경우, 치료 과정을 견디기 위해선 신체적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돕기 위해 즐겁게 할 수 있는 운동이나 취미를 혼자서 계획·실천하도록 하는 ‘행동활성화 치료’를 실시할 수 있다.
김 교수는 소아우울증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2가지 요소는 ‘자살 예방’과 ‘부모의 도움과지지’라고 강조했다. 경미한 우울증으로도 자해나 자살 위험이 커지므로, 보호자가 아이를 잘 이해하도록 우울증에 대해 공부하고, 긴 치료 과정에서 지치지 않고 아이를 지지해 주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소아우울증 예방을 위해서는 게임이나 휴대폰 대신 건전한 신체활동을 통해 휴식할 수 있는 시간·공간을 마련하는 등 마음과 몸이 건강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기적인 선별 검사도 조기 발견과 예방에 도움이 된다. 미국에서는 만 12~18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연 1회 우울증 선별 검사를 권장하고 있다. 반면 국내서는 초등학교 1·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정서행동 특성검사가 시행되는데, 정기검사로서는 부족한 실정이다. 따라서 가정에서도 실시할 수 있는 우울검사(PHQ-9)와 같은 평가 도구 등을 통해 매년 정기검사를 해보는 게 추천된다.
김 교수는 “소아우울증을 겪는 아이와 부모는 이 상황이 자신의 잘못에서 비롯되었다며 죄책감을 느끼곤 하지만, 우울증은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병이므로 그 원인을 찾으려 하기보다는 현재와 미래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자책하지 말고 아이의 회복과 건강한 미래를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