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함께 면허대여 약국(면대약국)을 운영했던 대한항공 계열사 정석기업 관계자가 지난 20일 형사재판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판결에 따라 부당이득금 1052억원 징수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방법원은 이날 형사재판 1심에서 고 조양호 회장과 공모해 약국을 개설한 정석기업 원모 씨와 약국을 관리한 류모 씨, 이모 씨에게 약사법 위반과 약사법 관련 사기 모두 유죄를 선고했다. 원 모씨는 징역 5년, 류모 씨는 징역 3년, 이모씨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이 각각 선고됐다.
이날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불법 개설된 약국은 급여청구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건보공단에 고의로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했으며 이런 불법 행위에 엄정히 대처하지 않으면 공공이익을 위해 규정한 법 규제가 실효성이 없게 된다”고 언급했다.
면대약국은 약사법에 따라 약사가 약국을 개설하고 운영해야 하는 규정을 어기고 약사 면허가 없는 사람이 실제 주인으로 운영하는 약국을 말한다. ‘사무장병원’처럼 외부 자금이 유입돼 운영된다.
면대약국은 적발이 어렵다. 정황상 의심할 만한 증거가 많아도 갈수록 복잡하고 교묘해지는 수법들을 정확하게 집어낼 수 없어서다. 가장 고전적인 수법은 약사가 아닌 사람이 자본을 대고 약사가 면허를 대여해 약국을 개설하는 형태다. 주로 약국 운영이나 유통구조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제약·유통업계 관계자인 경우가 많다. 면허를 빌려준 약사는 이들에 비해 경험이 부족한 초보자인 사례가 많다. 가장 흔하게 적발되는 사례다.
조 전 회장 면대약국 운영 의혹은 2018년 6월 대한항공 오너 일가 갑질 문제와 함께 불거졌다. 조 회장은 의약분업으로 인해 인하대병원 내 약국을 운영할 수 없게 되자 대한항공 계열사인 정석기업 원모 씨와 류모 씨를 통해 약사 이모 씨 명의로 병원 앞 정석기업 별관에 2008년 10월부터 2014년 12월까지 면대약국을 개설해 운영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당시 한진그룹은 “조양호 회장은 차명으로 약국을 개설하거나 약사 면허를 대여받아 운영한 바 없다”며 “정석기업이 약사에게 약국을 임대한 것으로 해당 약국에 돈을 투자한 바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번 판결에 따라 건보공단은 1심 확정 시 원모 씨, 류모 씨, 이모씨와 조 전 회장 상속인을 대상으로 부당이득금을 징수할 예정이다. 조 전 회장의 상속인은 장남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을 비롯해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차녀 조현민 한진칼 전무, 미망인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 등이다. 다만 실제 환수가 추진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피고인들의 항소 가능성도 아직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