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 코로나19) 유행으로 외식·숙박·관광 등의 업종 못잖게 타격을 입은 게 약국이다. 대체로 처방 건수가 20% 이상 줄었다는 게 약사들의 하소연인지만 포스트 코로나 이후 제기될 비대면 약국 경영 형태에 대한 우려도 크다. 여기저기서 기존의 약국이 영위해온 약업권을 훼손하는 시도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워낙 조용히 움직이는 대한약사회의 패턴 상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이른 바 현행 ‘4대 이슈’ 해결에 물밑으로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이다. 그 문제와 진행 상황, 향후 전망 등을 알아본다.
해묵은 과제 ‘한약사’ … ‘통합약사’ 추진되나
약사 사회의 뜨거운 감자는 한약사 문제는 1990년대부터 시작돼 아직도 별다른 진척 없이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약사들은 약사법 2조에 한약사의 업무 범위가 ‘한약과 한약제제’로 규정된 것을 근거로 한약사의 일반의약품 판매가 불법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한약사들은 약사법 상 약국 개설권이 있는 한약사의 일반약 판매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한약사의 업무 범위는 한약과 한약제제로 제한돼 있다. 하지만 현행법상 한약사의 일반약 판매가 위법이라도 처벌할 수 있는 별다른 법 조항은 없다. 일부 한약사들이 약국 개설해 약사와 똑같이 일반약을 판매하면서 유통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을 오래 지켜본 약사들의 마음은 편치 않다. 이로 인해 두 집단 사이에는 오랜 세월 정서적으로 대립해왔다.
1993~1994년 약사와 한의사가 한약 처방권 및 조제권을 놓고 벌인 이른바 ‘한약분쟁’에서 여론전에 밀려 일방적으로 한약과 관련한 권익을 빼앗긴 약사들은 이 분쟁의 타협안으로 탄생한 한약학과를 좋아할 수 없었다.
현재 한약학과는 경희대, 원광대, 우석대 등 3개 대학에 개설돼 있는데 시간이 갈수록 졸업생은 물론 재학생 간에도 업권과 관련한 갈등의 틈이 벌어지고 있다는 게 일선 학교의 시각들이다.
문제는 이대로 간다면 한약사가 존립 여부가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한약사가 독립적으로 약국을 개설해도 면허 범위 내에서 가질 수 있는 영역이 일반약 말고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한방병원이나 한의원도 1990년대와 비교하면 턱없이 수익성이 떨어져 한약사를 고용할 여력이 못된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대한약사회가 한약학과 폐과 얘기를 꺼냈다. 또 지난 10월 7일 약사 출신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통합약사 추진을 언급하며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 의원은 국감에서 “의료일원화와 약사-한약사 통합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약파동(한약분쟁)으로 발생한 한약사는 사생아로 태어난 잘못된 제도의 산물인 것을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지금 고양이 목에 방울을 안 달고 있다”며 “이 문제를 계속 방치하는 것은 약사-한약사간 갈등을 존치시키기 때문에 차제에 의료일원화와 함께 통합약사를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실천하는 약사회 등 일부 약사단체는 한약학과 폐과는 결국 통합약사 추진을 위한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한약학과 폐지 추진보다 한약사의 일반약 판매 등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한약학과 폐지 후 약학과로 흡수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
이에 좌석훈 대한약사회 부회장은 “대한약사회는 통합약사를 추진하지 않으며 현재의 법제도하 어떤 방법으로도 한약사의 약사 직역 수행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또 대한약사회는 지난 6일 한약 관련 현안 TFT 1차 회의를 열고 “통합약사 추진에 대해서는 결정한 바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결론적으로 한약학과 폐과의 필요성은 타당하지만 기존 한약사의 향후 처리방안까지 약사회가 관여할 이유가 없다는 게 결론이다.
현재는 약사회가 통합약사 추진에 대해 선을 그었지만 보건복지부가 장기적으로 의료일원화를 목표로 추진하고 있는 만큼 이와 맞물려 통합약사도 논의될 가능성 있다. 현재 한의사들은 코로나19로 의사 수 인력 부족이 이슈화되지 한의사에게 의사들이 할 수 있는 진단, 시술 등에 권한 확대를 요구하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내심 한의사가 의사로 편입되길 기대하고 있어 한약사 문제는 이런 맥락에서 같이 처리될 소지가 있다.
대체조제? 동일성분 조제?
지난 9월에는 서영석 의원이 약사의 대체조제 간소화·활성화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의약계가 대체조제 찬반 논쟁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서 의원은 지난 9월 2일 대체조제란 명칭을 ‘동일성분 조제’로 바꿀 것과 약사가 대체조제 후 통보 대상을 사실상 현재 의사·치과의사에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 바꾸는 내용의 에도 통보할 수 있도록 확대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내놨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약사는 대체조제 시 지금처럼 해당 병·의원에 알리는 대신 심평원에만 대체 사실을 통보해도 된다. 심평원은 이런 대체조제 사실을 병·의원에 알리게 된다.
서 의원이 지난 10월 2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대체조제(동일성분조제)에 대한 약사 5730명 대상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체조제’를 ‘동일성분조제’로 용어를 변경하는데 94.5%가 ‘매우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약사 측은 대체로 대체조제 활성화에 적극 찬성하는 분위기지만 의료계의 반대가 계속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의사 측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생물학적동등성시험을 거친 제네릭은 오리지널과 효능·부작용이 달라 대체조제를 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는 “대체약이 동일한 약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같은 약으로 변경해 주는 듯한 용어인 동일성분조제로 명칭을 변경하는 것은 환자에게 동일한 약을 처방받았다는 잘못된 인식을 줄 수 있다”며 “이는 환자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것과 동시에 환자를 호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약사 측에서는 제네릭은 국가가 인정하는 생동성시험을 통과해 오리지널약을 기준으로 동등한 효과를 인정받은 의약품으로 대체조제해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약사회 관계자는 “같은 성분의 약을 수시로 다른 제약사 제품으로 변경해 처방하는 의사들이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반박했다.
병원의 잦은 처방 변경으로 쌓이는 불용재고는 단순히 약국의 금전적 피해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환경오염 문제까지 확대된다.
의약분업 이후 의사들은 약의 성분을 표기하는 성분명 처방과 특정약의 상표를 기입하는 상표명 처방 등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적용할 수 있다. 국내 의료현장에서는 대개 상표명으로 처방이 이뤄지고 약사는 이를 동일성분의 다른 브랜드 약으로 변경조제하기 위해 사후에 의사에게 팩스 등으로 통보해야 한다. ‘대체조제 불가’ ‘처방변경 불가’ 등이 처방전에 명시될 경우 의사의 사전동의를 얻어야 하지만 이를 지키는 약국은 거의 없다. 조제를 하지 않든지, 편법으로 임의조제하고 의사에게 통보하지 않는 식이다. 이에 대한 사법처리 판례도 아직 없는 실정이다.
모 약사는 “상품명으로 처방전을 받는 환자는 같은 성분의 약을 먹으면서도 같은 성분의 다른 브랜드 제품으로 처방이 변경되면 전혀 다른 약을 먹고 있다고 오해하기도 한다”며 상품명 처방의 한계를 지적했다.
강민구 우석대 약대 교수는 “의사와 약사는 환자에게 최적의 치료를 제공하기 위한 하나의 팀이 돼야 한다”며 “두 집단 대결구도 속에서 시비를 가리기보다는 환자와 보건경제를 위해 무엇이 합리적이고 올바른 선택인지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에 화상투약기 도입 문제 다시 도마 위로
올해는 코로나19로 비대면 서비스를 활용한 새 비즈니스 모델이 속속 등장하면서 의료 약업 분야에서도 비대면 진료, 비대면 일반약 구입과 처방약 조제를 통해 신사업을 모색하는 트렌드가 형성되고 있다. 이에 약사들은 의약품 오남용을 막아야 한다며 반대 의사를 명확히 하고 있고, 서비스 추진업체는 국민 편익이 우선이라며 약사회를 공격하고 있다.
그 중 한 때 등장했다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화상투약기에 재도입 논란이 일고 있다. 원격 화상투약기는 약사가 투약기 스크린을 통해 환자와 원격 상담을 진행하고, 환자에게 필요한 의약품을 판매하는 장치다.
이 시스템은 2013년 개발됐지만 약사회의 반대와 복지부의 유권해석으로 사업을 철회한 바 있다. 당시 복지부는 ‘약사법의 입법 취지상 대면 규정 위반’이라며 불가 입장을 밝혔다. 이 원격화상투약기를 개발한 박인술 쓰리알코리아 대표는 약사 출신이다. 약사가 개발한 장치가 약사들의 반대에 부딪혀 규제의 문턱을 계속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6월에는 정부의 정보통신기술(ICT) 규제 샌드박스 심의위원회 안건 상정도 무산됐다. 당시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시범사업이나 특례규정, 폐해 등에 대해 검증해보고 싶은 게 복지부의 입장”이라며 시행 의지를 피력했다. 그러나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화상투약기는 지난 19~20대 국회에서 이미 반대한 사안”이라며 “기계에 서투른 노인, 장애인, 어린이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문제도 있다”고 반대했다.
약사회도 지난 7월 1일 이와 관련, “정부가 일방통행식 정책을 추진한다면 대대적인 대정부 투쟁에 돌입할 것을 결의한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자판기와 다름없는 화상투약기를 설치하는 약국은 자리를 빌려주는 임대업자일 뿐, 실질적인 운영자는 영리 기업자본일 수밖에 없다는 게 약사회 입장이다.
비대면 의약품 배송 서비스 ‘배달약국’
비슷한 맥락에서 올해 비대면 의약품 배송 서비스가 등장했다. 이 서비스를 약사회 반발을 견디지 못하고 지난 9월 8일 이후 중단됐다. 대한약사회가 약 배달 서비스가 현행법 위반이라며 제휴 약사들을 상대로 서비스를 중단하라고 통지하자 시행사인 닥터가이드이 운영을 잠정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배달약국 논란 역시 화상투약기와 마찬가지로 코로나19로 약업계에 비대면 서비스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에서 촉발됐다.
당시 닥터가이드는 약국 의약품 택배가 ‘합법’이라고 주장하며 약사단체와 갈등을 빚었다. 닥터가이드 측은 지난 9월 1일 보도자료를 통해 “배달약국 서비스가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해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공고 제 2020-177호 ‘전화상담 또는 처방 및 대리처방 한시적 허용방안’에 근거, 보건복지부와 보건소로부터 위법이 아니라는 답변을 받았다”고 밝히며 약사회의 반대에도 사업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이에 일부 약사단체는 의약품 택배는 현행법상 명백한 ‘불법’이라며 비록 코로나19 확산 탓에 한시적으로 허용되고는 있으나 장기적으로 방치했다가는 약국 업권이 크게 침해될 것이란 우려를 표명했다.
하지만 이 사안은 코로나19 확산 기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는 상황, 젊은층이 비대면 서비스를 선호하는 트렌드에 힘입어 앞으로도 꾸준히 도입 필요성이 제기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섣불리 도입했다가 의약품 오남용, 배송 과정에서 약이 뒤바뀌거나 변질되는 문제 등이 발생하면 환자안전과 직결될 수 있고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측면도 있어 깊은 검토가 전제돼야 한다.
화상투약기와 배달약국 서비스 도입 건은 의약품 오남용 방지라는 약사회의 명분 앞에서도 약국에서 대면 서비스를 통해 얻는 편익에 대해 소비자가 체감하지 못하는 여론에 밀려 언젠가는 도입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약사들은 지금부터라도 영업시간 연장, 소비자와의 친밀한 소통을 통해 이런 지적을 해결해나갈 필요가 있다.
이들 사안은 유독 약사 사회만이 IT(정보기술)과 HT(보건의료기술)가 융합된 새로운 산업기술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고 보수적으로 대응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지나치게 반대만 할 게 아니라 시대의 요구에 적응하고 점진적으로 개선책을 찾아내는 게 오히려 득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