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입원 조건 강화한 2017년 ‘정신건강복지법’ … 지역사회와 가족이 위험 감수하는 구조
지난 9일 조현병을 앓던 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60대 여성에 대해 법원이 4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23년간 딸을 돌보던 그녀는 딸의 증상이 날로 심해지자 이를 견디지 못하고 최악의 선택을 했다.
의료계는 정부의 준비없이 환자를 병원 밖으로 내모는 보건당국의 탈원화 정책이 부른 비극이라고 지적했다. 2017년에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르면 자·타해 위험성이 있어야 강제입원이 가능하다. 조현병 등 정신질환 관련 범죄가 늘어나면서 당국의 탈원화(脫院化)‧탈시설화(脫施設化) 방향성을 재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3년 조현병 딸 돌본 어머니, 아파트 방화하고 5명 살해한 안인득 … 조현병 관련 범죄
지난 9일 서울남부지법 형사13부는 딸을 살해한 혐의(살인)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A씨는 23년간 조현병을 앓고 있는 딸을 돌봐왔으나, 딸의 증상이 개선되지 않고 점점 심해지자 이를 비관해 사건을 저질렀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아무리 오랜 기간 정신질환을 앓던 피해자를 정성껏 보살펴 왔다 하더라도, 자녀의 생명에 관해 함부로 결정할 권한은 가지고 있지 않다”면서도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치료와 보호의 몫 상당 부분을 국가와 사회보다는 가정에서 감당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과 같은 비극적인 결과를 오로지 피고인의 책임으로만 돌리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고 판결했다.
보호자가 환자를 살해한 이번 사과는 괘가 다르지만 조현병과 관련한 끔찍한 사고는 또 있다. 지난해 4월 경남 진주의 아파트에서 불을 지르고 흉기를 휘둘러 5명을 살해하고 17명을 다치게 한 안인득은 중증 조현병 환자였다.
그는 2010년 자신을 기분 나쁘게 쳐다본다는 이유로 행인을 흉기로 찌른 후 조현병 진단을 받고 감형됐다. 그러나 2016년 7월 이후로는 치료를 받지 않아 피해망상이 심해져 각종 사고들이 저지르던 끝에 끔찍한 방화와 살인 사건까지 이르고 만 것이다. 그는 지난달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전문가들은 A씨와 안의득 등 조현병 관련 사고에 대해 개인의 문제로 축소하지 말고 ‘사회적인 책임’을 생각해야 한다며 제도적인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A씨에 대한 법원 판결이 나온 다음날 10일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는 성명서를 내고 “정신질환을 앓는 환우를 돌보는 게 온전히 가족의 책임이라는 인식에서 사회 공통의 책임이라는 인식으로 변화될 필요가 있다”며 “오랫동안 투약과 입‧퇴원의 반복 등으로 외로운 싸움을 해야하는 가족들에게 국가 차원에서 돌봄 인력이나 외래치료에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는 게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의사회는 “이번 일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명확한 사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 가족 모두가 피해자”라며 “전국의 많은 정신질환 환우와 그 가족들 역시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치료 필요한 환자마저 강제입원 어려워져 … 해외처럼 법원이 강제입원 판단해야
의사회는 특히 “준비되지 않은 ‘탈원화’로 인해 피해를 보는 환우와 가족들이 없는지 재고해야 한다”며 탈원화에 대한 문제점을 꼬집었다. 탈원화는 수용 시설 또는 병원의 입원 중심의 치료 방식에서 벗어나 지역사회 및 사회복귀시설에서 제공하는 치료 프로그램을 활용하자는 움직임이다. 보건당국은 2016년 중증정신질환자에 대한 의료기관 입원 위주의 관리에서 벗어나 지역사회 통합을 지향하는 ‘정신건강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어 2017년엔 ‘정신건강복지법’을 개정하며 정신질환자에 대한 강제입원 규정 조건을 강화하며 탈원화‧탈시설화를 추진했다.
의사회는 “인권을 잣대로 자유를 주고 방치하는 게 진정 환우를 위한 것인지 되돌아봐야한다”며 “환우와 가족 모두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방안을 사회에서 만들어 주는 게 진정한 인권”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역사회 중심으로 환자를 관리하는 탈원화 및 탈시설화는 이상적인 모습이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환자들이 증상에 맞는 적절한 환경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며 “급성기의 전문적 치료, 만성기의 상황에 맞는 돌봄, 모두 인권 등의 이유를 들어 제대로 조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강제입원은 자해·타해 위험성이 있어야 가능하다.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법안이지만 정신과 의사 일각에서는 정말 입원치료가 필요하나, 병식(病識)이 없는 환자들은 제대로 치료 받지 못하는 상황도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환자가 갖는 폭력의 위험성은 고스란히 가족 혹은 이웃이 짊어지게 된다고 꼬집었다.
일례로 안인득의 경우 그가 이웃에게 해코지를 할 때마다 그의 형이 그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 했으나 거부당했다. 본인의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인이 동의하지 않는 강제입원은 법적 보호자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안인득의 법적 보호자는 노모로 판단을 쉽게 내리지 못했다.
그의 형이 몇 번이나 경찰이나 법원에 동생의 정신병력을 이야기하고 강제입원에 대해 문의했지만 해결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이 때 다른 보완 제도가 있어서 그를 입원시켜 제대로 치료할 수 있었다면 무참하게 사라진 5명의 생명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란 지적이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강제입원의 근거가 되는 ‘자해·타해 위험성’은 판단이 쉽지 않고, 인신 구속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보호자가 강제입원을 결정하기는 쉽지 않은 면이 있다”며 “탈원화 정책 이후 보호자, 경찰, 의사 누구도 먼저 책임지고 나서지 않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미국‧유럽 등에서는 이 경우 보호자 대신 법적인 권한을 가진 기관에서 강제입원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데 우리도 국가가 책임을 지는 시스템으로 조속히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현병 비율 인구 1%, 국내 치료환자는 10만명 수준 … 치매보다 유병기간 길어도 지원책 없어
조현병은 뇌 전두엽에 문제가 생겨 망상이나 환청 등을 겪는다. 사람의 목소리, 욕설, 다수의 대화가 환청으로 들린다. 피해망상, 과대망상 등 망상증이 동반된다. 이성적인 판단을 하거나 충동을 조절하는 게 어려워져 사회적으로 고립된 상태가 지속된다.
유병률은 지리, 문화적 차이와 관계없이 전세계 인구의 1% 정도로 거의 일정하다. 이 비율에 근거하면 국내에서도 약 50만명의 조현병 환자가 있을 것을 예측된다. 하지만 진료를 받고 있는 인원은 10만명에 불과하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3~2017년 ‘조현병’ 질환으로 진료를 받은 인원은 2012년 10만980명에서 2017년 10만7662명으로 약 7% 늘었다. 심사보험평가원은 지난해 정신건강의학과로 입원한 환자의 50.5%가 조현병 환자라고 밝혔다.
결코 적지 않은 수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의사회는 성명서에서 “치매는 국가책임제부터 장기노인요양제도 등의 지원책이 있지만, 조현병은 아무런 지원책이 없다”며 “유병기간은 치매보다 조현병이 더 길어 가족이 그만큼 더 고통받는다”고 지적했다.
조현병은 꾸준한 약물 치료가 필수적이다. 특히 발병 5년 이내 약물치료를 중단할 경우 80% 이상이 재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재발을 거듭할수록 치료에 잘 반응하지 않는 ‘치료 저항성’도 커진다.
하지만 약물 비순응은 다른 질환에 비해 높다. 자신의 병을 인정하지 않거나 나았다고 여기고 약을 먹지 않는 환자의 비율이 많다는 뜻이다. 가족을 도와 이들을 관리하고 가족의 고통을 분담할 제도적 장치가 요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