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9일에 보령바이오파마에서 독감백신을 승인받았기에 백신 상온 유통 및 백색입자 발견으로 올해 독감백신 접종 사망자가 11월 3일 0시 기준 88명에 이른 것과 관련, 추가 생산이 있나 궁금해졌다.
보령바이오파마에 문의한 결과 관계자는 “추가 생산을 위해 허가받은 게 아니고, 내년 생산분 허가사항이 바뀌기 때문에 임박해서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허가 신청을 내면 족히 3~4개월은 걸리는 것을 감안해 미리 승인 신청을 받아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독감 4가백신은 매년 균주가 바뀌기 때문에 해마다 새로 승인 신청하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원인은 다른 데 있었다. 같은 공장, 같은 공법, 같은 원액을 쓰면 승인 신청을 새로 할 필요가 없지만 원액 조달처가 바뀌면 생산 장소와 공법 등이 바뀌기 때문에 새로운 신청을 내야 한다고 보령 관계자는 설명했다. 예컨대 같은 제약사에서 생산한 원료라도 생산지가 다르면 갱신 신고를 해야 한다.
즉 원액 공급처가 바뀔 때마다 신규 승인을 얻어야 한다. 국내서는 녹십자, SK바이오사이언스, 일양약품 정도만이 백신 원액을 자체 생산하고 나머지 중소 백신 판매사는 사실상 유럽, 미국, 중국, 인도 등에서 원액을 조달해 희석, 병입해 생산, 공급한다.
보령이 이번에 허가 받은 백신의 이름은 ‘보령플루XI테트라백신프리필드시린지주’이다. 싱가포르A, 홍콩A, 푸켓B, 브리즈번B 등 4가지 균주로 돼 있다.
이번 시즌(2020-2021) 북반구 4가백신(유정란 방식)은 광동-마오난A, 홍콩A, 워싱턴B, 푸켓B 등이다. 지난해 시즌(2019-2020) 북반구 4가백신(유정란 방식)은 브리즈번A, 캔사스A, 콜로라도B, 푸켓B 등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해마다 2월경 회의를 열어 그 해에 유행할 것으로 예상되는 바이러스주를 예측하고 유정란 제조방식, 세포배양 및 유전자재조합 방식 등 2가지로 나눠 각각 4개씩 권고한다. 민간 제약사는 이를 바탕으로 봄부터 백신생산에 들어가 여름에 본격 생산하고, 초가을에 이르면 8월부터 공급에 나선다. 보통 11월이면 그 해에 맞을 백신 물량이 거의 결정돼 남으면 이듬해에 폐기 처분한다. 설령 부족분이 예상되더라도 생산 일정과 채산성을 감안해 9월 이후에는 거의 생산하지 않는 게 관례다.
참고로 남반구용 백신 바이러스주는 매년 7~8월에 WHO가 선정, 발표한다. 북반구와 비교해 바이러스주가 보통 1~3개 정도 바뀐다.
그런데 내년 2월 생산할 백신의 바이러스주가 결정되지도 않았는데 제약사들이 어떻게 미리 알고 바이러스주를 정할까. 그것은 내년 2월 바이러스주가 결정되면 허가사항 변경을 통해 바이러스주를 바꾸면 그만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급받는 원액의 생산지와 생산방식이다. 이것만 바뀌지 않는다면 한번 낸 허가를 계속 존치할 수 있다.
보령 관계자는 “백신 이름이 똑같은 것 같아도 ‘보령플루Ⅴ테트라백신주’ ‘보령플루Ⅷ테트라백신주’ ‘보령플루백신Ⅷ-TF주0.25ml’ 등 계속해서 변천한다”며 “숫자를 바꾸거나, 글자를 추가하거나, 글자와 숫자의 순서를 바꾸거나, 용량을 기입한다든지 해서 미묘하게 이름을 바꾸는 게 백신 업계의 관행”이라고 소개했다. 따라서 ‘보령플루’라는 어간은 고정되더라도 나머지 어미에 해당하는 것은 언제나 바뀔 수 있는 부수적인 기호에 불과하다. 백신 사고로 명예가 실추당한 업체는 드물지만 중심되는 이름(어간)마저 확 바꾸기도 한다.
백신사업을 일컬어 ‘벌크 비즈니스’라고 한다. 모든 게 분업화된 세상에서 원료까지 굳이 자체 생산할 필요는 없으며 글로벌 제약업계의 이런 추세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