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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피임약 A to Z … 울리프리스탈, 5일 이내로 복용해야 효과
  • 김신혜 감수 김홍진 중앙대 약대 교수 기자
  • 등록 2020-10-29 11:02:02
  • 수정 2020-10-30 16: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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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보노르게스트렐, 24시간 안에 복용하면 성공률 95% … 먹는 낙태약 조제권 두고 시끌
사후피임약인 현대약품 ‘노레보정’(왼쪽)과 ‘엘라원정’
사후피임약은 정상적인 피임방법을 사용하던 중 불가피하게 실패한 경우나 강간 등 피치 못한 일을 겪었을 때 사용하며 응급피임약이라고도 한다. 난포의 성숙과 배란을 늦추거나 억제한다. 정자와 난자가 나팔관을 통과하는 것을 방해해 수정을 막고, 자궁내막을 변형해 착상되지 않게 한다. 

이 약을 아무때나 먹는다고 피임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고 언제 먹었는지에 따라 효과가 달라진다. 수정란이 나팔관을 이동해 자궁 내막에 착상되기까지는 보통 72~120시간이 소요된다. 최대한 일찍 복용해야 하며 120시간이 지난 뒤에는 먹어도 효과가 없다. 이미 사후피임약을 1회 투여했다면 다음 월경 주기가 오기 전까지는 다른 피임법을 사용해야 안전하다. 

사후피임약은 성관계 후 최대한 일찍 복용하는 게 관건이지만 정작 필요할 때 구입하기가 쉽지 않다. 국내에서는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되고 있어 반드시 의사 처방이 필요하다. 일반 병의원이 문을 열지 않는 늦은 밤이나 연휴에 급하게 사후피임약이 필요하면 종합병원 응급실에 가서 처방받을 수 있다. 식사와 관계없이 아무 때나 복용할 수 있으므로 확실한 효과를 얻으려면 최대한 빨리 복용하는 게 좋다.

캐나다·호주·미국과 유럽연합(EU) 국가를 포함해 약 60개 이상 국가에서는 의사의 처방전 없이 일반의약품(OTC)으로 구입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두 차례에 걸쳐 사후피임약의 일반약 전환을 추진했지만 종교계·의료계의 반발로 무산됐다. 

사후피임약에는 레보노르게스트렐(Levonorgestrel)과 울리프리스탈(ulipristal) 2가지로 성분이 쓰인다. 프로게스틴(황체호르몬)인 고농도의 레보노르게스트렐은 자궁경부의 점액이 끈끈해져 정자의 이동을 어렵게 만들고, 자궁내막을 강제로 탈락시키는 소퇴성 출혈을 유도한다. 

레보노르게스트렐은 황체형성호르몬의 분비가 급증되기 전에 투여돼야 효과적이며 성관계 후 일찍 복용할수록 유리하다. 24시간 안에 먹었다면 95%, 48시간 이내는 85%, 72시간 이내에는 58%로 피임 성공률이 점점 낮아진다. 늦어도 72시간 이내에 복용해야 하며 이후에는 먹어도 의미가 없다. 이 약은 생리주기 동안 어느 때라도 사용할 수 있다. 만약 복용 후 3시간 이내에 토했을 경우에는 다시 1.5mg(1정)을 복용해야 한다. 레보노르게스트렐으로 피임하고 다음 생리주기가 시작된 이후부터는 일반적인 호르몬 피임제 복용이 가능하다.

레보노르게스트렐 성분 제품으로는 현대약품 ‘노레보원정’, 바이엘코리아 ‘포스티노-1정’ 등이 있다.

레보노르게스트렐은 체중이 80㎏가 넘는 여성에게는 효과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14년 ‘사후피임약은 몸무게가 75㎏ 이상인 여성에서 효과가 감소되고 80㎏을 넘으면 효과적이지 않다’는 주의사항을 추가했다. 프랑스 국립의약품건강제품안전청의 안전성 정보 검토결과에 따라 레보노르게스트렐 성분의 긴급피임제에 대한 허가사항 변경안을 마련한 것이다. 단 울리프리스탈 성분은 해당되지 않는다.

레보노르게스트렐은 다른 약물과 상호작용에도 유의해야 한다. 에이즈 치료제인 에파비렌즈(efavirenz)와 병용하면 레보노르게스트렐의 혈중 농도가 약 50%까지 감소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비뉴클레오시드 역전사효소 억제제(non-nucleoside reverse transcriptase inhibitors, NNRTIs)인 에파비렌즈는 역전사효소 활성 부위 근처의 소수성 낭(hygrophobic pocket)에 직접 결합해 효소의 구조를 변화시킴으로써 효소작용을 억제하는 약물이다.

선택적 프로게스테론 수용체 조절제(selective progesterone receptor modulator, SPRM)인 울리프리스탈(ulipristal)은 배란 전에 투여할 경우 프로게스테론 수용체에 결합해 난포 파열을 지연시켜 배란을 억제하거나 늦춘다. 이로써 정상 자궁내막을 변화시켜 착상을 저해한다. 

울리프리스탈의 복용 가능 시간은 120시간(5일) 이내로 레보노르게스트렐에 비해 긴 편이다. 이 성분은 낮은 확률로 착상된 수정란을 파괴하기도 한다고 알려져 있으나 의견이 분분하다.

국내에 시판되는 제품으로는 현대약품 ‘엘라원정’이 있으며 120시간 안에 1정을 복용하면 된다. 레보노르게스트렐과 마찬가지로 복용 후 3시간 이내에 토했을 경우에는 즉시 이 약 1정을 다시 복용해야 피임 효과가 나타난다. 식사와 관계없이 복용할 수 있으며 월경주기 중 어느 시점에서도 복용할 수 있다.

울리프리스탈은 자궁근종치료제로도 쓰인다. 국내에는 신풍제약 ‘이니시아정’(성분명 울리프리스탈)이 있으며 1일 1회 1정(5mg)을 매 투여기마다 3개월까지 연속해 경구 투여한다. 그러나 2018년부터 간 손상 우려가 제기됐고 지난 4월 식품의약안전처는 유럽 국가들의 자진회수 움직임과 관련, 울리프리스탈 제제의 복용 및 처방 중단을 권고하는 안전성 서한을 배포했다. 신풍제약은 결국 지난 8일 이니시아정의 자진회수에 나섯다. 유럽에서도 오는 12월 안전성 검토 후 허가취소에 대한 최종 결론이 나올 예정이다.

사후피임약 복용이 자주 반복되면 자궁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자궁내막의 변형과 기능 저하뿐만 아니라 자궁근종까지 초래하고 생리주기가 불규칙해지며 부정기적인 자궁출혈의 위험이 커진다. 

박찬우 차의과학대 강남차병원 산부인과(난임생식내분비과) 교수는 “사후피임약은 사전피임약보다 8배 많은 고용량 호르몬이 함유돼 복용시 메스꺼움, 구토, 두통, 피로, 불규칙한 출혈이 동반될 수 있다”며 “오남용할 경우 호르몬 분비가 불균형해지면서 배란장애 등이 나타날 수 있어 전문의와 상담 후 처방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먹는 낙태약 합법화 ‘뜨거운 감자’

피임에 실패하고, 사후피임약을 먹지 못하거나 효과가 없으면 착상과 임신으로 이어진다. 이런 경우 원하지 않는 임신을 멈추기 위해 불법적으로라도 낙태수술을 하게 된다. 국내 사정은 이렇지만 모든 여성이 원하지 않는 임신으로 수술대 위에 오르는 것은 아니다. 해외에서는 ‘먹는 낙태약’이 처방되고 있다. 이 약은 사후피임약과 다르게 임신이 된 상태에서 사용할 수 있고 수술이 아닌 좀 더 안전한 방법으로 낙태가 가능하다. 

정부가 지난 8일 낙태 시술 방법으로 약물요법을 허용하는 모자보건법을 입법 예고하면서 ‘낙태약’으로 알려진 경구용 유산유도제 ‘미프진’(성분명 미페프리스톤, Mifepriston)의 국내 도입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프진은 미페프리스톤이라는 스테로이드성 항프로게스테론을 주성분으로 하는 경구약으로 임신 12주차까지 사용할 수 있다. 임신 초기 태아가 성장하는 데 필요한 영양 공급을 억제하고 자궁을 수축시켜 유산을 유도하는 전문의약품으로 미국 등에선 산부인과 초음파검사 등을 통해 임신 7주내로 확진받은 여성에게만 처방된다.

이 약은 2000년에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았다. 2005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이 약을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했고, 2013년에는 북한에서도 출시됐다. 2016년 유엔경제사회이사회(UNECOSOC)는 여성이 임신 중단에 사용되는 약물을 포함해 필수의약품들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경구용 유산유도제는 비교적 성공률이 높고 세계적으로 쓰이는 안전한 방법이다. 이미 핀란드에선 전체 낙태의 약 93%가 미프진 병용요법으로 이뤄진다. 현재는 OECD 국가 중 약 80%에서 처방 가능하지만 국내에는 아직 도입되지 않았다.

한편 이 낙태약의 조제권을 둘러싸고 의료계와 약사계가 갈등을 빚고 있다. 28일 의약계에 따르면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등 의사단체는 복지부에 낙태약은 의약분업의 예외로 두고 의사 직접 조제를 원칙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약물 낙태는 투약 결정부터 유산의 완료까지 산부인과 의사의 관리하에 사용해야 안전하다는 것이다. 약사법 제23조 4항에 따르면 의학적 필요와 환자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의사가 직접 조제할 수 있는 의약분업 예외 약품 지정에 대한 규정이 있는데, 낙태약 조제도 여기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약사회 관계자는“현행법 테두리 안에서 타당성 여부를 판단할 문제인데 그저 의사회-약사회 대결구도로 보여지는 게 안타깝다”고 밝혔다. 이어 “약국도 환자의 프라이버시를 지킬 의무가 있는 공간”이라며 “사생활 보호가 이유라면 그동안 처방해 온 사후피임약도 이미 문제가 생겼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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