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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건강
암과 싸우는 외과의사에서 숨은 암 찾아내는 정밀의료센터장으로
  • 김지예 기자
  • 등록 2020-10-28 21:03:39
  • 수정 2020-11-02 15: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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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준 강남세브란스병원 정밀의료센터장 “10년 안에 유전자검진 기술이 진료 프로세스 바꿀 것”
정준 강남세브란스병원 정밀의료센터장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이 올 봄 정밀의료센터를 오픈하고 본격적으로 유전자를 바탕으로 한 정밀 질병검진과 연구시스템을 구축했다. 유전자로 암과 희귀유전병을 조기에 정확하게 진단하는 게 궁극적인 목표다. 초대 센터장으로는 유방센터장을 맡고 있는 정준 외과 교수가 임명됐다. 일반적으로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 혹은 병리학자가 맡을 것이라는 예상을 깬 파격이었다. 

그는 “졸지에 두 개의 센터를 이끌게 돼 어깨가 무겁다”면서도 “암과 싸우는 외과의사로서도 선택할 수 있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최전선에서 가장 많이 암과 싸운 만큼 암을 찾아내는 검진과 진단에도 남다른 퍼스펙티브가 발휘될 수 있다는 뜻이다.
 
암 연구학자에서 유명 유방암 외과의, 다시 정밀의료센터장이 되기까지
 
그러나 정 교수를 아는 이들은 그가 정밀의료센터를 맡은 것을 쉽게 납득한다. 평소 그에 대한 평가는 “연구의 같은 외과의”다. 수술칼을 잡아 칼잡이라고 불리는 외과의들은 아무래도 카리스마있고 거침이 없는 성격들이 많다. 하지만 정 교수는 한눈에도 차분하고 내성적이면서 학구적인 면이 엿보였다. 
 
“진짜로 연구만 전담하는 연구의가 될 뻔하기도 했죠.” 그의 이력을 보면 유방외과 전문의가 아니라 암전문 연구의의 길을 갈 수도 있었다. 전임의 때 그의 전공은 간담췌장 외과의였다. 하지만 환자를 수술할수록 암에 대해 자신이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과 함께 암을 보다 깊이 연구해보고자 하는 열망이 생겼다.
 
그런 그에게 손을 내민 것인 윤동섭 현 연세의료원장이다. 그는 자신이 연수 중이던 미국 MD앤더슨암센터에 정준 교수를 소개했다. 정 교수는 자비를 들여 미국으로 가서 암 연구에 매진했다.
 
그런 그가 한국으로 돌아온 것은 스승의 부름 때문이었다. “당시 박정수 외과 과장(갑상선암 명의)께서 날 부르셨죠. 강남세브란스병원 암센터의 초대 센터장인 이희대 교수께서 대장암으로 투병 중이시니 한국으로 돌아와 도와줘야겠다고.” 그렇게 그는 암 연구의에서 유방외과의사로 자의반 타의반 발을 들였다. 
 
이런 이력 때문일까. 그는 유방암센터의 수장을 맡아 수많은 수술을 시행하면서도 유방암의 전이‧진단‧항암제 등에 대한 연구와 최신치료법 적용을 쉬지 않고 해왔다. 특히 국내 최초로 수술 중 방사선치료를 도입해 치료효과를 크게 개선한 공로로 지난해 정부로부터 근정포장을 받기도 했다.
 
그는 유방암 중에서도 5년 생존율이 30%에 불과한 전이성 유방암에 관심을 가지고 깊이 매달렸다. 유방암의 전이 및 재발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는 혈중 암세포 연구도 계속했다.
 
이런 정 교수를 너무나도 잘 아는 당시 윤동섭 강남세브란스병원장은 지난해 정밀의료센터 개소를 추진하면서 할 때 태스크포스팀(TFT)의 책임자로 발탁했다. 올해 개소할 때도 센터장 자리를 그에게 권했다.
 
“암치료는 트렌드가 계속 바뀌어요. 새로운 테크닉이 쉼없이 나오고 이를 임상에서 적용하는 방향이 늘 논의되죠. 암을 치료하는 의사는 새로운 치료법에 늘 관심을 갖고 이를 도입하는 데도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정밀진단 영역에 발을 디딘 것은 이런 맥락에서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어요. 암 전문의로서 정확한 진단에 대한 니즈가 컸거든요”
 
유전자검진은 미래의학의 견인차, 10년 안에 집에서 암 확인하는 키트 상용화될 수도
 
그가 맡고 있는 정밀의료센터는 유전자분석 검진을 주력으로 한다. 유전자에서 얻은 정보로 질병을 진단하거나 발병 가능성을 알아보는 것이다.
 
미국 할리우드 스타 안젤리나 졸리가 유전자검사를 통해 유방암을 일으킬 수 있는 유전자를 확인하고 예방 차원에서 가슴절제수술을 받은 것은 일반인에 가장 잘 알려진 유전자 검진 사례다. 당시 그녀가 가졌던 BRCA1 유전자는 유방암 발생 위험이 50~85%, 난소암 발생 위험이 27~44%에 달한다.
 
2013년 졸리가 암에 걸리지도 않았는데 미리 신체기관을 절제하는 게 옳으냐 그르냐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그것과 별개로 암 등 중증질환의 발생 가능성을 미리 확인하고 예방할 수 있다는 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를 계기로 유전자를 이용한 질병예측 연구가 더욱 활발해졌다. 
 
그때만 해도 돈이 아주 많은 할리우드 스타나 해볼 법한 검사로 인식됐지만 이후 기술개발 및 인식변화를 거쳐 임상에서 드물지 않게 활용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2017년부터 암환자와 희귀질환 환자의 유전자 검진에 건강보험급여가 적용돼 문턱이 한결 낮아졌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법’(Next Generation Sequencing, NGS)의 개발이 큰 역할을 했다. “2000년대 초반에 유전자검진이 도입됐을 당시에는 유전자 조각을 잘라 증폭해서 검사하는 비교적 단순한 방법이었어요. 요즘 코로나19 검사에 활용되는 방법이죠. 이것으로 사람의 전체 유전자를 검사한다면 수많은 시간과 키트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를 한번에 처리할 수 있는 NGS가 개발되면서 가격도 낮아지고 정확도도 올라갔습니다. 유전자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도 더 많아졌고요”
 
현재 유전자검진에는 주로 NGS가 동원된다. “인간 유전체(46개 염색체)엔 30억~32억개 염기가 서열을 이루는데, 이 중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는 4만개 정도로 추측됩니다. 이중 이 중 암과 관련된 유전자는 정해져 있죠. 이를 몇 개를 검출해 볼 것인가 얼마나 정확하게 볼 것인가에 따라 NGS를 쓰는 방법과 비용이 달라집니다. 병원마다 검사업체마다 검사하는 유전자 수가 조금씩 다르죠. 보통 140개 유전자를 검사하는 패널을 사용하는데, 우리 센터의 패널은 최대 500개 유전자를 검사할 수 있습니다”
 
NGS에 이어 기대를 모으고 있는 유잔자검진 기술이 액체생검(liquid biopsy)이다. 혈액 등 체액 속에는 암세포가 깨지면서 생긴 미량의 암DNA 조각이 남기 마련인데 이를 찾아내 암을 진단하는 기술이다. 일부 폐암 등에서 사용하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아직 적용되지 않고 있다. 사례가 적어 표준화가 이뤄지지 않은 탓에 임상 적용에 제한이 있다.
 
정 교수는 “액체생검 등 유전자검진 기술이 더 발달되면 진단 프로세스도 크게 바뀔 것”이라고 예측했다. 예를 들어 집에서 혈당을 확인하듯 키트에 소량의 혈액을 떨어뜨리는 것만으로 암 유전자를 확인해 암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안젤리나 졸리처럼 암을 유발할 수 있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경우 주기적으로 집에서 암 발생 여부를 체크해 볼 수도 있다.
 
정 교수는 마치 SF영화 같은 이런 일이 그리 멀리 않은 미래에 올 수 있을 것이라 내다봤다. “정확도가 썩 높은 건 아닐지라도 집에서 유전자를 분석하는 키트는 최근 연구개발 됐어요. 아마도 10년 안에 상용화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임상에서 활성화되려면 의료법 고쳐야 … 미흡한 민간 도네이션 등 연구환경 아쉬워
 
유전자검진이 발전하면 암 등 중증질환의 치료 프로세스에도 변화가 생긴다. 예를 들어 지금의 유방암 진단‧치료법은 초음파 등으로 종양 위치를 확인하고 생체검사로 종양의 양성‧음성을 스크린하고 조직거사로 확진한 뒤 병기에 따라 수술할지, 항암제 또는 방사선치료를 할지 결정한다. 이른바 표준치료에 맞춘 과정이다.
 
하지만 암종 중에서는 표준치료로 잘 개선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이런 경우엔 보편적인 항암제가 아닌 특별한 다른 항암제를 투여하거나, 여러 치료법을 동시에 병용해야 하는 표준과 다른 치료법이 필요하다. 암 유전자로 암종을 정확하게 진단하면 이런 맞춤치료로 치료 효과를 크게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유전자검진이 치료 프로세스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하고 있다. 검진으로 정확하게 암종을 확인해도 적용할 수 있는 치료법이 없거나, 있다 해도 의료법이나 건강보험 규정상 불가능하거나, 비급여로서 아주 고가의 치료비를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지금 건강보험은 전이암(4기 혹은 3기 이상)에서 두 번까지 유전자검진에 급여가 적용돼요. 이 경우 비용의 50%를 국가에서 지원해주고 환자는 50%를 내죠. 건강보험이 지원해준다고 해도 적잖은 돈입니다. 기대를 가지고 유전자검진을 받았다 해도 전이암의 경우 생존율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실질적으로 많이 없어요. 그러다보니 희망을 가지고 검진했던 이들이 크게 실망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의사가 아무리 설명해도 간절한 환자에겐 기적같은 치료법 외에는 와닿지 않아요.”
 
이런 점들 때문에 유전자검진은 아직 활성화되지 않았지만 강남세브란스병원을 비롯한 주요 대형병원들에서 유전자검진을 수해알 센터를 속속 설립하고 있다. 수익적으로는 도리어 손해가 나는 선택이지만 미래에 꼭 필요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정밀진단기술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입니다.  예를 들어 여성암 중 발병 1위가 유방암인데 전체 유방암 환자 중 유전으로 인한 환자는 5~10%입니다. 유방암 환자가 3만명이라고 치면 약 3000명의 유전성 환자에게 BRCA1‧2 유전자 검사를 통해 예방적인 수술 및 가족에 대한 조사 등 필요한 추가적인 상담 진료를 할 수 있습니다. 유방암 환자 외에도 각종 유전성 암 환자‧희귀유전병 환자들도 마찬가지죠. ”
 
유전자검진 기술이 치료에도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의료법과 보험체계가 변화돼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신약은 대규모 임상연구를 통해 효과를 입증하고 시판허가를 받아 표준치료용 약물로 등재된 다음에야 보험의 지원을 받으며 임상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암종 중에는 이런 약물이 통하지 않는 것들이 있어요. 예컨대 유방암인데 특이해서 간암용으로 개발된 항암제가 잘 듣죠. 하지만 지금 의료법으로는 이 약물을 유방암 환자에게 사용하면 불법이 됩니다. 그래서 연구 사례로 등록해 표준요법 이외의 약제를 투여해보는 연구 겸 치료를 해야 합니다. 의료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니 비용도 천정부지가 되고요.”

유전자검진으로 암종을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는 시기는 머잖아 도래한다. 그에 맞춰 맞춤치료를 적용할 수 있도록 법률이 개편돼야 한다. 아직은 과도기라 모호한 점들이 많은 상황이다.
 
지속적인 연구도 필요하다. 검진에 들어가는 만만찮은 비용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정확하고 풍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유전자 판독 기술이 개발돼야 한다. 유전자검진으로 얻어진 유전자 풀이 의학 발전에 활용될 수 있는 빅데이터 구축과 활용에 더 많은 투자와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

미국의 경우 2015년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발표한 정밀의료 이니셔티브 이후 전폭적인 연구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주요 병원들이 거대 제약사의 지원을 받아 유전자 풀을 확보하고 있다. 중국‧일본‧유럽 등에서도 마찬가지다.
 
국내에서도 1만명의 암환자 유전자 데이터 확보를 목표로 하는 ‘K-마스터 사업’이 몇년 전부터 시작됐지만 규모 면에서 해외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정준 교수는 유전자검진이 발전하려면 국가의 지원 뿐만 아니라 민간 도네이션이 늘어나는 등 전반적인 관심이 높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행히 정부에서 유전자검진에 대한 지원을 늘려가는 상황이지만, 미국‧유럽 등은 민간이 기부하는 연구기금이 국가 지원금보다 많다. 이렇다 보니 대규모 지원이 필요한 연구개발에서 서구 선진국에 밀리기 쉽다.
 
정준 교수는 “민간 도네이션 문화가 만들어지면 유전자검진과 관련한 분석기술, 판독기술, 빅데이터구축, 생산인프라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개발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준(鄭駿) 강남세브란스병원 정밀의료센터장

학력

1991년 연세대 의대 졸업 
2002년 연세대 의대 석사
2009년 연세대 의대 박사
 
경력
1999~2001년 연세대 의대 외과학교실 강사
2001~2004년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MD앤더슨암센터(MD Anderson Cancer Center) 연수
2004~2005년 연세대 의대 외과학교실 조교수
2006~2010년 연세대 의대 부교수
2010~2011년 미국 하버드대 의대 부속 다나파버암연구소(Dana Farber Cancer Institute) 연수
2012~현재  연세대 의대 교수

학회활동
2004~현재   한국유방암학회 평생회원, 대한암학회 평생회원, 미국 임상종양학회(ASCO) 정회원
2011~2013년 한국유방암학회 간사
2014~현재  한국유방암학회 학술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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