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DA서 허가 안돼, 원료생산국인 독일 오스트리아 외 中·러·韓·CIS 등서만 통용
돼지뇌펩티드 단독, 도네페질 단독, 돼지+도네 병용 vs 위약 … 효과의 통계적 유의성 없어
당초 지난 9월 1일부터 콜린알포세레이트(choline alfoscerate) 제제에 대해 치매에 대해서만 건강보험 급여를 해주기로 했다가 제약업계의 집단 반발로 집행이 유예된 상태에서 국내 다수 제약사들이 대안으로 돼지 뇌에서 추출한 세레브롤리신(Cerebrolysin) 성분 주사제를 대안으로 내세우고 있어 의약품 오남용과 건강보험 재정 낭비가 우려되고 있다.
지난 6월 11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약평위)는 치매 진단을 받은 환자가 콜린알포 제제를 뇌혈관 결손에 의한 2차 증상 및 변성 또는 퇴행성 뇌기질성 정신증후군 등의 개선을 목적으로 처방받는 경우에만 현행 급여기준(본인부담률 30%)을 유지하고 뇌대사관련 질환, 감정 및 행동변화, 노인성 가성 우울증 등 일부 적응증에는 본인부담률 80% 선별급여로 전환하기로 의결했다.
이에 종근당, 대웅제약을 비롯한 87개 제약사들이 급여 축소를 두고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조치”라며 집단 행정소송을 제기해 현재 법원 결정을 기다리고 있고 제약사들은 급여 축소 저지에 일단은 성공한 모양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성분명으로 ‘돼지뇌펩티드’, 영어 성분명으로 Cerebrolysin 또는 proeolytic peptide from porcine brain인 제제들의 무더기로 허가를 받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13~15일 돼지뇌펩티드 성분 관련해 세레드주(한국유나이티드제약), 누트로민주(유유제약), 뉴로베라주(현대약품), 세보닌주(넥스팜코리아), 쏠레세진주(건일제약), 세로신주(이든파마), 세레브로라이트주(대웅제약), 세로린주사(동국제약), 쎄리코주(알리코제약), 세레뉴로주(신일제약) 등 10품목을 잇따라 허가했다.
이번 10품목을 포함해 국내엔 돼지뇌펩티드 성분 관련해 최근 총 12품목이 허가를 받았다. 휴온스는 지난 5월 29일 ‘뉴로리진주’를, 지난 6월 29일엔 계열사인 휴온스메디케어가 ‘아모브로리진주’라는 이름으로 승인받은 바 있다.
그 전에는 2005년 유니메드제약 ‘세라빈씨주’, 2006년 삼오제약 ‘세레브로리진주’, 2008년 구주제약 ‘쎄레브로민주’ 등 단 3개사만 취급해왔다. 이들 주사제는 알츠하이머형 노인성 치매, 뇌졸중 후 뇌기능장애, 두개골의 외상(뇌진탕, 뇌좌상, 수술 후 외상)으로 적응증을 받았다.
하지만 이들 제제의 주요 유효 성분인 돼지뇌펩티드는 논란이 돼 급여 축소 조치를 당한 콜린알포세레이트만큼이나 유효성에 대한 문헌 근거가 부족하다는 문제가 제기된다.
본지가 해외 논문을 검색해본 결과 돼지뇌펩티드 세부 성분은 아미노산과 단백질의 복합체이다. 뇌유래신경영양인자(Brain-derived neurotrophic factor, BDNF), 신경아교세포계 유도신경영양인자(Glial cell line-derived neurotrophic factor, GDNF), 신경성장인자(Nerve growth factor, NGF), 섬모양 신경성인자(Ciliary neurotrophic factor, CNTF)로 이루어져 있다.
외국 언론 보도 등에 따르면 이 성분은 누트로픽(nootropic, 인지기능 향상약물, smart drugs 또는 cognitive enhancers)로 인지기능을 개선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스어 어원으로 noo는 그리스어로 마음, tropē는 전환 또는 고양(高揚)을 뜻한다.
인간 뇌에 본래 있는 이들 세부 성분은 두뇌 성장과 기능 저하의 회복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돼 있다.
하지만 돼지 뇌에서 추출한 성분이 이종인 사람에게서 어떤 효과를 낼 수 있을지는 근거가 희박하다. 우선 세레브롤리신은 객관적 의약품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 미국 식품의약국(FDA)로부터 승인받지 못한 약물이다.
주로 러시아, 중국, 구 소련 독립국가연합(CIS) 소속 국가, 상당수 동유럽 국가 등에서 뇌졸중 후 기능장애, 두개골의 외상성 뇌손상, 치매 등에 사용된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은 원료와 완제의약품을 생산하고 자국에서 전문약으로 처방하고 있으며 상당량을 한국 등 외국에 수출하고 있다.
국내 제약사들이 허가받은 총 15개 품목도 알츠하이머형 노인성 치매, 뇌졸중 후 뇌기능장애, 두개골의 외상(뇌진탕, 뇌좌상, 수술 후 외상) 등으로 이들 외국과 적응증이 대등소이하다.
비경구적 투여하는데 국내 의약품 설명서에 따르면 5ml 이하는 근육주사로, 10ml까지는 정맥주사로, 10~30ml는 수액에 혼합해 정맥주사로 놓도록 규정돼 있다.
관련 메타분석 논문에 따르면 알츠하이머병 환자에게 최대 28주 지속적으로 투여해 위약과 비교한 여러 무작위 배정, 이중맹검 시험에서 세레브롤리신의 효과는 전세계 종합평가와 인지 능력 향상 측면에서 위약보다 우위를 보였다.
2009년 ‘Drugs Aging’이란 실린 논문 ‘Cerebrolysin, A Review of its Use in Dementia’(공저자 Greg L. Plosker, Serge Gauthier)에 따르면 세레브롤리신 단독요법, 콜린에스테라제 저해제 치매 치료제인 도네페질(donepezil) 단독요법, 이들 약품의 병용요법을 위약과 비교한 대규모 무작위 글로벌 임상(3b/4상, 시판후 임상) 결과 인지능력 개선에서 ADAS-cog 지표(0~70점 높을수록 중증)로 평가한 결과 모두 위약 대비 인지능력 개선을 보였다.
병용요법은 위약 대비 ADAS 점수를 가장 큰 폭(-2.339)으로 낮췄고, 다음으로 세레브롤리신 단독(-1.708), 도네페질 단독(-1.258) 순이었으나 각자 간에 통계적 유의성은 없었다.
고용량서 효과 줄고 부작용만 커져 … 다른 치매치료제 병용요법 추가 연구 지지부진
또다른 알츠하이머병 관련 6개 시험을 메타분석한 결과와 총 2446명이 참여한 15개 임상을 총괄 분석한 결과 각각 인지능력 향상 효과가 확인됐으나 고용량에서는 오히려 정신적 증상의 악화와 질병 개선의 둔화를 초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혈관성 치매 부문은 광범위하게 연구되지는 않았지만 역시 인지기능 개선에 긍정적 영향을 보였다.
세레브롤리신의 부작용으로는 현기증이 제일 흔했으며 대체로 내약성이 무난했다. 세레브롤리신이 알츠하이머병과 혈관성 치매 관리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아보려면 장기적인 시험이 필요하고 도네페질 등 콜린에스테라제 억제제와의 병용요법을 포함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지만 진척되고 있는 것은 없다.
2009년 논문은 세레브롤리신의 약리기전과 관련, 여러 가지 가설을 내놨다. 우선 뇌세포를 보호함으로써 해로운 환경에 의해 뇌세포가 죽는 것을 억제한다. 둘째 새로운 뇌세포 성장에 도움을 주고, 셋째 뇌세포 간 통신을 도와 학습능력을 향상시키며, 넷째 뇌세포의 글루코스 흡수율을 높임으로써 뇌 에너지를 높이고 뇌세포의 단백질 생산을 늘린다는 것이다. 또 알츠하이머병을 일으킨다고 알려진 뇌의 베타아밀로이드 축적량과 뇌 염증을 줄이는 작용도 소개했다.
뇌졸중 후 뇌기능 장애 개선 효과는 ‘효과 없음’ 결론 논문도 다수 … 외상성 뇌손상 사망효과 감소 입증 못해
뇌졸중 후 뇌기능 장애 개선 효과와 관련, 208명이 참여한 무작위 위약 대조군 다기관 임상시험은 세레브롤리신 투여 후 72시간 이내와 21일 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평가했다. 세레브롤리신 투여군이 인지와 운동 기능에서 두 경우 모두 더 나은 결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반대되는 근거도 있다. 총 1501명이 참여한 6개의 임상시험을 포함한 체계적 문헌 검토에서 세레브롤리신은 위약에 비해서 아무 임상적 효과를 보이지 못했고 심지어 더 높은 숫자의 부작용을 보였다. 또 다른 7개 시험을 포함한 메타분석에서도 세레브롤리신은 아무런 긍정적 효과를 보이지 않았다.
외상성 뇌손상 개선과 관련, 5685명이 참여한 5개의 임상시험 체계적 문헌 검토 결과 뇌 손상과 관련된 인지기능, 운동기능 저하를 막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시사했다. 하지만 외상성 뇌손상으로 인한 사망률 감소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혈관성 치매에서 세레브롤리신은 인지, 기억, 전반적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6건의 임상시험, 597명 환자를 대상으로 한 체계적 문헌검토는 이 결과가 심하게 편향돼 있고, 근거가 희박하며, 임상적으로 의미 있다고 보기에는 효과가 지나치게 약하다고 평가했다.
미국 의사들 대다수 ‘불신’ … ‘콜린알포세레이트 논란’ 재발 막으려면 허가 및 급여 근거 따져 봐야
현대의학과 제약산업을 주름잡는 미국에서 세레브롤리신은 승인되지는 않았으나 개인 차원에서 임의로 구입해 자가 주입하는 것은 어느 정도 허용되는 게 현실이다.
인터넷으로 여러 미국 의사들이 세레브롤리신에 대해 내놓는 평가는 “별로 효과가 없어서 신경도 안 쓴다”, “임상적인 효과가 입증된 게 거의 없어 쓸 수 없다” 등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제2의 콜린알포세레이트 논란’을 막으려면 어떤 근거로 최초 허가가 이뤄졌는지, 2013년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무슨 근거로 요양급여 혜택을 주기로 했는지, 주요 선진국의 처방 관행은 어떤지 살펴보는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