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혈구 생성 유도하는 ESA주사제부터 차세대 신약 경구용 HIF-PH 저해제까지
만성신장병(chronic kidney disease, CKD)은 국내 35세 이상 성인 7명 중 1명이 앓을 정도로 흔한 기저질환이지만 제대로 치료받거나 병에 대해 정확히 아는 환자가 드물다. 2000년대 들어서는 질병을 관리하면 예후가 희망적이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 만성신부전(chronic renal failure)이라는 용어 대신에 만성신질환 혹은 만성신장병이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국내 만성신장병 환자는 2019년 24만9284명으로 2015년 17만576명보다 46% 급증했다.
윤혜은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신장내과 교수는 “만성신장병은 병이 상당 부분 진행될 때까지 뚜렷한 증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적절한 시기에 검사하지 않으면 말기신부전 직전에 도달할 때까지 모르고 지내기 쉽다”고 설명했다.
CKD 환자에서는 요세관 세포에서의 에리스로포이에틴(erythropoietin)의 생산 감소와 철분 같은 영양소 결핍으로 인해 빈혈이 동반되기 쉽다. 특히 사구체 여과율이 30mL/min/m² 미만으로 감소된 진행된 CKD 환자에서는 드물지 않게 빈혈이 나타난다.
CKD로 인한 빈혈의 원인으로는 철분 결핍, 빈번한 채혈, 혈액투석 시 실혈, 출혈성 질환, 심한 부갑상선 항진증, 급성 혹은 만성 염증성 질환, 알루미늄 중독, 엽산 결핍, 적혈구 생존기간 단축 등이 있다. 그러나 가장 주요한 원인은 신장 내 세포의 조혈호르몬(Erythropoietin, EPO, erythropoiesis stimulating agents, ESA) 생산기능 저하다.
신장(콩팥)은 생명현상에 필요한 여러 호르몬을 생산·분비하는데 그 중 하나가 피질(겉질)에서 분비되는 조혈호르몬이다. 이 호르몬은 골수를 자극해 적혈구가 잘 생성되도록 돕는다. 따라서 콩팥 기능이 저하되면 조혈호르몬 생성 능력이 감소하고 빈혈이 발생한다.
대한의학회의 2017년 조사결과에 따르면 콩팥기능이 약화될수록 빈혈 유병률은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CKD 환자에서 빈혈이 동반되는 경우 심혈관질환의 위험도가 증가하며 삶의 질이 저하되기 때문에 적극 치료에 나서야 한다.
빈혈은 말초혈액 내의 적혈구수가 감소하고 혈색소(헤모글로빈) 농도가 정상 이하로 감소되는 상태다. 과거에는 빈혈치료로 주로 철분, 염산, 비타민B12 등의 부족한 영양분을 보충하거나 수혈을 시행했지만 근본적으로 빈혈을 치료하진 못했다. 이후 유전공학기술을 이용해 인체 내 에리스로포이에틴과 동일한 생리적 활성을 지니는 유전자 재조합 호르몬제제가 개발돼 치료에 사용되고 있다.
유전공학적으로 생산하는 조혈호르몬 제제는 골수 중 조혈 조직의 적아구(적혈구 전단계의 유약한 세포)계 전구세포에 작용해 적혈구 원시세포의 분열·분화를 자극함으로써 적혈구 생성을 유도한다. 이런 효능으로 만성신장병 환자의 빈혈치료뿐만 아니라 암환자의 화학요법에 의한 빈혈치료에도 널리 이용되고 있다.
ESA, 1세대부터 3세대까지 작용시간 늘고 편의성 개선
CKD 환자의 빈혈 치료에는 단시간 동안 작용하는 1세대 적혈구 조혈자극제(ESA)를 주로 사용했다. HK이노엔 ‘에포카인프리필드주’(성분명 재조합인에리스로포이에틴), 동아ST ‘에포론주’(재조합인에리스로포이에틴)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약물은 약효 지속시간이 짧아 환자가 계속해서 병원을 방문해야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이후 등장한 게 작용시간을 늘린 2세대 치료제 다베포에틴알파(Darbepoetin alfa)다. 다베포에틴알파는 에리스로포이에틴 알파(Erythropoietin-α)에 탄수화물 체인을 결합시킨 조혈호르몬 유사체다. 탄수화물 체인에 있는 시알산(sialic acid)에 의해 간 대사가 지연돼 작용지속시간이 길어진 게 특징이다. 1세대는 1주 3회 투여해야 했으나 다베포에틴알파는 투여 횟수를 1주 1회 또는 2주 1회로 줄였다. 암젠과 쿄와하코기린의 ‘네스프프리필드시린지주’(성분명 다베포에틴알파)가 오리지널이며 바이오시밀러로는 종근당 ‘네스벨프리필드시린지주’(다베포에틴알파) 등이 있다.
3세대 치료제는 작용시간이 더 길어졌다. 한국로슈 ‘미쎄라프리필드주’(메톡시폴리에칠렌글리콜-에포에틴베타, methoxy polyethylene glycol-epoetin-β)는 1세대 ESA인 에리스로포이에틴 베타에 페길화(PEGylation)을 적용해 반감기를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피하주사와 정맥주사 시 모두 반감기가 130시간 이상이며 월 1회 용법이 가능하다. 이는 국내 출시된 ESA 중 유일하게 투석 전 환자와 복막투석 환자는 물론 혈액투석 환자에서까지 월 1회 용법이 가능한 치료제다.
조혈촉진호르몬제 투여 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으로는 쇼크, 두드러기·호흡곤란·입술부종 등 과민반응과 고혈압, 심근경색, 폐경색, 뇌경색, 간기능장애, 가려움, 두통 등이 있다. 또 혈압이 상승할 수 있으므로 조절이 잘 되지 않는 고혈압 환자에게 투여해서 안 된다.
이 약물의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충분한 철분 공급이 필요하다. 경구용 철분제제를 함께 병용할 수 있으며 만약 경구 복용이 불가능하거나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할 경우 철분 주사제를 투여 할 수 있다. 철분제제를 병용하면 위장장애 및 변비, 설사, 검은 변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철분 흡수를 방해하는 유제품, 제산제 및 인 결합제는 같이 복용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HIF-PH저해제, 록사두스타트·다프로두스타트·바다두스타트
ESA는 주사제인데다가 저반응성으로 효과를 얻지 못하는 환자도 있어 이같은 문제 해결을 위한 신약이 꾸준히 개발돼 왔다. 경구용 저산소유도인자 프롤린수산화효소(Hypoxia-Inducible Factor Prolyl Hydroxylase, HIF-PH) 저해제는 ESA 저반응성 환자에서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HIF-PH 저해제는 적혈구 생성에 관여하는 HIF를 증식시켜 적혈구 생산을 늘리고 이에 따른 산소운반작용을 개선한다. 먹는 빈혈약이라 기존 ESA 주사제보다 복용 편의성도 높다. 대표적으로 아스트라제네카-피브로겐(Fibrogen)이 함께 개발 중인 ‘록사두스타트(roxadustat)’와 GSK가 개발 중인 ‘다프로두스타트(daprodustat)’, 미국 아케비아테라퓨틱스가 개발 중인 ‘바다두스타트(vadadustat)’등이 있다. 이들 성분은 모두 세계 최초로 일본에서 허가를 받고 출시됐다. 국내에는 아직 출시되지 않았다.
록사두스타트는 지난해 9월 일본에서 투석 의존성 만성신장질환 관련 빈혈 치료제로 허가를 획득, ‘에브렌조(Evrenzo)’라는 상품명으로 출시됐다. 현지에서 피브로겐이 아스텔라스와 계약을 맺고 판매 중이다. CKD 환자를 대상으로 한 2상에서 적혈구 생성인자, 헤모글로빈의 증가와 함께 철 성분의 항상성이 관찰됐다. 록사두스타트는 현재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허가 심사를 받고 있으며 허가 시기는 올해 12월로 예상되고 있다.
다프로두스타트는 지난 6월 ‘더브록(Duvroq)’이라는 상품명으로 투석 여부와 무관하게 만성 신장질환 치료제로 허가받았다. 일본에서는 GSK가 쿄와기린과 판매 계약을 맺고 출시됐다. 미국 진출은 늦어질 전망이다. FDA 승인을 위한 글로벌 3상 임상시험인 Ascend-D와 Ascend-ND의 1차 완료일이 각각 2021년 11월과 2022년 3월로 연기됐기 때문이다.
바다두스타트는 지난 8월 일본에서 ‘바프세오’(Vafseo)라는 제품명으로 출시됐다. 이 약은 미국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 소재 아케비아테라퓨틱스(Akebia Therapeutics)가 개발하고 오츠카제약이 도입했다. 그러나 미국 허가에는 다소 차질이 생겼다. 지난 9월 3일(현지시간) 아케비아가 발표한 3상 임상인 PRO2TECT 연구 결과 유효성은 확인했지만 심혈관 안전성 입증에는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바다두스타트의 미국이 불투명해진 상태에서 이르면 올해 12월 FDA 승인을 예상하는 아스트라제네카의 록사두스타트가 미국 시장을 선점할 가능성이 높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