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처, 안전성 문제 없지만 국민 안심차원 리콜 조치 … 2개 제조단위서 백색입자 발견, 발견 안 된 2개 단위도 회수
식약처장 “물량 질병청과 논의” … 현재까지 1만7812명 접종
식품의약품안전처는 9일 충북 오송 질병관리청에서 브리핑을 열고 독감백신 제조사인 한국백신에 4가 독감백신 ‘코박스플루 4가PF주’ 61만5000개(4개 제조단위)를 자진 회수하도록 명령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6일 신성약품이 유통하던 중 상온 노출 의심으로 접종이 중단됐던 정부의 조달물량(무료접종분) 중 48만도스도 회수 조치된 바 있어 한정된 백신 공급량이 더욱 줄어든 상황이다. 당시 정부는 여유물량인 34만도스로 수거한 백신을 대체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추가로 61만여도스도 시장에 풀리지 못하게 되면서 수급에 빨간불이 켜졌다.
백색입자는 항원단백질 응집 추정 … 전문가 “드물지 않게 발생, 안전성 우려는 없어”
식약처는 지난 6일 영덕군 보건소로부터 ‘코박스플루4가PF주(제조번호: PC200701)’ 제품 안에서 백색 입자가 발견됐다는 보고를 받았다. 긴급 수거·검사, 제조사에 대한 현장 조사, 콜드체인 분석, 전문가 자문, 관련 제품 추가 수거 검사 등을 실시하고 한국백신에 자체 조사 결과를 제출토록 지시했다.
신고 제품과 동일한 제조번호(PC200701)의 백신을 해당 보건소 및 한국백신 영업소에서 수거·검사한 결과 백색입자가 확인됐다. 백색입자 성분 분석 결과 75㎛ 이상 입자는 단백질 99.7%, 실리콘 오일 0.3%로 보고됐다. 제조소부터 수거처까지의 콜드체인 조사 결과에서는 모두 적정 온도에서 관리된 것 나타났다.
제조소에 대한 현장 점검 결과, 한국백신은 올해 해당 품목을 6개 제조단위로 약 90만개를 생산했다. 백신 원액을 주사기에 충전하는 공정에서 2개 회사로부터 공급받은 주사기를 사용했는데, 6개 제조단위 중 2개는 A사, 4개는 B사 주사기를 사용했다. 이 중 1개 제조단위(제조번호: PC200701)에서 백색 입자가 확인됐다.
식약처가 국가출하승인 당시 보관 중인 보관품과 유통품 6개 제조단위에 대해 추가 수거검사를 실시한 결과, B사 용기를 사용한 두 개 제조단위(제조번호: PC200701, PC200802)에서 백색입자를 확인했다.
해당 백색입자는 항원단백질 응집체로 보인다는 게 전문가 자문 결과다. 드물지 않게 발생할 수 있는 것으로 효과와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됐다.
식약처도 같은 입장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백색입자는 백신의 구성 성분, 주사기 제조방법 등의 차이로 흡착・응집의 양상이 다를 수 있다. 유통 중 시간이 경과하면서 입자가 커질 수 있다. 백색입자는 항원단백질 응집체로 보이며 주사부위 통증・염증 등 국소작용 외에 안전성 우려는 낮다.
하지만 국민 안심 차원에서 백색입자가 확인된 2개 제조단위를 한국백신이 자진 회수하기로 했다. 또 같은 주사기를 사용했지만 백색입자가 확인되지 않은 다른 2개 제조단위에 대해서도 선제적으로 자진회수하기로 결정했다.
질병관리청의 예방접종통합관리시스템으로 ‘코박스플루4가PF주’ 4개 제조단위에 대한 접종자수를 확인한 결과, 9일 3시 기준 1만7812명(국가예방접종 지원사업 대상자 7018명, 일반 유료접종자 1만794명)에 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까지 보고된 이상사례는 1건(국소통증)이다.
올해 공급 독감백신 2964만도스 중 109.5만도스 회수
정부가 당초 계획한 올해 국내 총 공급 독감백신 물량은 2964만도스다. 이 중 국가가 총괄계약 방식으로 확보하는 물량 1259만도스와 12세 이하 어린이 및 임신부, 지자체 자체 구매분, 국방부 사용분 등 총 585만도스가 더해진 1844만도스가 공공사용 물량이다.
정부는 여기에 최근 나머지 유료 공급분 1120만도스 중에서 105만도스를 정부가 315억원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무료 전환을 추진하기로 했다. 의료급여 수급권자 70만명, 장애인 연금·수당 수급자 35만명을 대상으로 하는 물량이다. 하지만 백신 리콜 사태가 잇달아 발생하면서 수급 계획에 차질이 생길 것으로 우려된다.
이의경 식약처장은 “백신 물량에 대해선 질병관리청과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있다”며 “논의 결과를 조만간 다시 알리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신성약품이 유통한 백신에 문제가 생기면서 유료백신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품귀현상마저 빚어졌다. 이에 따라 제2의 ‘마스크 대란’이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면서 백신 재생산 등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만 백신을 재생산하려면 6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불가능한 문제였다.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가 매년 2월께 유행할 가능성이 높은 인플루엔자 유형을 예측하고, 백신 제조사들은 이를 반영해 백신을 생산한다. 남반구와 북반구의 계절 차이를 고려해 순차적으로 진행되는데 북반구 백신 제조 기한은 이미 종료됐다.
또 민간 접종분을 공공 물량으로 돌리는 방안도 전체적인 국민 보건에 도움이 안된다는 지적이다. 20~50대 고위험자 기저질환자가 무료접종 대상자에서 빠져있는데 민간 접종분을 줄이면 이들이 위험에 처한다.
위약금을 주고 남반구에 수출하기 위해 제작 중인 백신을 국내로 돌리는 방안이 가장 설득력을 가지고 있지만 업체들이 난색을 표한 바 있다.
다만 예년의 상황을 볼 때 유료접종분 물량이 100% 소진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급 불안정 문제는 크지 않을 가능성도 나온다. 더구나 올해 독감백신 생산량은 약 3000만명분으로 지난해보다 20% 증량 생산됐다.
자진회수 물량을 다시 사용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과거 해외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발생한 뒤 사용을 재개한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의경 처장은 “지난 2012년 다국적제약사 노바티스에서 제조·생산한 독감백신이 이탈리아에서 백색 입자가 발생한 사례가 있었다”며 “한국에서도 수입했었는데, 잠정 수입을 중단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사 과정에서 인플루엔자 비바이러스와 유정란 성분이 단백질에 응집된 사례로 분석되면서 사용을 재개한 바 있다”며 “식약처도 이번 백색입자에 대해 상세히 조사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국내 백신 유통 체계 전반을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이번 일을 계기로 국내 백신 유통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에 방역당국은 백신 유통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를 선제적으로 적발하지 못했다. 백신을 상온에 노출한 업체가 스스로 질병청에 잘못을 신고한 것도 아니다. 관리감독의 사각지대에서 아무도 모른 채 넘어갈 수 있었던 일이 제보를 통해 뒤늦게 알려진 것”이라며 “그로 인해 백신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크게 무너졌다”고 질타했다. 이미 각종 온라인 사이트 등에는 “이런 상황에서 백신을 맞아도 되는지 모르겠다”는 의견이 넘쳐나고 있다.
현재 미국 바이오기업 모더나가 개발하고 있는 코로나19 백신의 경우 영하 20도 환경에서 유통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제약사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은 영하 70도 보관 환경을 요구한다. 유통 과정에서 온도 조건을 맞추지 못하면 코로나19 예방 효과가 떨어지는 등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김석찬 서울성모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도 “감염병으로부터 사회를 지키려면 백신 접종이 필수적”이라며 “효과가 떨어진 독감백신을 유통할 경우, 그것을 맞은 사람이 상대적으로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껴 독감 예방조치를 소홀히 할 수 있다. 그 경우 오히려 방역에 방해가 된다. 독감백신 효능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올바른 대처가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