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바람이 차가워질수록 치질 환자는 예민해진다. 기온이 떨어지면 항문 주변 혈관이 수축되고 혈액순환 장애가 생겨 치질이 심해지기 때문이다. 치질은 치핵, 치열, 치루 등 항문 주위에 생기는 모든 질환을 일컫는 말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국내 치질 환자는 연간 60만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높은 발병률에 비해 치질은 매우 은밀한 질병으로 간주된다. ‘말 못할 부위’에 병이 생겨 ‘말 못할 고민’이라는 단어가 질병명을 대신한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한 통증을 유발하지만 민감한 부위에 발병하는 만큼 선뜻 병원에 가지 못하고 주변에도 투병 사실을 알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치질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알아본다.
1. 변비가 심하면 치질에 걸린다?
변비가 심하면 치질에 걸릴 수 있다. 변비 환자는 화장실에 가면 오래 앉아 있는 경향이 있는데 이럴 경우 피가 항문으로 몰려 혈관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자주 반복되면 늘어난 혈관이 터지거나 원상태로 회복되지 않아 항문 밖으로 튀어나오게 된다. 치질 예방은 작은 생활습관의 변화부터 시작된다. 변기에 앉아 스마트폰을 보거나 책을 읽고, 항문에 과도한 힘을 주면 치핵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 변기에 앉아 있는 시간은 5분을 넘기지 않는 게 좋다.
2. 치질은 반드시 수술해야 한다?
치질이면 무조건 수술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심하지 않은 치질은 대부분 보존요법과 약물요법으로 치료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수술이 필요한 환자는 30% 미만이다.
가벼운 치핵은 좌욕이나 결찰술 등 비수술적 요법으로 치료할 수 있으며 증상이 심한 경우 수술적 요법인 치핵절제술이 필요하다. 흔히 치질로 불리는 치핵은 변이 부드럽게 나오도록 충격을 흡수해주는 항문쿠션조직이 항문 밖으로 밀려나와 의자에 앉거나, 변을 볼 때 극심한 통증을 유발하는 질환이다. 항문 바깥부터 항문 안쪽 치상선에 이르는 항문관 부위가 찢어진 치열, 치상선의 위쪽과 항문 바깥쪽 피부 사이에 구멍이 생겨 분비물이 누출되는 치루와 함께 3대 항문질환으로 불린다. 이 중 치핵이 전체 항문질환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김범규 중앙대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는 “항문 입구에서 2~3㎝ 안 쪽에 있는 이빨 모양의 치상선을 기준으로 안쪽에 발생한 것을 내치핵(암치질), 바깥쪽에 생긴 것을 외치핵(수치질)으로 분류한다”며 “환자 비율은 내치핵이 20%, 외치핵이 10%, 두 개가 복합된 혼합치핵이 70%를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수술 여부는 치질 병기에 따라 결정된다. 치질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내치핵은 치핵조직이 탈출하지 않고 출혈만 있으면 ‘1도’, 치핵이 빠져나왔다가 변을 본 직후 저절로 항문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 ‘2도’, 변을 다 본 이후에도 빠져나온 치핵이 들어가질 않아 손으로 밀어넣어야 되거나 한동안 누워있어야 들어가면 ‘3도’, 손으로 넣어도 잘 들어가지 않거나 들어갔다가 금세 다시 빠져 나오면 ‘4도’로 규정한다. 보통 3도 이상이거나 혈전성 외치핵, 출혈성 치핵인 경우 수술 대상이 된다.
3. 치질을 방치하면 암으로 발전한다?
치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치핵은 아무리 오래 방치해도 암이 되지 않지만 치루는 암이 될 가능성이 있다. 치루암은 드물기는 하지만 일단 발병하면 대부분 악성으로 1년 이내에 사망할 정도로 치명적이다. 치루암이 생기면 수술로는 치료할 수 없고 인공항문을 만드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
4. 치질수술은 죽을만큼 아프다?
치질수술이 아프다는 것은 단순한 괴담이 아니다. 외부로 튀어나온 치핵조직은 물론 주변 항문상피, 점막을 한꺼번에 절제하기 때문에 통증과 출혈이 심하다. 요즘은 점막조직을 되도록 적게 제거해 통증이 줄어든 편이나 과거에는 치질 수술 후 지혈을 위해 바셀린 거즈를 원통 모양으로 말아서 항문관 안에 삽입했기 때문에 마취에서 깨어난 후에 통증이 심했다. 하지만 이젠 거즈를 삽입하지 않거나, 삽입하더라도 심한 통증을 유발하지 않을 정도다. 수술법과 함께 진통제 등도 함께 발달해 과거에 비하면 통증은 덜하다고 볼 수 있다.
5. 치질은 재발한다?
치질수술의 합병증을 치질이 재발한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제대로 수술하고 나면 같은 자리에 치질이 발생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나쁜 배변습관을 고치지 못할 경우 다른 자리에 치질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를 재발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다만 치루는 다른 항문질환에 비해 비교적 재발률이 높은 편이다. 항문주위 농양을 절개해 치료하면 50% 이상이 치루로 발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