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캐나다, 대체조제 전·후 통보 의무 없어 … 일본, 2008년부터 자유롭게 제네릭 조제
약사 출신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일 발의한 약사의 대체조제 간소화·활성화 법률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이 여전히 뜨겁다. 서 의원은 대체조제란 명칭을 ‘동일성분 조제’로 바꿀 것과 약사가 대체조제 후 통보 대상을 사실상 현재 의사·치과의사에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 바꾸는 내용의 에도 통보할 수 있도록 확대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내놨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약사는 대체조제 시 지금처럼 해당 병·의원에 알리는 대신 심평원에만 대체 사실을 통보해도 된다. 심평원은 이런 대체조제 사실을 병·의원에 알리게 된다.
이에 의사 측은 강하게 반발했다. 생물학적동등성시험을 거친 제네릭은 오리지널과 효능·부작용이 달라 대체조제를 해선 안 된다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약사 측 입장은 다르다. 제네릭은 생동성시험을 통과해 오리지널약을 기준으로 동등한 효과를 인정받은 의약품으로 대체조제해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국내에서는 현재 약의 성분을 표기하는 성분명 처방과 특정약의 상표를 기입하는 상표명 처방 두 가지 모두 허용되고 있지만 그 재량은 처방전을 작성하는 의사에게 있다. 대개 상표명으로 처방이 이뤄지고 약사는 이를 동일성분의 다른 브랜드 약으로 변경조제 시 사전에 의사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대체조제 활성화에 대한 뜨거운 논란 속 해외 선진국들의 대체조제 현황을 강민구 우석대 약대 교수의 도움말과 해외 정보 검색을 통해 알아봤다.
미국에서도 처방전은 제품명으로 발행되지만 의사나 환자가 브랜드를 고집하지 않는다면 약사가 이를 제네릭으로 변경 조제할 수 있다. 의사가 대체조제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명시한 게 아니라면 따로 처방의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아도 약사 판단 하에 대체 조제가 가능하다. 제네릭으로 변경 후에도 따로 통보할 의무는 없다. 국내에서는 사후 통보 절차에 대해서도 의사들의 반발이 심한 현실을 고려하면 큰 차이다.
미국에서 의사가 특정 브랜드를 고집하려면 그에 대한 의학적 근거를 명확하게 제시해야 하므로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다.
오리지널과 제네릭 중에 무엇을 선택할지는 환자의 취향보다는 가입한 보험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 보험사들은 ‘Fomulary’라는 오리지널과 제네릭의 가격 리스트가 담긴 표를 통해 보험으로 보장되는 제품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보험 상품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보장되는 의약품은 한정돼 있다. 따라서 의학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된 게 아니라면 대개 오리지널약을 구입하지 않는다. 보험 상품에 포함되지 않으면 비싼 약값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국적 제약사들은 특허기간이 만료되기 전까지 대략 7~10년 사이에 개발에 든 투자금을 뽑으려고 고가로 약값을 책정하며 제네릭 진입을 막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 미국에서는 약값을 제약사가 직접 책정하며 정부와의 협상 대상이 아니다.
이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오는 11월 3일 대선을 앞두고 약가인하를 위한 4대 행정명령을 지난 7월말 발표했다. 여기에는 제약사의 의약품 구매와 관련해 보험사나 중개인에게 지급하는 리베이트 근절, 저소득층이 많이 이용하는 병원에 대한 인슐린과 알레르기 치료제 공급가 할인, 캐나다로부터 값싼 의약품 수입, 메디케어(고령자 의료지원)용 약품의 낮은 가격 구매 등 이 담겨 있다.
다만 대체조제 방식에는 주마다 차이가 있다. 캘리포니아, 콜로라도, 플로리다 등 38개 주에서는 처방약을 제네릭으로 교체할 때 이에 대해 환자에게 안내하고 동의를 구하는 게 의무적이다. 반면 루이지애나, 뉴저지, 오리건 등 12개 주는 의무가 아닌 선택사항이다.
미국은 대체로 제네릭 처방을 권장하는 국가다. 미국은 1980년 10월부터 승인의약품 리스트를 담은‘오렌지북(Orange Book)’을 발간해 제네릭의약품 목록, 허가·특허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 리스트에는 오리지널, 제네릭 의약품 등의 동등성 평가를 포함해 특허 및 관련 소송 내용 등이 담겨 있다. 약사는 이 정보에 근거해 대체조제를 결정하게 된다.
대체조제 관련 법은 주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오렌지북을 참조한다. 오렌지북은 모든 처방약의 치료적 동등성 평가를 포함하고 있으며 대체조제 시 이 정보에 근거할 것을 의무화한 주는 일리노이, 텍사스, 뉴욕을 포함 31개나 된다.
가까운 나라 캐나다도 비슷하다. 주로 성분명 처방이지만 제품명으로 처방되더라도 약사의 판단 하에 값싼 제네릭으로 대체조제할 수 있다. 의사가 처방전에 대체조제가 불가능하다는 서명을 하려면 확실한 임상적인 근거를 제시할 수 있을 때만 가능하다. 반드시 비싼 오리지널 약을 처방해야만 하는 경우는 사실상 드물기 때문에 대부분은 자유롭게 대체조제가 이뤄지고 있다. 대체조제를 한 이후에도 따로 의사에게 통보하지 않아도 된다.
환자가 오리지널약을 고집할 경우 해당 성분에 대해 국가에서 인정하는 만큼의 비용만 지원을 받을 수 있으며 나머지 금액은 모두 환자가 직접 부담한다.
각 주별로 상이하긴 하지만 캐나다는 이밖에도 약사에게 많은 권한을 허락한다. 지속적인 환자 케어를 위해 의사의 사전 처방전을 약사 이름으로 재발행(renew)할 수 있으며 사후 통보만 하면 된다. 재발행이 가능한 약물의 종류, 기간, 방법 등에 대해서는 주별로 규정하고 있지만 거의 모든 주에서 시행하고 있다. 알버타주에서는 추가 교육을 이수한 약사는 1등급에 해당하는 약물에 대해 독립적으로 처방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일본도 2002년 9월부터 ‘JP-오렌지북’을 통해 제네릭의약품 생동성시험 결과를 제공하고 있다. 일본은 2006년 처방전 양식을 변경해 대체조제(동일성분조제) 허용 여부를 간편하게 표기할 수 있도록 하면서부터 제네릭 사용이 확대되고 대체조제도 활성화됐다. 당시엔 의사가 대체조제에 대한 허용 여부를 처방전에 표시하면 약사가 브랜드약 대신 제네릭을 조제할 수 있었다.
이를 2008년에 한번 더 개편하면서 제네릭 사용이 크게 확대됐다. 2008년부터는 제네릭 허용 범위가 더욱 넓어져 기존과 반대로 의사가 처방전에 대체조제를 금지한다는 표현을 하지 않았다면 약사가 자유롭게 조제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시점부터 약사의 역할이 확대됐고 환자의 의료비 부담도 줄어들었다.
유럽은 제네릭 사용 활성화 및 환자에 대한 약물정보 제공 등을 위해 성분명 처방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분위기다. 영국은 성분명 처방이 전체의 79%를 차지하고 있고, 프랑스에서는 오리지널에 대응하는 제네릭이 존재하면 별도의 통보없이 제네릭을 사용할 수 있도록 제도로 못박고 있다.
대체조제 활성화와 더불어 꾸준히 언급되는 게 ‘성분명 처방’이다. 국내는 의사가 처방전 작성 시 상표명을 적는 게 고착화돼 성분명 처방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서 의원이 제안한 동일성분조제로 용어를 변경하는 개정안에 대해 의사단체는 사실상 약사의 성분명 처방을 허용하는 것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대체약이 동일한 약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같은 약으로 변경해 주는 듯한 용어인 동일성분조제로 명칭을 변경하는 것은 환자에게 동일한 약을 처방받았다는 잘못된 인식을 줄 수 있다”며 “이는 환자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것과 동시에 환자를 호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약사회 측은 “같은 성분의 약을 수시로 다른 제약사 제품으로 변경해 처방하는 의사들이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반박하고 있다. 잦은 처방 변경으로 쌓이는 불용재고는 단순히 약국의 금전적 피해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환경오염 문제까지 확대된다.
약사의 약료행위에서 처방전이 갖는 의미는 크다. 약사는 ‘성분·함량·용법’이 적힌 처방전을 보고 약의 전문가로서 적절한 처방이 이뤄졌는지 판단하는 ‘처방검토’를 거친다. 그러나 성분명이 아닌 제품명만 적힌 처방전을 보고 이를 바로 캐치하기는 쉽지 않다. 약국 업무 효율을 고려한다면 성분명 처방은 약사에게도 환자에게도 유리할 수 있다.
모 약사는 “상품명으로 처방전을 받는 환자는 같은 성분의 약을 먹으면서도 같은 성분의 다른 브랜드 제품으로 처방이 변경되면 전혀 다른 약을 먹고 있다고 오해하기도 한다”며 상품명 처방의 한계를 지적했다.
이번 대체조제 활성화 논란에 대해 강민구 교수는 “의사와 약사는 환자에게 최적의 치료를 제공하기 위한 하나의 팀이 돼야 한다”며 “두 집단 대결구도 속에서 시비를 가리기보다는 환자와 보건경제를 위해 무엇이 합리적이고 올바른 선택인지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의약품 관련 정책은 결국 환자를 중심으로 결정해야 할 문제다. 경제적 측면에서 비용을 절감하고, 임상에서 환자에게 최적의 치료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현재의 팽팽한 대립이 그저 직능 갈등으로 비춰지는 것은 가장 중요한 환자에 대한 고려가 빠져 있기 때문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