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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독감백신 사태로 본 백신 유통구조 … 무료백신과 유료백신에 품질 차 없어
  • 김신혜 기자
  • 등록 2020-09-23 19:37:51
  • 수정 2020-11-23 22: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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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낮은 조달가, 도매 업계간 경쟁이 참사 불러 … 백신 재생산할 가능성 낮아 … 상온 노출돼도 효과 떨어질뿐 위해성 없어
독감백신 유통 과정에서 냉장 상태가 유지되지 않은 점이 드러나자, 신종 코로나 확산으로 적극 독감백신 접종을 고려하던 사람들이 유료로라도 먼저 백신을 맞으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올해 인플루엔자(독감) 백신 무료 접종사업이 유례 없는 혼란을 겪고 있다. 22일 본격 시행될 예정이었던 무료 접종을 하루 앞두고 방역 당국이 돌연 접종 중단을 발표한 것이다.

정부와 올해 독감백신 조달 공급 계약을 맺은 신성약품이 백신을 전국에 배송하는 과정에서 냉장차의 문을 열어놓거나 제품을 땅바닥에 내려놓는 등 허술하게 관리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이번에 문제가 된 백신은 신성이 맡은 전체 1259만도스 중 1차 물량인 517만도스 중 주로 하청 위탁 배송업체가 담당해 이번에 물의를 일으킨 실제 250만 도스 분량이다.
 
약 250만도스는 일부 위탁 배송 업체가 냉장차를 통해 백신을 운반하는 과정에서 유지해야 하는 2~8도의 기준 온도를 벗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질병관리청은 무료 독감 예방접종 일시 중단하고 유통된 백신의 품질과 안전성을 검증하고 있다.
 
무료 예방접종 중단 소식이 알려지면서 무료 접종 이전에 이미 유료 백신 주사를 맞은 사람들은 내가 맞은 백신이 안전한 것인지 불안에 떨고 있다.
 
올해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와 독감 유행이 겹치는 ‘트윈데믹’에 대한 우려로 어느 때보다 백신을 맞으려는 대중의 관심이 높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수급 물량이 소진되면 원해도 백신을 맞을 수 없을 것이란 소문에 예년에 비해 서둘러 백신 접종을 마친 사람도 많았다.
 
질병관리청은 올해 2964만도즈의 독감백신을 공급할 예정이었다. 이는 지난해 2467만도스보다 20%가량 늘어난 수치다. 국가필수예방접종(NIP) 대상자가 전년보다 519만명 늘어난 1900만명 규모로 확대됐기 때문이다.

신성약품, 첫 공공유통에 참여  … 과욕에 준비 부족, 낮은 조달가, 과당 경쟁이 참사 불러 


신성약품은 이달 초 10여개사와의 경쟁을 통해 올해 처음으로 정부의 독감 백신 조달 계약을 따냈다. 조달청에 따르면 신성약품이 따낸 물량은 1259만1190도즈(1회 접종분)다.
 
이번 사건은 수도권의 한 중소병원에서 찍힌 사진이 발단이 됐다. 신성약품이 공급한 백신이 아이스박스가 아닌 종이박스에 담겨 있었고, 심지어 박스가 젖은 채로 보관돼있는 것을 병원을 지나가던 경쟁 도매상 관계자가 포착, 이를 촬영해 보건당국에 제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신처럼 온도에 민감한 물질은 2~8도를 유지할 수 있는 냉장창고에서 배분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콜드체인(cold chain)으로 통하는 ‘저온 유통’이 원칙이다. 백신이 상온에 노출된 시간이 얼마나 길었는지도 중요하다. 상온에 장시간 노출될 경우 백신의 단백질(항원) 성분이 자연 분해 또는 파괴돼 접종 효과가 없는 백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성약품 측은 “상온에 노출된 시간은 길어도 5분가량일 것”이라고 밝혔으나 일각에서는 최대 수십분까지 노출됐을 가능성도 조심스레 제기하고 있다.
 
실제 품질에 이상이 생긴 것으로 확인되면 미칠 파장이 상당하다. 일단 올 겨울용으로 확보한 독감 백신 2400만여 도즈 중 500만 도즈가 폐기돼 사라지게 된다.
 
독감 백신 생산기간은 4~6개월 가까이 소요되므로 다시 생산한다 해도 이미 독감 유행 시즌이 끝나는 시기라 사실상 의미가 없다. 백신은 유통기한이 짧고 반품도 되지 않는 품목이라 제약사들이 이를 재생산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국내 제약사 관계자들은 “물리적으로 추가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도 며 “절대 만들지 않겠다”고 말했다. 다만 한 제약사는 “정부 방침에 따를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이번 사태를 두고 의료계에서는 정부의 부실관리가 예견된 사고를 막지 못한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신성약품은 35년된 의약품 유통 업체로 대규모의 공공접종용 백신 유통을 맡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공공유통을 처음 맡은 만큼 정부의 체계적인 관리·감독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비현실적으로 조달 단가를 낮게 잡는 나쁜 관행도 지적됐다. 백신 1회분에 대한 적정한 조달 단가는 1만 2000~1만3000원 수준인데 정부가 최초 제시한 조달 단가는 8700원대였다. 올해 공공 접종용 독감백신 유통 입찰은 4차례나 유찰됐다. 결국 이달 초 5번째 입찰에서 신성약품이 도스당 단가 8620원(고령층 기준)으로 낙찰을 받았다. 지난해 공공 접종용 독감 백신 유통 사업은 정동코퍼레이션이 1회분(도스) 당 7980원에, 재작년에는 우인메디텍이 1회분당 7900원으로 낙찰받았다.

같은 백신도 조달시장에선 ‘헐값’, 프라이빗 시장선 회사 ‘영업력’이 좌우 … 외자사는 조달시장 ‘외면’ 


공공 접종용이 아닌 프라이빗 시장용(유료) 독감 백신의 제약사 출고가는 제조업체마다 다르다. 제조원가는 한 도스당 약 5000원 선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대형 도매상과 소도매상을 거쳐 병의원에 약 2만~2만3000원에 공급되면 최종적으로 소비자는 약 3~4만원 정도 가격에 유료 접종을 하게 된다.
 
같은 백신인데도 공공시장용과 유료시장용은 어느 환자가 백신을 맞았느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무료 접종이면 조달가격을 병원에 청구하고, 유료 접종이면 각사의 정해진 판매가로 청구하게 된다. 프라이빗 시장에서 도매상이 먹는 마진은 유통 단계마다 1000원~1500원이 붙는다. 공공 조달시장에서 원 도매상은 정부 조달가격으로 제약사와 상관없이 균일한 조달가로 백신을 구입하고 유통하며 마진은 없다. 대신 정부로부터 유통 수수료를 받는다.
 
조달가격이 제약업계로서는 워낙 낮기 때문에 참여하고 싶지 않아도 물량의 안정적 소진과 정부 사업 배제 시 예상되는 불이익 때문에 대다수 제약업체는 조달시장에 참여한다. 하지만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처럼 완제품을 수입하는 경우에는 아예 조달시장에 참여하지 않고 프라이빗 시장에만 주력하고 있다. 사노피파스퇴르의 경우 소량만 조달시장에 공급 중이다.

모 제약사 관계자는 “조달시장에선 겨우 본전만 챙기고 프라이빗 시장에서 손해를 만회하는 게 백신업체의 실상”이라며 “프라이빗 시장에서 점유율과 시장 가격 책정은 각사의 영업력에 달렸다”고 밝혔다. 


올해 NIP에 참여하는 제약사는 GC녹십자, LG화학, 보령바이오파마, 일양약품, 한국백신, 사노피파스퇴르, SK바이오사이언스 등 7개사다. 모두 4가 독감백신이다.
 
작년까지 국가가 지원하는 NIP 프로그램에는 독감 바이러스 3종(A형 2종·B형 1종)을 예방할 수 있는 3가 백신이었으나 올해부터는 예방효과를 높이기 위해 4종(A형 2종·B형 2종)을 예방할 수 있는 4가 백신으로 업그레이드됐다.
 
소비자가 맞는 백신의 종류는 병·의원에서 거래하는 제약사와 의약품 도매업체에 따라 병·의원마다 제품이 달라질 수 있다. 거래하지 않는 제약사라면 병의원에서 구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대개는 병의원마다 품목이 한정돼 있지만 소비자 취향을 반영해 가급적이면 여러 종류의 품목을 구비하는 곳도 있다.
 
백신은 ‘반품 절대 불가’ 품목 … 1년 넘기면 폐기 … 신성약품 책임이면 거액 손해 불가피 


백신은 반품이 절대로 불가능한 대표적인 의약품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출하 때마다 일일이 실사 검정을 하기 때문에 불법 유통도 불가능한 품목이다. 유효기간이 딱 1년이라 기한을 넘기면 무더기로 폐기해야 한다.
 
따라서 신성약품에게 유통상의 잘못을 행정적으로 묻게 된다면 형사처벌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물론 백신 구입비를 죄다 물어내야 하는 곤경에 처하게 된다. 업계에서는 신성약품이 이번 공공입찰 수주를 위해 정치권의 도움을 받았다는 설을 제기하기도 한다.
 
유료 접종으로 이미 백신 주사를 맞았더라도 안전성에 대해 너무 염려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방역 당국과 전문가들에 따르면 상온에 노출된 백신을 맞았더라도 단백질 함량이 떨어져 접종 효과가 떨어질 뿐이지 인체 위해성은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는 것이다.
 
이번 일로 무료접종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면 유료접종을 하겠다며 환자들이 병원에 대거 몰려들면서  접종대란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1년에 두 번 맞는 것은 금물이며, 유료백신과 무료백신 간 품질 차이는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아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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