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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살모사로 약을? … 약이 되는 ‘독’ 이야기
  • 박수현 기자
  • 등록 2020-09-17 17:10:14
  • 수정 2020-09-25 16:4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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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량 줄이면 유익한 약으로 작용 … 기원전 7세기부터 치료제로 사용
독도 용량을 줄이면 유익하게 작용하는 약물이 될 수 있다.
독성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스위스 의학자 파라켈수스(Paracelsus)는 500년 전 “모든 물질은 독이며 독이 아닌 물질은 없다. 다만 올바른 용량만이 독과 약을 구별한다”고 가르쳤다. 우리는 흔히 좋은 것을 최대한 많이 취하고 나쁜 것은 가능한 멀리하는 게 건강과 행복의 비결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자연 속에서 좋고 나쁜 것은 우리 생각처럼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용량과 정도의 문제일 뿐이다. 유독하지만 용량을 줄이면 유익하게 작용하는 물질은 수없이 많다.

자연의 독은 오랜 생존경쟁을 거친 진화의 산물로 수많은 의약적 성분이 있지만 아직 그 성분들의 효과를 알아내지 못한 상태다. 인간에게 독은 치명적이지만 때때로 약이 된다. 독으로 약을 개발한 사례를 모아봤다.

기원전 7세기부터 독을 개발해 약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인도 전통의학 아유르베다(Ayurveda)는 독사의 독을 수명을 연장하고 관절염과 소화기질환을 치료하는 데 썼다.

1981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살모사 독을 추출해 만든 캡토프릴(Captopril)을 고혈압약으로 승인했다.
 
살모사 독은 먹잇감의 혈압을 급작스레 바닥까지 떨어뜨려 죽인다. 1960년대 후반 영국의 약리학자인 존 베인 박사는 살모사 독액에서 ‘안지오텐신전환효소(Angiotensin-Converting Enzyme, ACE)’의 작용을 방해하는 펩타이드를 발견했다.

혈액 중의 ACE는 콩팥에서 물과 소금을 배출해 혈압을 유지하는 효소다. 사실 그 전까지는 인간의 혈압이 어떻게 일정하게 유지되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존 베인 박사의 연구로 혈압 유지 원리가 밝혀졌고, 이는 고혈압치료제 개발로 이어졌다. 1975년 캡토프릴이 개발됐고, 6년 후 실제 고혈압 환자에게 사용됐다. 이후 캡토프릴을 비롯한 ACE억제제는 칼슘길항제의 간판인 암로디핀(amlodipine)이 등장한 1990년대 중반까지 고혈압 환자에게 가장 많이 처방되는 약이었다.

1987년 중국 곤명동물연구소에서 살모사독을 정제하면 혈관혈전병 치료에 효과적이라고 발표했다. 2002년에는 정광회 연세대 의대 의과학과 교수 팀이 살모사독에서 ‘삭사탈린’(saxatilin)이란 항암물질을 발견했다.

한림제약도 1989년 살모사 성분의 자양강장제 ‘호르반’을 내놓았다. 한병에 5000원짜리 고가 제품으로 이 제품엔 녹용에서 추출한 유효성분 루론딘 30㎎, 살모사의 유효성분 반비(反鼻)틴크 100㎎, 로얄젤리 50㎎ 등이 들어가 있다.

2005년 국무회의를 통과한 야생동식물 보호법에 의해 야생동물을 가공해서 먹는 사람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문다. 한림제약은 어떻게 살모사의 성분을 넣을 수 있었을까? 회사 관계자에게 문의한 결과 일본에서 해당 성분만 추출해서 원료의약품으로 들어와 문제가 없었다.

반비는 살모사를 말린 한약재다. 살모사를 복사(蝮蛇)라고도 하며 그 쓸개를 복사담(蝮蛇膽)이라 하여 예부터 자양강장, 간기능 개선에 썼다. 중국의 명약으로 알려진 편자황(片仔癀)은 우황, 사향, 뱀쓸개, 삼칠초가 주성분이다. 그 중에서도 뱀쓸개즙은 편자황 고유의 성분이다. 편자황은 피로회복, 간 보호, 염증 완화, 상처 회복, 통증 개선 등에 두루 쓰인다.
 
살모사의 유효성분을 알코올로 추출해 얻은 반비틴크는 팔미틴산, 스테아린산,타우린, 여러 종류의 아미노산, 비타민B군 등을 함유하고 있다. 반비틴크는 자양강장, 신진대사 촉진, 항염 작용 등으로 널리 사용돼 온 약이다.

예로부터 반비는 만성 고질병 환자나 장기 투병으로 허약해진 환자에게 보신용으로 사용됐다. 항시 피곤함을 느끼거나 만성권태, 무기력증, 병중‧병후 환자나 체력 소모가 많은 사람에게 복용시켜 원기를 북돋워주는 약재로 쓰였다.
 
동성제약의 ‘사이안연질캡슐’에도 사유(蛇油, 뱀기름 Snake oil)이 296.7mg 들어 있다. 이와 함께 레티놀팔미테이트유 2mg(비타민A로서 2000IU), 에르고칼시페롤(비타민D2) 200IU, 구리클로로필 0.3mg이 함유돼 있다.
 
이 약의 적응증은 눈의 건조감(안구건조증), 치골의 발육불량, 야맹증, 구루병 (O자다리 또는 X자다리), 비타민A·D의 보급(임신수유기, 병중.병후 체력저하때, 발육기, 노년기) 등으로 기재돼 있다.
 
사유는 오메가3지방산이 대부분으로 1800년대 후반 미국으로 건너간 중국 철도 노동자들이 피로회복, 만성통증, 관절염, 야맹증, 타박상, 구루병(골연화증)을 개선하려는 목적으로 애용했다. 사유의 효능과 사이안의 적응증에 일맥상통하는 것은 그만큼 사유의 효과가 어느 정도 인정된다는 얘기다.

동남아시아에 서식하는 뱀(Tropidolaemus wagleri)의 독에는 ‘트로와글렉스(trowaglerix)’라는 성분이 포함돼 있는데, 이 성분은 심뇌혈관질환을 예방하는 항혈소판제로 활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2018년부터 대만에서 관련 연구가 진행 중에 있다. 연구진은 아스피린 등 기존 항혈소판제의 부작용인 과도한 출혈이 없다는 점에 기대가 크다.

코브라 독인 코브라톡신(Cobratoxin)은 천식과 다발성경화증 치료제로, 카리브 해안에 사는 융단열말미잘(Stichodactyla Helianthus)의 독은 류마티스관절염 및 건선 치료제로 연구가 활발하다. 원뿔달팽이(Cone Snail)의 독은 신경계를 마비시키는 효과가 있는데, 이를 개량해 신경통증 치료에 활용하는 방안이 연구되고 있다.

한국독의약학회(Toxico-medicine association, TOMA)를 창립해 독에 대해 연구하는 한의사도 있다. 이용운 TOMA 부회장은 “그동안 독은 나쁜 것, 해로운 것, 생명을 위해하는 것이라는 게 일반적 관념이었다면 이제는 독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이제 독이 약이 되는 시대가 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 부회장에 따르면 뱀독 약침(경혈에 주사기로 약제를 주입하는 치료법)은 염증완화 효과와 자가면역질환에서 면역조절 효과가 뛰어나다. 따라서 척추관절 통증에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 치료 효과는 경증의 경우 즉시 또는 하루나 이틀 정도에 반응을 보인다. 장기치료를 요할 경우는 2~3일에 1회 시술하는 방식으로 3~5회 이상 시술해야 치료반응을 볼 수 있다. 질환별로도 치료 격차가 크다. 이외에도 아토피, 알레르기성피부염, 건선, 여드름 등 피부질환 개선에도 효과적이다.
 
그는 연구 표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뱀독의 원료와 보관상태, 출하 상태에 대한 표준화 작업을 하고 있다. 또 뱀독의 모든 성분을 분석하고 알레르기 성분과 유효 성분을 분리해내고 있다.
 
현재 뱀독으로는 살모사 독, 칠점사 독, 코브라 독 등이 쓰이고 있다. 증상이나 질환에 따라 독의 종류와 양을 달리하는 방안도 개발 중이다. 항염, 통증감소, 면역조절 등이 나타나는 기전도 밝혀내고 있다. 이제 막 연구가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 분야 연구는 아직 체계가 잡혀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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