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 코로나19)과 인플루엔자바이러스(독감)를 동시에 진단할 수 있는 키트가 올 가을 두 감염병 유행이 겹치는 ‘트윈데믹’(또는 더블데믹)을 막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7일 코로나19와 독감를 동시에 진단할 수 있는 코젠바이오텍의 체외진단시약 1개 제품에 대해 임상적 성능시험계획을 승인했다. 이 회사는 지난 2월 코로나19 진단키트로 가장 먼저 긴급사용승인을 받았던 업체다.
코젠바이오텍의 체외진단시약은 코로나19 검사와 동일한 방식으로 검체를 채취해 신종코로나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2종(A·B)을 동시에 검사한다. 올 겨울엔 독감과 코로나19가 동시에 유행할 수 있는 만큼 환자의 감염질환 선별을 통해 정확한 진단과 맞춤치료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분자진단 전문기업 씨젠도 코로나19와 독감 등 기타 호흡기 바이러스를 한 번에 검사할 수 있는 진단 제품을 개발하고 9월 중 유럽 등 세계 시장에 출시한다고 8일 밝혔다.
한번의 검사로 △코로나19 바이러스 △인플루엔자 A·B형 독감 △전 연령층에서 감기 및 중증 모세기관지 폐렴을 유발하는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 A·B형을 한번에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유럽 허가 절차를 밟고 있고 유럽 체외진단의료기기 인증(CE-IVD)을 받는 즉시 이달 중 유럽에서 먼저 출시할 계획이다. 이후 국내 승인 관련 절차를 밟을 방침이다.
인플루엔자는 매년 늦가을부터 이른 봄까지 유행하는 계절성 호흡기 감염병의 주원인 병원체로 발열, 기침, 인후통 등의 증상이 코로나19와 비슷해 진단과 치료에 혼선을 가져올 것으로 우려된다.
만약 증상이 비슷한 사람들이 선별진료소에 몰리면 진단검사는 물론 의료·방역 체계 전반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이에 정부는 동시 진단키트가 이런 부담을 일정 부분 해소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 본부장은 지난 7일 브리핑에서 “코로나19와 인플루엔자는 의심 증상이 유사하므로 이를 감별하는 게 이번 가을철 코로나19 방역 대응에서 굉장히 중요한 사항”이라며 “격리와 집중치료가 필요한 코로나19 환자는 확실히 분리해 치료해야 해서 신속하고 정확한 검사가 필수적이고, 동시 진단 키트를 도입하면 각각 검사하는 것보다 시간을 단축해 조금 더 신속하게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동시진단 체외진단 시약이 임상시험을 거쳐 신속히 허가받을 수 있도록 지속해서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동시진단키트는 미국에서 한발 빠르게 승인됐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 4일(현지시각) 로슈가 개발한 분자진단키트 ‘코바스 SARS-CoV-2 & Influenza A/B’ 긴급사용을 승인했다. 이 키트는 증상만으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A·B형)에 의한 독감인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때 진단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검사로 단일 검체만으로 바이러스를 구별해낸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에 독감 유행까지 겹치게 되면서 혼란을 빚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지만 FDA는 비상 상황인 점을 감안해 효용성을 더 높게 봤다. 토마스 슈네커(Thomas Schinecker) 로슈진단 CEO는 “독감 시즌이 시작되면 코로나19와 인플루엔자 감염을 증상만으로는 거의 구별할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검사가 특히 중요해질 것”이라며 “단일검사로 의료진들이 정확한 진단과 가장 효과적인 치료를 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벌링턴(Burlington) 소재 랩코프(LabCorp)도 가정용 신종코로나바이러스, 독감, RSV를 하나의 샘플에서 검출해낼 수 있는 진단키트를 출시할 계획이라고 8일(현지시각) 밝혔다. 이 키트는 현재 병원 또는 클리닉 방문으로만 제공되고 있으나 조만간 가정용 버전을 내놓을 예정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검토와 승인이 끝나면 랩코프의 픽셀(Pixel) 서비스를 통해 공급될 예정이다.
국내서도 ‘코로나-독감’ 중복감염 사례 발생 … 2950만명분 독감백신, 고위험군부터 우선접종
국내에서도 코로나19와 인플루엔자에 중복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는 첫 사례가 나오면서 트윈데믹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방역 당국은 독감백신의 전 국민 예방접종은 ‘필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우선순위를 고려해 접종을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정은경 본부장은 9일 오후 코로나19 정례브리핑에서 “인플루엔자 검사와 코로나19 검사를 했을 때 2개 모두 양성이 나온 사례들이 있었다”며 “내용을 정확히 확인해 추후 설명하겠다”고 언급했다. 다만 “중복감염 시 더 치명적이거나 증상이 더 악화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정보가 많지 않다.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해외의 경우 코로나19와 독감의 중복감염 사례는 최근 겨울철이었던 남반구를 중심으로 보고된 바 있다.
정 본부장은 “전 국민이 필수적으로 독감백신 접종을 맞아야 하는 게 아니다”고 재차 강조하면서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때 합병증이 많은 고위험군이 (독감 예방 접종) 대상자”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 백신 생산물량은 2950만병 정도로, 전 국민이 다 맞을 수 있는 양은 아니기 때문에 접종 우선순위에 있는 분들이 먼저 맞을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 본부장은 이어 “18세 미만의 어린이·청소년과 62세 이상의 어르신, 임신부를 대상으로 무료접종을 시행 중”이라며 “무료접종 대상자가 아니더라도 만성질환자는 접종을 받길 권고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