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성분조제’로 명칭 변경 … 국회 입법예고시스템서 의-약사 대결 불꽃 튀는 입법전쟁 본격화
약사의 대체조제를 간소화·활성화하는 법률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면서 5년 만에 이를 둘러싼 논란이 재점화됐다. 약사 출신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부천 정)은 지난 2일 약사가 대체조제 후 현재 의사·치과의사뿐만 아니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도 통보할 수 있도록 확대하는 내용의 약사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현행법은 처방전 기재 의약품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생물학적동등성이 있다고 인정한 품목으로 대체조제할 때 약사는 환자에 그 사실을 알리고 처방전을 발행한 의사에게 1일(부득이한 경우 3일)내 통보하도록 하고 있다. 이같은 사후 통보는 의약사간 불필요한 오해와 불신을 낳고 정보 공유 장애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게 서 의원의 주장이다.
또 대체조제란 명칭을 ‘동일성분조제’로 명칭을 바꾸는 조항도 포함됐다. 대체조제는 약사가 처방의약품과 주성분함량·안전성·효능·품질·약효작용원리·복용방법 등이 동등한 의약품임을 의약품동등성시험을 통해 식약처장이 인정한 의약품으로 조제하는 것이나 일부 환자에 처방약과 성분·함량·효능·품질이 다른 약으로 바꿔 조제하는 것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 이를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서 의원의 개정안 내용은 “의사, 치과의사 또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동일성분조제한 내용을 1일(부득이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3일) 이내에 통보하여야 한다. ”가 핵심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약사는 대체조제 시 지금처럼 해당 병·의원에 알리는 대신 심평원에만 대체 사실을 통보해도 된다. 심평원은 이런 대체조제 사실을 병·의원에 알리게 된다.
2015년 19대 국회 당시에도 최동익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이번 개정안과 유사한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으나 국민의 안전이 우려된다는 의료계의 반대로 저지되고 말았다. 의료혁신투쟁위원회는 당시 조찬휘 약사회장을 대체조제 활성화를 위한 약사법 개정안 발의 과정에서 불법 로비한 혐의로 고발하기도 했다.
부천시약사회장을 역임한 경력을 가진 서 의원이 다시 이번 법안을 발의하면서 의사-약사 간 논쟁에 불이 붙었다. 의료계는 무엇보다도 의대 정원 증원 등 4대악 정책에 맞서는 의료계 파업이 진행 중인 가운데 의·약사 간 의견 대립이 뻔한 법률 개정안이 추진되면 의사의 국민 인식이 더 악화될 뿐만 아니라 약사단체 또는 정치권과의 싸움에서 집중력이 흐트러져 원치 않는 결과가 나올 수 있음에 긴장하고 있다.
더욱이 21대 국회는 176석 거대여당의 힘에 밀려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의료계를 긴장하게 만들고 있다. 약사 출신 지역구 국회의원은 전혜숙(서울 광진갑), 김상희(경기 부천병), 서영석(경기 부천정) 등 3명으로 모두 여당 소속이다. 게다가 초선인 서 의원을 제외한 김상희 의원은 4선으로 국회 부의장이고 전혜숙 의원도 3선이다. 국민의힘당 서정숙 의원은 비례대표이긴 하지만 약사친화적 노선을 걸어온 까닭에 당적에 상관없이 약사단체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국회 입법예고 사이트 게시판에는 대체조제 간소화를 두고 의사-약사 간 팽팽한 신경전이 펼쳐지는 중이다. 9일 오후 7시 현재 9260여명의 네티즌이 자기의 찬반 입장을 달아놓고 있다.
찬성하는 측은 동일성분조제는 식약처 생동성시험을 거쳐 안전성을 입증한 약을 쓰는 것으로 문제가 없고, 약제비 지출을 줄여 건강보험공단 재정 절감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대 측은 대체조제 간소화가 재정 절감 효과로 이어진다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또 의사 처방권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무분별한 대체조제로 인한 약화사고가 날 경우 뒷감당은 의사와 환자의 몫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같은 성분이라도 제네릭에 따라 효능이 확실히 다르고, 약효가 100% 동일하지 않은 약은 믿을 수 없을 수 없다는 주장도 많았다. 이에 약사로 추정되는 게시자들은 “제네릭은 생동성시험을 통과해 오리지널약을 기준으로 동등한 효과를 인정받은 의약품”이라며 “같은 성분의 약을 수시로 (리베이트 등 제약사와의 이해관계에 따라) 다른 제약사 제품으로 변경해 처방하는 의사들이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맞서고 있다.
한 게시자는 “리베이트 수혜자가 의사가 아니라 약사가 될 뿐”이라는 의견을 남기기도 했다. 이 같은 주장은 약사가 리베이트를 목적으로 대체조제 활성화를 찬성한다는 오해를 낳을 소지가 있어 약사 측을 자극하기도 한다.
대한약사회는 김대업 회장 취임 이후 약으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검은 이익’을 다 없애는 것을 목표로 내걸고 있다. 그는 지난해 보건사회약료경영학회서 기조연설에서 “약사 직능 의 미래는 약에 붙어 있는 검은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시작된다”며 “리베이트를 없애고 제약산업의 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잘못된 정책이 계속 추진되는 것들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실제로 현재의 상품명 처방은 제약사-의사 리베이트 활동을 유도하는 경향이 있다. 국내 제약사의 판매관리비가 다른 제조업에 비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업계에서는 불법 리베이트가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고 보고 있다. 판관비는 인건비·일반관리비·판매비 등과 함께 리베이트비용가지 포함한다.
의약품 도매업계 관계자는 “모든 약을 통틀어 의약품 채택비로 의사에게 돌아가는 리베이트 비용은 전체 약값 대비 15% 수준으로, 저가 국산 제네릭은 최대 40%, 외자약은 없거나 수 %에 그친다”고 말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대학병원이나 대형병원 등은 외자제약사에, 규모가 작은 의원일수록 소형 제약사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따라서 의사들의 진료수익 대비 5~20%가량의 적잖은 비중을 차지하는 의약품 리베이트에 대해 좌지우지할 권한을 뺏기게 되는 대체조제 개정안은 의사들로서는 기득권 상실과 다름 없다.
반면 대학병원 문전약국을 제외한 대다수 약국은 리베이트와 연계된 처방약의 잦은 변경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처방이 끊긴 불용약은 제약사와 도매상과의 거래 조건에 따라 반품이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부 제약사는 유통기한이 지나면 반품을 받지만 이마저도 상당수 제약사는 아예 거부한다. 또 면적이 협소한 동네약국의 경우 약을 보관 관리하는 불편과 행정적 비용이 적잖다. 간혹 매입가보다는 낮은 가격에 반품하기도 하나 이조차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는 게 다반사다. 전문의약품은 다른 공산품처럼 재고 소진을 위해 마케팅도 할 수 없다. 빈번한 처방약 변경에 따른 손해와 고통은 고스란히 약국이 짊어지는 상황이다.
이번 법안 통과로 대체조제가 활성화되면 이같은 약국의 고충이 덜어지고 동네약국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다수 약사가 점점 늘어나는 약국과 대형 문전약국 환자쏠림 현상으로 수익성 저하를 우려하는 가운데 대체조체 활성화는 의약분업 이후 풀지 못한 몇 개 안 남은 숙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21대 국회 초반부에 기세를 살려 이를 성취하려는 욕구가 분출되고 있다.
약사회는 대체조제라는 표현이 임시방편으로 약을 처방하는 듯한 부정적인 느낌을 줄 수 있어 동일성분조제로 명칭을 변경하는 것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관계자는 “동일성분조제에 사용하는 약물은 인근 의원에서 동료 의사가 처방하는 약일 수 있다”며 “처방한 약과 다른 약을 사용하는 게 문제라는 주장은 어폐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동일성분조제는 약가인하로 환자 부담 절감 및 국내 제약사 활성화 차원에서도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며 법안 추진의 당위성을 피력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정부, 유관기관 등과 협력해 대체조제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심평원은 남인순 의원이 서면으로 질의한 ‘대체조제 부진 이유와 활성화 방안’에 대한 답변으로 “저가약 대체조제 활성화를 위해 사후 통보 절차를 간소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약사법 개정안 발의에는 서 의원을 비롯해 김경만, 인재근, 이정문, 김원이, 김경협, 오영환, 민병덕, 이광재, 문진석, 설훈, 정춘숙, 강선우, 최혜영 의원 등 14인이 참여했다.
기대와 우려 속에서 다시 발의된 대체조제 활성화 법안이 여당의 압도적인 정치 주도, 코로나19 상황에서 언택트 처방과 조제를 선호하는 분위기, 의사들의 이른 바 4대 악법 투쟁으로 인한 민심 이반 등의 분위기에 편승해 국회의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