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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사회
해법 요원한 ‘의대 정원 확대‧공공의대 설립’ 정책, 어디서부터 시작됐나?
  • 김지예 기자
  • 등록 2020-09-03 21:32:08
  • 수정 2020-09-08 17:3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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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년 이정현 전 대표 첫 발의, 지자체‧지방대‧정치인 이해관계 맞물려 … 정치적 접근은 서남의대‧관동의대 사례 재현할 뿐
공공의대 신설을 정치적으로 접근하면 부실 교육과 인프라 문제로 2018년 폐지 수순을 밟은 서남대 의대(사진) 사례가 재현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의대 정원 확대‧공공의대 설립 등 이른 바 의사단체가 ‘4대악’으로 규정한 정책을 두고 강 대 강 대치를 이어가던 의료계와 정부가 대화를 준비하고 나서 사태 봉합에 대한 기대가 모이고 있다.
 
3일 의료계는 주요 단체 협의 끝에 단일 합의안을 마련하고 국회‧정부와 대화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국회는 여야 특별 위원회를 구성해 의료계와 대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 역시 의료계의 대화에 환영을 뜻을 나타냈다.

하지만 의료계는 동시에 7일로 예정된 3차 총파업을 계획대로 진행하겠다고 밝혔고, 제1 야당인 국민의힘 역시 여당 및 정부와 극명한 입장차를 드러내고 있다. 보건복지부도 정책에 대한 전향적인 입장 변화를 보이지 않아 사태 수습이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

한편 공공의대 신설과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55.2%가 의사들의 주장에 공감 못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정책을 원점에서 재논의할 것을 명문화하자는 주장에 대해서는 찬반이 45.0% 대 40.7%로 비등하게 나타나 사태 수습에 대한 국민의 바람을 드러냈다.

끝이 없어 보이는 의대 정원 확대‧공공의대 설립에 대한 논란은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역사를 짚어본다.

강 대 강 대립에 여당 중재, 의료계 단일 협의안 마련으로 대화 물꼬

정부의 행정명령 및 형사고발 조치에 의대생 93%가 의사국가고시 실습시험을 취소하고, 전공의의 릴레이 사직서 제출 집단행동에 교수들도 동참의 뜻을 보이는 등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이 끝으로 치닫는 가운데 의료계가 정부와 대화를 위한 물꼬 트기를 시작했다.

대한의사협회와 젊은의사 비상대책위원회 등이 참여한 범의료계 4대악 저지투쟁 특별위원회‘는 3일 오후 서울 이촌동 의협회관에서 전체 의료계의 입장을 단일화한 ‘합의안’을 마련했다. 의협은 이를 바탕으로 정부와 본격적인 대화에 나설 방침이다.

이번 논의는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의료계 총파업 중재하겠다고 나서면서 성사됐다. 지난 1일 한정애 더민주 정책위의장은 최대집 의협회장과 박지현 대한전공의협회장을 잇달아 만나 “공공의대 등 쟁점에 대해 완전하게 제로 상태에서 논의할 수 있다”며 관련 단체들과 논의한 후 다시 의견을 제안해달라는 요청했다.

이에 범투위는 대화에 앞서 단일 요구안을 마련하기로 하고 3일 만장 일치로 요구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여당은 야당과 함께 국회 특위를 구성하며 대화에 적극적이 모습을 보였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3일 열린 당 정책조정회의에서 “의료계에서 제기하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를 다 포함한 논의를 위해, 국회 내 특위를 구성키로 했다”며 “특위 구성건에 대해 야당과도 원칙적으로 합의했다”고 알렸다.

손영래 보건복지부 대변인은 3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여당에서 의료계와 함께 합의를 하고 있는 상황을 정부는 최대한 존중할 것”이라며 “합의가 된다면 이 부분을 존중해 이행하기 위한 최대한의 노력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조만간 의료계와 여야정 협의체가 최종 협상에 나설 전망이다. 다음주 7일엔 의협 3차 총파업, 8일엔 의사국가고시 실기시험 등이 예정돼 정부와 의료계 모두 그 전에 합의를 이루기 위해 협상에 서두를 것으로 예측된다.

의료계는 협상 진행과 상관없이 7일 총파업을 계획대로 진행한다고 밝혔고, 8일 의사고시에는 의대생 93%가 취소를 신청한 상태다. 이 시기를 넘기면 정부와 의료계 양측 모두 부담이 커서 뜻밖에 조기 타결도 기대된다. 
 
2015년 이후 19‧20‧21대 국회서 지속 발의 … 순천대‧목표대‧창원대‧공주대‧안동대 등 지역대학과 지자체 요구
지난달 5일 목포시‧해남군‧무안군 등 전남 서남권 9개 자지단체장, 지역국회의원, 시민단체 대표 등 1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목포대가 의대 유치를 위한 추진위원회 발촉식을 가졌다.
공공의대 신설과 의대 정원 확대 등 의사 수 증원 문제는 비단 최근에 비롯된 게 아니다. 공공의대 논의는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가 2015년 5월 발의한 ‘국립보건의료대학 및 국립보건의료대학병원의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안’에서 시작됐다. 지역 숙원사업인 순천대 의대 유치를 공약으로 내세워 2014년 순천·곡성 지역구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이 대표는 “농어촌지역, 오지, 낙도 등 의료취약지는 민간 의료기관 중심 의료체계로 운영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기존 순천대 의대 유치 공약을 공공의대 신규 설립으로 변경·추진했다.

당시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해당 법안에 찬성했으나 대한의사협회‧대한병원협회‧교육부 등의 반대로 법안심사소위 논의 목록에는 포함되지 못했다. 같은 해 11월에 관련 법이 다시 상정됐으나 역시 무산됐다. 이때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의료취약지 보건의료인력 양성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특정 지역을 겨냥한 정치적 목적의 의대 신설은 안 된다”며 국립보건의료대학(공공의대) 신설을 반대했다.

하지만 다음 회기인 20대 국회에서는 이 전 대표 뿐만 아니라,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윤한홍 새누리당 의원, 김태년 더불어 민주당 의원 등이 공공의대 설립안을 발의하고 나섰다.
 
올해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 코로나19)가 확산되자 이를 계기로 20회 국회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의료인력 증원 필요성을 내세우며 공공의대와 의대 정원 확대 법안을 여럿 발의했으나 반대에 막혀 실현되지 못했다. 이에 지난 4월 21대 총선에는 여당은 당 차원에서 이를 주요 공략으로 내걸고, 여당이 178석으로 총선에서 승리하자 빠르게 법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대체적으로 집권당이 선도하기는 하지만 여야 할 것 없이 정치권은 유권자를 의식해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을 호시탐탐 추진하려는 욕구를 갖기 마련이다. 공공 의대 설립 혹은 지역 의대 유치 또는 정원 확대가 지역 이권 및 정치적 성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광역자치단체 중 유일하게 의대가 없어 다음 의대 설립이 유력시 되는 전남의 경우 순천을 지역구로 했던 당시 이정현 의원과 목표를 텃밭으로 삼았던 당시 박지원 의원이 자기 지역구에 의대가 유치돼야 한다고 오랜 기간 아웅다웅 다툰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번에도 전남에서는 순천대와 목포대가 의대 유치를 위해 지자체와 손잡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는 등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경남 창원대, 충남 공주대, 경북 포스텍‧안동대 등도 자기 지역구 출신 정치인과 지자체장의 지원을 받으며 의대 유치에 힘을 쏟고 있는 상황이다. 이밖에 인천대‧대진대‧서울시립대 등이 몇 년 전부터 의대 유치에 노력을 기울여왔다.

급설됐다 사라진 서남의대‧관동의대 … 실효성 없이 정치적으로 만든 의대는 결국 도태

하지만 지역 이점과 정치적 성과 관점으로 만들어진 공공의대가 의료인 육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선례도 있다.
 
국내 의대는 총 41개다. 1945년 해방 직후엔 의대가 연세대, 경북대, 고려대, 전남대, 이화여대, 서울대 등 총 6개 대학에 존재했으나 이승만 정권에서 가톨릭대, 부산대가 추가됐다. 이후 박정희 정권에서 경희대, 조선대, 한양대, 충남대, 전북대, 중앙대, 연세원주의대, 순천향대, 영남대, 인제대, 계명대 등 11개 의대가 무더기로 들어섰다.
 
전두환 정권에서 고신대‧원광대‧경상대‧한림대‧인하대‧동아대‧건국대‧동국대‧충북대‧울산대‧아주대 등 11개가, 노태우 정권에서 단국대‧대구가톨릭대 등 2개가 추가됐다.

마지막으로 김영삼 정권에서 건양대‧서남대‧관동대‧강원대‧성균관대‧을지대‧포천중문의대(현 차의과학대)‧가천대‧제주대 등 9개가 만들어지면서 지금의 41개 의대 체제가 완성됐다.

이렇게 의대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교수 부족과 부실 교육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 지적을 받아왔다. 관동대는 의대 설립 부대기준인 부속병원을 10년이 넘도록 짓지 못해 정원이 매년 10%씩 감축되는 제재를 받다가 지금은 인천 가톨릭학원(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으로 편입됐다.

역시 김영삼 정권에서 만들어진 서남대 의대는 부속병원인 남광병원의 부실한 인프라가 문제가 돼 2018년 수련병원 자격을 박탈당하고 폐지 수순을 밟았다. 의료계 및 공공의대 설립을 반대하는 이들은 공공의대 설립이 또 다른 서남대 의대를 만들 뿐이라고 주장했다.
 
반대로 정부와 의대 정원 증원을 찬성하는 이들은 2000년 의약분업 당시 의료계의 주장으로 2006년부터 의대 정원을 3253명에서 3058명으로 줄이고 이후 논의가 막힌 게 지금의 의료인력 부족을 낳았다고 주장했다. 의약분업 당시 정부는 의료계와 타협점으로 의대 정원을 축소키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의대 설립과 증원 축소는 수요에 맞춰 진행할 사안인데 정치적인 맥락으로 접근해 거래한 탓에 지금의 문제를 야기하는 단초가 됐다는 지적이다.

과거의 사례들은 어떤 결론이든 공공의대 설립과 의대 정원 확대 문제를 정치적인 관점에서 재단하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 실효성을 합리적으로 따지는 게 가장 중요하다.

코로나19 사태를 등에 업고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을 밀어붙이 정부의 행동이 거칠어보이는 게 사실이다. 한편으로는 최근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의료시스템의 안정 운영을 위해 당분간 모든 정책을 보류하고 원점에서 재논의하겠다고 전향적인 입장 변화를 보인 것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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