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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건강
청소년 게임중독 치료 권위자에서 디지털치료제 선두주자로
  • 김지예 기자
  • 등록 2020-08-31 18:55:45
  • 수정 2020-09-05 18: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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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조건적인 배제와 금지는 부작용만 낳아 … 게임이 뇌에 미치는 영향, 치료 약물과 유사
한덕현 중앙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게임할 때 뇌 변화가 약물로 인한 변화와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 디지털치료제의 개발 가능성과 유용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한덕현 중앙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젊은 나이에도 국내에서는 게임중독 청소년 치료 권위자다. 미국 하버드대 의대 뇌과학연구소에서 전임의로 게임 관련 정신의학을 연구하고 귀국해 2011년 국내 최초로 ‘게임과몰입치료센터’를 설립해 국내 게임중독의 연구와 치료에서 선두주자로 평가받고 있다.
 
2009~2012년 세계 3대 인명사전인 미국 ‘마르퀴스 후즈후(MARQUIS WHO’S WHO)’ 의학 부문에 등재됐고, 2010년에는 미국정신의학회(APA) 학술대회에서 ‘젊은 연구자상’을 수상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의학자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이용한 치료법 일명 ‘디지털치료제’ 연구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는 디지털 치료제가 정신과 질환뿐만 아니라 머잖아 중증질환과 대사질환 등에 널리 적용될 것이며 이에 대한 정책 등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게임만 안하게 하면 문제없나?” ‘게임 과몰입’을 유발하는 문제 살펴봐야

“왜 하버드까지 가서 게임중독을 연구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답은 간단해요. 다들 게임이 그렇게 위험하다는데 대체 왜 위험한지 도저히 이해가 안됐거든요. 대체 게임의 어떤 점이 그토록 위험하다는 것인지, 어떤 기전에서 그런 위험성이 생긴 것인지. 그래서 직접 연구를 하기로 했죠”

그는 자신이 게임 과몰입을 연구한 이유는 학자로서 이해되지 않는 것에 대해 궁금증도 있지만 자신 스스로가 게임을 즐겼던 인터넷 게임 1세대인 탓도 크다.

마침 미국 국립보건원(NIH) 산하 국립약물남용연구소(National Institute on Drug Abuse, NIDA) 펠로우십 프로그램이 눈에 들어왔다. 서울대병원 전임의(펠로우)로 근무하던 시기에 인터넷 게임중독에 대해 연구하겠다는 계획서를 제출했다. 이로써 하버드대에서 본격적으로 게임중독이 뇌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게 됐다.
 
연구를 통해 그가 내린 결론은 ‘게임은 그냥 게임일 뿐’이라는 것이다. “게임을 하면 뇌가 여러 자극을 받습니다. 끊임없이 반복 혹은 변형돼 주어지는 시각적‧청각적 자극이 뇌를 건드려 재미를 느껴요. 하지만 이것이 뇌 기능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어요. 빛, 소리 등이 감각을 자극하고 계속해서 사고를 하는 과정이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오랜 연구가 필요하죠. 오히려 게임이 뇌기능을 발달시키는 효과도 확인됐으니까요.”
 
그는 미국에서 연구를 마치고 귀국 후 중앙대병원에 국내 최초로 개설된 ‘게임과몰입 상담치료센터’의 치료팀장을 맡아 임상 치료에 나섰다. 그는 ‘게임 과몰입’ 현상을 ‘게임 중독성’과 동일시하는 1차원적 바라보는 시각이 게임보다 더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진짜 문제점을 가리기 때문이다.

“환자는 주로 청소년이 많아요. 부모가 ‘제발 우리 아이 게임 좀 그만하게 해 달라’며 데리고 오죠. 그럼 제가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은 ‘게임만 그만 두면 아무 문제 없겠느냐’입니다. 대부분 대인관계와 일상생활, 학업 등에서 다른 문제를 보이고 있죠.”

한 교수는 게임 과몰입에 빠진 청소년의 문제를 ‘게임’에서 찾으려고 하면 백이면 백 치료에 실패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대부분은 우울증‧무기력증‧지능장애‧대인기피증‧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등 다른 문제 질환을 동반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게임에 과도하게 몰두하게 만드는 원인을 찾아야 제대로 치료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는 게임 과몰입 때문에 찾아오는 보호자에게 게임하는 이이의 모습을 단 30분만이라도 옆에서 진득하게 지켜볼 것을 권한다. 게임하는 모습에서 아이의 문제적 성향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게임하지 마’라고 나무라기 전에 ‘왜 이렇게 게임만 하려고 하지?’라는 의문을 가져야 제대로 치료할 수 있어요”

아예 보호자가 아이와 게임을 함께 해보는 것도 좋다. 그는 경험상 보호자가 아이가 하는 게임에 참여할 경우가 과몰입 치료 효과가 훨씬 더 좋았다고 조언했다.

학계, 게임중독과 과몰입 정의 못해 … ‘패스트 리워드’ 성향 이해 못하면 게임 막아도 부작용만

게임에서만 문제를 찾는 게 부모만은 아니다. 학계와 사회에서 게임을 다루는 시각에도 문제가 있다. 당장 학계만 해도 게임 과몰입과 게임중독이라는 말을 혼용해서 쓰고 있다. 과몰입과 중독에 대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왜 문제인에 대한 인식은 고사하고 어디서부터 병적인 문제로 진단할 수 있을지에 대한 기준이 없다. 그럼에도 그저 게임중독을 질환으로만 분류해 다루고 있다.

지난해 5월 세계보건기구(WHO)는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안(ICD-11)을 개정하면서 처음으로 게임중독을 뜻하는 ‘게임장애(gaming disorer)’를 질병으로 분류했다. 이 분류안은 2022년 1월부터 발효된다. 이에 따르면 게임장애는 중독 행위로 인한 장애로 분류되며, 도박장애와 함께 묶인다. 게임이 도박과 같은 중독을 일으킨다고 본 것이다.

WHO가 내건 게임이용장애 진단 기준은 크게 세 가지로 △게임 이용의 조절력을 상실한 경우 △가장 중요한 삶의 가치가 게임인 경우 △과도한 게임 이용으로 사회활동에 지장이 생긴 경우다.

한 교수는 이에 대해서도 매우 유감을 표했다. 게임에 빠지는 청소년 청년들이 게임에서 어떤 것을 추구하는지 모르니 게임을 그냥 도박과 동일선상에 놓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청소년이 게임이 과하게 빠져드는 데는 개인의 환경과 질환 문제도 있지만 사회구조적인 원인도 크다고 지적한다.

“게임 대국인 일본은 게임중독에 대한 공론화가 최근에야 시작됐습니다. 반면 게임중독에 대해 공론화가 빨리된 나라로 한국‧중국‧호주가 있죠. 차이가 뭔지 아세요? 전자는 혼자하는 콘솔게임이 주류인데 비해 후자는 수많은 사람들과 온라인 공간에서 어울리는 인터넷게임이 주류인 사회라는 점입니다.”

인터넷게임을 하는 아이들은 콘솔게임을 하는 이들보다 게임 공간에 훨씬 더 오래 머물고 몰입도 심하다. 이는 게임 속 공간에서 이뤄지는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기능이 크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게임이란 소통하는 작은 사회집단이다. 이런 인터넷게임에 빠져드는 한국‧중국 등은 학업‧취업 등 젊은층이 받는 압력과 경쟁이 심하고, 세대 간 대화가 많지 않는 사회다. 소통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게임은 소통의 창구 역할을 한다.

게임의 커뮤니티 기능이 가장 강조된 게 전세계 인터넷게임의 대세인 ‘대규모 다중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assive Multiplayer Online Role Playing Game, MMORPG)이다. 온라인으로 연결된 여러 플레이어가 같은 공간에서 게임 속 등장인물의 역할을 수행하는 형식의 게임이다. 청소년들은 이 공간에서 역할을 수행하며 또래와 동질감을 쌓고 부족한 대화를 채운다. 일종의 온라인 커뮤니티(on-line community)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무조건 게임하는 것을 막으면 정서적인 고립을 강요하는 꼴이 된다.

그는 청소년 정신건강의 가장 큰 특징으로 ‘패스트 리워드’(fast reward, 빠른 보상)을 꼽았다. 이는 사회 탓이다. 고교 3년간의 생활로 대학이, 이것이 곧 장차 근무할 회사를 결정하면서 인생 초반에 성공과 실패가 빨리 결정된다. 부모와 사회가 아이들에게 소속으로 성공을 결정하는 톱다운(Top-down) 방식 성공론을 가르치니까 아이들은 배운 대로 빠르게 성공을 얻고 싶어한다. 그 욕구를 채워주는 게 노력에 빠른 보상을 해주는 게임이다. 아이들은 현실에서 자신이 만족시키지 못한 사회의 요구조건을 게임 속 세상에서나마 이루려고 하는 것이다.

“12년 동안 청소년을 치료하면서 게임과 사회가 함께 움직인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청소년들은 어떤 세대보다 논리적인 세대입니다. 이들의 언어와 논리로 설득하지 못하고 그저 게임이 나쁘다고 막기만 하면 게임을 음성화시킬 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최소한 인터넷게임, 인터넷갬블링(인터넷 상에서 포인트를 주고 받는 도박 형태의 게임), 인터넷 베이스트 갬블링(internet-based gambling, 인터넷 공간에서 진행되는 실제로 돈이 걸리는 도박), 웹보드게임(고스톱, 포커, 바둑, 장기 등 보드게임을 온라인 공간에서 구현한 게임)을 구별할 수 있는 이들이 게임과몰입‧중독의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게임 연구에서 이어진 디지털치료제 연구개발 … 세계시장 선점 위해 빠른 정책 변화 있어야

청소년의 게임 과몰입을 줄곧 연구하던 그가 요즘 새로운 연구 분야에 한참 빠져 있다. ‘디지털치료제’로 불리는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이용한 치료방법’이다. 디지털치료제는 의약품과 같이 질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향상시킬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게임, 가상현실(VR) 등 소프트웨어(SW)를 의미한다.

한 교수는 2014년 유방암 환자를 위한 항암치료용 게임 ‘알라부(I Love Breast)’ 개발에 나선 이후 수면장애치료 소프트웨어, 두통치료게임 등 여러 디지털치료제 개발 연구에 나섰다. 최근에는 바이오 제약사인 빅씽크와 함께 소아·청소년 ADHD, 불안장애, 유방암 환자 증상관리를 위한 디지털치료제 개발에도 참여했다.

“갑자기 연구 분야가 바뀐 것은 아니에요. 게임이 두뇌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다보니 이를 질환 치료에 적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게임할 때 뇌 변화가 약물로 인한 변화와 일치하는 부분이 많았거든요. 모두 게임 연구에서 시작된 거죠”

디지털치료제는 질환의 교육, 증상관리, 약물투약 등을 관리하는 치료지원에서부터 음악‧영상 등을 통해 뇌를 자극해 증상을 개선하는 등 적용 범위와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그는 뇌를 자극하는 디지털치료제가 우울증, 알코올중독, 치매, 불면증 등 정신질환뿐만 아니라 생활습관이 중요한 당뇨병, 고혈압 등 만성질환 등에도 빠르게 적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조만간 여러 진료과에서 주요 치료법 중 하나로 성장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스마트폰 등 웨어러블 디바이스가 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현대인에게 매우 효과적이면서도 부작용이 적은 치료법이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소통약자를 위한 통합 음악치료’ 애플리케이션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소통약자가 주로 듣는 음악의 패턴을 인공지능으로 분석해 소통 능력 개선에 도움을 주는 게 목적이다. 올해 연구에 돌입했고 4년 후 상용화가 목표다.

한 교수는 “국내의 디지털치료제 연구 수준이 해외에 비해 결코 낮지 않다”며 “급격하게 성장 중인 디지털치료제 시장을 선점하려면 정부 정책이 빠르게 따라와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의 애플리케이션 구매 플랫폼으로는 이를 소화할 수 없고 규제도 심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27일 디지털 치료제의 허가심사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아직까지 국내에서 디지털 치료기기로 허가된 사례는 없지만 업계는 이르면 내년 국내든 해외든 첫 제품이 국내 시장에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이해를 동반하지 않은 무조건적인 규제는 독이 될 뿐입니다. 규제 전에 먼저 충분한 연구가 전제돼야 하고 이를 긍정적으로 활용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이런 자세와 노력은 오히려 디지털치료제 등을 개발하는 데 경쟁력이 될 수 있습니다.” 한덕현 교수의 당부다.

한덕현(韓德賢) 중앙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프로필

학력
1997년 중앙대 의대 졸업
2003년 중앙대 대학원 의학박사

경력 및 연수
2002~2004년 국립 춘천병원 정신과 과장
2003년 국제스포츠정신의학회(International Society of Sport Psychiatry) 정회원
2003~2005년 현대유니콘스 프로야구단 스포츠 심리 자문
2004년 대전 시티즌 프로축구단 스포츠 심리 자문
2005년 대한정신분석학회 정회원
2005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소아청소년 분과 전임의
2006년 서울대병원 임상의학연구소 연구원
2006년 미국 하버드대 의대 뇌과학연구소 연구 전임의
2008년 미국 보스턴대 스포츠심리 연구 전임의(NIDA Invest Fellowship)
2011년 중앙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2014년 8월~2015.8 미국 유타대학 연수(게임과몰입 환자치료 및 뇌분석 연구)
2019년 2월~ 중앙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 주임교수, 국제진료센터장, 게임과몰입힐링센터장

수상내역
2013년 ‘한미자랑스런의사상’수상
2016년 중앙대병원 우수논문상(학술상)
2016년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소천학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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