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2031년 매년 400명 증원, 지역의사‧특수분야‧연구원 등 양성 목표 … 의협 ‘8월 총파업’ 예고, 병협은 대찬성
정부가 의과대학 증원의 칼집에서 칼을 뽑아 들었다. 23일 오전 여당과 정부는 당정 협의를 갖고 2022학년도부터 향후 10년간 의과대학 입학전형을 연간 400명씩 총 4000명 증원하기로 발표했고 이어 오후엔 교육부가 구체적인 의과대학 정원 확대 추진방안을 논의했다. 이에 따라 2006년 이후 동결된 의대 정원이 16년 만에 확대될 예정이다. 의사 단체들은 총파업 등 집단행동을 예고하며 정면 반발하고 나섰다.
매년 지역의사 300명, 특수분야 50명, 의과학연구 50명씩 육성 … 전북권 공공의대 설립도 추진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23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 추진 방안’ 당정 협의회를 갖고 공공의료 인력 확충을 위해 의과대학 정원을 오는 2022년부터 10년간 연간 400명씩 총 4000명 증원하기로 결정했다.
같은 날 교육부는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10차 사회관계 장관회의 겸 제4차 사람투자 인재양성 협의회’에서 의대 정원 확대 추진방안을 논의했다. 당정 협의가 이뤄짐에 따라 조속히 실행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한시적이지만 매년 400명씩 의대 정원이 늘어남에 따라 현재 연 3058명인 의대 정원은 2022∼2031년에 3458명이 된다. 2032년에는 다시 3058명으로 돌아간다.
증가 인원 중 매년 300명씩 총 3000명은 ‘지역의사제 특별전형‘으로 선발될 예정이다. 이들은 장학금을 지급받는 대신 지역에서 일정 기간 필수 의료에 복무해야 한다. 필수 의료는 소아외과·흉부외과·응급의료과·산부인과 등으로 지역별 격차가 커 문제점으로 지적돼왔다. 면허 취득 후 대학 소재 시·도의 중증·필수 의료 기능을 수행하는 의료기관에서 10년간 의무복무해야 한다. 군 복무는 제외되고 전공의 수련기간은 의무 복무에 포함된다. 이를 만족하지 못하면 장학금은 회수되고 의사 면허도 취소된다.
‘지역의사제 특별 전형’을 제외한 나머지 100명은 역학조사관·중증 외상 등 특수 전문 분야에서 연 50명, 바이오메디컬 분야 성장을 위한 의과학 분야에서 연 50명으로 나눠 육성된다. 둘 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 코로나19) 상황에서 인력 부족이 지적됐던 분야로 향후 감염병 대유행 등 비상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하겠다는 의도다.
정원을 배정받은 대학은 재학생을 대상으로 특성화된 교육과정, 진로 유인책, 유관기관 연계교육 등을 통해 해당 분야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정원 배정 3년 후부터 계획 이행의 적정성, 대학 양성 실적을 평가한다. 실적이 미흡한 경우 정원을 다시 줄이는 방식으로 대학의 책임성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공공의대 설립도 추진한다. 폐교된 서남대 의대 정원 49명을 활용해 전북권에 1곳을 설립하고, 장기 군의관 위탁생 20명을 추가해 70명 규모로 운영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의사단체 ‘포퓰리즘의 산물’ 강력 반발 … “8월 중 총파업 불사”
이에 대한의사협회는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사 증원 정책을 저지하기 위해 총파업 등 집단행동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조만간 대의원 총회를 열어 제1차 전국의사총파업을 오는 8월 14일 또는 18일 양일 중에 강행할 것이란 강경 카드를 꺼내들었다. 최대집 의협 회장은 전날 ”정부가 의료계와 대화할 의지가 없는 상태에서 정책을 밀어붙이기만 한다면 수차례 파업할 가능성이 크다”고 압박했었다.
의협은 “의사 증원 정책은 정치적 포퓰리즘의 산물에 불과하다”며 “필수 의료 분야나 지역 의료인력이 부족한 것은 실제 의사 수가 적어서가 아니라 억누르고 쥐어짜기에만 급급한 보건의료정책의 실패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의사단체 반발에도 공감대 커진 의대 증원 … 정부 “그대로 갈 것”
의대 정원 증원을 둘러싼 갈등은 이미 예고된 바 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정부·여당은 ‘국립공공보건의료대학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안’ 등을 상정했지만 의료계의 반발에 밀려 법안 심사가 불발됐지만 확고한 여대야소 지형이 된 현 정치상황에서는 이를 만류할 세력이 없어졌다.
여당은 지난 4월 21대 총선 공약으로 “의료인력 확충으로 지역의료체계 확립과 일자리 창출을 이뤄내겠다”고 밝히며 구체적인 안으로 △의대 정원 확대를 통한 필수·공공·지역 의료인력 확보 △의과대학 정원(학부생·전공의·전문의)의 합리적 조정을 통한 의학교육 질 향상 △의사과학자 육성을 통한 공중보건 위기 대응 및 미래성장 동력 창출 등을 세부공약으로 내세웠다.
여당이 공을 들여온 주요 정책인 만큼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지적된 공공의료인력 부족과 더 커진 지역 간 의료서비스 격차 등도 정부의 정책 추진에 힘을 실어주는 요인이다.
어제 국회에서 열린 ‘포스트 코로나19 의사인력 확충 방안 마련 국회 토론회’에서 여당, 정부, 병원계, 보건의료 노조 등 이해 관계자 대부분이 정원 확대 필요성에 공감을 표한 것도 대세가 증원임을 공고히 했다.
토론회에서 의협 대표로 참여한 성종호 정책이사는 “의료기관의 종별간 의사 수급 문제는 의료제도 문제이지 의사 부족 문제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비의원급 의료기관의 이익을 대변하는 대한병원협회의 조승연 상임이사는 “의료인력 부족의 근본 원인에 대한 해석은 다를 수 있지만 현 상태로 국민건강을 책임지는 의료제도가 지속되기 어렵다는 한계를 모두 인정하고 있다”며 의료인력 부족 문제를 꼬집었다.
김헌주 복지부보건의료정책관 역시 “의사 수 부족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면서 여러 대안을 놓고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최근 첩약 급여화·공공의대 설립·원격의료 도입 등 건건이 정부와 갈등을 빚고 있는 의협에서 총파업에 나설 경우 코로나19 확산이 지속되는 시점에서 의료 공백을 받아들여야 하는 정부로서는 난감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물론 의사단체들이 국민의 따가운 비난도 받겠지만 이권이 달린 문제라 이를 감수하고 파업에 나설 공산이 크다. 의협 관계자는 “정부 입장에 변화가 없다면 의사들은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방역과 진료 현장에서 파업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최대한 의료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며 나섰지만 정책은 밀고 간다는 입장이다. 23일 오후에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김강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총괄조정관은 “최대한 열린 자세로 의료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도록 할 것”이라면서도 “정부로서는 모든 상황에 대한 준비도 아울러 강구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오는 11월까지 의과대학 정원 배정 기본 계획을 수립한 뒤 각 대학으로부터 정원 배정을 신청받아 내년 2월까지 대학별 정원을 심사 및 배정할 계획이다. 입시 요강은 2021년 5월 발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