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호 박사팀, 기저질환 가진 쥐에서 ACE2 증가 확인 … 김광일 분당서울대병원 교수 “약 복용과 감염위험 통계적 상관관계 없어”
당뇨병‧뇌졸중 같은 기저질환을 가진 사람이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 코로나19)에 더 취약하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로 인한 중증 질환 또는 사망과 관련된 위험 요소를 고령, 당뇨병·심뇌혈관질환·고혈압 등 만성질환, 흡연 등으로 규정했다. 국내에서 지난달 21일 기준 코로나19 사망자 중 만성질환자는 98.5%에 달했다.
최근 국내 방역당국 연구진이 기저질환자에서 코로나19바이러스 결합 수용체 안지오텐신전환효소2(Angiotensin-converting enzyme 2, ACE2)가 늘어나는 것을 확인하고 이를 감염 취약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런데 고혈압환자들이 매일 먹는 고혈압약에도 ACE2의 발현 증가 작용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고혈압환자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코로나19가 다시 확산되고 있는 지금, 고혈압약을 먹어도 괜찮을까?
뇌졸중‧당뇨병 동물실험에서 ACE2 증가 확인
고영호 질병관리본부 산하 국립보건연구원 박사팀은 담배연기에 노출되거나 뇌졸중, 당뇨병이 있으면 ACE2가 증가한다는 동물실험 결과를 국제학술지인 생화학·생물리학 연구학회지(Biochemical and Biophysical Research Communications) 최근호에 발표했다.
논문에 따르면 허혈성 뇌졸중에 걸린 동물모델 뇌 조직을 분석한 결과 뇌경색 주변 뇌 조직에서 ACE2가 증가하는 게 확인됐다. 또 담배연기 추출액(Cigarette smoke extract)에 노출된 뇌 혈관세포와 뇌 성상세포, 당뇨병 환자 유래 동맥 및 동물 모델의 뇌 조직에서도 ACE2가 증가했다.
ACE2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인간 세포 내로 침입 시 이용되는 수용체로 알려져 있다. 코로나19는 표면 스파이크 단백질을 ACE2에 결합시켜 세포 내로 침투하고 증폭한다. 따라서 ACE2가 많은 환자들이 그렇지 않은 환자들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ACE2는 폐 심장 동맥 신장 등 여러 신체조직 세포막에 존재한다.
고 박사는 “ACE2가 많을수록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기 쉽고, 바이러스가 침투하는 과정에서 ACE2가 감소하면서 혈압이 상승해 병이 중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고혈압약 ACEi‧ARB 제제에 ACE2 발현 증가 작용 … 불안한 환자들
ACE2는 혈압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 문제는 고혈압 환자가 심혈관계질환을 예방하기 위해 먹는 고혈압약이 ACE2의 발현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자칫 코로나19 확산을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신장에는 레닌(renin)-안지오텐신(angiotensin)-알도스테론(aldosterone)계라는 혈압조절 메카니즘이 있다. 레닌은 신장 동맥의 사구체 세포에서 생성·분비되는 단백분해효소의 일종으로서 안지오텐신의 전단계 물질인 안지오텐시노겐(angiotensinogen)을 안지오텐신Ⅰ로 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어 안지오텐신Ⅰ은 안지오텐신전환효소(angiotensin converting enzyme: ACE)에 의해 안지오텐신Ⅱ라는 혈압상승물질로 변화된다. 이어 안지오텐신Ⅱ는 알도스테론이라는 항이뇨 호르몬(나트륨이 신장 실질 세포 안에 머물게 함으로써 배뇨를 억제하고 혈압을 올림)의 합성을 촉진하는 한편 심장관상동맥의 수축을 초래해 혈압을 상승시킨다.
안지오텐신전환효소(ACE)는 ACE1, ACE2로 나뉜다. ACE1는 안지오텐신Ⅰ을 안지오텐신Ⅱ로 전환시켜 혈압을 올린다. 반대로 ACE2는 안지오텐신Ⅱ(혈관수축)를 안지오텐신1-7(혈관확장)로 전환시켜 혈압을 떨어뜨린다.
고혈압 환자는 혈압을 떨어뜨리기 위해서 ACE1을 억제하는 안지오텐신전환효소 저해제(ACEi)나 안지오텐신2의 작용을 막기 위한 안지오텐신2 수용체 차단제(ARB)를 복약한다. 이들 약물은 고혈압의 원인이 되는 ACE1를 억제하는 반면 ACE2의 발현을 증가시킨다.
고혈압 환자들 사이에서 고혈압약을 먹을수록 코로나19에 취약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수 있는 측면이다. 고혈압 환자 상당수가 코로나에 취약한 노년층임을 고려하면 이런 불안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 “상관관계 없다” … 성실 복용 환자 도리어 감염률 낮아
이에 심혈관계질환 전문가들은 “고혈압약 사용으로 얻는 이득이 중단 및 변경에 따른 위험보다 크다”며 약을 끊을 필요도 바꿀 이유도 없다고 반박해왔다. 약을 끊어서 코로나19에 덜 걸릴 위험보다 고혈압이 악화돼 입게 되는 건강상 피해가 더 크다는 논리였다.
25일엔 이를 실증하는 국내 연구결과가 소개됐다. 김광일 분당서울대병원 교수·정해관 성균관대 의대 교수팀은 이날 대한의학회지(JKMS) 온라인판에 고혈압 치료제 복용 여부와 코로나19 유병률을 분석한 결과 고혈압 치료제를 복용한 경우에도 코로나 감염 위험이 높지 않다는 내용의 논문을 게재했다.
연구팀은 지난 2~3월 코로나가 확산됐던 대구에서 40세 이상 137만8052만여명의 건강보험 빅 데이터를 분석해 고혈압 치료제를 복용한 46만6772명과 그렇지 않은 91만1280명을 비교한 결과 각각 1176명(0.2519%)와 2495명(0.2737%)가 코로나19 확진자로 나타나 통계적으로 고혈압약 복용 여부가 코로나19발생에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수치로는 오히려 고혈압약 복용 환자의 코로나19 감염률이 더 낮았다.
김광일 교수는 "고혈압 치료제를 복용한다고 해서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커지지는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고혈압 환자는 코로나19 우려를 이유로 약물 복용을 중단해선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른 의료전문가들도 고혈압 치료제가 아니라 고혈압 자체가 코로나19 감염 후 사망률을 높이는 원인이므로 약물 복용으로 혈압을 관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한고혈압학회 “약 끊으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커”
고혈압약과 코로나19 관련성에 대한 논란은 이전에도 있었다. 지난 3월 스위스 바젤대 의대 연구팀이 의학저널 ‘란셋’에 ACE2를 발현시키는 이부프로펜과 고혈압약을 멀리하고 타이레놀을 먹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의 몇몇 연구에서도 코로나19에 감염된 고혈압환자의 높은 사망률 원인으로 고혈압약이 지목됐다.
그러나 하모니 레놀드(Harmony R. Reynolds) 미국 뉴욕대 그로스먼 의대(NYU Grossman School of Medicine) 교수팀은 ARB 및 ACE억제제와 코로나19가 관련이 없다는 연구결과를 지난 5월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에 발표했다.
이에 대해 존 자초(John A. Jarcho) 미국 하바드대 의대 교수는 “ACEi와 ARB가 코로나19 감염 위험을 높이거나 양성 판정받은 환자의 사망 위험을 높인다는 근거는 없다”며 “이밖에 더 많은 연구에서 고혈압약과 코로나19가 상관관계가 없다는 게 증명됐다”고 말했다.
대한고혈압학회는 지난 3월 입장문을 내고 “코로나19 감염으로 고혈압 환자 사망률이 높아지고 코로나19가 ACE2에 결합해 작용하는 사실”이라면서도 “효과가 증명되고 올바른 적응증에 사용된 안지오텐신 전환효소억제제와 안지오텐신2 수용체차단제 성분약을 다른 약으로 바꿀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