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 유통비율 80%에서 60%로 축소, 제조사 직접판매에 가격 하락세 … 코로나19 추세 감안 유연한 제도 운용 필요
대형마트가 미끼상품으로 공적마스크 판매가의 20% 수준인 320원짜리 일회용 마스크를 매일 한정 수량으로 내놓기 시작하고,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새로 규정한 비말차단용 ‘KF-AD’ 규격 마스크가 장당 500원에 풀리면서 약국가가 난데 없는 비난을 듣고 있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소비자가 KF80, KF94 마스크를 부담스러워하는데다 저가 마스크 대량 살포가 이뤄지면서 개당 1500원에 판매 중인 마스크 공급을 중단할 때가 됐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6일부터 일회용 마스크를 장당 320원에 판매하기 시작한 이마트 트레이더스는 주말 내내 전국 점포에 마스크를 사려는 고객이 구름같이 몰려들면서 마스크 대란 초기의 모습을 재현했다.
트레이더스 측은 일회용 마스크(일반 덴탈마스크) 50개입 1박스를 1만5980원에 내놓고 구매 개수는 1인당 하루 1박스로 제한했다. 매일 각 점포마다 700~1000박스 정도가 공급될 예정이다. 7일 하남점에는 오전 7시 무렵 마스크를 사기 위해 미리 줄을 서는 고객 행렬이 지하주차장까지 이어졌고 이날 오전 9시 30분부터 배부한 번호표 1000장은 20분도 안 돼 배부가 끝났다. 지역 주민 J씨는 “8시부터 한 시간 이상 기다렸는데도 번호표를 못 받았다”며 “내일은 한 시간 더 일찍 나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인근 약국에선 이미 공적마스크보다 저렴한 마스크가 등장했기 때문에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경기 하남시 K약사는 “마스크가 이미 대형마트의 미끼상품으로 전락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며 “대한약사회가 이같은 상황에 대해 공적마스크 판매를 중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빨리 내주지 않아 답답하다”고 꼬집었다.
경기 부천시 D약사는 “약국 입장에서 과도한 업무와 손님의 짜증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긴 했지만 공적마스크가 약국 마케팅 차원에서 기여한 점이 없다고 보긴 어렵다”면서도 “손님들이 마스크 가격을 약국이 정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비난받을 일은 아니지만 일반 마스크 가격과 격차가 커지고 있어 빠른 정책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같은 정책 변화에 대한 요구는 온라인 시장을 중심으로 확대되는 마스크 판매도 한 몫하고 있다. 마스크 제조사 웰킵스는 지난 5일 자사 온라인몰인 웰킵스몰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의약외품 허가를 받은 ‘웰킵스 언택트 비말차단용 마스크’ 판매를 개시했다. KF-AD(Anti Droplet)란 명칭이 사용된 이 마스크는 장당 500원으로 1팩당 3매로 구성돼 있고, 1인당 최대 10팩(30매)까지 구매할 수 있다. 공적마스크처럼 확인 절차가 필요하지 않아 가족 누구나 하루 30매씩 구매가 가능한 셈이다.
일일 마스크 생산량의 공적 유통비율이 기존 80%에서 60%로 축소된데다 지오영 같은 유통사가 마진을 떼먹는 구조가 아닌 제조사가 직접 온라인을 통해 판매하면서 적정 가격선도 점점 하향되고 있다.
비말차단용 마스크에 붙는 KF-AD는 미세 침방울을 차단해준다는 뜻으로 ‘액체저항성’을 평가 기준으로 한다. 비말차단에 적합한지 여부를 마스크에 물이 침투하는 시간으로 측정한다. 250ml 용량 비커에 물 100ml을 담은 뒤 비말차단용 마스크 3개를 겹쳐 안감이 비커로 향하게 한 뒤 이를 뒤집어 물이 필터를 통과하는지 관찰한다. 비말차단용 마스크의 입자 차단 수준은 KF 마스크의 55~80% 수준이다.
이 회사 쇼핑몰은 첫날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 1위를 기록하며 오전 9시 접속자 780만명이 몰려 서버가 마비됐다. 즉각적인 복구가 이뤄지지 못해 정상적인 판매는 이뤄지지 못했다. 온라인에서 판매가 막히자 구매 문의가 약국으로 빗발치기 시작했다.
경기도 과천의 한 약사는 “마스크 가격이 너무 비싸다면서 500원짜리 마스크가 언제 공급되는지 묻는 손님이 꽤 많았다”며 “덴탈 마스크, 비말차단 마스크 차이점이나 효과 등 마스크 설명을 하느라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현재 공적마스크로 공급되는 덴탈마스크는 전체 생산량의 80%가 의료기관에 공급되고 나머지 20%가 약국에 풀리고 있다. 덴탈마스크 구하기가 매우 어려운데다가 가격이 한 때는 1000원 이상(7일 기준 500~800원)으로 너무 올라 소비자에게 부담을 줬고, 어딘지 모르게 예전보다 너무 얇아서 비말 방어 효과가 떨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일부 약사와 소비자 사이에서 제기됐다.
웰킵스 측은 “주말 동안 온라인몰 시스템을 정비한 뒤 8일부터 판매를 재개할 계획”이라며 “하루 10~20만장을 확보해 판매를 지속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오는 20일까지 대형마트에서도 판매가 이뤄질 수 있도록 협의하고, 일반 덴탈마스크도 350원에 공급할 방침이다.
비말차단용 마스크는 KF80, KF94 등급 마스크 대비 두께가 30% 정도 얇다. 이는 KF등급 마스크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MB(멜트블로운, Melt Blown) 필터가 절반만 들어가기 때문이다. KF등급 마스크에는 부직포의 한 종류인 스판본드와 MB필터가 주 재료로 사용된다. 스판본드, MB필터, 스판본드를 1겹으로 붙여 분진이나 바이러스 차단력을 높인다. 이를 폴리프로필렌필터부직포(SMS)라 부른다. 지난 2월 KF 등급 마스크 공급이 차질을 빚은 것도 MB필터 수급이 원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KF 등급 마스크에는 이 필터가 4겹으로 들어가고 KF80(입자크기 0.6㎛), KF94(입자크기 0.4㎛) 등급 구분은 필터를 통과하는 입자 크기에 따른다. 웰킵스가 만든 비말차단용 마스크는 안감에 일반 부직포, 겉감에 SMS를 사용한 2겹으로 구성됐다. 이에 무게도 KF등급 마스크는 40g, 비말차단용 마스크는 20g으로 가볍다. 생산비용이 줄어든 만큼 판매가도 낮춰 500원에 판매가 가능해졌다. 현재 웰킵스의 자회사 피앤티디, 케이엠, 건영크린텍, 파인텍 등 4개사의 9개 비말차단용 제품이 의약외품 허가를 받았다.
서울 용산구 B약사는 “현재 약국에서 판매하는 일회용 마스크 제품이 800원 수준인 데 비하면 비말차단용 마스크는 꽤 저렴하게 풀린 것”이라며 “이 정도 가격에 마스크가 출시된 이상 국가적 어려움을 감안해 감수해 온 공적마스크 판매를 종료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지난 4일 이의경 식약처장은 김대업 대한약사회장과 공적마스크 약국 판매와 관련 논의를 갖고 코로나19 확산세에 따라 제도 유지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늦어도 20일에는 결정이 나야 약국과 도매업체 간 재고 문제 해결이 가능하고, 제도가 종료되지 않더라도 가격 문제를 손봐야 한다는 의견 교환이 이뤄졌다.
양측은 제도 종료 후에도 마스크 유통 관련 민관협의체를 사전에 구성하고 가을 무렵 코로나19 재유행 가능성에 대비하자는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것으로 알려졌다. 약사회는 식약처가 제도 변경과 관련해 선제적인 검토자 역할을 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날 이 처장은 KF등급 마스크가 아닌 지난 4월 정부가 필터교체형 면마스크를 홍보하기 위해 특별 주문·제작한 ‘힘내라 대한민국’ 마스크를 착용하고 등장했다. 면마스크에 정전기 필터를 교체할 수 있는 제품이다. 공적마스크 제도 유지를 논하는 자리에 면마스크를 착용하고 나온 것으로 볼 때 제도 종료를 가늠해볼 수 있지 않겠냐는 추측도 나온다.
대한약사회는 식약처장 방문 다음 날인 지난 5일 공적마스크 판매제도가 순기능이 있지만 1500원이라는 가격이 국민 불만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을 들어 정부에 오는 30일부로 제도 종료를 건의하기로 입장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식약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결정 외에 청와대가 최종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만큼 어떤 결정이 나올 지 주목된다.
이광민 대한약사회 정책기획실장은 “제도의 유지나 중단과 재확산을 대비한 TF 구성에 대해 결정이 나면 세부적인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며 “궁극적으로 공적마스크 제도 연장 여부는 국민의 평가에 따라야 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