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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리어드 ‘타미플루’ 닮은꼴 ‘렘데시비르’ … 계속되는 정경유착 의혹
  • 손세준 기자
  • 등록 2020-06-05 12:01:54
  • 수정 2020-06-09 23: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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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료기간 4일 단축 효과로 FDA 승인, 2022년 예상 매출 77억달러 … 정관계 인사 영입, 연방정부 납품하며 성장
감염질환 치료제에 특화해 초고가 약값을 책정해 ‘생명장사꾼’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미국 길리어드사이언스 본사.
미국 길리어드사이언스가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 코로나19) 치료제로 지난달 1일 미국 식품의약국(FDA) 긴급사용승인을 받은 ‘렘데시비르(Remdesivir)’로 2022년까지 연 매출 77억달러(9조3709억원)를 달성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지난 3일(현지시각)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투자은행 SVB리링크는 길리어드에 대한 투자의견을 아웃퍼폼(Outperform)으로 상향하고 목표 주가를 94달러로 설정했다. 길리어드 주가는 2일 정오 73.1달러로 주간 최저가를 보였고 4일 종가는 77.54달러다. 아웃퍼폼은 특정 주식의 상승률이 시장 평균을 상회할 것이라고 예측해 주식을 매입하라는 의견을 지칭한다.
 
SVB리링크(SVB LeeRINK) 측은 “렘데시비르의 시장 가격이 미국, 유럽, 그 외 시장에서 각각 5000달러(600만원), 4000달러(480만원), 2000달러(240만원)으로 책정될 것으로 가정하면 2022년도 예상 매출 77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며 “매출의 절반가량은 각국 정부가 코로나19 재확산에 대비하는 비축 물량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해는 2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미국 CNBC는 보도했다. 길리어드의 지난해 매출은 220억달러이고, 길리어도가 올해 초 내놓은 예상 매출은 218~220억달러인데 렘데시비르 효과로 20억달러 정도가 더 얹혀질 전망이다. SVB리링크 또 “상업 판매는 올해 하반기, 정부 물량 비축은 내년 하반기에 시작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근 길리어드의 행보는 미국 정부와 유착 관계가 작용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이 회사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번지고 있던 지난 3월 23일 렘데시비르를 코로나19 잠정 치료제로 희귀의약품(Orphan drug)으로 지정받았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임상 개발 비용을 국가 예산으로 충당하려는 비난 여론이 쏟아지자 이틀 후인 25일에 희귀의약품 지정 철회를 요청했다. 원래 희귀의약품은 환자가 20만명 이하인 희귀질환의 치료제를 개발할 때 부여하는 특혜인데 당시에는 이미 미국에서 100만명이 넘는 확진자가 나와 명분도 부족했다.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되면 신속승인(패스트트랙) 지위가 부여되고 임상 개발 비용의 약 25%를 세금에서 공제받게 된다. 하지만 희귀의약품 지정과 별개로 렘데시비르는 코로나19치료제로서 특허를 2027년까지 인정받는다. 기존 에볼라 바이러스 치료제 특허는 2035년이 만료 기한이다. 

길리어드는 또 지난 3월 22일 렘데시비르 수요의 기하급수적 증가로 동정적 사용(compassionate use)에 따른 환자 긴급사용을 일시적으로 중단한다고 밝혔다. 다만 중증 COVID-19를 가진 임산부와 18세 미만의 어린이는 예외로 뒀다. 유럽과 미국에서 COVID-19 환자가 급증하면서 동정적 사용이 남발됐고 팬데믹 대응 차원에서 임상 개발에 매진하기 위해서란 해명을 붙였다. 동정적 사용은 다른 치료제가 없는 중증 환자에게 인도주의 차원에서 미승인 약물을 투여할 수 있게 허용하는 제도다. 이또한 옹색한 태도로 지탄의 대상이 됐다.

결국 지난달 1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렘데시비르에 긴급사용승인(EUA)을 허가했다. 이와 관련 유효성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중증 코로나19 환자를 대상으로 실행한 임상시험 결과 렘데비시르는 회복에 걸린 기간을 31% 단축하는 효과에 그쳤다. 위약을 투약한 환자군은 15일이었는데 렘데시비르 투약군은 11일이었다. 허가 근거가 된 임상시험에서는 사망률 감소 효과는 임상시험 참여 환자가 2000명이 안 된다는 이유로 도출되지도 않았다. 

지난달 22일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NEJM)에 뒤늦게 사망률 감소 수치가 미국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National Institute of Allergy and Infectious Diseases, NIAID)가 주관해 세계 주요 의학자들이 공동 집필한 사망률 감소효과를 밝힌 논문이 게재됐다. 통계적으로 유의하지는 않지만 투약 2주간 사망률은 렘데비시르가 7.1%로 위약의 11.9%에 비해 낮게 나왔다. 이전의 연구에서는 8% 대 11.6%로 나왔다. 코로나19 치료 시 회복기간(중앙값, 95% 신뢰수준)을 15일(13~19일)에서 11일(9~12일)로 약 4일(31%) 앞당길 수 있다는 내용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에 SVB리링크의 애널리스트인 저프리 포지스(Geoffrey Porges)는 “좀 더 연구하면 수치적으로 사망률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며 “코로나19로 인한 상실감에서 벗어나는 결과로 환자의 회복을 앞당기고, 코로나19 환자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병원의 부담도 덜어주게 될 것”이라고 렘데시비르를 적극 두둔했다. 이 연구에는 서울대병원의 오명돈 교수도 참여했는데 세금(서울대병원 비용)으로 상업적 임상에 동참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기계적 호흡에 의지하는 환자를 제외하면 회복기간 단축률은 더 높아져 47%에 이른다고 렘데시비르 옹호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경증 및 중등도 환자에서는 효과가 입증되지 않았다.

임상적 유효성과 초고가 약값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자 길리어드는 지난달 13일 전세계 127개국에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코로나19 종식을 선언하기 전까지 이들 국가들로부터 라이선스 비용을 받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이 중 방글라데시는 세계무역기구(WTO)가 규정하고 있는 최저개발국가(LDC)에 포함돼 특허 비용도 면제받아 지난달 22일 복제약(제네릭) ‘벰시비르(Bemsivir)’를 출시했다. 

127개국엔 방글라데시 외에 북한, 인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남아프리카공화국, 필리핀, 벨라루스 등 소득 수준이 낮은 국가들이 포함됐다. 이들 국가에서 렘데시비르 제네릭을 생산하는 기업은 길리어드로부터 기술을 이전받고, 가격도 자체적으로 산정할 수 있도록 했지만 코로나19 종식 이전까지로 조건을 걸어놓은 만큼 추후 라이선스 수수료를 지급하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 정부는 NEJM에 게재된 렘데시비르 논문, 미국·일본·영국 정부에서 코로나19 치료제로 승인한 전례에 근거해 지난 2일 렘데시비르 특례수입을 허용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처럼 렘데시비르는 각국 정부가 공식 인정한 유일한 코로나19 치료제라는 타이틀을 달고 판매 절차가 일사천리로 진행 중이다. 한 달 전만해도 수요량 급증에 대비해 약을 내놓지 않겠다던 길리어드는 급히 대량 생산을 준비 중이다.

도널드 럼스펠드 전 美 국방장관 영입, 성장 기반 다져 

미국 캘리포니아주 포스터시티(Foster City)에 본사를 둔 길리어드는 1987년 존스홉킨스대 의대 출신 29세 청년 마이클 리어던(Michael Riordan)이 창업한 기업으로 원래 사명이 ‘올리고젠(Oligogen)’이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구약성서에 나오는 ‘길리앗의 유향(balm of Gilead)’으로 알려진 전통 약재 이름을 따 길리어드로 사명을 바꿨다. 1992년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했다.

이 회사는 미국 정치권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성장해왔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행정부에서 국방장관을 지낸 도널드 럼스펠드(Donald Rumsfeld)가 이사회 의장 출신이다. 길리어드는 1997년 포드 전 대통령 비서실장 출신이던 럼스펠드를 영입해 개발 중이던 치료제를 연방정부에 대량 판매하고 특허를 유지하는 전략으로 폭발적인 매출 신장을 이뤄냈다.

가장 대표적인 게 1999년 넥스타파마슈티컬스(NeXstar Pharmaceuticals)를 인수하면서 도입한 항진균 주사제 ‘암비솜주사’(Ambisome Injection, 성분명 암포테리신B, amphotericin B)다. 이 품목 도입을 계기로 길리어드는 2001년 매출 2억3380만달러(약 2800억원), 순이익 5230만달러(약 624억원)을 기록하면서 창업 14년 만에 적자에서 탈출했다.

1996년 재미 한국인 과학자 김정은 박사의 주도로 개발한 항바이러스제 ‘타미플루캡슐’(성분명 오셀타미비르, Oseltamivir)은 럼즈펠드가 영입된 이후인 1999년 FDA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눈에 띄는 판매고를 올리지 못하다가 2005년 조류독감(Bird flu)이 유행하면서 치료제로 인정받아 첫 번째 대박을 터뜨렸다. 2009~2010년에는 신종플루(인플루엔자 A형 H1N1) 치료제로도 사용되면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됐다. 로슈는 2009년 타미플루로 33억달러(3조76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길리어드는 1997년 계약금 5억달러(약 6000억원)에 향후 매출의 22%를 로열티로 받는 조건으로 스위스 제약사 로슈에 타미플루를 기술이전했다. 당시 길리어드는 대량 생산할 능력도 부족했고 마케팅 인프라도 미비했기 때문이다. 김정은 박사는 “계약금으로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를 제시하는 곳도 있었지만 매출에 따른 수익 배분 비율이 높아 로슈를 택했다”고 회상했다. 로슈는 타미플루 빅 히트를 계기로 1990년대 중반 글로벌 8위권 제약사에서 지난해 2위권 제약사로 도약했다.

길리어드가 흑자로 전환한 2001년엔 9.11테러가 일어나면서 이슬람무장단체인 알카에다 테러리스트의 탄저균, 천연두균 등 생화학무기 공격설이 나돌았다. 가짜 탄저균 우편물 배달 소동에다 천연두균 살포설까지 나와 천연두 백신 수요가 급증했다. 당시에 길리어드는 천연두 백신이 망막염 등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 1996년 개발한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환자에서 나타나는 거대세포바이러스(Cytomegalovirus, CMV) 감염증 치료제 ‘비스티드’(Vistide 성분명 시도포비르, Cidofovir)를 함께 접종하는 마케팅 수완을 발휘했다.

이 주사는 길리어드가 상업화한 최초의 치료제임에도 수요처를 찾지 못해 쌓아두다가 천연두 백신과 세트로 판매되면서 물량 소진에 성공했다. 2003년 미군의 이라크 침공 당시 병사들에게 단체로 접종됐는데 이는 럼스펠드 당시 국방장관 작품이었다. 

2005년 조류독감이 세계를 강타했을 때도 미 국방부가 5800만달러(약 700억원) 어치의 타미플루를 사들였다.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연방정부 예산으로 30억달러(약 3조6000억원) 규모의 타미플루를 정부 비축분으로 구매하면서 시장가보다 비싸게 사들였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연방정부 구매액의 22%인 6억6000만달러(약 8000억원)를 길리어드가 로슈로부터 받아내는 로열티로 가정하면 당시 길리어드 연 매출인 8억달러(약 1조원)의 약 80%에 달하는 규모다.

럼스펠드는 길리어드 주식 대량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2001년 국방장관이 된 뒤에도 매각하지 않아 정부 윤리지침에 위배된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가 보유한 길리어드 주식은 약 500만(60억원)~2500만달러(300억원) 내외로 추산된다. 연방정부 구매와 타미플루 로열티 급증으로 길리어드는 성장 가도를 달렸고 럼스펠드는 돈방석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길리어드 이사회엔 정부 관료 출신인 조지 슐츠 전 국무장관과 고든 무어 인텔 전 회장 등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이사들이 상당수 포진해 있어 다각적인 접근이 이뤄졌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역대 美 행정부, 제약사의 은밀한 ‘짬짬이’ 동참 흔적 역력 

이같은 상황은 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행정부에서도 데자뷰처럼 재현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부터 말라리아 치료제 하이드록시클로로퀸(Hydroxychloroquine)을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라 표현하고 매일 복용한다며 홍보대사를 자처했지만 렘데시비르 임상결과가 발표되기 이틀 전인 지난달 20일 갑작스럽게 하이드록시클로로퀸 복용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그 이유는 함구했다. 미국 언론들은 하이드록시클로로퀸으로 트럼프가 약간의 간접이익을 볼 수 있지만 그 이득은 무시할 정도라고 에둘러 보도했다.

조 그로건(Joe Grogan) 백악관 보건정책 고문은 길리어드의 로비스트, 알렉스 아자르(Alex Azar) 보건복지부 장관은 릴리(Eli lily) 로비스트 출신이다. 모두 거대 제약사와 이해관계가 있는 인물들로 정경유착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심지어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서두르기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초고속 작전’ TF에는 모더나(Moderna) 이사였던 몬세프 슬라위(Moncef Slaoui)가 최고 책임자로 임명됐는데 그는 지난 15일 TF 책임자 임명 직후 모더나를 사직했다. 그 후 사흘 만에 모더나 백신 임상에서 긍정적 효과가 나왔다는 내용이 발표되자 18일 보유 중이던 모더나 스톡옵션을 1240만달러(약 152억원)어치 처분한 것으로 알려져 비난을 받았다.

길리어드 홈페이지에 공지된 2019년 상반기 정치 후원금 내용을 보면 공화당주지사협회(Republican Governors Association, RGA) 10만5000달러, 공화당주대표위원회(Republican State Leadership Committee, RSLC) 5만달러, 민주당입법캠페인위원회(Democratic Legislative Campaign Committee, DLCC) 5만달러 등 총 20만5000달러(약 2억5000만원)를 기부했다.

타미플루와 렘데시비르, 허가 근거도 ‘치료기간 단축’으로 똑같아 … 부작용 경계 우려

미국 정부가 타미플루를 치료제로 허가하는 과정에서 제출된 유효성도 렘데시비르 사례와 매우 비슷하다. 미국에서 수행된 임상에서 타미플루는 인플루엔자 발병 지속기간을 30% 정도 단축시켰고, 수반 증상은 40% 정도 경감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부작용 면에서도 오심, 구토가 가장 흔한 이상반응으로 보고돼 비교적 안전한 것으로 발표됐지만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승희 의원(자유한국당)은 2013년∼2018년 9월 사이 타미플루 복용으로 인한 부작용은 1086건에 달하고 자살 충동 및 자살 경향 관련 이상사례는 6건으로 이 가운데 20대 미만 미성년자 사례는 4건이었고 이중 2건은 사망으로 이어졌다. 2014년 13세 학생이 16층에서 뛰어내려 사망한 데 이어 2016년에는 11세 초등학생이 타미플루를 먹고 이상 증세를 보이다가 21층에서 추락해 숨졌다. 

이미 일본에서는 2005년 타미플루를 복용한 미성년자가 앞선 사례와 유사한 사건들이 발생해 약물 부작용이란 의혹이 제기돼 왔지만 10년 동안 국내에선 의심조차 없었다. 전문가들은 일본 같이 억압적인 사회구조가 고착화된 나라에서 자살 경향이 높은 것이고 국내는 일본보다 사회 자유도가 높아 자살 충동이 낮다고 해명했다. 공교롭게도 국내 6건의 자살 경향 사고 중 5건은 모두 2~4월 봄철에 일어나 봄철 새학기 우울증에 타미플루 고유의 환각작용이 겹쳐 자살 충동이 일언나고 있음에도 전세계 정부들이 무덤덤하게 반응하고 있다. 

렘데시비르의 경우도 치료기간을 약 31% 단축하고 증상 완화를 확인하는 수준의 임상결과로 FDA 긴급사용승인 허가를 받았으나 부작용 발생비율은 21.1%로 다른 약제와 비교해 결코 적잖은 결과를 보였다. 산소포화도 94% 이하인 중증 환자에 사용하도록 한정된 것도 이 약의 한계다. 상대적으로 사망률도 높아 경증 환자에선 처방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다. 식약처가 배포한 렘데시비르 설명자료에 따르면 임상시험에서 간기능 수치 증가와 신장 독성 관련 이상반응이 나타난 사례가 있어 투여 시 주의하라고 나와 있다. 아직 부작용 사례가 다 밝혀지지 않아 안전하다고 보장할 수도 없다.

국내 렘데시비르 2000달러 공급 예상 … 타미플루 사례 숙고해야

이같은 약효를 기반으로 한 약가 부담도 닮은 꼴이다. 2009년 국내에선 타미플루 비축량이 인구의 약 10% 수준인 550만명분이었다. 국내 물량 부족에 따른 강제 실시권을 기대하며 국내 제약사들이 제네릭 생산을 준비 중이었는데, 보건복지부가 비축분을 2010년말까지 2000만명분으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국내 제약사의 꿈이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타미플루 특허는 2017년 8월 만료돼 제네릭 생산이 이뤄지고 있다. 당시 질병 지속기간을 며칠 단축하는 수준인 약을 한 병에 100달러(한화 12만원)나 들여 2000만명분을 구입하는 게 타당한지 문제가 제기됐다.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 대유행을 막기 위해 정부가 비축한 타미플루 비축량 1090만명분은 올 1월 유효기간이 만료돼 폐기됐다. 팬데믹 대비 명분으로 근거가 희박한 약을 정부 조달청 창고에 쌓아놨다가 써보지도 못하고 폐기장에 투척해야 하는 거대한 혈세 낭비가 이뤄졌다.

2014년 연구자그룹 리뷰 학술지인 코크란(Cochrane)에 따르면 타미플루가 독감 증세를 완화하고 후유증을 줄인다는 명확한 근거가 없으며 위약 대비 성인 환자의 독감 증상이 완화될 때까지 걸리는 기간을 7일에서 6.3일로 줄일 뿐 폐렴 등 합병증 예방에도 특별한 효과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각국에서 타미플루를 비축해두는 것에 대한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일반 경증 환자에게 타미플루를 투여하는 것은 과잉진료라고 꼬집었다. 이후 네이처(Nature) 등에 코크란 실험에 대한 다양한 반론이 제기됐으나 임상적으로 중증 인플루엔자 환자에서 효과가 있다는데 동의하는 수준이다.

이는 최근 렘데시비르 특례수입을 앞두고 숙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투자은행이 렘데시비르의 미국·유럽을 제외한 예상 약가를 2000달러(240만원)로 가정한 것을 감안할 때 타미플루보다 20배나 비싸고, 미국 정부의 비축 양상을 보고 국내서도 ‘사대주의 따라하기’ 행정을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타미플루는 길리어드로부터 기술이전을 받은 로슈가 판매했지만, 렘데시비르는 길리어드가 직접 판매하는 만큼 이윤 극대화를 시도할 것으로 관측된다.

한국은 건강보험 급여로 약가가 지급돼 국민들은 직접적인 부담을 느끼기 어렵다. 적절한 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최소한 약제를 비축하고 위기에 대비하는 것은 마땅하나 정치적 관계로 인한 섣부른 도입이 건보 재정 낭비로 이어지지 않도록 보건당국의 신중한 정책적 판단과 협상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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