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구액 평균 28%씩 증가에도 적응증 임상근거 빈약 … 외국 사례 고려 OTC·건기식 이중허가 가능성도
정부의 보험급여 등재의약품 사후재평가 대상에 콜린알포세레이트(choline alfoscerate, L-Alpha glycerylphosphorylcholine, alpha-GPC) 성분 약제 229개 품목이 도마 위에 올라 제약사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임상적 유용성과 효능에 대한 지적이 나온 지 7개월 만이다. 이번 재평가에선 비용효과성·임상적 유용성·사회적 요구도 등 급여 지급 당위성에 대한 정밀평가가 이뤄질 전망이다.
이같은 내용은 보건복지부가 지난 15일 서울 서초구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회의장에서 개최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 회의에서 ‘의약품 급여적정성 재평가 추진계획’ 보고에 포함됐다. 보고 내용에 따르면 콜린알포세레이트는 청구금액 및 최근 증가율이 크고, 외국에서 건강기능식품 으로 사용하는 등 의약품으로 등재한 나라가 없으며, 임상적 근거가 불분명한 사유 등을 들어 최우선 재평가 대상으로 채택됐다.
심평원은 제약사 125곳에 콜린알포세레이트를 주성분으로 하는 제품에 대한 임상적 유용성 등 자료를 오는 27일까지 제출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교과서 338개, 진료지침 227개를 참고할 것을 권고했지만 구체적인 후속 절차는 제시하지 않았다.
이 성분 의약품의 지난해 보험급여 청구액은 3525억원 수준으로 3년간 약 28%씩 폭증했다. 약제 평균가는 400mg 기준으로 정당 480~523원으로 시범평가 대상 제품은 대웅바이오 ‘글리아타민정’ 등 229품목이다. 평가 대상 효능·효과는 △뇌혈관 결손에 의한 2차 증상 및 변성 또는 퇴행성 뇌기질성 정신증후군(기억력저하와 착란·의욕 및 자발성저하로 인한 방향감각장애·의욕 및 자발성 저하·집중력감소) △감정 및 행동변화(정서불안·자극과민성·주위무관심) △노인성 가성우울증 등 3개 적응증이다.
해외 허가·급여 국가는 보건의료 선진국 A8(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독일, 스위스, 캐나다) 중 원 개발사가 있는 이탈리아 1개국만 허가가 이뤄진 뒤 의약품집에 등재됐다. 이밖에 러시아, 우크라이나, 그리스, 폴란드 등에서 전문의약품(ETC)으로 처방되고 있다.
정부는 알츠하이머병 치매에 대한 문헌이 존재하지만, 국내에 허가받은 효능에 대한 연구결과가 없고, 보험급여 범위 대비 근거도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관련 문헌 총 7편 중 6편이 알츠하이머치매 대상 논문이며 1편은 리뷰(Review) 논문이다.
콜린알포세레이트는 이탈리아 제약사 이탈파마코(Italfarmaco)에서 개발해 1989년 출시한 뇌기능 개선제다. 이 성분은 뇌내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콜린 복합물로 알려져 있다. 혈관뇌장벽(Blood-Brain Barrier, BBB)을 통과해 뇌 내에서 콜린과 인산글리세릴탈수소효소(Glycerol-3-phosphate dehydrogenase, GPDH)로 분리된다.
콜린은 기억·학습에 중추적 역할을 하는 뇌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acetylcholine, ACh)의 앞 단계의 물질로 뇌기능 장애 환자에 부족한 아세틸콜린을 보강해준다. 손상된 뇌세포에 직접 작용해 저하된 신경전달 기능을 정상화시킨다. 연구 결과 콜린알포세레이트는 알츠하이머병과 기타 치매에 아세틸콜린의 전구물질로 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GPDH는 탄수화물과 지질의 대사에서 매개고리로 작용하며, 미토콘드리아에서는 전자수송계의 주요 기여자로 역할한다. NADH-H+가 수소 2개를 잃고 NAD+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디하이드록시아세톤인산(dihydroxyacetone phosphate)을 글리세롤3인산(glycerol 3-phosphate)으로 전환하는데 글리세롤3인산은 뇌내 미토콘드리아 내막으로 들어간다. 글리세롤3인산에 아세틸기가 붙은 아실화 과정을 거치며 아세틸콜린을 유도하는 단초가 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치매 환자는 콜린·아세틸콜린 수치가 전반적으로 떨어진 상태로 콜린알포세레이트를 복용하면 증상 개선을 유도한다고 해당 제약사들은 소개해왔다. 하지만 이 약은 출시된 뒤 전반적인 뇌기능 개선제로서 유효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국내에선 대웅제약이 2001년 1월 이탈파마코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글리아티린정’이라는 상품명으로 2015년까지 판매하다가 2016년 초 종근당에 판권을 넘겼다. 종근당은 정제와 연질캡슐 제형으로 판매를 이어갔고 대웅제약은 기존 글리아타린의 품목 허가를 취소한 뒤 자회사인 대웅바이오를 통해 제네릭(복제약)인 ‘글리아타민정’ 출시로 맞서며 영업망을 확대했다.
이탈파마코는 “대웅제약이 상의 없이 계열사인 대웅바이오를 글리아티린 원료 제조원으로 추가하고 제네릭인 글리아타민을 개발했다”며 “계약 만료 이후 시장 장악을 위해 대웅제약이 이전받은 기술을 대웅바이오에게 유출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하며 상표권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2016년 특허심판원은 유사성이 없다며 이탈코파마의 무효 청구를 기각했는데, 2017년 특허법원은 두 상품의 유사성이 인정된다며 기각 결정을 취소하라며 이탈코파마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대웅제약이 대법원에 상고해 2018년 7월 이탈파마코는 패소했다.
식약처는 대웅제약의 허가 취하에 덧붙여 종근당 제품이 원개발사 품목이라는 이유로 대조약을 종근당으로 바꿨지만, 대웅제약은 대조약 선정 및 공고 절차가 일방적이었다는 이유를 들어 대조약 선정 취소 행정심판을 청구, 승소했다. 이에 대조약 지위는 종근당에서 다시 대웅제약으로 넘어갔다가 2017년 11월 식약처가 품목 허가가 취소된 품목을 대조약으로 지정할 수 없다며 목록에서 대웅 글리아티린을 삭제해 최종 지위는 종근당이 차지했다. 대조약 지위는 마케팅 과정에서 경쟁 품목에 비해 의료진에게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어 중요하게 여겨진다.
매출 규모에선 대웅이 다소 앞서고 있다. 금융감독권 공시자료 기준 대웅바이오의 글리아타민은 916억원, 종근당 글리아티린은 723억원의 원외처방액을 기록했다. 두 제품이 전체 시장의 절반을 차지한다. 캐시카우 역할을 톡톡이 하는 품목으로 허가 취소 등이 현실화되면 제약사로선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건약)는 지난해 8월 복지부와 심평원이 콜린알포세레이트 급여재평가를 미뤄 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방치하고 직무를 유기했다는 이유로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건약은 콜린알포세레이트 적응증이 모호하고 광범위해 건보재정이 낭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건약은 3개 적응증 중 감정·행동변화와 노인성 가성우울증 등 2개는 특정 질환 때문이 아닌 일반 노약자에게 흔히 발생하는 증상이라고 주장했다. 심평원이 이 적응증에 급여를 인정한 근거 자료를 찾아볼 수 없거나 과학적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건약 측은 “복지부는 2011년부터 이 약의 임상적 유용성이 적다는 사실을 알고 심평원에 검토를 요청했으나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허가한 효능·효과를 근거로 삼았다는 이유로 11년간 손을 놓고 있었다”며 “그나마 심평원이 내놓은 자료는 국내 허가 적응증을 증명하는 자료가 아닌데도 제약사들이 수백개의 제네릭을 찍어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건약 관계자는 “퇴행성 뇌질환과 관련없는 적응증에 약제가 무작위로 처방·청구되고 있다”며 “해외사례와 약효 경제성 평가에 착수해 불필요한 급여 인정폭을 축소해야 하고, 적응증을 받았더라도 급여 항목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는 만큼 재평가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약의 문제 제기는 국정감사 지적으로 이어져 식약처는 지난해 11월 제약사 130곳으로부터 자료를 제출받아 유효성 평가를 진행 중이다. 적응증 삭제 조치는커녕 오히려 새로운 제형 허가가 이뤄졌다. 올해 1월 크리스탈생명과학 ‘콜린알세시럽’, 진양제약 ‘아세콜시럽’ 등이 신규 허가됐다. 고령 환자가 여러가지 약물을 복용하고 연하곤란을 겪는 경우가 많다는 어려움을 고려해 복용 편의성이 높은 시럽제가 나온 것이다. 앞서 지난해 5월엔 한국유나이티드제약 ‘글리세틸시럽’, 영진약품 ‘콜리날시럽’, 신풍제약 ‘알츠코린시럽’, 대웅바이오 ‘리아타민시럽’, 경보제약 ‘뉴로콜린시럽’ 등이 시럽 제형을 등록했다.
하지만 언제 급여 재평가가 이뤄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적극적 마케팅 활동은 하지 못해 매출은 기대에 못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스맥스파마, 제이에스제약는 ‘콜린알연질캡슐’과 ‘제이콜린연질캡슐’ 등은 마케팅 및 재평가 자료 작성 역량 부족으로 허가가 취소됐다.
종근당은 지난해 12월 31일자로 정제 제형인 ‘종근당글리아티린정’이 허가 기한 만료로 허가 취소됐지만 그 공백을 올해부터 대조약인 ‘종근당글리아티린캡슐’로 채워 위기를 벗어나고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재평가를 앞둔 상황에서 마케팅 비용 투입은 부담스럽다”며 “시럽제는 뇌졸중, 두부손상 등으로 연하곤란을 겪는 환자에서만 제한적 급여가 적용돼 기존 정제, 연질캡슐과 겹치는 시장은 아니지만 지금은 추이를 지켜본 뒤 향후 일정이 정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국에선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에 대한 규제가 이뤄지고 있다. 미국에선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가 건강기능식품으로 분류돼 있다. 지난 2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인지능력 개선’ 등을 언급하며 알츠하이머 치료제인 것처럼 광고한 제약사에 제재 조치를 취했다.
일본은 1999년부터 불필요한 약을 걸러내기 위해 의약품 재평가를 대대적으로 진행해왔다. 콜린알포세레이트는 알본서 한 때 전문약으로 허가받았다가 2006년 식품 성분으로 허용했으며 2009년 식약구분개정(食藥區分改正)에 의해 식품으로 분류됐다.
이에 대해 식약처 관계자는 “해외에서 건기식으로 등록됐다고 해서 국내서 허가사항을 변경하기는 어렵다”며 “오메가3지방산의 경우 고용량은 전문의약품, 저용량은 건기식으로 분류된다”고 밝혔다. 이에 용량별로 전문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 등 2가지로 허가사항으로 나뉠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내달 약제급여평가위원회 심의를 거쳐 제약사에 결과를 통보한 뒤 오는 7월 고시를 확정할 방침이다.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 등을 시범으로 급여 의약품 재평가 규정이 개정되고, 시범사업으로 제도 개선안이 마련되면 내년부터는 건강보험 재정 확보 차원에서 다른 제제들의 재평가가 줄줄이 이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