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부분 젊은 감염자, 높은 양성률로 지역사회 조용한 전파자 활동 … 개인 성적 취향 연관 신천지 이상의 폐쇄성으로 방역 난관
어린이날 황금연휴였던 지난 2일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 클럽에서 시작된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 집단감염의 확산세가 심상찮다. 제2의 대구 신천지로 확산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6일 첫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10일까지 5일 동안 확진자는 86명으로 늘었다. 감염자 거주 지역은 서울‧경기‧충북‧부산‧제주도 등 전국으로 산재됐다. 그동안 추진됐던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와 동시에 발생한 데다, 개인의 성적 취향 이슈까지 연관돼 방역에 난항을 겪고 있다. 이태원 집단감염의 초발환자로 추정되는 경기도 용인시 66번 확진자부터 사건을 되짚어 본다.
용인 66번 확진자, 2일 이태원클럽 방문 이후 고열과 설사 증세 … 회사서도 감염자 발생
용인 66번 확진자 A씨는 분당지역 소재 소프트웨어 전문기업 티맥스의 직원이다. 그는 지난 황금연휴 첫날인 4월 30일 친구 3명과 함께 자차로 춘천시 남이섬을 방문하고 저녁 7시경 강원도 홍천 비발디파크로 이동했다. 다음날 1일 홍천 음식점에서 식사 후 강원도를 떠나 거주지인 용인으로 돌아갔다. 그는 이 과정에서 12명과 접촉했다.
1일 낮 용인 수지구와 기흥구 소재 식당 3곳에서 식사한 그는 그날 밤 친구 B씨(안양 거주)와 함께 서울 용산구 이태원으로 가서 ‘킹클럽’, ‘클럽퀸’, ‘트렁크 클럽’ 3곳에 들렸다. '킹클럽'은 0∼오전 3시 30분, '트렁크클럽'은 오전 1시∼1시 40분, '클럽퀸'은 오전 3시 30분∼3시 50분에 머물렀다. 이들 클럽은 남성 동성애자를 위한 전용 클럽이다.
클럽에서 돌아온 후 39도의 고열과 설사 증상이 나타나자 그는 지난 3일 정오에 수원시 모이비인후과와 대학약국을 방문하고 4일에는 자택에 기거했다. 이후로도 열이 가라앉지 않자 5일 오전 11시 기흥구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민간 검사기관 씨젠을 통해 검체 채취를 의뢰했고, 6일 확정 판정을 받았다.
용인시 역학조사에서 A씨의 밀접접촉자로 분류된 사람은 식당종업원, 주류점 사장, 친구, 보험사 직원, 택시기사 등 총 5명이다. 이들은 모두 음성판정을 받았다. A씨와 접촉한 경기 안양시 거주 30대 남성은 7일 무증상 상태에서 검사를 받은 뒤 확진판정을 받았다. A씨의 회사 티맥스는 확진 사실을 전달 받고도 6일과 7일 정상 근무를 이어가다가 8일 사내에서 추가 확진자가 발생하자 부랴부랴 재택근무로 전환했다.
8일 보건당국은 이례적으로 0시 이후 신규 확진자 발생 사실을 긴급 발표했다. 이날 0시 이후 발생 환자는 총 13명으로 이중 12명이 클럽에서 접촉했으며 나머지 1명은 A씨의 직장 동료였다. 클럽 확진자 중 외국인은 3명, 군인도 1명이었다.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추가적으로 확진자 발생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또다시 지역사회 감염으로 확산할 우려가 있어 방역당국도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관련 상황 통제를 위해서 신속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태원 클럽 감염 확진자 수는 보던 당국의 예상보다 빠르게 늘어났다. 10일 26명이 이와 관련해 추가로 확진됐으며 11일에는 다시 14명이 늘어 오후 6시 현재 총 86명이다. 이 중 서울에서 51명, 경기 21명, 인천 7명, 충북 5명, 부산과 제주에서 각 1명 등의 확진자가 나왔다. 황금연휴를 이용해 전국에서 해방구를 찾는 마니아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감염경로는 이태원 클럽을 방문해 감염된 사람이 63명, 이들로부터 2차 전파된 환자가 23명이다.
전국서 2차 감염자 속출, 병원‧백화점‧군대 등 2차 집단감염 우려
방역당국은 이번 클럽 집단 감염자 중 무증상 감염자가 약 30%를 차지하고 있어 조용한 전파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용인 66번 환자는 바이러스 전염력이 가장 높은 증상 초기에 다수와 접촉했으며 그와 접촉한 이들은 대부분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까지의 건강한 남성으로, 젊은이들이 조용한 전파자가 돼 지역감염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지난 8일 이태원 클럽을 방문했던 20대 동생으로부터 인천에 사는 그의 누나가 양성 판정을 받았고, 9일에는 성남시 거주 20대 남성으로부터 50대 여성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10일에는 인천과 서울 강북구에서 각각 손주와 아들로부터 감염된 80대 할머니와 52세 여성이 잇달아 확진됐다. 11일에는 부천시 거주 여성이 아들을 통해 감염된 것이 확인됐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지난 10일 정례브리핑에서 “(이번 집단감염 사례는) 전파 속도가 굉장히 빠르고 전염력이 높은 특성을 보여준다"며 우려를 표했다. 11일에는 “파급력은 아직까지 신천지 교회 발병률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잠복기가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좀 더 면밀하게 살펴보고 조사를 해야 비교가 가능할 것”이라며 “밀폐된 공간에서 굉장히 밀접한 노출과 마스크 미 착용으로 개인 간 비말 감염 위험이나 접촉 노출이 많았을 것으로 가정하면 양성률, 발병률이 상당히 높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더욱이 확진자 중에는 간호사, 마사지사, 군인, 백화점 직원 등 밀접촉이 많은 직업군들이 포함돼 있어 다른 집단 발병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성남의료원은 지난 1~2일 이태원 클럽에 다녀온 남성 간호사가 확진됨에 따라 전체 의료인에 대한 전수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인천의 한 정신병원엔 이태원 경유 확진자가 입원한 것으로 드러나 방역당국이 입원 환자 및 종사자에 대한 전수검사를 실시했다. 다행히 검사에서는 모두 음성이 나왔으나 최종 결과는 잠복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봐야 한다.
제주도에서는 피부관리사가 2일 이태원 클럽을 방문했다가 확진돼 밀접촉자 140여명이 자가격리 조치됐으며, 부천에서는 현대백화점 중동점 직원이 클럽 방문 후 사흘동안 근무하고 확진 판정을 받아 백화점이 10일 조기에 영업을 종료하고 방역을 실시했다. 또 49명의 군인이 연휴 기간 중 이태원 일대 유흥주점을 방문했다고 자진신고하고 이 중 4명이 확진되는 등 군부대에서 확산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다.
이밖에도 제주도에서 의원급 의료기관 1곳과 병원급 의료기관 1곳 등에서 종사자가 이태원을 방문한 것으로 확인돼 당국이 관리 중이다.
연락불통 2405명 … 출입자 확인 안 되는 찜질방 등 방역사각
무엇보다 큰 문제는 이태원 클럽 방문자 중 다수가 연락이 닿지 않고 방역망 밖에 있다는 점이다. 서울시가 확보한 2일 이태원 클럽 방문자 명단은 총 5517명이다. 이 중 절반 이상이 연락되지 않고 있다.
박원순 서울 시장은 11일 서울시 브리핑에서 “명단 중 2405명은 통화가 됐으나, 3112명은 불통상태”라며 “이는 일부러 전화를 피하거나, (유흥주점 출입자 리스트를) 허위로 기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클럽 방문자 상당수는 남성 동성애자 클럽을 방문한 이력이 노출될 것을 꺼려 당국의 연락을 피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자신의 동성애적 성적취향이 주변에 공개되는 이른바 '아우팅'이 두렵다는 것이다. 박 시장은 “명단에 기재돼지 않은 방문자도 경찰청과 함께 신용카드 사용정보, CCTV, 기지국 정보 등을 활용해 추가로 파악하고 있다”며 “경찰과 강력한 추적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게다가 이태원 클럽 관련 확진자 중 최소 두 명이 동성애자 전용 ‘블랙찜질방’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져 방역 당국을 더욱 긴장하게 했다. 동성애자 전용 찜질방은 그들의 성적 욕구를 해결하기 위한 공간으로 성행위 등 긴밀한 밀접촉이 무분별하게 이뤄지지만 모두 익명으로 입장하고 현금만 사용해 방문자 추적이 어렵다.
박 시장은 “본인이 원한다면 이름을 비워둔 채 ‘용산 01’과 같이 보건소별 번호를 부여할 것이며, 전화번호만 확인하도록 하겠다”고 익명 검사를 약속하는 한편 “만약 이태원 클럽에 다녀갔는데 검사를 받지 않은 것이 나중에 밝혀지면 2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겠다”는 강경책을 내놨다.
그는 “대구 신천지 교회 집단은 조직적인 은폐 시도를 했고 서울시에 허위나 부실한 정보를 제공해서 구상권을 청구한 바 있다”며 “자발적인 협조를 구해왔으나 이후 시간부터 의도적, 고의적으로 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구상권 청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이태원 클럽 방문자의 협조가 늦어질 경우 강도 높은 대책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11일 오전 정세균 국무총리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열고 “비슷한 시기에 이태원을 방문하셨던 분들께 다시금 간곡히 부탁드린다”며 “여러분이 하루를 망설이면 우리의 일상시계는 한 달이 멈출지도 모른다. 지금 바로 가까운 선별진료소나 보건소로 연락해달라”고 말했다.
이번 이태원 클럽 발 집단감염과 관련해 서울시는 10일 유흥시설 집합금지 행정명령을 내렸으며, 오는 13일부터 순차적으로 시행하려던 등교 개학은 1주일 연기됐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과거에도 여러 집단감염이 발생했으나 이태원 클럽 건은 유흥주점 방문자 3000여명 이상이 연락되지 않아 감염원 찾기에 실패했다는 점이 다르다”며 “관건은 시간과의 싸움으로 이미 2차 감염자가 발생했고 3차 감염으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 빨리 발견해서 검사하고 격리하는 조치가 얼마나 조속하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제2의 대구 신천지가 될지 말지를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감염학회 이사장인 백경란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11일 자신의 SNS를 통해 “지금 발견된 클러스터(집단감염) 규모로 봐서 이미 한 달 전 또는 그 이전부터 감염이 시작됐을 가능성이 높다”며 “평균 잠복기를 4~5일로 가정하면 감염을 인지·관리하지 못하면 1명에서 시작해 3주 후엔 80명으로 확진자가 늘고 또 3주가 지나면 6500명이 된다”며 “이 속도를 늦추기 위해서 접촉자 조사, 신속진단, 사회적 거리두기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