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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종합백신’ 판매두고 약업계·수의업계 갈등 격화
  • 손세준 기자
  • 등록 2020-04-24 19:28:58
  • 수정 2020-04-27 20: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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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약사 “고비용 유발, 폐쇄적 동물의료 체계 개선돼야” … 수의사 “반려인 주사는 불법, 부작용 고려해야”
약업계는 ‘동물 종합백신’을 수의사 처방 품목에 추가되도록 하는 법 개정안이 지난 16일 행정예고되자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한약사회와 대한동물약국협회 등 약사단체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농림축산식품부가 수의사 처방 대상 동물약 확대를 강행하면서 약사와 수의사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 16일 농림부는 그동안 논란이 됐던 개 종합백신(DHPPL), 심장사상충제 등이 포함된 ‘처방대상 동물약 지정에 관한 규정 일부고시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농림부는 동물용 의약품 오남용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처방 대상 동물용의약품의 부작용 위험 우려성분, 항생재·항균제 내성균 예방관리 필요 성분, 전문지식 필요 성분 등을 추가 지정하기 위해 재검토 기한을 설정하는 행정예고를 냈다. 처방대상 동물약 추가 지정은 행정예고 고시 후 6개월 간 여론 수렴을 거치게 되며 원안이 통과될 경우 이후엔 수의사 처방을 받아야만 해당 약제를 투여할 수 있다. 항생제, 항균제, 백신 등 생물학적제제의 추가 지정 성분은 1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시행한다. 고시 재검토 기한은 2020년 7월 1일 기준 매 3년째의 6월 30일까지 타당성을 검토해 개선 등 조치를 취한다.

행정안전부 지방행정 인허가 자료에 따르면 국내 동물병원 수는 2015년 3561개에서 2020년 3월 기준 4577개로 늘었다. 같은 기간 동물약국은 2402곳에서 6163개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동물약국은 약사가 각 지자체를 통해 동물약국개설등록증을 발급받은 후 동물의약품 취급을 등록한 약국으로 대부분 일반 약국에서 동물의약품을 함께 판매하는 형태다.

수의사가 처방해야 약을 판매할 수 있는 ‘수의사 처방제도’는 2013년 8월 도입됐다. 당시 전체 동물용의약품 중 97개 성분, 1100개 품목이 처방대상 품목으로 지정됐다. 이후 3년 주기로 협의를 진행하기로 해 2016년 협의를 통해 133개 성분, 2084개 품목으로 확대됐다. 이번에 새 주기가 돌아오면서 동물약국에서 비교적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어 수요가 많은 ‘반려동물 종합백신(DHPPi)’을 두고 치열한 공방이 예고됐다.

2019년도에 이뤄진 농림부와 수의사단체 간 협의에서는 처방 대상 동물약에 개 용으로 △디스템퍼·전염성간염·파보바이러스(생독 3가백신) △디스템퍼·전염성간염·파보바이러스·파라인플루엔자(생독 4가백신) 등이, 고양이 관련해서 △광견병 △고양이범백혈구감소증바이러스·허피스바이러스·칼리시바이러스(생독 3가백신) 등이 추가됐다. 모든 항생제와 ‘하트가드’(이버멕틴·피란텔, Ivermectin·Pyrantel) 등 심장사상충 구충제 대다수, 벼룩·진드기 박멸 성분인 아폭솔라너(afoxlaner) 등도 처방 동물약으로 묶어놨다. 

이같은 추가 품목이 확정되면 종합백신, 심장사상충제 등을 판매하고 있는 전국 6163개 동물약국이 직접적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대한약사회와 동물약국협회 등 약사단체는 동물병원의 폐쇄적 진료 환경과 처방약 독점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처방 품목을 확대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30g짜리 피부연고를 3g씩 덜어 3만원에 팔거나 멸균처리 된 인체용 안약을 개봉해서 판매하는 등 동물병원의 비위생적인 의약품 판매 행태도 지적하고 나섰다.

대한약사회는 지난 17일 “농림부는 수의사 독점을 강화하는 정책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며 “동물 치료에 마약류를 포함한 인체용 의약품이 70~80% 사용되는 무분별한 현실을 관리할 수 있도록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동물의약품 중 대표적 예방용 의약품인 동물용 백신과 심장사장충약을 수의사 처방이 있어야만 판매할 수 있도록 해 소비자 비용 부담을 늘리고 최소한의 권익을 박탈하려는 농림부의 의도가 무엇이냐”며 반발했다.

약사회 관계자는 “해외에선 예방 백신과 심장사상충약 등 예방용 의약품을 동물보호자가 수의사 처방 없이 투약할 수 있도록 안내 영상을 공개하고 동물보호자의 경제적 부담을 최소화하는 게 일반화되는 가운데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정책 추진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르겠다”며 “처방 대상 품목 조정 전에 최소한의 학술적 연구 검토를 바탕으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동물약국협회도 지금의 폐쇄적 진료 환경에선 처방약을 확대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며 힘을 보탰다. 협회 관계자는 “수의사는 동물 치료에 동물약은 물론 인체용 의약품도 사용하고 있는데 항생제, 스테로이드는 물론 향정신성의약품에서 마약까지 아무런 제한이 없다”며 “수의사가 처방하고 약을 조제해 판매하는 탓에 동물병원에서 어떤 약이 어떻게 사용되는지는 수의사 본인만 안다”고 꼬집었다. 이어 ”농림부는 폐쇄적 동물의료를 개방하기는커녕 오히려 수의사의 의약품 독점권을 강화하려 하고 있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동물약국협회가 반려인 10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7%는 반려동물 예방접종을 동물병원에서만 이뤄지도록 한정하는 것에 반대했다. 반려인의 54%는 백신 구입 및 자가 접종에 제한을 두면 반려동물 예방접종이 감소할 것이라 응답했다. 보호자의 25% 이상은 동물병원에서의 예방접종 비용 부담이 커 포기하거나 중단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병구 동물약국협회장은 “농림부의 정책은 오히려 동물복지를 훼손하고, 동물의료비 부담을 고스란히 반려인에게 전가해 피해가 가중될 것”이라며 “한번 백신을 접종할 때 2주 간격으로 5~6회 진행되는데 동물병원에서 처방을 받으면 한 번에 3~4만원이 드는데 동물약국에선 5000원이면 구입할 수 있는 만큼 백신 판매가 동물약국에서 금지되면 예방접종 및 치료를 받지 못하는 반려동물의 생명이 위협받는 악순환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수의사 업계는 백신은 동물병원에서 수의사가 접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드물지만 혹시 모를 부작용 발생 위험에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주사 행위가 침습적인 만큼 경험이 부족한 반려동물 보호자가 투약을 시도하다 동물들이 다치거나 부종이나 화농을 유발하고 심하면 아나팔락시스 쇼크 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행법 상 반려동물 보호자의 주사 투약 행위는 수의사법 제10조 무면허 진료 행위에 해당돼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영국·일본에선 반려동물 백신을 수의사 처방이 있어야 사용할 수 있다.

이병렬 한국동물병원협회장은 “백신 및 주사용 동물약품은 합법적으로 동물약국에서 판매되는데 판매한 사람은 처벌받지 않고 주사를 놓은 반려동물 보호자만 범죄가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반려동물의 안전을 위해서 백신뿐 아니라 주사투약용 동물약품 전 품목을 수의사 처방대상 품목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수의사회는 “2017년 당시에도 반려동물용 백신, 심장사상충 예방약을 수의사 처방 대상으로 지정할 예정이었지만 일부 이익단체의 반대로 4종백신과 하트가드 등이 막판에 제외됐다”며 “더 이상 일방적인 주장에 휘둘려 처방대상 확대를 미룰 수 없다”고 밝혔다.

일부 수의사는 ‘넥스가드 스펙트라’의 경우 밀베마이신 옥심에 아폭솔라너(afoxlaner)라는 벼룩·진드기 박멸 성분이 추가된 것으로 효과가 강력하지만, 심장사상충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으면 한꺼번에 죽어 심장혈관을 막아 위험할 수 있으므로 사전에 심장사상충 감염 여부를 진단키트로 알아봐야 한다며 진단 후 처방이 필요한 약들도 처방대상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농림부는 이번 법 개정 취지에 대해 “동물용의약품 오남용으로 인한 부작용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부작용 위험 우려성분을 처방대상으로 추가 지정한다”고 공지했다.

이에 대해 김대업 대한약사회 회장은 이번 정책이 수의사 출신 공무원에 의해 편파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농림부 담당자인 이기중 조류인플루엔자방역과 과장은 수의사 출신에 수의사협회 표창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은 “담당 공무원이 수의사 출신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이 편파적인 면이 있다”며 “과연 동물의약품과 관련, 공평한 행정처리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데다 코로나19로 온 나라가 어려운 상황에서 슬그머니 입법에 개입하는 행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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