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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 제약사 리베이트, 과연 줄었나 … 합법적·긍정적 접근?
  • 손세준 기자
  • 등록 2020-04-20 23:52:11
  • 수정 2020-04-21 20:0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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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외 현금·현물 제공 행태 비슷, 미국선 대놓고 약가에 리베이트 산정 … 노바티스 사건 이후 국내 진출 외자사 ‘몸사리기’ 역력

외국계 제약사의 불법 리베이트 제공이 표면적으로는 감소하고 있지만 학회·종합병원 위주로 합법적 지원이 확대되고 있다.

리베이트(Rebate)는 본래 판매자가 지급받은 대금의 일부를 사례금이나 보상금 형식으로 지급인에게 되돌려주는 돈을 뜻하는 말로 사전적 정의로 환불, 할인, 반려, 뇌물 등의 뜻을 가지고 있지만 미국에선 정당하게 돌려받는 할인 금액 정도로 인식된다. 백마진(Back margin)이란 말도 뒤로 돌아오는 이득 정도로 해석되지만 긍정적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정상적인 거래 관행에 따른 할인 범위를 벗어나 ‘뇌물’ 수준에 다다르면 불법으로 간주돼 처벌받는다. 현재 공정거래법 상 불법 리베이트 제공은 ‘부당 고객 유인 행위’로 간주된다. 이 뇌물에 가까운 리베이트는 영어로 킥백(Kick back)이다. 발 뒤꿈치를 이용해 돈을 뒤로 밀어 넣는 모습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용어다.

미국에서 리베이트가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것과 관련해 국내 모 다국적제약사 담당자에게 국내에서 긍정적 리베이트가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봤다. 이 담당자는 “긍정적 리베이트라는 용어가 신선하다”면서도 “현실적으로 그런 형태의 리베이트가 존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리베이트는 현금 또는 현물로 혜택을 주는 것으로 처방권을 가진 의사의 영향력이 막강하기 때문에 대가성을 배제하는 게 불가능하다. 제약사가 병의원에 의약품을 공급하고 그 약이 처방된 것까지는 정상적인 거래에 해당한다. 하지만 리베이트가 처방에 영향을 조금이라도 미친다면 의도와 상관없이 의사가 의약품을 선택하는데 영향을 줬다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해외에서도 정상적 리베이트 범위를 벗어난 대가성 현금·현물 지급이 빈번히 이뤄지고 있으며 그 형태도 다양하다.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현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여기엔 휴가비, 공연티켓, 컨퍼런스 발표비 등이 포함되고 처방량에 따라 수수료를 지급하기도 한다. 이밖에 골프채, 카메라, 휴대폰, 인테리어 비용 등 현물을 제공하기도 한다. 오프라벨 의약품 처방량 등을 늘리는 목적의 의학 세미나를 개최해 소요비용을 지급하는 것도 고전적인 킥백의 하나다. 한번도 처방되지 않은 오프라벨 의약품을 샘플로 제공하는 사례도 마찬가지다. 

미국선 대놓고 약가에 리베이트 비용 얹어서 유통 … PBM, 암묵적 창구로 활용

이같은 불법 리베이트는 미국 내에서도 적발 사례가 상당히 많다. 2015년 기준 미국 법무부는 불법 리베이트 관련 사건으로 약 2조원을 환수했다. 부정청구방지법(False Claims Act)에 저촉되는 사례가 대부분으로 리베이트로 인한 과처방이나 불필요한 치료과정이 추가돼 환자가 피해를 입은 사례 등이 끊임없이 적발되고 있다. 불법 리베이트 거래가 암묵적 동의하에 성행하고 있다.

한국에는 없는 보험약가관리업체(Pharmacy Benefit Manager, PBM)라는 일종의 로비스트 집단은 제약사, 병원, 약국, 보험사 등과 연결돼 있는 중개자로서 리베이트 창구 역할을 한다. 한국에서 약가 결정 구조 상 존재하기도 힘들지만 미국에선 합법적으로 당연히 있어야 할 존재로 여겨지는 큰 시각 차를 보인다. 

PBM은 애초에 보험청구 대행업무를 담당하던 것에서 출발해 지금은 자금결제, 의약품 보험등재 및 약가 관리, 환자의 자기부담금 책정 및 복약관리까지 업무영역을 확장하며 나날이 성장하고 있다. 미국 내 조제약 판매 행정업무의 30% 이상을 PBM이 처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PBM은 제약사로부터 리베이트를 건네받은 뒤 보험사, 정부기관 등에 분배하는 역할을 한다. PBM은 보험사로부터 보험금을 높게 받을 수 있는 등급을 받도록 로비해 비싼 약가를 유도하는 주범으로 꼽힌다. 보험금에서 나오는 약가 보상액이 높을수록 리베이트를 더 받게 돼 소비자가 실제 부담하는 금액이 적든 말든 개의치 않는 게 PBM의 속성이다. 이는 처방량 증가와 제약사 수익 확대에 직결된다.

이같은 유통 체계가 고착화되면서 합법을 가장한 리베이트 근절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제약사는 PBM없이는 원하는 만큼 약을 팔기 어렵기 때문에 PBM은 리베이트 비용을 계속 올리게 되고, 제약사는 늘어나는 리베이트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잘 팔리는 약 가격을 올리거나, 돈이 안되는 필수의약품 또는 고빈도질환 약물 대신에 환자 수가 적고 고가에 판매할 수 있는 희귀의약품 개발에만 매진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결국 리베이트 살포 과정에서 제약사, PBM, 의사, 약사, 도매상 등 모든 참여자가 이득을 보지만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간다.

국내 외국계 제약사 리베이트는 종합병원·학회 등 단위로 이뤄져 … 노바티스 사례가 대표적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제약사들은 개별 병의원 단위로 리베이트를 주는 경우는 드문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전문의약품(ETC) 처방이 많은 종합병원 의국이나 의약품 처방에 영향을 미치는 저명한 의사를 대상으로 의국 및 학회 운영비 지원 또는 행사 협찬, 세미나 참가비, 강연료 등을 명목으로 지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11년에는 광고대행사에 광고비를 지급한다는 명목으로 일반 광고비보다 높은 금액을 보낸 뒤 병원 옥외 광고판을 제작해 각 병의원에 제공하는 수법을 활용하던 A 제약사가 적발됐다. 한국오츠카제약은 같은 해 자사 의약품에 대한 역학조사를 명목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해 설문지 1건당 5만원씩 지급하는 방식으로 총 13억원의 리베이트를 설문조사 업체를 통해 대리 지급한 게 덜미를 잡혔다. 2000년대엔 한국화이자,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한국MSD, 한국릴리 등이 수사 대상에 올라 강도높은 조사를 받았다.

국내에서 외국계 제약사가 적발된 대표적 사례로는 한국노바티스가 2010년 11월부터 시행된 리베이트 쌍벌제(리베이트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 처벌)를 피하기 위해 의학전문지를 창구로 의사를 불법 접대해왔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은 사건이다.

이 사건은 의약전문지 등 5개 매체를 통해 의사들에게 약 25억9000만원의 리베이트를 제공했다는 혐의로 2016년부터 약 4년 가까이 소송이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보건복지부와 공정거래위원회가 부과한 대체과징금으로 566억원을 납부했고,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판매업무정지 3개월 처분에 국세청 세무조사까지 받았다.

검찰 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바티스는 2010년 이후 단독으로 주최한 라운드테이블미팅(Round Table Meeting, RTM)이 급감하고 학술지 출판사 등을 통해 편집회의를 명목으로 개최한 RTM 등이 증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의약전문지 광고비 집행이 최대 25배까지 늘어난 점, 자사 제품 처방량 등에 따라 의사 등급을 S1~S4로 나눈 뒤 행사별로 어떤 그룹이 참가할 것인지 정하고 자문료 등을 차등 지급한 점, 학술행사 참석자 섭외부터 접대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노바티스가 깊이 관여한 사실을 증명하는 문서 등이 불법 리베이트 제공 근거로 지목됐다.

매출액 규모가 비슷한 다른 제약사와 비교해 노바티스가 이들 매체에 지급한 광고비가 유독 많고 압수수색 과정에서 의약전문지가 노바티스에 보낸 견적서에는 행사 당일 식대·골프접대·교통비·회식비·자문료 등이 포함됐다. 이같은 정황은 단순한 편집회의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 과정에 참여한 노바티스, 전문지, 출판사 관계자는 학술적 목적의 미팅으로 이전부터 계속 해오던 행사일 뿐 특정 의료인에게 리베이트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다고 항변했다. 이에 지난 1월 법원이 무죄 취지로 판결을 내리면서 사건이 종결되는 듯 했지만 검찰이 즉각 항소하면서 법정 공방 2탄을 예고하고 있다.

현장 누비는 영업사원은 온도차 … “리베이트 언급조차 두려워”

현장에서 직접 활동하는 영업사원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한국노바티스가 이 사건으로 거액의 과징금을 낸 뒤로 몸을 사리는 제약사가 많아졌다는 게 중론이다. 각 기업이 공정경쟁규약(CP)을 준수한다며 사내 조직체계를 정비하고 불필요한 영업행위를 자제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리베이트 제공이 더 합법적인 수단으로 바뀌었을 뿐 규모가 줄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시각도 여전하다.  

아스피린으로 유명한 B제약사 영업사원은 “노바티스 사태 이후 리베이트 관련 사내 규정이 강화돼 개별적으로 영업활동을 하다가 적발되면 최소 2주~최대 1개월의 정직 처분을 받는다”며 “리베이트라면 이골이 난다”고 손사래를 쳤다.

다른 M제약사 영업사원은 “주요 핵심 오피니언리더(Key opinion leader, KOL) 의사들의 학술대회 참가를 명목으로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항목과 액수를 지급한 뒤 그와 별도로 드론 등 현물을 선물했다”고 기자에게 털어놨다.

국내 L사 영업사원은 “국내 제약사가 병·의원 단위로 영업하는 것에 비해 외국계 제약사는 단위와 규모가 큰 편”이라며 “규모가 큰 대신 지급처 수는 적어 업무가 과중해 보이지는 않지만 그만큼 적발되면 리스크도 커 동종 업계 사람을 대상으로도 보안유지에 철저한 편”이라고 말했다.

국내 R사 영업사원은 “리베이트 문제로 한참 시끄러웠던 N 외자사의 경우 잠시 숨을 죽였지만 여전히 활발하게 마케팅을 벌이고 있고 시장점유율도 여러 제품군에서 선두권인 것을 볼 때 과연 리베이트의 싹이 근절됐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다국적 제약사들은 신약이 나올 때마다 적응증이 확대될 때마다 ‘의료 접근성이 확대됐다’, ‘미충족 의료수요를 해결하게 됐다’, ‘난치성 희귀질환 환자에게 희망의 대안을 가져다줬다’는 표현을 상투적으로 쓴다.

수명 연장과 더 나은 삶의 질을 선사하는 외국계 제약사의 따뜻한 이미지 이면에선 치열한 리베이트 경쟁이 이뤄지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규모가 큰 대가성 리베이트 지급은 계속되고 있다. 한국은 미국처럼 민간의료보험(사보험)이 지배하는 국가도 아니고, PBM이 설쳐대는 나라도 아니다. 공공 의료보험과 깐깐한 약가 결정이 존재하는 국내 의료환경에도 불구하고 약가 거품에 파묻힌 제약사 이윤의 일부가 상당수 의사 손에게 넘어가는 것은 더욱 투명하게 관리돼야 한다. 그래야 의료소비자의 피해가 줄어든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 사태를 종식시켜줄 치료제와 예방백신을 개발하는 국내외 유수 제약사에 거는 기대가 크다. 제약사들도 그에 걸맞은 투명성·도덕성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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