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화되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 팬데믹에 기온이 상승하면 잠잠해질 것이라는 기대를 걸고 있다. 하지만 국내외 연구결과 이같은 희망은 근거가 약한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정재훈 가천대 길병원 G-ABC센터장(예방의학과 교수)은 2007~2017년에 국민건강보험 자료에 등록된 환자 약 200만명의 자료를 분석, 폐렴(바이러스성, 세균성, 기타)과 기상 상황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바이러스성 폐렴은 기온이 높아진다고 발병률이 낮아지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 결과 바이러스성 폐렴을 비롯한 전체 폐렴 발병률은 평균 기온과 크게 상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감염성 호흡기질환은 ‘더위’와 상관없이 여름철에도 충분히 사람 사이에 전파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럼에도 전체 폐렴 발생률은 일교차, 습도, 초미세먼지 등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일교차, 습도, 초미세먼지가 일방적으로 높거나 낮다고 해서 폐렴의 발생률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하루 중의 일교차는 5~10도 사이, 습도는 50~70% 사이에서 바이러스성 폐렴의 발생률이 가장 높았다. 이 수치보다 높거나 낮을 때는 폐렴 발생률이 낮아졌다.
초미세먼지도 20ug/㎥까지는 폐렴 위험이 급격히 증가하다가 오히려 농도가 높아지면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 이는 초미세먼지가 바이러스나 세균의 활동을 위축시키기 때문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외부 활동을 삼가는 등 일종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기 때문에 발병률이 낮아지는 것으로 해석됐다.
정재훈 교수는 “바이러스나 세균성 폐렴 발생률은 단순히 기온, 일교차나 습도와 상관이 없었다”며 “오히려 사람들이 활동하기에 좋은 기온, 적당한 일교차와 습도, 너무 높지 않는 초미세먼지 농도 등이 발생률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이어 “따라서 코로나19 바이러스 폐렴과 같은 질환이 기온이 높은 여름철에 무력화될 것이라는 일각의 추측은 틀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흔히 인플루엔자 및 감기 바이러스 등은 추운 겨울에 유행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COVID-19 는 홍콩, 대만 등 온난한 북반구뿐 아니라 브라질과 같이 열대성 기후를 가진 지역에서도 유행하고 있다. 정 교수는 “결국 바이러스성 폐렴과 같은 질환은 기상 상황보다는 사람의 활동에 더욱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점을 시사한다”며 “기상 변수는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질환에 미치는 영향을 단정하기 어렵지만 COVID-19도 마스크 쓰기, 사회적 거리두기와 같은 예방활동이 오히려 더욱 큰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 논문은 ‘Association of meteorological factors and atmospheric particulate matter with the incidence of pneumonia: an ecological study’라는 제목으로 유럽임상미생물감염병학회(ESCMID)가 발행하는 ‘임상 미생물학과 감염’(Clinical Microbiology and Infection) 최신호에 게재됐다.
지난 2일 ‘랜싯 미생물학’(Lancet Microbe)에 게재된 신종 코로나(SARS-CoV-2) 관련 실험에서는 온도가 올라가면 코로나19의 사멸률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56도에서 30분 후에도 감염성 바이러스가 사멸됐다. 70도에선 단 5분이면 병원균을 비활성화됐다. 그러나 저온에서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지난달 30일 의학논문 사전게재 사이트인 메드리시브(medRxiv.org)에 게재된 연구에 따르면 코로나19의 발원지인 우한이 속해 있는 중국 후베이성 지역의 온도가 1도씩 상승할 때마다 확진자 수가 36~5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후베이성은 습도가 높은 지역이나 그밖의 중국 본토에서는 이런 현상을 보이지 않았다.
콰심 부카리(Qasim Bukhari)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박사는 지난달 19일 국제 논문 라이브러리인 SSRN(Social Science Research Network)에 지역 온도에 따라 신종코로의 확산 속도가 다르다는 논문을 게재했다. 이에 따르면 주로 3~17도 저온 지역에서 바이러스 확산이 잘 일어나며, 평균 기온이 18도 이상인 지역에서 발생률은 6% 미만이었다.
마시에이 보니(Maciej Boni)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전염병 교수는 “전염병은 역동성을 갖는다. 바이러스의 전염 능력에 대한 연구는 많은 변수에 영향을 받는다”며 “MIT의 연구는 국가의 검진 능력이나 보건정책을 반영하지 않았고, 전염에 미칠 다양한 요인들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국립과학·공학·의학아카데미(National Academies of Sciences, Engineering and Medicine)는 “지금까지 발표된 연구는 계절에 따른 잠재적 영향과 상충되는 결과를 보였고, 신종 코로나 발현 후 짧은 시간 안에 작성돼 복잡한 변수가 반영되지 않은 빈약한 데이터의 질 때문에 결론을 끌어내기에는 결함이 있다”고 평가했다. 결론적으로 “여름철 고온이 바이러스 전염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견해를 지난 7일 밝혔다.
인류가 접해보지 않은 신종 코로나는 전세계 모든 인종에 걸쳐 확산됐으며 왕성한 침투력은 기온에 따른 영향을 무시하고도 남을 태세다. 홍콩·대만 등 온난한 지역이나 호주나 브라질 등 현재 여름을 보내는 남반구에서도 신종 코로나가 대거 발생한 게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