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달라트연질캡슐5mg이 언제쯤 다시 들어올지 알 수 있을까요?” 약국에서 환자가 약사에게 하는 질문이 아닌 기자에게 어느 환자가 보내온 메일 내용이다. 이 환자는 경기도 모 요양병원에 입원 중으로 경추손상에 의한 자율신경반사부전증(자율신경과반사)을 겪고 있다.
10년째 병원 생활을 하고 있다고 밝힌 환자는 “갑자기 혈압이 올라가 응급 상황이 왔을 때 설하 투여가 가능한 아달라트연질캡슐이 있어 신속한 조치가 가능했다”며 “최근 공급이 안되고 있어 다른 주사제로 대체하고 있지만 투여 시간이 길고 효과도 예전만 못한데다 극심한 두통까지 동반돼 힘든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 환자가 복용했던 ‘아달라트연질캡슐5mg’(성분명 니페디핀, Nifedipine)은 관동맥심질환(만성안정형협심증, 이형협심증), 고혈압(고혈압성발증 포함), 레이노병 및 레이노증후군에 처방되는 칼슘통로차단제(CCB)다. 고산병으로 발생하는 고산폐수종의 응급 처치와 임산부 고혈압 및 자궁수축 등에도 사용된다.
그는 “같은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많지만 확실한 대체제가 없어 하루하루 가슴 졸이며 살고 있다”며 “갑작스럽게 약 공급을 중단한 바이엘코리아는 환자 목숨을 담보로 무책임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환자가 앓는 질환은 흉수 6번 이상 부위에 척수 손상을 입은 경우 발현된다. 자율신경계는 심장 박동수와 혈압을 올리는 교감신경계와 이를 진정시키는 부교감신경계로 나뉘는데 보통 이 두 신경계가 상호보완 작용을 해야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흉수 6번 이상 부위를 다치게 되면 갑작스런 교감신경 반사가 일어날 수 있다.
이런 경우엔 심박수는 떨어지는데 혈압이 급격히 올라가고 두통, 식은땀, 홍조 등 증상을 보인다. 교감신경 반사반응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으로는 요도괄약근 조절기능 이상에 따른 방광 팽창, 소화·배변 기능 저하로 인한 장 팽창, 피부 손상, 골절 등이 꼽힌다. 상부 흉수 손상에 따른 하반신 마비 환자 중 약 48~83%가 겪는다. 지속적으로 혈압이 올라가면 뇌출혈, 뇌경련, 급성심근경색, 폐 부종 등으로 이어질 수 있어 신속한 처치가 생명이다.
국립재활병원 자율신경반사부전증 치료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방광과 직장의 팽창 여부를 확인한 뒤 수축기 혈압이 150mmHg 이상이면 니페디핀(연질캡슐) 10mg을 씹어서 삼키고, 효과가 없으면 20~30분 뒤 다시 10mg을 투약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이 약은 일정 용량 이상 투여하면 심근허혈을 증가시킬 수 있고 좌심부전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혈액투석요법 중인 순환혈액량 감소를 동반한 고혈압 환자에선 혈관 확장으로 과도한 혈압 강하가 나타날 수 있다.
이에 지난해 11월 응급성 고혈압에 ‘1회 10~20mg을 투여해 드물게 30mg까지 투여’한다는 기존 허가사항 문구를 ‘응급성 고혈압에는 1회 10mg을 투여하고 약 30분 뒤 10mg을 추가 투여할 수 있다’로 변경해 투여량을 10mg 단위로 세분화 했다. 이같은 허가사항 변경으로 공급이 재개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를 가졌던 환자들은 공급 중단 소식에 또 다시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제보한 환자가 대체제로 투약하는 주사제는 명문제약의 응급성 혈압강하제 ‘라베신주사’(성분명 라베탈롤염산염, Labetalol HCl)로 정맥주사 제형이라 경구제에 비해 처지 시간과 효과 발현이 오래 걸린다. 공급이 중단된 아달라트연질캡슐은 보통 물과 함께 삼키거나 치아로 터뜨려 액체 상태로 복용한다. 이같은 복용이 불가능한 응급 상황에선 주사기로 캡슐 속에 든 약을 추출해 혀 밑에 도포하는 설하투여도 가능하다.
같은 성분 대체제로는 아달라트연질캡슐의 서방형 제품인 ‘아달라트오로스정’이 있다. 이 약은 삼투압을 이용한 서방형 약물 전달 시스템으로 반투막성 물질로 코팅된 정제다. 직경 0.4㎜의 약물 전달 구멍이 있어 위장관에서 수분이 약 안으로 들어가 약물을 녹인다. 정제 안에 수분이 차면 압력차로 약물이 일정하게 방출된다. 약 껍질은 불용성이라 대변으로 배출된다. 서방형 제제 특성상 일정한 간격으로 약물을 공급받아야 하는 환자에겐 편의성이 높지만 신속한 혈압강하 효과를 내야 하는 환자에겐 적합하지 않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해 2월 1일 아달라트연질캅셀5밀리그람 제품 수입 중단을 공고했다. 식약처는 “본사의 생산중단 결정에 따라 아달라트연질캅셀5mg은 한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에서 2018년 11월을 마지막으로 수입이 중단될 예정”이라며 “이 제품에 대한 대체제가 존재해 환자에 미치는 영향 및 시장 공급부족 발생 가능성은 낮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달라트연질캡슐은 사실상 시장 철수 수순을 밟아왔다. 바이엘 측은 2016년 3월 아달라트연질캅셀10mg 제품 수입을 중단했다. 이어 5mg 제품도 2018년 11월 마지막 공급을 끝으로 지난해 재고가 대부분 소진됐다.
바이엘코리아 관계자는 “아달라트연질캡슐5mg은 전세계에서 영구적으로 공급 중단돼 향후 수입 계획이 없다”며 “독일 레버쿠젠 공장의 생산시설 현대화 작업에 따른 결정 사항”이라고 말했다.
자율신경반사부전증 등 응급 상황에서 필요한 환자를 대상으로 공급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대해선 본사에서 정한 사항이라 알면서도 외면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이 관계자는 “국내 사업부에서 일부 신속한 처치를 필요로 하는 환자군을 인지하고 있다”면서도 “독일 본사에서 서방형인 아달라트오로스정 판매에 집중하면서 연질캡슐 제품이 도태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돈 안되는’ 약을 정리하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아달라트연질캡슐5mg의 1정 당 급여가는 91원에 불과하다. 응급성 고혈압에선 1회 10mg, 추가 10mg 등 20mg을 투여하면 364원이 소요된다. 일반 고혈압 환자는 최근 안전성이 확인된 암로디핀(Amlodipine) 계열 약을 처방받는데다 하루 3번 복용해야 하는 아달라트연질캡슐의 불편함 등을 고려할 때 니페디핀은 사업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같은 성분의 아달라트오로스정30mg, 60mg는 각각 1정 당 363원, 543원으로 단가가 높다. 하지만 동일 용량으로 비교해보면 아달라트연질캡슐 30mg과 아달라트오로스정30mg은 각각 546원, 363원으로 아달라트오로스정이 편의성·비용면에서 경제적이다. 그나마 공급되던 아달라트오로스정60mg도 지난해 상반기에 장기 품절됐다.
바이엘은 그동안 소염진통제 ‘아스피린정’, 경구피임약 ‘마이보라정’·‘멜리안정’, 항생제 ‘씨프로바이정’, 여성호르몬제 ‘크리안정’ 등 40여개에 달하는 의약품이 품절돼 수많은 환자·약국·국내 파트너사가 불편을 겪었지만 독일 생산공장 보수공사와 해외공장 이전 등을 이유로 시간을 끌고 있다. 유독 한국에서만 품절이 잦은 점도 계속 지적되지만 회사 측은 요지부동이다.
국내 급여 품목 중 마지막 니페디핀 연질캡슐 제형인 아달라트연질캡슐5mg 생산이 전면 중단된 만큼 대체약에 대한 환자의 갈증은 더 커지게 됐다. 1정 당 21원에 불과한 아스피린정은 약 2년 만에 공급이 재개됐다. 전통있는 제약사로서 다양한 환자군을 배려하는 진정한 제약사가 될지, 단순 이익만을 쫓는 생산 공장이 될지는 바이엘이 선택할 몫이다.
제보를 한 환자는 “척수장애가 있는 분들은 사지가 불편해 이런 불편사항을 글로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며 “이 메일도 음성으로 어렵게 입력하고 있는 만큼 약이 다시 공급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