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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사 불법 리베이트 줄었다는데 … 국내사는 누가·어떻게?
  • 손세준 기자
  • 등록 2020-03-30 11:22:26
  • 수정 2020-04-02 19:5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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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의원 규모별 수백~수억원 살포해 처방 유도 … 학회 지원, CSO·자회사 활용 등 명목·방법 다양화, 적발 건수 감소세
불공정 관행인 제약사 불법 리베이트 적발 건수가 줄어들고 있지만 명목·제공방법 등이 달라진 탓으로 아직 리베이트 살포가 만연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획기적 근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치료제 개발에 국내외 제약·바이오 기업이 총력을 기울여 찬사를 받고 있다. 하지만 헬스케어산업이라는 고부가가치, 굴뚝없는 청정 산업이라는 이미지 뒤에는 의료보험 제도 아래 처방전을 한 장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한 제약사 간 치열한 리베이트 살포 경쟁이 가려져 있다. 

국내서는 여전히 의료진과 제약사가 유착관계를 바탕으로 대가성 리베이트가 오가고 있다. 세계 최대 제약시장인 미국에선 보험약가관리업체(PBM, Pharmacy Benefit Manager)가 제약사로부터 리베이트 비용을 수령해 민간 사보험사와 나눠 먹으면서 환자가 부담해야 할 약가에 전가시키는 부작용이 만연하다. 이에 제약사 불법 리베이트가 어떤 형태로 이뤄지는지 국내(1편)와 해외(2편) 사례로 나눠 총체적으로 리뷰해본다. 

최근 5년 이내에 리베이트 제공 혐의로 적발된 국내사는 JW중외제약, 동아에스티, 광동제약, 동성제약, 명문제약, 안국약품, 이연제약, 일양약품, 한올바이오파마 등으로 압수수색은 물론 행정처분, 임직원 구속까지 당했다. 이들 회사는 제법 규모가 큰 편이지만 매출 규모가 작은 수많은 소형 제약사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9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승희 미래통합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2015~2018 공정경쟁규약에 따른 경제적 이익 제공 현황’에 따르면 제약·의료기기 업계 등의 학술대회 지원, 제품설명회, 기부금 등 경제적 이익 제공 건수와 금액이 2015년 1979억원(8만3962건), 2016년 2208억원(8만6911건), 2017년 2407억원(9만3459건), 2018년 3107억원(12만3962건)으로 매년 증가했다.

제약사 불법리베이트 적발 금액·건수는 반대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적발 금액은 2015년 108억원에서 2016년 220억원으로 늘었다가 2017년 130억원, 2018년 37억원으로 감소했다. 적발 건수도 2015년 30건에서 2018년 27건으로 줄었다. 이는 리베이트 제공 유형이 학회 등을 통해 우회 지원하는 방식으로 바뀐 탓으로 분석된다.

김 의원은 “불법 리베이트 적발은 줄어들고 있지만 아직 업계에선 여러가지 명목으로 리베이트 살포가 자행되고 있다”며 “이를 근절할 수 있는 강력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제약업계는 제약바이오협회 주도로 국제표준 반부패경영시스템인 ISO 37001을 도입하고 자체 공정거래자율규약(CP)을 운영하는 등 오명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아직도 일선 병·의원 등에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관행은 여전하다. 비단 제약산업뿐만 아니라 여행·유통 등 타 산업에도 만연한 이 문화를 탈피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리베이트(Rebate)는 본래 판매자가 지급받은 대금의 일부를 사례금이나 보상금 형식으로 지급인에게 되돌려주는 돈을 뜻한다. 사전적 정의로 환불, 할인, 반려, 뇌물 등의 뜻을 가지고 있지만 미국에선 정당하게 돌려받는 할인 금액 정도로 인식된다. 백마진(Back margin)도 뒤로 돌아오는 이득으로 해석되지만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국내에서도 정상적인 리베이트가 이뤄지고 있다. 약국이나 도매상이 제약사로부터 의약품을 구입할 때 ‘대금결제조건에 따른 비용할인’이라는 약사법 상 규정에 따라 1개월 내 현금결제하면 구매액의 1.8%, 2개월 내 1.2%, 3개월 내 0.6%를 할인받는다. 신용카드로 결제해도 별도로 카드사로부터 구매액의 1%를 포인트로 돌려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같은 정상적인 거래 관행에 따른 할인의 범위를 벗어나 ‘뇌물’ 수준에 다다르면 불법으로 간주돼 처벌받는다. 현재 공정거래법 상 불법 리베이트 제공은 ‘부당 고객 유인 행위’로 간주된다. 이 뇌물에 가까운 리베이트는 영어로 킥백(kick back)이다. 발 뒤꿈치를 이용해 돈을 뒤로 밀어 넣는 모습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용어다.

1945년 8월 광복 이후 제약사들도 리베이트 제공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시장이 확대되면서 정치권에서 관행화된 ‘떡값’이 변형된 형태로 의약품 영업에 도입됐다. 처음에는 명절이나 생일에 쌀, 떡, 분유, 건어물, 한복지, 육류 등을 보내는 소박한 수준이었다. 먹고 살기 어려운 시절이라 생계와 관련된 품목으로도 받는 사람에게 현금 이상의 만족을 줬다. 

1960년대 중반부터는 다국적 제약사가 국내사와 공동으로 영업하기 시작했다. 이들 외자사의 한국 시장 진출로 신약이 도입되고 국내 제약사가 여러모로 자극받는 계기가 됐다. 고급볼펜, 다용도 나이프, 가방 등 생필품이나 기념품 수준의 사례가 오가는 수준에 그쳤다. 

미국이 부러워하는 한국형 의료보험이 1977년 도입되면서 점차 처방 경쟁이 치열해진 제약사들은 이때부터 조금씩 현금성 리베이트 살포에 나서기 시작했다. 의약분업 이전 대형병원에서는 처방을 전제로 시설이나 장비를 제공하고, 단골 손님 격인 중소병원 의사나 개원의에겐 현금 지급, 회식비 결제, 병원 물품 대리 구입 등 방식으로 검은 거래가 이뤄졌다.

2000년대 의약분업이 개시되면서 불법 리베이트 살포는 정점을 찍는다. 현금으로 지급하는 액수가 커졌다. 한 때 일부 제약사는 매출의 60% 이상을 리베이트로 쓰며 경쟁에서 이기려 불나방처럼 달려들기도 했다. 그러나 여론의 지적에 현금 대신 노트북, 골프채, TV, 호텔이용권 등 현물을 제공하는 비중을 조금 낮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금을 원하는 의사나 병원의 요구가 크게 줄어들지는 않아서 회계 처리를 위해 카드깡이나 상품권깡을 통해 현금화했다. 

의사에게 제약사의 법인카드를 빌려줘 쓰게 하는 경우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고전적으로 쓰이는 리베이트 제공 수단이다. 병원 규모나 의사 명성에 따라 제공하는 법인카드 한도액은 적게는 150만원, 많게는 1억원이 넘게 책정된다. 

국내 제약사들은 10여 년전부터 외국계 제약사처럼 라운드테이블을 포함한 학술회의 자문료, 시판후 임상(4상) 참여료, 강연료, 논문 감수비, 해외학회 참가비 등의 명목으로 리베이트를 뿌리고 있다. 병의원이 신규 개원하거나 리모델링에 나설 경우 자사의 시설 개수비 명목으로 위장해 수천만원에서 수억원까지 인테리어 비용을 대불하는 리베이트 제공 패턴도 여전히 활용되고 있다. 

2010년 11월 28일 시행된 리베이트 쌍벌제는 이런 리베이트 관행을 근절하는 데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주는 사람뿐만 아니라 받는 사람도 동시에 처발하는 쌍벌제는 의사들에게 큰 부담감을 안겨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이 면허박탈이나 장기간 면허정지에 처해지는 경우는 별로 없고 실형이 선고돼도 대부분 벌금형이거나 징역조차도 집행유예에 그치는 게 현실이다. 

쌍벌제는 시행 당시 리베이트를 받은 의사에게 2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고 이에 따른 면허정지 기간은 이전 2개월에서 12개월로 늘어났다. 2016년에 의료법·약사법·의료기기법이 개정되면서 징역형이 3년 이하 징역으로 강화됐으나 그에 비례해 실효성을 확보한 것은 아니었다. 

2~3년 전에 제약사가 리베이트 제공용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영업직원의 급여에 리베이트 분을 가산해 지급한 뒤 리베이트로 활용하는 게 확산됐다. 그러나 이마저도 영업실적이 좋은 직원과 그렇지 못한 직원 간에 위화감이 조성되고 결국 내부고발로 이어지자 수면 위로 드러났다. 실적이 밀리는 영업직원들은 늘어난 급여 때문에 함께 증가한 세금을 자비로 감당해야 해서 불만을 가졌고 내부고발에 나서는 단초가 됐다. ‘괜찮은’ 회사는 세금까지도 감안해서 리베이트를 월급에 얹혀주지만 그렇지 않은 영세회사도 많아 영업사원들 간에는 세금분에 대한 배려가 ‘괜찮은’ 회사를 가르는 기준이 되고 있다.

H제약사 출신 전직 영업사원 G씨는 “제약사 간 유사 품목이 많아 경쟁이 치열한 진료과목의 병의원에선 리베이트 비율이 다른 진료과에 비해 높아지고 매출액 대비 최대 20%에 이른다”며 “그 기준을 맞추지 못하면 접근조차 어려웠기 때문에 제약 영업을 그만 두게 됐다”고 말했다.

L제약사 영업사원 P씨는 “병원이 하루 발행하는 처방전 수와 매출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일반 개원의는 전체 매출의 3~5%정도를 수령한다”며 “리베이트에 민감한 의사들은 0.1%만 수수료율을 올려줘도 금세 다른 경쟁 품목으로 갈아타기 때문에 고충이 크다”고 토로했다.

대학병원 교수는 학회, 의대, 병원, 의국 차원에서 리베이트를 받는다. 주로 외국계 제약사가 고가 오리지널약을 무기로 학회 등에 지원금을 내는 형식을 써왔는데 국내사들도 의약분업 이후 서서히 외국사의 패턴을 답습하고 있다. 대학병원 등은 연구과제 수행, 병원 리모델링, 의료기기 구입 등을 진행할 때 기여금을 수령한다. 

의약품이 원내 처방리스트에 등재되면 해당 의국에 의국운영 지원비를 내고 개별 교수나 전문의에게도 과실이 돌아간다. 2011년 K대학병원에선 리베이트 분배를 놓고 동료 교수들간에 주먹다짐을 해 기사회되는 씁쓸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대학병원 처방리스트에 등재되면 처방 규모가 커 품목 하나만으로도 많은 매출을 올릴 수 있다. 이에 영업 직원들은 대학병원 진입이 어렵기는 하지만 일단 성공하면 안정적인 공급처를 확보할 수 있어 작은 규모의 병원보다 영업처로 선호하는 편이다.

대기업 계열 제약사는 리베이트 같은 문제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회사의 브랜드 이미지가 손상되면 득보다 실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LG화학, 한국콜마 계열 HK이노엔(옛 씨제이헬스케어) 등은 영업대행업체인 CSO(Contract Sales Organization)를 활용해 영업활동을 하고 있다.

CSO는 제약사와 계약을 맺고 의약품 영업을 대신해준다. 법인사업자도 있지만 개인사업자가 다수를 차지한다. 제약사 규모에 관계 없이 특정 전문약 분야에서 영업 효율성을 높이거나, 고정 인건비 부담 때문에 직접 영업조직을 꾸리기 어려운 중소제약사가 용병처럼 CSO를 활용한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높은 효율성 때문에 적잖은 제약사가 전문 CSO 업체를 활용하고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유유제약, 한올바이오파마, 휴텍스제약 등이 CSO를 많이 활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자체 영업조직이 없어 영업을 전부 CSO에게 맡기는 회사도 상당수”라고 말했다. 그는 “제약사가 영업을 전부 CSO에 맡길 경우 판매수수료로 매출의 30~40%, 일부 의약품은 70%를 챙겨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D 제약사는 기업 이미지 보호를 위해 회사명으로 계열인 게 드러나지 않는 H 자회사나 관계사를 통해 리베이트를 대신 제공하는 방식으로 리스크를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종 코로나 사태로 제약·바이오 기업이 연일 관심을 받고 있다. 인구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제약산업 등 헬스케어 분야는 미래 성장동력 산업으로 각광받으며 2018년 시장 규모가 1500조원에 달한 것으로 추산된다. 같은 기간 전세계 반도체 시장이 약 400조원인 것을 감안할 때 세 배 이상 큰 규모다. 고부가가치 산업인 만큼 역설적으로 그에 걸맞은 투명성과 도덕성을 유지하는 게 더 어려운 게 현실이다. 약가의 합리적 규제와 무한권력인 의사 처방권의 적절한 제재를 통해 소비자 등 대중에게 그 과실이 고루 돌아가도록 큰 시각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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