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가 중국, 한국은 물론 유럽, 미국, 중동, 오세아니아 등에서도 세를 불려나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현재까지 총 50여 개의 국가에 신종 코로나가 확산되었다. 세계 경제도 출렁였다. 지난 주 전세계 금융시장이 동반 급락했다. 미국 증시의 급락 폭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대였다. 범위와 속도 면에서 빠른 확산이 눈에 뻔히 보이는데도 WHO가 중국 눈치를 보며 ‘판데믹’(Pandemic, 감염병 대유행) 선언을 미룬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판데믹은 세계적으로 전염병이 대유행하는 상태를 의미하며, WHO의 전염병 경보단계 중 최고 위험 등급에 해당된다. WHO는 전염병의 위험도에 따라 전염병 경보단계를 1단계에서 6단계까지 나눈다.
1단계는 동물 사이에 한정된 전염된 상태, 2단계는 동물 사이에서 전염되다가 소수의 사람들에게도 전염된 상태, 3단계는 사람들 사이의 전염이 증가한 상태, 4단계는 사람들 사이의 전염이 급속히 퍼지기 시작해 세계적 유행병이 발생할 수 있는 초기 상태, 5단계는 전염이 널리 퍼져 세계 동일 권역(대륙)의 최소 2개국에서 병이 유행하는 상태다. 이쯤 되면 전염병의 대유행이 임박했다는 의미이다.
6단계 최고등급인 판데믹은 전염병이 세계적으로 전파되어 모든 사람이 감염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pan’은 그리스어로 ‘모두’, ‘demic’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판데믹은 14세기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앗아간 흑사병(plague, 패스트)를 들 수 있다. WHO는 1948년 설립된 이래 1968년 홍콩독감과 2009년 신종플루에 판데믹을 선언한 바 있다.
이와 비슷한 말로 에피데믹(epidemic, 유행병)과 엔데믹(endemic, 풍토병)이 있다. 에피데믹은 지역에서 특정 기간 동안 발생한 전염성 질환을 이르며, 엔데믹은 특정 지역에 사는 주민들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질환을 뜻한다. 에피데믹은 기간, 엔데믹은 지역에 묶여있으나 판데믹은 이 제약을 넘어선다. 쉽게 말하면 한 국가나, 몇 개 국가라로 지역이 넓지 않으면 엔데믹으로 간주하지만 여러 대륙에 걸쳐 광범위하게 발생하면 판데믹이다.
대구·경북 지역에만 국한하면 엔데믹이자 에피데믹이지만, 확산 범위가 더 넓어지고 장기화되면서 증상도 중증화되고 사회경제적 파장이 심각해지면 판데믹이 될 수 있다.
확산 범위로만 보면 이미 판데믹으로 간주할 수준이지만 WHO는 아직 신종 코로나에 대한 판데믹 선언을 미루고 있다. 아직은 판데믹에 들어서지 않았다. 일부는 선언이 미뤄지는 게 과도한 중국 눈치보기의 결과라고 비난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전세계 패닉 사태를 피하기 위한 궁여지책이란 의견도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WHO가 공포감을 주기는 것을 피하고 싶어서 선언을 미룬다”고 보도했다. 판데믹 선언은 더 이상 질병을 막을 수 없다고 인정한다는 것과 같은 뜻이기 때문이다. 중국, 한국, 일본, 이탈리아 등을 제외하면 50개 국가의 감염자 수가 많지 않다는 점도 판데믹 선언을 미루게 하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지난 27일 “신종 코로나가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결정적 시점에 도달했다”고 발언해 실질적인 판데믹 고비를 인정했다.
전문가들은 세계적인 감염자 급증이 멈추지 않는 한 곧 판데믹 선언이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대한의사협회는 “이탈리아에서의 급격한 환자 발생이나 미국에서 감염경로가 확인되지 않은 환자 발생 등으로 고려할 때 판데믹의 전조 증상으로 볼 수 있다”며 “정치·경제적 충격을 각오하더라도 일시적으로 우리 사회를 잠시 동안 멈추는 극단적인 조치를 포함해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따져, 필요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