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모나리자·오공·케이엠·국제약품 등 일제 하한가 … 중국 증시 하락, 국내 산업 위축 우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우한 폐렴)가 중국 전역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국내 증권시장에선 이와 관련된 테마주 주가가 요동치고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온·오프라인에서 품귀현상을 빚고 있는 마스크 외에 아직 명확한 치료법이나 예방백신이 개발되지 않았는데도 제약·바이오에 동물약 관련주까지 테마주로 엮여 있다. 이에 보건 당국이나 증권감독 당국이 과장광고나 주가작전이 개입됐는지 상황 파악에 나섰다.
설 연휴 직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와 전혀 관련이 없는데도 마치 예방·치료이 가능할 것 같은 관련 제품을 띄우며 주가 상승을 유도하는 루머가 돌았고 지난주 내내 주가가 급상승했다. 그러나 3일엔 종가 기준 코로나 바이러스 관련 테마주가 급락하면서 일시 진정되는 국면이다.
테마주 투자는 장기적으로 주식시장을 투기판으로 전락시킬 가능성이 크다. 정상적인 가치평가를 어렵게 해 투자자와 기업 모두 손해를 입을 가능성이 커 섣불리 투자했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가장 큰 피해는 정보나 경험없이 급등세만 보고 주가가 고점에 이를 무렵 참여한 개인투자자가 짊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달 29일 한국거래소(KRX) 기준 코로나 바이러스 관련 17개 종목이 상한가를 기록했다. 상한가에 근접한 종목도 21개에 달했다. 이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온라인을 통해 출처가 불분명한 테마주 목록이 퍼져나갔고 해당 종목은 이틀간 급등하면서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르는 등 관심을 끌었다.
모나리자·오공·케이엠·국제약품 등 마스크 제조사 15개, 파루 등 손세정제 제조사 7개, GC녹십자 등 백신·의약품 19개, 피씨엘 등 진단시약·호흡기 6개(각 테마별 중복 포함) 종목 등에 ‘사자’가 몰렸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동물에서 유래됐다는 점 때문에 이글벳 등 동물약 제조사 5곳 등도 테마주에 포함됐다. 이 중 가장 활발한 거래가 이뤄진 종목은 마스크 관련주였다.
소셜커머스 위메프에 따르면 설 연휴 기간이 시작된 1월 넷째주 마스크 판매는 전 주 대비 약 3210%, 손세정제는 830% 증가했다. 편의점 CU에선 지난달 20일부터 27일까지 마스크 판매 매출이 지난해 12월 대비 1000%, 가글용품은 162%, 손세정제는 122% 늘었다. 동네 약국에는 마스크와 손세정제 품절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었고, 온라인에서도 품귀현상으로 평소 1000원대에 판매되던 제품 가격이 최대 7000원까지 치솟았다.
정부도 우한 폐렴 예방을 위한 마스크 착용, 손씻기 등 예방행동수칙을 발표하면서 예방이 최선의 대응책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관련 제품 수요가 폭증했다. 마스크·손세정제 관련주에 포함된 업체는 직접 마스크를 생산하는 곳들이다. 일반 제약사나 유명기업 상표를 달고 판매되는 마스크 제품의 대부분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중소업체가 제조한다. 파도처럼 몰려드는 수요에 공장을 3교대로 돌린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물량을 확보하려는 업자들이 공장 앞에 수억원의 현금을 들고 대기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지난달 31일 마스크 제조 업체 모나리자의 주가는 종가 기준 9130원으로 같은달 17일 3980원 대비 2주 만에 2.3배로 치솟았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달 30일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선포하고 국내에서도 2차 감염자가 등장하면서 등락을 거듭했지만 상승세를 유지했다. 지난달 28일엔 단기과열종목으로 지정돼 이날까지 3거래일간 단일가매매(거래가 변동이 30분만에 한번씩 이뤄짐) 방식을 적용받았다.
오공은 같은 기간 주가가 3675원에서 9600원으로 2.6배 급등했다. 지난달 29일 투자경고 종목으로 지정된 후에도 다른 테마주 대비 계속 상승세를 나타냈다. 마스크 생산업체 오공의 조한창 대표(전문경영인 각자대표)는 설 연휴 전날(1월 23일) 약 13만주(0.78%)를 장내 매도(5916원)했다고 공시했다. 오공의 3일 종가는 8150원에 머물렀다.
케이엠은 지난달 1월 17일 8020원에서 31일 1만8100원으로 2.2배가 됐다. 제약사 중 마스크를 자체 생산해 테마주에 포함된 국제약품은 지난달 17일 4900원에서 28일 8380원을 기록한 뒤 31일 7580원으로 마무리했다. 주가가 급등하면서 이들 종목은 투자주의종목으로 지정됐다.
거래소는 최근 온라인 상에 허위 소문 등에 주가가 비정상적으로 급등한 16개 종목에 대해 지난달 31일 시장경보를 발동했다. 이들 종목의 평균 주가 상승률은 지난달 17일 대비 64.2%를 기록했다. 거래소는 투기 세력이 일부 테마주 주가를 인위적으로 조작했을 가능성에 대해 모니터링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종목은 3일 대부분 하한가를 웃돌며 모나리자는 6520원(-28.59%), 케이엠 13150원(-27.35%), 국제약품은 5740원(-24.27%), 오공 8150원(-15.10%) 등으로 폭락했다. 투자자들은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장기화될 것을 고려해 계속 주가가 오를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테마주의 예측 불가능한 변동성과 춘절(설) 이후 3일 개장한 중국 증시가 폭락한 영향을 고스란히 받으면서 하루 만에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상하이 주식시장은 매도 물량이 쏟아져 상하이종합지수(SSE)는 지난달 23일 대비 7.72% 하락한 2746.61으로 폐장됐다. 이번 낙폭은 2015년 8월 24일 ‘위안화 절하 충격’ 직후 기록한 -8.49% 이래 가장 컸다. 다만 우한 폐렴 수혜 종목인 상하이 디이의약, 장쑤 롄환약업 등 일부 의약품 관련주가 상한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국내 신종 감염병 관련 테마주의 허상은 과거에도 여실히 드러났다. 2015년 봄 유사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이 유행했을 때에도 바이러스가 확산되고 사망자가 속출하면서 관련 테마주 대다수가 급격한 급등세를 보였다. 하지만 사태가 진정 국면에 접어들면서 주가가 떨어지자 실적 개선을 기대하며 주식을 보유한 투자자들은 손실을 회복하지 못했다. 2015년 메르스 발병 시점부터 최고점까지 주가가 82%가량 상승했던 모나리자는 같은 해 2분기 매출이 2.7% 증가하는데 그쳤기 때문이다.
마스크 제조업체 웰크론도 메르스 사태 당시 주가가 2배 가까이 올랐지만 매출은 약 4%만 늘어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했다. 당시 급등락을 반복하다 폭락으로 마무리된 테마주와 이번 우한 폐렴 관련주들도 비슷한 패턴을 보이고 있다. 실적 기대감이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을 염두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 바이러스 우려로 인해 중국 경제가 침체되면 중국 증시 폭락으로 귀결되고 국내 코로나 바이러스 관련주를 포함한 전체 증시가 하락할 가능성이 제기돼 투자자는 유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인 관광과 직접 관련된 국내 여행·항공·유통업 피해가 가시화되고 있으며 대중 수출도 위축돼 성장률 하락이 예상된다.
대신증권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2015년 5개월간 이어졌던 사스 사태와 유사하게 확산된다면 코스피는 1900선을 밑돌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이 오는 4월에 정점을 찍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가운데 국내 증시 전문가들은 우한 폐렴이 주식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이전 전염병과 비교해 길지 않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메리츠종금증권 관계자는 “향후 전염 확산 정도와 실물 경기 둔화 폭이 경제 성장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질병 발생 초기단계에서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증시 하락에서 느끼는 것과 달리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나타나는 공포 정도가 높지 않아 실물 경기 둔화에 미치는 영향은 우려하는 것보다 적을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