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율 2017년 21.5%서 정체, 액상형 퇴출로 궐련형 반사이익 … ‘문재인케어’ 밀려 예산 감소, 사업 중복까지
흡연율 감소를 위한 정부의 금연 정책이 ‘전자담배’라는 복병을 만나 주춤하고 있다. 담뱃값 인상 등의 여파로 일반 연초담배 판매율은 줄어드는 추세지만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궐련형 전자담배 수요가 폭증하면서 금연 정책의 근본적인 방향 수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담배규제 정책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5년 담뱃값을 2500원에서 4500원으로 80% 올렸고 모든 식당과 술집을 금연구역으로 설정했다. 담뱃값 인상으로 마련된 재원은 병·의원 금연진료서비스 수가 인상, 의료기관에 내원하지 못하는 흡연자를 위한 찾아가는 금연서비스, 단기입원금연서비스 등 도입에 활용됐다. 학교를 대상으로 한 학교금연서비스를 확대하고 담배 위해성에 대한 매스미디어 캠페인을 강화했으며, 이듬해인 2016년 12월엔 담뱃갑 전면 30%에 경고그림을 표기하도록 했다.
하지만 흡연율 감소 효과는 썩 만족스럽지 못하다. 지난 26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공개한 ‘2018년 건강검진통계연보’에 따르면 19세 이상 성인의 흡연율은 2014년 23.6%에서 2015년 담뱃값 인상과 금연치료 지원정책의 영향으로 22.6%까지 하락했다가 2016년 23.9%로 반등했다. 2017년엔 다시 21.5%까지 떨어졌지만 지난해까지 정체 상태를 보이고 있다. 남성 흡연율은 2013년 42.4%에서 2018년 36.9%로 감소했지만 정부 예상보다 감소율이 저조하다는 평가다.
청소년 흡연 문제도 여전히 심각하다. 남자 청소년의 흡연율은 2016년 6.3%, 2017년 6.4%, 2018년 6.7%로 증가세를 보였다. 같은 기간 여성 청소년은 2.7%, 3.1%, 3.7%로 증가폭이 더 컸다.
담뱃값 인상 등 정부의 강력한 금연정책에도 흡연율 감소 효과가 미미한 원인으로는 전자담배가 꼽힌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가 공개한 ‘2018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성인의 전자담배 사용률은 4.3%로 2013년 첫 조사가 시작된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성인 남성의 전자담배 사용률은 2016년 4.2%, 2017년 4.4%, 2018년 7.1%로 꾸준히 상승했고 같은 기간 여성도 0.4%에서 1.1%로 늘었다.
전자담배는 니코틴 용액이나 연초 고형물을 가열해 나온 수증기를 흡입해 일반 연초형 담배와 같은 흡연 효과를 낸다. 크게 액상형과 궐련형으로 구분된다. 액상형은 니코틴을 첨가한 프로필렌글리콜(propylene glycol, PG)이나 식물성 글리세린(vegetable glycerin, VG) 성분의 액체를 열로 기화시켜 흡입하는 방식이다.
대표 제품으로 미국 쥴랩스의 ‘쥴(Juul)’, KT&G의 ‘릴베이퍼(lil vapor)’ 등이 있다. 기호에 따라 다향한 향료를 첨가(가향)할 수 있고, 궐련형 전자담배 특유의 ‘찐 냄새’가 나지 않으며, 사용 후 기기를 청소하거나 꽁초를 버릴 필요가 없어 젊은층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최근 유해성 논란이 불거져 판매량이 급감하고 있다.
지난 10월 미국에서 액상형 전자담배로 인한 중증 폐손상이 1479건, 사망이 33건 발생하자 보건복지부는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 중단을 강력히 권고했다. 이어 지난 12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국내에서 유통되는 액상형 전자담배 153개 제품의 유해성을 분석한 결과 폐질환 유발 가능성이 있는 비타민E 아세테이트(Vitamin E acetate), 폐 손상과의 연관성이 입증되고 있는 가향물질인 디아세틸(diacetyl)·아세토인(acetoin)·2, 3-펜탄디온(Pentanedione) 등이 검출되면서 편의점과 면세점 등에서 퇴출 수순을 밟고 있다.
궐련형은 전자기기로 담뱃잎 고형물을 300∼350도 내외로 가열해 니코틴이 함유된 증기를 흡입하는 것으로 2017년 5월 필립모리스가 ‘아이코스(IQOS)’를 출시하며 궐련형 전자담배 시대를 열었다. 대표제품으로는 아이코스, 브리티시아메리칸토바코(BAT)의 ‘글로(glo)’, KT&G의 ‘릴(lil)’ 등이 있다.
궐련형은 액상형 전자담배의 유해성 논란에 따른 반작용으로 매출이 상승하고 있는 추세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 1~6월 일반형 담배 판매량은 14억7000만갑으로 1년 전 같은 시기보다 3.6% 감소한 반면 궐련형 전자담배 판매량은 1억9000만갑으로 24.2%나 증가했다.
전자담배의 선풍적인 인기로 금연정책 효과가 반감되면서 2020년까지 성인 남성 흡연율을 29%까지 낮추겠다는 정부의 목표는 사실상 실패에 부딪히게 됐다. 올해 기준 성인 남성 흡연율은 36.9%다. 뒤늦게 복지부는 전자담배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흡연을 조장하는 환경을 근절하는 금연종합대책’을 확정했지만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새 금연 대책은 △궐련형 전자담배 등 신종담배에 대한 적극 대응 △국민건강 보호를 위한 간접흡연 적극 차단 △흡연 조장 환경 근절을 통한 청소년·청년 시기의 흡연 적극 차단 △흡연예방 교육 및 금연치료 강화 등으로 이뤄진다.
이에 따라 궐련형 전자담배도 다른 담배처럼 광고 및 판촉행위가 금지됐으며, 담뱃값 경고그림 및 문구의 가시성을 높이기 위해 그림 표기면적이 기존 50%에서 75%로 확대됐다. 담배의 유해성·중독성을 증가시키는 가향물질 첨가도 단계적으로 금지될 예정이다다.
전자담배 사용을 줄이려면 혐오감 조성에만 방점을 뒀던 금연광고를 흡연자가 담배로 인한 폐해를 직접 말하는 증언형 메시지를 남기거나, 흡연으로 유발되는 질병의 위험성을 부각시키거나, 흡연으로 인한 가족과 주변 사람의 피해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조홍준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기존 금연 캠페인은 담배에 대한 공포, 혐오, 분노, 수치심 유발이 주 목적인데 비흡연자의 흡연 예방엔 효과적이지만 흡연자에게는 효과가 떨어지는 편”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보건복지부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인 ‘문재인케어’에 힘을 쏟으면서 금연치료 지원 정책은 찬밥 신세가 됐다는 주장도 있다. 담배규제 예산은 2017년 147억원에서 문재인정부 집권 이후인 2018년 144억원, 2019년 136억원으로 점차 줄어들고 있다. 군인 및 의경 금연 예산은 2017년 49억원에서 2019년 44억1000만원, 찾아가는 금연서비스 예산도 2017년 73억1000만원에서 2019년에는 47억6000만원으로 감소했다.
조홍준 교수는 “보건복지부가 금연종합대책을 내놓았지만 내용에 한계가 있고 집행의지가 있는지도 불명확하다”며 “정권 차원에서 담배, 알코올 등 건강행동 변화를 위한 강력한 규제정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시행 중인 금연사업이 중복돼 예산이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현재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운영 및 관리 중인 금연사업은 금연정책 개발 및 지원, 지역사회 금연사업 관리, 청소년 흡연예방사업 관리 등 총 11개다. 문제는 이들 사업과 국립암센터, 국민건강보험공단, 한국건강관리협회, 질병관리본부가 실시하는 금연사업 중 상당수가 유사성을 띤다는 것이다.
예컨대 국립암센터에서 운영 중인 온라인 금연지원서비스 사업은 현재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의 온라인 금연콘텐츠 및 금연정보시스템 운영관리 사업과 유사하다. 건강보험공단이 운영하는 금연치료 건강보험 지원사업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관리하는 보건소 금연클리닉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대국민 홍보를 통해 전자담배가 일반담배보다 덜 해롭다는 잘못된 인식을 교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최혜숙 경희대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는 “미국과 유럽에서 발표된 연구논문에 따르면 전자담배 연기에 노출된 호흡기 상피세포는 일반담배 연기에 노출된 세포보다 유전자가 더 심하게 변형된 것으로 나타났다”며 “특히 금연을 목적으로 전자담배를 피우다간 일반담배에 전자담배까지 추가로 피는 ‘중복흡연’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4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승희 자유한국당 의원이 한국건강증진개발원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8년 4~9월 보건소 금연클리닉에 등록한 궐련형 전자담배 흡연자 4799명 가운데 43.2%(2071명)가 다른 유형의 담배를 함께 피우고 있었다. 이 중 일반담배(궐련)와 궐련형 전자담배를 중복해서 피우는 사람이 88.9%(1842명)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