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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등급인데 신의료기술? 회의록 비공개 ‘깜깜이 심사’에 업계 부글부글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9-12-19 20:36:42
  • 수정 2020-09-15 12: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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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혈두드리기 등 D등급 36.7% … 의료기기 업체 “식약처 허가와 중복, 일원화 필요” 요구
전문가들은 기존에 발표된 연구논문만 분석해 의료기술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평가하는 현재의 신의료기술평가 방식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새 치료법의 빠른 임상 적용과 오남용 차단을 목표로 시행 중인 신의료기술평가에 대한 의료계의 불신이 깊어지고 있다. 이전부터 평가 절차나 위원 선정 등에서 불공정한 측면이 강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지난 7월 경혈두드리기(감정자유기법) 통과를 계기로 의사들의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 일각에선 “신의료기술평가가 아니라 ‘신기한’ 의료기술 평가 아니냐”는 비아냥도 나오고 있다.
 
신의료기술평가제도는 철저한 검증을 거치지 않은 치료법이 임의 비급여 형태로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문제가 지속되자 의료행위의 안전성과 임상적 유용성 평가를 위해 2007년 도입됐다. 대한의사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 소비자단체, 대한변호사협회 등에서 추천한 전문가 20인으로 구성된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 신의료기술평가위원회가 최대 280일 동안 신청된 의료기술 관련 임상논문을 분석해 통과 여부를 결정한다.
 
매년 250건 내외의 신의료기술 평가가 신청되며 이 중 100여건 정도만 통과된다. 신의료기술 평가를 받아야 보험코드를 부여받고 환자에게 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
 
가장 최근인 지난 9일 금년도 제10차 보건복지부 신의료기술평가위원회에선 ‘유문부 실시간 풍선팽창성 검사법’, ‘근감소증에서의 이중에너지 방사선 흡수계측법을 이용한 체성분 분석’ 등이 통과됐다. 유문부 실시간 풍선팽창성 검사법은 유문부 운동성 질환자를 대상으로 풍선카테터의 팽창 및 수축을 통해 유문부 상태와 치료효과를 확인하는 기술이다.
 
근감소증에서의 이중에너지 방사선 흡수계측법을 이용한 체성분 분석은 근감소증 의심 환자 등을 대상으로 체성분과 근육량을 측정해 근감소증을 진단하고 치료효과를 모니터링하는 기술이다.
 
그동안 의료계는 신의료기술평가를 두고 임상논문 분석만으로는 실제 임상효과를 파악하기 힘들다며 전면적인 제도 개선을 요구해왔다. 한의계는 제도 도입 후 12년간 단 한 건의 한의학 분야 신의료기술평가도 통과되지 못했다며 평가위원들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해왔다.
 
그러던 중 지난 7월 한의학 경락이론에 기반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치료법인 경혈두드리기가 NECA를 통과하면서 논란이 확산됐다. 이 치료법은 ‘모든 부정적인 감정은 경락체계의 기능이상으로 나타난다’는 전제 아래 특정 경혈점을 두드리면서 자극해 심신을 회복 및 안정시킨다. 당시 의사들은 “급격한 충격과 외상으로 야기된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경혈을 두들겨 치료한다는 것은 의학적 측면에서 매우 납득하기 어렵다”며 격렬히 반대했지만 NECA 통과를 막을 수는 없었다.
 
반대로 비슷한 시기 1999년부터 임상에서 시행돼 온 ‘맘모톰(mammotome, 진공보조유방양성종양절제술)’의 신의료기술 통과가 반려되자 의사들의 불만이 더욱 가중됐다. 지난 8월에야 세 번의 도전 끝에 겨우 신의료기술로 통과됐지만 의료계의 반응은 여전히 냉담했다. ‘현 정부가 한의계를 노골적으로 밀어준다’는 울분 섞인 반응도 쏟아졌다.
 
전문가들은 기존 연구논문만 분석해 유효성과 안전성을 평가하는 방식은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장정숙 바른미래당 의원이 최근 한국보건의료연구원에서 제출받은 신의료평가 관련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07~2018년 신의료기술로 인정받은 의료기술 중 경혈두드리기처럼 근거 수준이 최하위인 D등급임에도 인정받은 기술은 총 204건(36.7%), 그 다음으로 낮은 C등급은 222건(39.9%)에 달했다. 근거수준이 낮은 C·D등급이 전체의 76.6%를 차지하는 셈이다.
 
신의료기술 평가 결과는 A·B·C·D로 나뉜다. A등급은 다수의 연구결과를 통해 치료효과·안전성·유효성이 확실히 입증된 기술, B등급은 안전성에 문제가 없고 치료효과와 유효성이 입증된 기술, C등급은 안전하지만 치료효과와 유효성 측면에서 추가 연구가 필요한 기술, D등급은 안전성은 수용할 만한 수준이지만 치료효과·유효성·신뢰성을 입증할 만한 연구결과가 부족한 기술을 의미한다.
 
D등급을 받은 신의료기술로는 코골이 및 수면무호흡증에 대한 수술적 치료법의 하나인 경구개전진인두성형술(경구개 뒤쪽을 제거한 뒤 인두부 기도 폐쇄부위를 앞뒤로 확장시키는 수술), 프랑스 메드텍S.A의 수술용 로봇 ‘로사(ROSA)’를 이용한 척추수술, 편두통수술(편두통 부위 눈썹주름근육, 측두근, 두반박근 등 근육을 일부 제거하고 신경을 이완시켜 통증을 개선하는 치료법) 등이 있다.
 
의협 관계자는 “신의료기술평가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어 임상효과를 중심으로 한 재검증이 필요하다”며 “현재 신의료기술평가 제도는 다수의 논문을 수집해 분석한 보고서를 근거로 신의료기술평가위원회가 치료요법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최종적으로 판단하는데, 이를 실제 임상연구를 통해 효과와 안전성을 검증하는 방식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근거 수준이 낮은 신의료기술 등재가 반복되면서 안전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확산되고 있다. 무상의료운동본부 관계자는 “신의료기술평가는 어디까지나 의료기술의 안전성·유효성을 검증해 무분별한 시장 진입 및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임상 근거가 미약한 신기술의 조속한 시장 진입을 촉진하는 제도가 아니다”며 “보건당국이 헬스케어 산업계의 이해관계에 휘둘려 안전성조차 제대로 입증되지 않은 의료기술의 임상 적용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의료기술평가 자체가 대표적인 이중·중복 규제이므로 존재의 이유가 불확실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기존에 출시된 의료기기와 다른 이론·기술을 기반으로 제조된 의료기기는 먼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품목허가를 받은 뒤 다시 NECA로부터 신의료기술평가를 받아 통과해야 한다. 식약처의 의료기기 품목허가는 물리적·화학적 안전성과 성능 등 단기적 유효성만 평가하는 반면 신의료기술평가는 시술환자에게 나타나는 부작용과 합병증·사망사례까지 확인하는 부분이 다르지만 큰 틀에선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국내 한 의료기기 업체 관계자는 “수 년간의 연구개발을 거쳐 의료기기를 개발하고 식약처 허가까지 받았는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신의료기술평가를 통과하려니 진이 빠진다”며 “피를 토하며 마라톤을 완주해 목적지에 다다르자마자 다시 달리라고 내모는 것과 같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어 “신의료기술평가에 필요한 임상논문을 준비하는 데에만 최소 2~3년이 소요돼 해외 업체들과의 시장 선점 경쟁에서 한없이 밀릴 수밖에 없다”며 “신의료기술평가를 식약처 심사에 포함시켜 기술이 한 번만 검증받으면 바로 통과될 수 있도록 제도를 일원화해달라”고 요구했다.
 
현행 신의료기술평가가 통과를 위해 어떤 기준을 갖춰야 하는지, 허가 신청한 기술이 왜 탈락했는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심사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깜깜이 심사’로 이뤄지고 있는 것도 문제다. 신의료기술평가위원회는 평가 종료 후 보고서를 발간해 평가 내용을 발표하고 있지만 평가위원 명단과 회의록은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라 평가에 현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대한개원의협의회 관계자는 “평가에 참여하는 전문가들이 책임의식을 갖고 임할 수 있도록 평가위원 명단과 회의록을 공개함으로써 신의료기술평가에 대한 신뢰성과 공정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NECA는 신의료기기와 신의술의 오남용을 막는다는 명분 아래 설립 당시부터 서울대, 연세대 등 유명 의대 교수들이 옥상옥을 만들어 자신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취지로 활용됐다”며 “대다수 업계 관계자들이 NECA의 행태에 분통을 터뜨리지만 신의료기기의 오남용 차단에 같은 입장을 보이는 시민사회단체의 입장과 궤를 같이 하기 때문에 대응하기 쉽지 않은 철옹성으로 굳어가고 있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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