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필리핀 정부가 19년만에 영유아에 치명적인 소아마비를 유발하는 폴리오 바이러스(Poliovirus) 발병을 공식 발표한 뒤 주변국으로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필리핀에서 최근까지 7명의 공식 감염자가 확인됐고, 말레이시아에서도 생후 3개월 된 유아가 척수성 소아마비 진단을 받아 1992년 이후 27년 만에 환자가 발생하는 등 동남아시아 지역이 위험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겨울방학을 맞아 따스한 동남아로 가족 단위 해외여행을 준비하고 있다면 사전 예방접종이 요구한다. 외교부는 필리핀 정부의 안내사항을 인용, 4주 이상 체류 또는 관광하는 모든 방문자에게 도착 4주 전 불활성폴리오백신(Inactivated Polio Vaccine, IPV) 예방접종을 맞으라고 권고하고 있다. 미리 접종을 하지 못했더라도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접종한 뒤 입국해달라는 게 필리핀 정부의 요구사항이다. 일본 정부도 예방접종 권고안을 내놓는 등 예방과 확산 방지에 주력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의무적으로 백신을 사전 접종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를 거부하면 입국이 제한될 수 있다.
국내 여행객 선호도 최상위권 관광지인 세부·보라카이 등이 있는 필리핀을 비롯해 인도네시아, 미얀마, 중국 등이 폴리오 바이러스 감염을 국제적으로 확산시킬 수 있는 국가에 이름을 올렸다. 전문가들은 감염경로가 불명확한 만큼 해외 출국을 고려 중이라면 ‘여행자 백신(Traveler‘s vaccine)’ 차원에서 백신을 접종하는 게 최선이라고 조언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폴리오 바이러스에 대해 “국제적으로 우려되는 공중보건 상의 문제”라며 “올해 들어 야생형 폴리오바이러스에 대한 감염이 크게 증가하고 있으며 이번 유행은 파키스탄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프리카에서도 이 바이러스가 유행하고 있는데 그 규모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고 알려졌다.
폴리오 바이러스는 구강을 통해 침투한 뒤 약 3~35일 정도 잠복기를 거쳐 인두와 장관에서 증식해 국소 림프계를 침범하고, 혈액을 통해 중추신경계에 도달한다. 운동신경이 뻗어나가는 척수전각(脊隨前角·척수 중 배쪽 부위)과 뇌간의 운동신경세포를 파괴해 마비 증상을 일으킨다. 주로 15세 이하, 특히 1~3세 소아에서 많이 발생하고 연령이 낮을 수록 예후가 좋지 않다. 감염된 환자의 1~5%는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폴리오 바이러스 감염은 성인에서 증상이 나타나지 않거나 가벼운 감기 증상으로 스쳐지나가는 게 대부분이지만 일부에선 회색질 척수염 또는 수막염이 발생한다. 심하면 팔이나 다리를 움직일 수 없는 마비성 회색질 척수염이 발생해 영구적 장애가 생길 수 있다. 이 때 호흡근 마비가 동반되면 사망한다. 영유아에 감염되면 치명적일 수 있고 영구적 보행장애가 뒤따라는데 마땅한 치료제가 없어 예방접종이 최선의 방어책이다.
소아마비 치료는 신경 증상에 대한 보존치료를 시행하고 증상이 호전된 뒤에는 마비로 회복되지 않은 부위에 재활치료를 하는 게 거의 전부다. 급성 소아마비에서 회복돼도 일부는 15~50년간 근육통증, 허약함, 근육퇴화 등을 겪는 폴리오증후군(post-polio syndrome)을 겪는다.
예방접종이 유일한 대책이자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성인의 경우 과거에 백신접종을 마쳤다면 1회만 접종받으면 된다. 이전에 완료하지 못했다면 총 4회에서 남은 횟수만큼 실시해야 한다. 소아마비 백신을 접종한 적이 없다면 1~2개월 간격으로 2회 접종하고 6~12개월 뒤 3차 접종을 시행한다.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다면 첫 접종 4주 뒤에 2회차 접종을 실시하고 이후 6개월 간격으로 맞으면 된다. 영유아에선 생후 2개월, 4개월째에 두 번 주사를 맞고 3회차는 6~18개월, 4회차는 만 4~6세 접종이 권장된다.
국내에선 1960년대 감염자 수가 연간 6000명을 상회하다가 1983년 마지막 환자 발생 이후 감염환자는 없었다. WHO는 백신 보급 등으로 감염자 수가 줄면서 2000년 10월 한국을 포함한 서태평양 지역 37개국에서 폴리오 박멸을 선언했으나 20년이 채 지나지 않아 다시 유행 위기에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