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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망자 1452명 넘어 … 무책임한 SK케미칼
  • 손세준 기자
  • 등록 2019-11-22 01:44:41
  • 수정 2020-09-10 09:4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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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년 162명꼴 숨지는데 피해자 보상은 나몰라라 … 독성원료 증거채택 거부해 재판 지연, 비도덕적 행태 비난받아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가 가습기살균제 원료 물질을 제조·유통시킨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의 전·현직 최고위 임직원을 지난해 11월 27일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사진 제공: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2011년 옥시레킷벤키저, SK케미칼 등에서 제조한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가 드러나면서 집계된 사망자가 지난 1일 기준 1452명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10월 집계된 1345명 대비 약 1년 동안 107명이 증가했으며 사망자는 속출할 전망이다. 장기간에 걸쳐 살균제가 팔려나간 탓에 아직도 적잖은 소비자가 살균제 때문에 폐 손상이 온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실정이어서 현재까지 접수된 피해자 규모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는 1994년부터 2011년까지 판매된 가습기 살균제로 이용자가 사망하거나 폐 손상 등 심각한 질병으로 피해를 입은 사건이다. 국립환경과학원 연구용역으로 진행한 한국환경보건독성학회 조사에 따르면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는 약 400만명으로 추정된다. 이 중 건강상 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보이는 이용자는 50만명이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지난 1일 기준 접수를 마친 피해자는 총 6616명으로 전체 1.2%에 불과했다. 접수된 인원 중 사망자는 약 22%인 1452명에 달한다. 5명 중 1명은 사망했다. 2011년 피해 사실이 알려진 뒤 9년간 연평균 162명이 목숨을 잃었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사망자는 208명에 그쳤다.
 
시민사회단체는 피해 규모가 더 크다고 주장한다. 환경보건시민센터에 따르면 가습기 살균제는 1994년부터 2011년까지 SK케미칼이 판매한 제품은 20개 종류, 연간 60만개에 달했다. 이용자도 894만~1087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했다.
 
1994년 유공(현 SK케미칼)이 메칠클로로이소치아졸리논(CMIT)·메칠이소티아졸리논(MIT)을 살균 성분으로 한 최초의 가습기 살균제 ‘가습기메이트’를 2001년까지 8년간 직접 판매했다. 1년 뒤인 1995년엔 옥시(당시 동양화학)가 프리벤톨R80 살균 성분으로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을 만들어 2000년까지 6년 동안 팔았다. 2001년 옥시가 영국 회사 레킷벤키저에 넘어가면서 이 성분 제품을 사용하면 이물질이 생긴다는 소비자 민원을 반영해 원료를 바꾼다. 이 과정에서 당시 SK케미칼이 생산하는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을 추천받아 채택하고 ‘뉴가습기당번’을 만들어 2011년까지 11년간 415만4000개를 팔아치웠다. 애경은 CMIT·MIT 성분의 ‘파란하늘맑은가습기’ 제품을 3년간 7만5000개 팔았고 2002년부터 SK케미칼의 ‘가습기메이트’를 넘겨받아 10년간 165만3000개를 판매했다. SK케미칼은 이들 제품 원료 및 자체 상품을 판매해 근본적 원인 제공자로 낙인찍혔다.
 
SK케미칼이 사용한 원료인 CMIT·MIT는 1960년대 말 미국 화학기업인 롬앤하스(R&H)가 개발한 유독 화학물질로 미생물 증식을 방지·지연시켜 제품 변질을 막는 살균보존제 성분이다. 물에 쉽게 녹고 휘발성이 높으며 자극성과 부식성이 커 일정 농도 이상 노출 시 피부, 호흡기, 눈에 강한 자극을 준다. 국내에선 1991년 SK케미칼이 가습기살균제, 치약, 구강청결제, 화장품, 샴푸 등 각종 생활화학제품에 사용했다.
 
1991년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CMIT·MIT를 산업용 살충제로 등록하고 2등급 흡입독성물질로 지정했다. 국내에선 일반 화학물질로 분류되다가 가습기살균제 사건 발생 이후인 2012년 환경부가 유독물질로 지정했지만 전면 사용금지는 되지 않았다. 한국과 유럽에서는 의약외품·화장품 중 씻어내는 제품에 한해 0.0015%(15ppm)로 희석해 사용이 가능하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치약 보존제로 사용할 수 있지만 국내에선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계기로 2016년 9월말 CMIT·MIT가 들어간 치약 전제품이 리콜조치를 당했다.
 
PHMG는 피부 독성이 다른 살균제에 비해 10% 수준에 불과해 가습기 살균제뿐만 아니라, 샴푸, 물티슈 등 여러 가지 제품에 이용된다. 이들 성분이 호흡기로 흡입될 때 발생하는 독성에 대해서는 연구자료가 부족해 개발사의 자체 검사에 의존해야 했다. SK케미칼은 옥시에 제공한 PHMG 성분의 물질안전보건자료(MSDS)에서 독성 정보를 누락한 것으로 밝혀졌다.
 
SK 측은 옥시와 공급 계약을 체결한 이후 2002년 한국안전성평가연구소를 통해 독성이 0.23㎎/ℓ 농도인 PHMG를 96시간 노출하면 어류 절반이 죽는다는 실험 결과를 받았으나 옥시에는 이같은 내용이 빠진 MSDS 2건을 전달해 ‘유독물’ 지정을 회피했다. SK는 MSDS를 총 6차례 개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옥시 측도 한국건설생활연구원에 의뢰한 독성시험 결과 폐가 망가졌고 간독성이 심각하게 나타난 사실을 확인했으나 마찬가지로 이를 은폐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독성물질이 호흡기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과정은 분무된 물방울 에어로졸 내에 녹아있는 살균제 성분이 공기 중에서 응고되며 시작된다. 고체화된 독성물질이 미세먼지가 돼 사람이 직접 흡입하게 된다. 폐, 간, 신경, 심혈관, 면역계, 피부과민 독성 등을 유발하고 심하면 폐암으로 악화한다.
 
박은정 경희대 동서의학대학원 교수 연구팀은 가습기 살균제 함유 성분과 관련한 독성연구를 진행한 결과 살균제 속 특정 물질에 만성적으로 노출될 경우 면역세포가 염증을 일으켜 폐섬유증 뿐 아니라 폐암을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지난달 발표했다. 연구팀은 2년간 각 제조사별 가습기 살균제에 함유된 PHMG·MIT 등 물질을 세포주와 실험쥐에 주입해 독성이 나타나는 작동원리를 비교·평가했다.
 
박 교수는 이들 성분이 모두 특정 농도에서 독성을 일으키며 발현 양상은 성분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이 들 성분에 만성적으로 노출되면 체내 면역세포인 호중구(Neutrophil)와 호산구(Eosinophils)가 활성화돼 염증을 일으킨다”며 “특히 MIT는 폐섬유증과 폐암까지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해외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사례가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국내에서만 유해성이 입증된 성분 사용이 허가됐기 때문이다. 외국에선 통상적으로 PHMG 사용에 대해 예외조항을 두고 살균물질 흡입 시 고독성을 검증할 수 있도록 안전성 검사·성분 표시를 의무화했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옥시 가습기살균제에 들어간 흡입 독성 원료(PHMG)를 개발한 SK케미칼이 이를 선박 페인트 원료로 호주에 수출하려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호주 당국은 이 물질이 해양 생태계를 파괴할 정도로 독성 수치가 높다고 판단해 수출은 무산됐다. 여기엔 앞서 은폐한 것으로 알려진 어류 독성 정보가 포함됐다. SK케미칼은 2002년 일본에서 PHMG 특허 출원을 하면서 ‘욕실, 수영장, 냉각탑, 가습기, 분수’ 등에 사용할 수 있다고 표기했으나 상용화엔 실패해 가습기 살균제에 집중 사용했다. 2016년 진행된 1차 조사에서 SK케미칼 관계자는 “PHMG가 산업용으로 사용되는 줄 알았지 가정용으로 사용될 줄은 몰랐다”고 발뺌했으나 올해 진행된 2차 조사에선 알고도 판매한 것으로 밝혀졌다.
 
최초 역학조사는 2011년 초 질병관리본부에 신고가 들어오면서 시작됐다. 서울아산병원 응급실에 실려온 산모 7명과 성인 남성 1명이 원인 미상의 폐손상으로 심각한 호흡곤란을 일으켜 이 중 4명이 사망하고 다른 3명도 폐이식을 받았다. 피해자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특징은 가습기 살균제 사용 이후 감기증상, 호흡곤란으로 이어진 뒤 악화돼 의료조치에도 불구하고 사망에 이른 것이다. 더욱이 이같은 과정이 몇 주에서 몇 달 사이에 일어났다. 살균제 노출과 중단이 반복됨에 따라 염증과 회복이 반복되면서 폐가 딱딱하게 굳는 폐 섬유화가 나타났다. 이를 X-레이로 보면 유리가루가 뿌려진 것처럼 보여 간유리음영이라고 부른다. 이는 피해 등급 판정 기준이 됐다.
 
이 기준을 증명하는 의학적 증거가 있으면 ‘관련성 매우 확실’ 1단계, 기준에 부합하지만 증거가 부족하면 ‘관련성 높음’ 2단계,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지만 완전히 아니라고 판단하기 어려우면 ‘관련성 낮음’ 3단계, 부합하지 않으면 ‘관련성 거의 없음’ 4단계로 구분된다.
 
현재까지 정부는 1~2단계(구제급여) 해당자만 공식 피해자로 인정해 의료비·장례비를 지원하고 있다. 3~4단계(특별구제계정) 해당자는 전혀 지원이 없다. 그나마 3단계는 악화할 가능성을 대비하는 차원에서 1년에 1회 건강검진을 지원한다. 4단계는 사실상 사용하지 않은 사람으로 간주해 사망하더라도 정부 공식 통계에 들어가지 않는다. 환경보건시민센터가 발표한 사망자는 1452명이지만 정부 공식 사망자는 208명으로 편차가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구제급여는 가해 기업의 손해배상청구권 구상을 전제로 환경부 출연금으로 지원받는다. 하지만 구제계정은 가해 기업의 분담금으로 제공받기 때문에 정부가 피해보상을 했다고 간주하지 않는다. 박혜정 환경노출피해자연합 대표는 “구제계정은 피해자로 인정은 하지만 법적으로는 전혀 보호장치가 없는 것”이라며 “3~4단계 피해자에게 가해 기업이 배상한 사례는 거의 없다”고 강조했다.
 
옥시레킷벤키저는 PHMG 성분의 ‘옥시싹싹 뉴가습기 당번’ 제품을 사용한 폐질환 관련 구제급여 대상 피해자에게만 개별적 배상과 합의를 진행했다. CMIT·MIT 성분으로 논란이 된 SK케미칼은 올해 검찰 재수사로 기소돼 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배상 관련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반려동물 피해도 상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수의임상포럼(KBVP)은 가습기살균제 반려동물 피해사례를 조사한다고 지난 14일 밝혔다. 가습기살균제 사용 후 반려동물에게 호흡 관련 질병이 생겼거나 동물병원 진료를 받은 가정을 대상으로 하며 내년 2월까지 조사한다. 피해를 본 반려동물 보호자는 직접 신고전화 등을 통해 상담·사례 접수를 할 수 있다.
 
김현욱 KBVP 회장은 “사람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보고되기 이전인 2000년대 중반에 일부 동물병원에선 원인을 알 수 없는 급성호흡곤란을 겪는 반려동물이 집중적으로 발생했다”며 “원인을 조사한 결과, 이 반려동물들이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된 게 밝혀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생존한 피해 동물을 분석해 사람 가습기 살균제 질환 연구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국회에선 피해 인정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의 법안 발의가 이어지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 개정안과 관련해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정태옥 자유한국당 의원 등이 5개 법안을 제출했다. 옥시레킷벤키저와 SK케미칼 등은 이 법안 통과를 두려워하고 있다. 이원화된 피해자 구분 단계가 폐지되면 배상 범위가 확대되기 때문이다.
 
지난 7월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재조사한 검찰은 사건 발생 8년 만에 책임자 34명을 재판에 넘겼다.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권순정 부장검사)는 유해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한 홍지호 SK케미칼 전 대표 등 8명을 구속하고 조사 내용 등 내부 정보를 누설한 환경부 서기관 최모 씨 등 26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구속 기소된 홍 전 대표는 보석으로 풀려났고 SK케미칼 측은 독성 원료의 유해성을 부인하며 관련 증거 채택을 모두 반대해 비도덕적이고 무책임한 행태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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