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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하게 위대한 고통 ‘치질’ 늦기 전에 약물치료부터
  • 김신혜 감수 김홍진 중앙대 약대 교수 기자
  • 등록 2019-11-08 17:57:00
  • 수정 2023-01-24 17:4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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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먹는 약’ 선호 경향 뚜렷 … 가려움·통증엔 외용제로 신속히 증상 완화
치질치료제인 동국제약 ‘치센캡슐’(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 일동제약 ‘푸레파베인캡슐’, ‘푸레파연고’, 동성제약 ‘치스민캡슐’
겨울을 향해 가는 차가운 바람이 코끝을 스치면 치질 환자들은 더욱 예민해진다. 기온이 떨어지면 항문 주변 혈관이 수축되고 혈액순환 장애가 생겨 치질이 심해지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치질 환자는 연간 60만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런 높은 발병률에 비해 치질은 매우 은밀한 질병으로 통한다. ‘말 못할 부위’에 병이 생겨 ‘말 못할 고민’이라는 단어가 질병명을 대신한다. 민감한 부위에 발병하는 만큼 선뜻 병원에 가지 못하고 주변에도 투병 사실을 알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자리에 앉을 때마다 느껴지는 통증에 항문은 울부짖지만 숨죽여 아파할 뿐이다. 이렇게 남몰래 병을 키우기 쉬운 치질은 조기진단 시 수술 없이 약물 및 좌욕 등을 통해 호전이 가능한 질환이므로 빠르게 치료를 시작하는 게 현명하다.

치질은 치핵, 치루, 치열을 총칭한다. 치질은 인간이 서서 다니고 오랫동안 앉아 일하기 때문에 몸무게에 의해 항문의 주위의 정맥이 팽창해 발병하는 자연스런 질환이다.
 
치핵(Hemorrhoid)은 항문관 및 직장하부 주위에 있는 정맥혈관이 확장된 상태(정맥류)다. 즉 거미줄처럼 얽힌 항문주위의 정맥과 이를 감싸고 있는 점막이 압력과 손상을 받아 늘어져 생긴 덩어리다. 일반인들이 말하는 치질의 대부분은 치핵이다. 치루(Anal fistula)는 항문샘에 염증이나 고름이 생겨 항문주위의 피부를 뚫고 나오는 것이다. 이 때 특정 부위에 배변이 쌓이고 염증이 악화된다. 치열(Anal fissure)은 항문 점막이나 항문 주위가 외상 등으로 찢어진 경우다. 이 곳에 균이 감염되면 염증이 확산되고 변을 눌 때마다 인근 신경과 괄약근이 점점 더 많이 변에 노출되고 통증이 심해지는 양상을 띤다. 치핵, 치루, 치열 순으로 환자가 많고 통증은 치열이 가장 심하다.

기본적으로 치질은 인간이 직립보행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발생한다. 변비나 설사, 식이섬유 섭취 부족, 오랫동안 쪼그려 앉아서 배변하는 습관, 골프·등산·사이클·역도 같은 힘든 운동, 
좌식생활과 운전·낚시·화투 등 오랫동안 앉아서 하는 일 등으로 항문에 과도한 긴장이 지속되면 발병하기 쉽다. 딱딱한 대변, 지속적으로 변을 보기 위해 항문에 힘을 주는 경우, 복압이 증가된 경우, 골반 바닥이 약해진 경우에 비정상적으로 치핵 조직이 커질 수 있다. 간경화로 간 문맥(장벽 모세혈관에서 영양물질을 흡수하여 간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정맥)의 압력이 높아져 항문의 정맥피가 잘 빠져나가지 못하거나, 임신으로 인해 복부의 정맥이 눌려 항문의 혈액순환이 좋지 않은 경우에도 잘 생긴다.
 
치핵은 크게 내치핵과 외치핵으로 나뉜다. 내치핵은 초기에는 항문정맥이 뭉친 울혈 부위가 항문관 내로 돌출하며 가끔 출혈이 동반되는 1도 치핵, 항문 입구로 치핵이 내려왔다가 배변의 중단과 함께 저절로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는 2도 치핵, 더 진전돼 쉽게 항문 입구로 빠져나오지만 안으로 밀어 넣으면 다시 들어가는 3도 치핵, 들어가지 않고 괴사와 통증이 유발되는 4도 치핵 등으로 분류한다. 혈전(피떡)이 형성돼 괴사되면 그 때서야 통증을 느끼고 출혈, 가려움증, 분비물 등이 나타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외치핵은 항문 입구 밖의 피부로 덮인 부위에서 나타나는데 통증이 심하다. 반복된 혈전과 혈관확장으로 피부가 늘어지게 된다. 외치핵은 혈전이 형성되고 통증, 가려움증, 피부늘어짐 등이 증상을 보일 수 있다.
 
치질약은 항문에 발생하는 치핵, 치열 등을 다스린다. 치루는 수술만으로 치료가 가능하고 치핵이 치질의 대부분을 차지하므로 치질약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치핵치료제를 의미한다. 심하지 않은 치질은 대부분 보존요법과 약물요법으로 치료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치질약은 크게 먹는 약, 바르는 약, 좌약, 주사제 등으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증상의 완화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중증 치질을 완치하는 것은 힘들며 크게 염려할 만한 부작용은 없다.
 
디오스민 성분 ‘치센’이 가져온 먹는 치질약 열풍
 
최근 수년 새 눈에 띄는 변화는 좌약이나 연고 중심이었던 치질약 시장에 생각지도 못한 먹는 약이 점유율을 역전하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이전까지 먹는 약은 외용제에 비해 효과가 약해 전체 치질약 시장의 약 20%를 점유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2017년 7월 동국제약이 출시한 디오스민(diosmin) 성분의 먹는 치질약 ‘치센캡슐’은 시장 지형을 완전히 뒤엎었다. 치료에 소극적이기 쉬운 치질이라는 질환에 인식의 변화를 유도, ‘간편하게 먹는 치질약’이라는 콘셉트로 소비자에게 어필한 마케팅이 성공적으로 작용했다는 업계의 평이다.
 
의약품 조사전문업체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지난해 치센 매출은 42억9800만원으로 전년 4억3000만원 대비 900% 늘었다. 전체 56억원 규모의 먹는 치질약 시장 중 치센의 시장 점유율은 42.4%에 달한다. 이에 일동제약도 올해 2월 먹는 ‘푸레파베인캡슐’을 출시하며 먹는 치질약 시장에 뛰어들었다. 치센이 인기를 끌면서 같은 성분의 약들도 덩달아 매출이 오르며 먹는 치질약이 확실한 대세가 된 모양새다. 한올바이오파마의 ‘베노론캡슐’은 지난해 전년 대비 15.6% 늘어난 9억7700만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치센은 디오스민 300mg이 함유된 제품으로 항문 혈관 상태를 개선해 치질 증상을 완화한다. 동일 성분으로 한림제약의 ‘렉센엔캡슐’, 조아제약의 ‘조아디오스민캡슐’ 동성제약의 ‘치스민캡슐’ 등이 있다. 1일 2캡슐 복용하며 증상이 심하면 최대 6캡슐까지 복용이 가능하다. 위장장애, 과민성 피부발진, 어지러움, 두통, 심계항진 등 이상반응을 유발할 수 있으며 임신 3개월 이내에는 투여하지 않도록 한다.
 
디오스민은 오랫동안 치질 치료에 사용돼왔다. 레몬 계통 과일에서 추출한 식물성 플라보노이드 구조로 치질, 하지정맥류, 부종 등의 다양한 혈관치료에 쓰인다. 플라보노이드는 식품에 널리 분포하는 노란색 계통의 색소로, 벤젠고리(C6) 2개가 3개의 탄소(C3)에 의해 연결된 구조를 가진 물질군을 말한다. 혈관내피부착분자(endothelial adhesion molecules)의 발현을 감소시키고, 모세혈관 수준에서 백혈구의 부착·이동·활성 등을 저해한다. 이를 통해 주로 산소 자유라디칼 및 프로스타글란딘(PGE2, PGF2α)의 염증 매개체 유리(분비)를 감소시킴으로써 모세혈관 손상 및 하지의 정맥기능부전을 경감시킨다. 모세혈관을 강화해 혈관 탄력 개선 및 혈액 순환 정상화하고, 항염 작용을 통해 치질로 인한 출혈·가려움증·부종·통증 등을 개선한다.
 
혈액순환 개선에 도움을 주는 성분의 복합제도 많이 쓰인다. 대웅제약 ‘페리바정’, 삼진제약 ‘케이나정’, 대화제약 ‘후바후바정’은 헵타미놀(heptaminol)·은행엽추출물(Ginkgo biloba ext)·트록세루틴(troxerutin)이 복합된 경구제다. 이들 성분은 혈관 수축과 강화, 혈액순환 촉진작용으로 치질 증상을 치료한다. 헵타미놀은 혈관 수축제로 혈관이 늘어지는 상태를 개선해준다. 은행엽추출물은 혈액 순환을 촉진하고 혈관을 강화한다. 트록세루틴은 루틴에서 유래된 플라보노이드로 정맥류 및 정맥염증을 개선하는 디오스민과 비슷한 효과를 낸다. 트록세루틴은 안과 용제(망막·결막의 출혈·염증·혈전 등), 피부 용제(안면홍조·피부건조) 등에도 들어간다.
 
마그네슘 제제 등 대변완하제로도 치료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완하제는 굳은 변을 부드럽게 만들어 항문에 가는 자극을 줄인다.
 
국소마취제·혈관수축제·소염제 등 다양한 외용제 쓰여
 

먹는 약 외에 국소외용제로 신속한 효과를 볼 수 있다. 외용제로는 연고, 크림, 좌약 등이 있으며 국소마취제, 혈관수축제, 피부보습제, 가려움완화제, 항생제, 소염제 등 다양한 성분이 포함돼 있다. 이들 성분은 치질로 인한 통증·부기·출혈·가려움 등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단일 성분 외용제와 각기 다른 효능을 나타내는 성분을 복합한 외용제가 있다. 복합제에는 피부 보호를 위해 비타민E(토코페롤), 상처치료에 도움되는 비타민A(레티놀), 세포재생을 유도하는 알란토인(allantoin) 등을 첨가하기도 한다.
 
이들 외용제는 대변을 본 후에 엷게 바르고 가능하면 바르기 전에 환부를 깨끗이 씻고 잘 말린 후 바른다. 좌제를 삽입할 때 항문에 심한 통증이 발생하면 일단 사용을 중단한다.
 
증상이 심하지 않고 간헐적으로 출혈, 통증 있는 경우에는 국소마취제를 쓸 수 있으며 대화제약 ‘헤모렉스크림’(성분명 pramoxine HCl) 등은 단일 성분의 국소마취제가 들어 있다. 통증이 심하면 진통제를 함께 복용할 수 있으나 아스피린은 출혈이 심해질 우려가 있으니 치질에는 복용하지 않는다.
 
페닐에프린(Phenylephrine)·메틸에페드린(Methylephedrine) 등 혈관수축제 성분은 혈관을 수축해 치핵 부위 부종과 출혈을 억제해주는 데 효과적이다. 일동제약 ‘푸레파연고’ 등은 페닐에프린 성분의 혈관수축, 리도카인(Lidocaine)의 국소마취, 알란토인의 세포재생 유도 및 피부보호, 클로르헥시딘의 항균, 토코페롤의 항산화, 레티놀의 상처치유 등 복합적인 효과로 출혈을 억제하고, 통증 및 가려움 등을 감소시킨다. 다만 혈관수축제 성분이 포함된 연고는 심장병·고혈압·갑상선질환·당뇨병·전립선비대증 환자의 경우 사용에 주의해야 한다. 원양어선 선원의 필수품이라는 한풍제약의 한방과립제제 ‘치지래과립’도 순한 약성으로 독자적인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다.
 
이밖에 항문 부위에 스테로이드 등의 소염제를 사용하면 염증을 완화하고 치질로 인한 불쾌감 및 가려움 증상을 가라앉힐 수 있다.
 
치질의 약물치료는 가려움증·통증·출혈 등을 일시적으로 완화하고, 정맥류를 다소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치핵을 근본적으로 없애지는 못한다. 치핵을 특별히 예방할 수는 없다. 심한 변비가 생기지 않도록 일상적으로 섬유질이 많은 음식을 섭취하는 게 좋다. 화장실에서 신문 등을 보며 오랜 시간 변기에 앉는 등의 생활습관은 개선토록 한다.
 
치질은 예방 및 치료 차원에서, 또 수술 후 경과 호전을 위해 꾸준히 좌욕을 하는 게 권장된다. 따뜻한 물로 하루 2번 이상, 5~15분에 걸쳐 화상을 입지 않을 정도의 뜨거운 물로 좌욕한다. 좌욕을 하면 수술 부위가 대변으로 인해 감염되는 것을 예방하고, 항문 상처 주변의 통증과 부종을 감소시킬 수 있다. 또 항문 주변의 혈액순환이 원활해져 상처가 쉽게 아물게 된다. 과음, 과로도 피해야 한다. 그래야 항문정맥류라 할 수 있는 치질이 크게 개선된다.
 
항문소양증(항문가려움증)의 약물치료
 
항문이나 항문 주변은 신경이 많이 분포하고 있어 매우 예민한 부위다. 이러한 항문 주변이 불쾌하게 가렵거나 타는 듯이 화끈거리는 질환을 항문소양증이라고 한다. 40세 이상 남성에게 흔히 발생한다. 치질을 비롯한 대장·항문질환 외에 당뇨병, 황달, 진균감염, 요충감염, 음식이나 약물에 의한 자극 등이 원인이 된다.
 
약물치료는 치질과 대등소이하다. 항문소양증을 치료하기 위한 로션 및 연고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국소마취용 크림과 연고는 증상을 일시적으로만 완화시킬 뿐 근본적인 원인을 치료하지 않으며 접촉성 피부염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추천되지는 않는다.
 
가려움증이 심하면 단기간 항히스타민제나 스테로이드가 든 연고를 발라본다. 그래도 증상이 장기간 지속되면 원인 치료에 나서야 한다. 진균이나 요충에 감염됐으면 항진균제나 요충구충제를 복용한다. 밤에 잠자리에 들었을 때만 항문이 가렵다면 요충에 감염됐을 가능성이 있다. 만성화되고 심한 항문소양증에는 항문 주위에 알코올 주사를 놓거나 피부박리수술을 해서 가려움증을 느끼는 신경조직을 약화시키는 치료를 하게 된다.
 
평소에도 항문 주위를 깨끗하게 씻고 잘 말리는 게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된다. 비누 사용을 자제하고 물로 씻는 게 좋다. 통풍과 흡수가 잘되는 면 내의를 입는 게 추천된다. 콜라·커피·맥주·땅콩·우유·초콜릿 등 맵고 짜고 자극적인 음식을 되도록 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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