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당국을 성토하는 산부인과 의사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저수가에 따른 개원가 줄폐업, 전공의 기피 현상, 낙태수술 의사 처벌 건 등으로 누적됐던 불만이 최근 ‘출생통보제’ 추진과 ‘분만사고로 인한 산부인과 의사 구속’이 맞물리며 한꺼번에 폭발하고 있다.
지난 20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산부인과의사 구속 규탄 궐기대회’엔 산부인과 의사들 300여명이 참석해 구속된 산부인과 의사의 석방을 촉구했다. 경북 안동 B산부인과에 근무하던 의사 A 씨는 2016년 5월 사산아를 유도분만하는 과정에서 은폐형 태반조기박리를 인지하지 못해 산모를 사망케 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오다가 지난 4일 법정 구속됐다.
집회에 참석한 한 산부인과 개원의는 “의료계 전체가 힘든 시기이지만 산부인과 의사들은 특히 올해가 길게 느껴질 것”이라며 “헌법재판소 판결로 무효화되긴 했지만 올해 초 ‘낙태수술 의사 처벌조항 신설’로 산부인과 의사 전체를 마치 범죄자처럼 낙인찍더니, 이제는 출생신고 행정업무를 산부인과 병·의원에 전가시키는 출생통보제를 추진해 의사들을 옥죄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어 “일련의 사건들로 불만이 누적된 의사들이 동료의사의 구속이라는 비극과 맞닿뜨리면서 ‘더이상은 양보할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출생통보제는 아동학대 예방을 위해 현재 부모에게만 의존하고 있는 출생신고시스템을 바꿔 의료기관이 부모의 의사와 상관없이 국가기관에 의무적으로 신고하는 제도다. 지금까지는 부모가 직접 출생신고를 했는데, 신고하지 않고 아이를 버리거나, 학대하거나, 살해하는 일이 빈번해 관련 대책의 필요성이 제기돼왔다.
개원가에선 지난해 5월 정부가 ‘온라인 출생신고서비스 시범사업’을 개시할 때부터 출생신고 의무를 의료기관에 부여하는 방안이 추진될 가능성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당시 시범사업은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서울 서초), 차의과학대 강남차병원(서울 강남), 미즈메디병원(서울 강서), 미즈베베산부인과병원(전북 익산), 미즈여성병원(대전 서구), 봄빛병원(경기 안양), 분당제일여성병원(경기 성남), 분당차병원(경기 성남), 샘여성병원(경기 안양), 서울여성병원(경기 부천), 서울여성병원(인천 남구), 신세계여성병원(대구 북구), 에데병원(광주 북구),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경기 의정부), 인정병원(서울 은평), 일신기독병원(부산 동구), 파티마여성병원(대구 수성), 현대여성아동병원(전남 순천) 등 18개 병원을 대상으로 실시됐으며 현재 전국 92개 병원으로 확대 운영되고 있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출생통보제 도입을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의료인과 의료기관은 공무원도 행정기관도 아닌데 행정업무를 대신하는 것은 공무원법에 반하는 위헌행위라는 이유에서다.
출생신고를 위해 필요한 개인정보를 병·의원이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고,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산부인과의사회 관계자는 “출생신고를 하려면 부모의 국적·나이·이름, 신생아의 이름 등 정보가 필요한데 부모가 아닌 의료인이 살인적인 업무 일정 속에서 해당 정보를 일일이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며 “게다가 불법체류자, 무국적자, 외국인, 싱글맘이 출산할 경우 의사는 산모가 알려준 출생신고 관련 정보가 사실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어 정확한 신고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출생신고에 따른 행정부담이 가뜩이나 힘든 병·의원 경영 지표를 악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김동석 직선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출산의 급격한 저하로 산부인과 병·의원 재정에 빨간불이 켜진 상황에서 행정업무가 가중되면 추가인력 채용을 강제하게 되고, 이는 재정 상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출생정보 오류 발생 시 의사가 모든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김 회장은 “의원급 의료기관은 행정인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데, 이로 인해 정보입력 과정에서 숫자 하나만 잘못돼도 의사에게 책임을 물을 가능성이 높다”며 “행정비용으로 1만~2만원 준다고 해결될 게 아니라 의료계와 원점부터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