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시행 2주년을 맞는 ‘문재인케어’에 대한 정부와 의료계의 평가가 확연하게 엇갈리고 있다. 정부는 “국민의료비 지출을 2조2000억원 절감했다”며 자축한 반면 의료계는 “의료전달체계 붕괴를 가속화시켰다”며 즉각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건강보험료 인상 및 건강보험 재정 고갈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확산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일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을 방문해 전국민 건강보험 시행 30주년 및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 시행 2주년을 맞아 주요 성과를 보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문재인케어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으로서 환자가 비용을 부담하는 비급여 진료를 대폭 급여로 전환해 노인·아동·여성·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의 의료비를 낮추는 제도다.
문 대통령과 보건복지부는 문재인케어의 주요 성과로 △종합병원 이상 건강보험 보장률 62.6%서 67.2%로 향상 △중증환자 의료비 부담 4분의 1 미만으로 감소 △선택진료비 폐지 및 2인실 보험 확대 △자기공명영상(MRI) 및 초음파검사 보험 적용 확대 △아이 충치치료 및 노인 틀니 건강보험 적용 △입원이 필요한 어린이 환자·중증 치매 환자 치료비 절감 △한방 분야 건강보험 적용 확대 △저소득층 의료비 부담 축소 등을 꼽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올해 4월까지 3만6605명이 혜택을 받았으며 줄어든 의료비는 총 2조2654억원, 1인당 평균 308만원이다.
이 중 노인·아동 등 의료취약계층의 본인부담금은 약 8000억원 경감됐다. 아동 입원진료비의 본인부담률은 10~20%에서 5%로 낮아졌다. 환자가 전액 부담하던 의학적 비급여 진료·검사 등에도 건강보험이 적용돼 약 1조4000억원의 비용이 줄었다.
오는 9월부터는 전립선초음파, 10월부터 복부 및 흉부 MRI, 12월부터 자궁과 난소의 초음파검사에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척추·관절질환, 안과질환, 수술 및 치료재료 분야 건강보험 적용도 확대될 예정이다. 이들 정책을 모두 시행하면 2023년까지 총 42조원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정부와 달리 의료계와 시민단체는 문재인케어의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고 평가하고 있다.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건보 재정이다. 건강보험은 7년간의 연속 흑자 행진이 끝나고 지난해 1778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2027년까지 문재인케어의 보장성 강화대책에 따른 건강보험 재정지출을 추계한 결과 현재 20조5955억원인 누적적립금은 문재인 정부 임기가 끝나는 2022년에 11조5000억원으로 줄고, 2026년엔 모두 소진되는 것으로 전망됐다.
이런 가운데 정부와 건강보험 가입자 단체가 올해 건강보험료 인상률 협상에 실패하면서 문재인케어를 위한 재원 마련에 빨간불이 켜졌다. 지난달 28일 열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회의에서 정부가 내년도 건강보험 보험료율을 3.49% 올리겠다고 하자 노동계, 경영계, 환자단체 등 가입자단체들이 반발했다.
가입자단체 대표들은 “2007년 이후 미납된 국고지원금이 24조5000억원에 이르는데, 정부는 건보 보장성 강화 정책으로 생색만 내고 부담은 국민에게 전가하고 있다”며 “올해 미지급금을 정산하지 않는다면 보험료율 인상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현행 건강보험법과 건강증진법에 따라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 및 국민 부담 형평성을 위해 해당 연도 건강보험료 예상수입액의 20%에 상당하는 금액을 건강보험 기금으로 지원해야 한다. 20% 중 14%는 일반회계(국고)에서, 6%는 담뱃세(담배부담금)로 조성한 건강증진기금에서 충당한다.
하지만 정부는 지금까지 보험료 예상수입액을 적게 산정하는 방법을 통해 지원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윤소하 정의당 의원에 따르면 정부는 2007~2019년 국민이 부담한 건강보험료의 20%에 해당하는 100조1435억원을 지원해야 했지만, 실제로는 75조6062억원(15.3%)만 부담했다.
정부별 국고지원율은 이명박 정부(2008~2012년) 16.4%, 박근혜 정부(2013~2016년) 15.3%였으며,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를 국정과제로 내세운 현 정부(2017~2019년)에선 13.4%로 하락했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내세운 현 정부의 국고지원율이 더 낮아진 것은 이율배반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가입자단체들의 요구에 대해 “내년 국고지원율을 올해 수준보다 더 올릴 수는 없다”며 선을 그었다. 가입자단체와 기재부가 서로에게 공을 떠넘기면서 재정 부담으로 인해 문재인케어가 좌초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낮아진 의료비 부담에 규모가 큰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몰리는 현상이 심화되는 것도 문제다. 상급종합병원의 진료비 점유율은 2015년 15.7%에서 지난해 18.1%로 2.4%p, 종합병원은 15.4%에서 16.2%로 0.8%p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병원급 의료기관은 17.5%에서 16.9%로 0.6%p, 의원급 의료기관은 28.5%에서 27.5%로 1%p 감소했다.
지난해 기준 상급종합병원 1곳당 지급된 건강보험 급여비는 2667억원으로 2017년 2072억원에 비해 28.7% 늘었다. 종합병원도 277억원에서 307억원으로 11% 증가했다. 반면 병원급은 25억4600만원에서 27억6000만원으로 8.4%, 의원급은 2억3000만원에서 2억5000만원으로 8.6% 증가하는 데 그쳤다.
특히 서울아산병원·성균관대 삼성서울병원·서울대병원·연세대 세브란스병원·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등 ‘빅5’는 건강보험 급여비 규모가 전년 대비 25.7% 늘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대형병원으로 환자쏠림이 심화되면 중증환자 치료, 연구, 교육 등 본연의 역할을 하기 어려워진다”고 우려했다.
환자쏠림 현상이 심화되면서 정부와 의료계 간 갈등도 깊어지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문재인케어가 대형병원 쏠림 현상을 가속화시켜 의료전달 체계를 붕괴시키고 있다”며 문재인케어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최대집 의협 회장은 9~10월 중 총파업을 예고하며 지난 2일부터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의협은 5일 성명을 내고 문재인케어의 무분별한 보장성 강화로 경증환자가 대형병원으로 몰리면서 중증환자가 제때 치료를 받을 수 없다며 대형병원의 만성질환과 경증환자 외래진료를 금지할 것을 정부에 요구했다. 이들은 “대형병원 쏠림 현상이 방치되면 소규모 병·의원이 붕괴돼 경증환자도 수개월을 진료 대기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선심성 제도와 정책을 남발해 국민건강을 위태롭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의협을 비롯한 의사단체들은 △대형병원 위주 문재인케어 정책 전면 수정 △대형병원의 만성질환 및 경증환자 외래진료 금지 △진료 의뢰·회송시스템 강화 △의원급 진찰료 본인부담률 인하 △대형병원과 의원급 의료기관 약 처방의 불평등 문제 해결 △대형병원의 경증환자 처방 시 페널티 부여 등이다.
방상혁 의협 상근부회장은 “선택진료비 폐지와 상급병실의 급여화 등 무분별한 보험 적용 확대로 국민들은 일시적인 혜택을 체감할 수 있지만 순간의 현상일 뿐”이라며 “이면에 감춰진 부작용과 폐해는 갈수록 커지게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가뜩이나 대형병원 쏠림, 의료쇼핑 현상 등으로 동네의원과 중소병원의 제 기능과 역할이 점차 위축되는 것은 국내 의료체계와 건강보험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며 “경증 진료조차 수개월에서 수년을 대기해야 하는 일이 벌어져 국민 건강이 심각하게 위태로워지게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