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치료요법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기존 항암치료 과정에 앞서 선행항암치료를 진행해 생존기간을 연장하고 바이오마커를 활용해 암종에 상관없이 표적치료를 실시하는 등 유연한 치료법 적용이 시도되고 있다.
대한항암요법연구회는 19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최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열린 미국임상종양학회(ASCO)에서 발표된 암치료 관련 주요 임상결과를 공유했다.
첫번째 발제를 맡은 이윤규 강북삼성병원 종양혈액내과 교수는 “최근 ASCO 등 국제학회에서 암 진단과 치료에 관련된 전문가인 외과, 종양내과, 방사선종양학과, 영상의학과, 핵의학과, 병리과 전문의가 함께 치료법을 결정하는 다학제적 접근을 강조하면서 치료방향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다학제적 암치료가 도입되면서 일반적으로 수술 후에 미세 전이 병소를 제거하기 위해 쓰던 보조항암치료(adjuvant therapy)를 수술 전에 시행하고 있다. 직장암, 유방암 등에선 선행항암치료(Neoadjuvant therapy)를 시행한 뒤 수술, 보조항암치료를 진행하는 순서가 이미 정립됐다. 최근엔 대장암, 폐암, 비인두암, 육종 같은 종양 치료에도 적용하고 있다.
이 교수는 “면역항암제는 4기 전이암 치료를 위해 사용되다가 수술이 가능한 병기인 1~3기 초기 암환자들에게 사용되면서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며 “기존 세포독성항암치료에 비해 비교적 독성 관리가 용이하다는 게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폐암은 1기 환자라고 할지라도 5년 생존율이 70% 정도인 치명적인 암으로 현재까지 수술 후 보조항암치료로는 5% 정도의 5년 생존율만을 개선할 수 있었다”며 “1~3기 폐암 환자에서 ‘니볼루맙(Nivolumab)’으로 선행항암치료를 진행한 결과, 절반 가까운 환자에서 주요 병리학적 관해율이 나타나 수술이 용이한 상태로 호전됐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아직은 초기 임상결과로 생존율에 미치는 영향 등 추가 연구가 필요하지만 현재까지 흐름으로는 몇 년 이내에 1~3기 초기암에서 면역항암제가 활발하게 사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두번째 발제는 김미소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가 ‘바이오마커의 시대’를 주제로 이어갔다. 김 교수는 “암 정밀의학(precision medicine)으로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바이오마커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며 “이번 ASCO에서 바이오마커에 기반한 신약 임상연구와 약제반응을 예측할 수 있는 바이오마커 관련 연구결과가 다수 발표됐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번 학회 총회세션(Plenary Session)에서 발표된 4개 연구 중 하나인 ‘POLO’ 연구를 소개했다. 이는 생식세포(germ line) 유방암 돌연변이(gBRCAm)를 가진 전이성 췌장암 환자에서 1차 유지요법으로 ‘올라파립(Olaparib)’의 효과를 확인한 연구다.
유전성 유방암·난소암 증후군을 유발하는 gBRCAm는 전이성 췌장암 환자의 약 7%에서 발견된다. gBRCAm이 있는 전이성 췌장암 환자 중 최소 16주 이상 백금 기반 항암치료를 받고 질병이 진행하지 않은 환자를 대상으로 PARP(Poly ADP-ribose polymerase) 억제제인 올라파립을 투약했을 때 위약군과 비교해 우수한 무진행생존을 입증했다(7.4개월 대 3.8개월). 반응지속기간도 올라파닙 치료군에서 24.9개월로 위약군 3.7개월에 비해 월등한 결과가 나왔다. 부작용으로는 오심, 피로 등 심각한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으며 심각한 독성반응은 5.5% 수준으로 안전성을 확인했다.
김 교수는 “전이성 췌장암에서 바이오마커를 찾아 표적치료를 시행해 성공한 첫 번째 연구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또 “이번 ASCO에서 전이성 전립선암 환자의 암세포에서 BRCA(유방암 유발 돌연변이)를 포함해 DNA 손상 반응에 관여하는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을 때 올라파립의 우수한 종양 반응을 보여준 연구 결과인 ‘TOPARB-B’도 발표돼 전이성 전립선암 첫 표적치료제로서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김미소 교수는 “바이오마커 전략을 사용한 임상연구를 토대로 일부 폐암이나 유방암 등에서 생존율이 획기적으로 향상됐다”며 “여전히 미충족 수요가 많은 전이암 환자에서 새로운 바이오마커 발굴과 이를 토대로 한 임상연구가 지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진형 대한항암요법연구회 회장(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교수)은 “치료방법 변화에 따라 임상시험 대상자 기준도 유연하게 적용할 필요성이 있다”며 “4기 환자에겐 사용할 수 있는 약제가 거의 없어 임상시험으로 최소한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