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생명과학의 ‘인보사케이주’ 허가과정에 대한 문제가 확산되는 가운데 이웅렬 전 코오롱그룹 회장이 최근 검찰로부터 출국금지 조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이 회장이 지난해 돌연 퇴임한 이유가 사전에 문제가 불거질 것을 알고 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출국금지 조치는 도주 혹은 증거인멸이 우려될 때 내려지는 조치로 어느정도 혐의에 대한 입증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이 회장은 이번 사태가 코오롱그룹 경영진과 “전혀 관련없다”고 주장해왔다.
출국금지 당한 이웅렬 전 회장 … 계획적 ‘사기 혐의’ 조사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16일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권순정 부장검사)가 이 전 회장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다고 밝혔다. 이 전 회장은 코오롱티슈진 상장 과정에서 허위정보로 계열사 상장을 진행해 막대한 시세 차익을 올려 불특정 다수에게 피해를 끼치고 이익을 취했다는 ‘투자 사기’ 혐의를 적용받았다. 특정경제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 위반 상 사기 혐의를 적용해 피의자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회장은 지난달 21일 인보사케이주 투여환자와 인보사 개발사인 코오롱티슈진에 투자한 소액주주로부터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허위자료를 제출해 허가과정에 개입한 혐의(업무방해 등)로 검찰에 고발된 데 이어 사기 혐의에 무게를 둔 집중 수사가 이뤄지게 됐다.
이 전 회장은 이미 지난 2월 코오롱생명과학 차명 주식 38만주를 보유했다가 서울중앙지검으로부터 자본시장법과 독점규제법, 금융실명법 등을 위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지난 5월 검찰로부터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및 벌금 5000만원을 구형받고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보유 금액은 지난 3월 기준 약 340억원에 달하며 퇴직금 명목으로 411억원을 수령했다. 이 전 회장은 양도소득세 납부 회피 목적으로 차명 주식 4만주를 차명 상태로 2015년부터 2018년까지 17회에 걸쳐 매도하고 소유상황 변동에 대해 신고하지 않아 기소됐다.
검찰에선 이 차명주식 보유에 대해 고의성이 없었다는 이 전 회장 측 주장을 용인한 것으로 보인다. 보통 차명주식을 회수하면 그에 대한 높은 취득세를 부담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여기엔 제도상 허점이 존재한다. 차명주식을 장기간 보유하고 거래하는 게 증여세를 탈세하기 위한 방법으로 활용되는 이유는 차명주식 회수에 대해 취득세가 부과되지 않기 때문이다. 주식 명의신탁 해지라고 불리는 이 주식 명의변경은 단지 주주명부상 명의를 회복했다는 사실만 확인한다. 지방세법 상 취득세 부과대상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정확히는 차명주식을 취득할 당시 법인장부상 재산가액으로 취득세를 부과하지만 10년이 지나면 효력이 사라진다. 고의성이 없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건 이같은 허술한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행태를 볼 때 이번 인보사 사태는 단순히 의약품 성분 허위 기재에 관련 문제를 넘어 오랜기간 조직적·계획적으로 진행된 ‘주가조작 사기극’이라는 추측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다. 명백한 사실관계 조사는 검찰의 손으로 넘어갔다.
식약처 약심위원 선정 과정 문제 … 후속대책서 세포 동등성 검사조항 삭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인보사 허가과정도 도마 위에 올랐다. 코오롱생명과학이 인보사 임상 3상 계획서를 제출할 당시 중앙약사심의위원회는 인보사가 골관절염치료제로서 연골구조 개선이 없더라도 관절기능 및 통증 개선을 보인다면 유전자치료제의 유효성으로 적절하다고 판단해 허가를 내줬다.
임상 3상을 마무리한 뒤 코오롱 측이 품목허가를 신청해 2017년 4월 4일 열린 1차 약심위는 임상 계획을 승인할 때와 달리 유사계열 의약품과 직접비교 임상이 필요하고, 연골구조 개선 입증자료가 없으며, 골관절염 증상 완화에 유전자치료제를 사용하는 것은 위험성이 크다는 점 등 3가지를 근거로 반대의견을 냈다.
그러자 코오롱생명과학이 이의를 제기했고 식약처는 6월 14일 두 달만에 1차 중앙약심의 참석위원과 3상 임상시험 계획을 승인한 위원을 모두 모아 2차 중앙약심을 개최했다. 이 때 일부 위원을 배제하고 약심위가 구성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식약처 관계자는 “1차 중앙약심 참석위원 7명 중 4명이 참석해 3명은 개인일정 등 사유로 불참했고 불참위원 중 1명은 서면으로 의견을 사전에 제출했다”며 “총 14명을 2차 중앙약심 위원으로 위촉해 11명이 참석했다”고 해명했다. 2차 약심위 정족수를 채우기 위한 신규 위촉이 있었을 뿐 일부 위원을 배제한 일은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진행된 2차 회의 결과, 인보사는 대한민국 제29호 신약에 이름을 올렸다.
당시 회의에 참석한 한 약심위원은 “인보사가 진통제 두 알이면 충분할 약효로 신약허가를 받은 것은 문제라고 몇몇 위원이 지적했음에도 신속허가를 통해 신약개발 사기를 진작시켜야 한다는 여론에 밀려 허가가 나온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코오롱 측의 여론몰이에 휘말린 것 같다”고 말했다.
2차 중앙약심에서 약심위원이 교체된 것과 관련해 코오롱 측이 식약처 고위층에 압력을 넣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일부 시민단체에선 이웅열 전 코오롱그룹 회장을 비롯해 손문기·이의경 전·현직 식약처장 등을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등 혐의로 고발힌 상태다.
일각에선 코오롱 측 김수정 연구소장과 당시 2차 중앙약심에 참여한 김선영 헬릭스미스(전 바이로메드) 대표가 오랜 기간 교류해 온 사이라는 사실을 폭로했다. 김 소장은 과거 김 대표가 설립한 회사인 다이아칩과 바이로메드에서 함께 근무한 것으로 알려진다. 통상 약심위원 선정 과정에선 심사대상 기업 및 약심위원의 관계 등을 면밀히 파악해야 함에도 공정성에 의심을 살 만한 부분이 계속 드러나고 있다.
지난 7일 식약처는 인보사 사태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유전자치료제에 대한 STR(유전학적 계통 분석) 검사 등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생물학적제제 등의 품목허가 심사 규정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그런데 이 개정안엔 세포 동등성·안전성을 비교하는 조항이 포함되지 않았다. 인보사 사태에서 가장 문제가 됐던 부분이 제외된 점은 식약처가 재발 방지에 대한 의지가 없음을 드러낸 한 단면이다.
식약처 허가 지연에 첨단바이오법 표류까지 … 바이오주 약세에 주주는 한숨
업계는 업계대로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인보사 사태의 영향으로 식약처 허가를 기다리던 많은 제약바이오기업이 허가 업무 지연으로 인해 연구개발 진행에 차질을 빚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주요 제약사 마케팅 담당자는 “이번 사태로 당초 예정보다 적게는 6개월, 많게는 1년 정도 허가가 지연될 것으로 보여 신제품 출시 등에도 영향이 커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바이오기업과 희귀질환 환자단체가 애타게 기다리는 첨단바이오법 제정도 인보사 사태가 찬물을 끼얹은 격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오신환 의원(바른미래당)은 첨단재생의료법에서 ‘연구대상자’의 정의가 모호하고 인보사의 판매 중단에 따른 후폭풍이 크다는 2가지 이유로 첨단바이오법을 제2소위원회로 돌려보냈다.
정의에 대한 부분은 어느 정도 협의가 진행됐으나 인보사 사태로 인한 우려는 쉽게 해결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정의당에선 이 법안의 폐기를 주장하고 나섰고 일부 시민단체도 이에 동조하는 상황이다. 이같은 여론이 커지는 만큼 법사위 소속 의원들도 쉽게 밀어붙이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증권가에선 정부가 차세대 육성 산업으로 꼽으며 기대감이 높아졌던 제약·바이오 관련주의 약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번 사태로 국내 관련 산업과 정부 규제당국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게 원인으로 꼽힌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한달째 인보사 사태로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신약개발 기대감도 낮아져 내국인 투자자도 진입을 꺼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존 코오롱생명과학과 코오롱티슈진에 투자한 개인투자자들은 한숨만 내쉬고 있다. 오는 18일 식약처의 ‘인보사 허가 취소’ 관련 청문회가 열리는 가운데 주식거래가 정지된 코오롱티슈진의 상장폐지 실질심사 여부는 19일 결정이 보류됐다. 상장폐지가 결정되면 약 6만명에 달하는 소액주주의 피해 규모만 수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 주식은 451만6800여주로 전체 주식의 36.6%에 달한다. 이미 다수의 법무법인을 통해 소액주주들이 소송에 참여하고 있어 코오롱 측은 줄소송에 시달리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허위자료로 임상시험을 통과하고 제품까지 출시한 코오롱생명과학의 광기어린 도전이 국내 산업을 넘어 국가 신뢰도까지 떨어뜨리고 있다. 이웅렬 회장이 넷째 아들이라 부르며 인생의 3분의 1을 바쳐 완성한 집념의 역작은 파렴치한 주식사기를 위한 미끼로 전락할 위험에 놓여있다. 이 같은 상황에도 코오롱 측은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코오롱생명과학과 코오롱티슈진에서 각각 대표로 인보사 사업을 총괄한 이우석 대표는 코오롱티슈진 대표직을 사임했다. 장기적인 소송을 대비해 꼬리자르기 내지는 몸사리기에 들어가는 모습이다.
한 네티즌은 “자신들을 믿어준 환자, 의료진, 투자자에게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하는데 부끄러운 일인 줄도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댓글을 환자단체 게시판에 남기며 아쉬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