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발기부전치료제 시장은 국산 제네릭(복제약) 제품의 공세에 오리지널의약품인 화이자제약의 ‘비아그라(성분명 실데나필 Sildenafil)’와 일라이릴리의 ‘시알리스(성분명 타다라필 Tadalafil)’가 선두자리를 모두 빼앗긴 한해였다. 국내 제약사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약가와 소형 정제, 필름형 등 사용자의 편의를 고려한 제품을 내놓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아이큐비아(IQVIA) 자료를 보면 2018년 실데나필, 타다라필 성분 의약품 매출 1위는 각각 한미약품의 ‘팔팔(실데나필)’이 약 209억원, 종근당의 ‘센돔(타다라필)’이 약 95억원으로 확인됐다. 오리지널인 비아그라와 시알리스는 각각 99억원, 74억원을 기록하면서 성분별 2위에 그쳤다.
2012년 비아그라 특허만료 이후 20여 종의 제네릭이 쏟아지는춘추전국시대로 접어들었다. 비아그라는 2016년에 선두를 빼앗겼다. 한미약품은 2012년 팔팔정을 내놓으면서 50㎎ 제품 기준 약가를 2500원으로 책정했다. 당시 비아그라의 출시가인 1만2000원보다 80% 저렴한 파격적 수준이었다. 이에 현재 팔팔 매출액은 비아그라의 2배를 넘어서게 됐다. 지난해 두 제품의 매출액 차이는 110억원으로 전년도의 96억원보다 더 벌어졌다. 지난해 실데나필 의약품 3위는 대웅제약의 ‘누리그라’가 차지했으나 매출액은 약 21억원으로 1, 2위와 격차가 현저하다.
비아그라보다 늦은 2015년에 특허가 만료되고 2017년까지 선두를 지켰던 시알리스 역시 비아그라와 같은 처지다. 지난해 센돔의 매출액은 시알리스보다 30% 가까이 높았다. 국내 제약사는 2015년 이후 시알리스의 제네릭을 쏟아내면서 2015년 당시 20㎎ 제품 기준 오리지널 약가(1만8000원)의 16~25% 수준인 3000~4000원대로 가격을 책정했다. 타다라필 의약품 3위는 약 61억원의 매출을 올린 한미약품의 ‘구구정’이 차지했다.
종근당은 지난해 실적부진으로 판매를 중단했던 바데나필 성분의 ‘야일라’를 11월 시장에 재출시했다. 바이엘의 ‘레비트라(바데나필)’를 대조약으로 생물학적동등성시험을 거친 첫번째 제네릭 의약품이다. 바데나필은 약물 구조가 실데나필과 비슷해 같은 범주에 두기도 한다. 레비트라의 특허 만료 시점인 10월 말에 맞춰 다음날 야일라를 출시해 바이엘과 이 성분 치료제에서 경쟁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유비스트 자료를 기준으로 올해 1분기 6억1200만원의 매출을 올려 전체 발기부전치료제 중 14위를 차지했고 레비트라의 매출을 넘어서면서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발기부전치료제는 일반적인 질병치료제가 아닌 삶의 질 개선을 위한 의약품으로 여겨져 굳이 오리지널 의약품을 찾지 않는다는 환자가 상당수다. 이는 국내사가 저렴한 제네릭으로 승기를 잡는 포인트가 됐다. 소비자가 애써 오리지널을 찾을 메리트가 없는 게 국내사의 활로를 열어줬다.
국내 발기부전치료제 시장은 약 1000~140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9일 기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등록된 타다라필 성분 발기부전치료제는 201개, 실데나필은 105개로 두 성분 제품을 모두 합치면 300개가 넘는다.
저가 제네릭이 셀 수 없이 많아지면서 제품 차별화로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제형변경 제품 출시가 이어지고 있다. 필름형, 정제 크기 소형화 등 복용 편의성을 개선해 시장을 선점하면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물없이 입안에서 녹여먹을 수 있고 지갑 속에 넣어 휴대가 가능한 구강용해필름(OTF)으로 개발된 제품은 타다라필 성분이 50개, 실데나필 성분이 18개에 이른다. CMG제약의 ‘제대로필(타다라필)’, 한국메나리니의 ‘고든(타다라필)’이 이 분야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두 제품의 지난해 매출액은 전년 대비 각각 38.6%, 28.7% 증가해 13억원, 21억원을 기록했다.
종근당의 ‘센글라(실데나필)’는 기존 정제보다 크기를 축소하고 타원형 모양으로 제형을 변경해 먹기 편한 약으로 만들어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센글라는 작년에 18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2017년 14억원 대비 26.4% 성장했다.
하지만 수백개의 제네릭 의약품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아 승승장구하는 제품과는 달리 경쟁에서 밀려난 제품은 자진철수를 선택하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다. 실적 부진에 허덕이는 제품은 정리하고 팔리는 제품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지난해 유한양행의 ‘이디포스에프구강붕해필름’ 10·20·50㎎, 동화약품의 ‘헤카테정’ 50·100㎎, 일동제약의 ‘스피덴세립’ 50·100㎎, 알보젠코리아의 ‘프리야정’ 25㎎ 등 주요 제약사의 발기부전치료제가 매출 부진으로 자진 품목 취하를 선택했다. 국내 제약사 중 최초로 비아그라의 특허를 무력화시켰던 씨제이헬스케어의 ‘헤라그라세립’도 이미 2016년 12월 시장을 떠났다. 이같은 자진취하는 의약품 품목갱신제도가 시행되면서 심화될 것으로 업계 관계자는 전망했다.
이같은 시장 포화 속에서 발기부전을 넘어 새로운 적응증에 도전하는 약도 있다. 동아에스티의 ‘자이데나(성분명 유데나필 Udenafil)’는 국산 10호 신약으로 동아제약의 성장을 견인해 온 블록버스터급 의약품이다. 시알리스가 출시되기 전까지는 비아그라와 자이데나의 양강구도로 이어지며 인기를 끌었다. 출시 당시 50·75·100·200㎎ 용량군으로 시판됐다. 배뇨후 요점적 증상개선에 관한 임상연구가 진행돼 효과를 확인하기도 했다.
이 약은 현재 폰탄수술 환자를 위한 치료제로 개발하기 위해 87.5㎎ 용량으로 임상 3상을 밟고 있다. 폰탄수술은 선천성 심장기형 중 하나인 단심실 환자에게 시행하는 수술로 우심방-폐동맥 우회술로 삼첨판 폐쇄증이나 단심실증에 대한 기능적 근치수술이다. 폰탄수술 환자용으로 유데나필의 임상시험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희귀의약품(ODD)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크고 신속심사(Fast track)을 거쳐 올해 안에 출시가 가능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제네릭 의약품의 난립 속에 오리지널 의약품은 선두자리를 빼앗겼다. 시장에선 제형변경이나 신규 적응증 개발 등 생존을 위한 제약사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본래의 개발 목적과 다르게 우연히 발견한 발기부전치료제 비아그라처럼 제네릭을 활용한 새로운 도전이 어떤 변화를 이뤄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제네릭 약이 오리지널 약을 앞선 것은 영업망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며 “저렴한 약가와 편의성을 강조한 제품이 인기를 얻고 있는 가운데 최근엔 배뇨후 요점적 개선(유데나필), 전립선비대증개선(시알리스 매일복용정) 등 발기부전치료 이외에 효과성을 지닌 약을 선호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