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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여론 거센 강력범죄 ‘심신미약’ 감형 … 기준과 보완점은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8-11-19 18:53:09
  • 수정 2019-04-12 18:3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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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C방 살인사건 가해자, 심신미약 진단서 제출 … 정확한 기준 無, 판례 의존

최근 살인, 방화, 음주운전 등 타인의 생명을 앗아간 강력범죄 가해자가 ‘심신미약’을 이유로 감형되는 사례가 잇따르며 국민적인 비판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지난달 14일 오전 8시 10분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 PC방에서 피의자 김모 씨(29)는 말다툼을 하던 PC방 아르바이트생 신모 씨(20)를 30차례 이상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김 씨는 10여 년째 우울증 약을 복용해온 것으로 조사됐다. 피의자가 평소 우울증을 앓아왔다면서 심신미약 진단서를 경찰에 제출한 사실이 알려지자 사회 곳곳에선 ‘심신미약으로 또다시 감형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또 심신미약 피해자입니다’ 게시글은 한달 여 만에 80만명이 동의했다.

살인·강간 등 흉악범죄를 저지른 피의자가 심신미약이 인정돼 형벌을 감경받는 사례는 심심찮게 나온다. 대표적인 예가 2008년 여자 어린이를 유인해 강간, 폭행하고 중상해를 입힌 조두순으로 검찰의 구형량인 무기징역보다 낮은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검찰은 “조 씨가 술에 취하면 정상적 행동을 하지 않는 자신의 성향을 알면서도 술을 마신 뒤 범행을 저질렀다”고 강조했지만 법원은 “알코올의존증 환자로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조 씨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피의자 김모 씨도 피해망상 등 심신미약이 인정돼 검찰이 구형한 무기징역보다 낮은 징역 30년을 선고받았다.

‘죄의 성립과 형의 감면’을 규정하는 형법 제2장 제1절 제10조는 심신미약과 관련해 △심신장애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심신장애로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 △위험 발생을 예견하고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자의 행위에는 전항의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심신미약이 적용되는 범위에 대한 구체적으로 설명이 없어 이론과 판례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법원에서는 조현병·조울증 같은 내인성 정신질환, 치매나 최면 같은 의식장애 상태를 심신장애 및 미약으로 보고 있다. 음주, 약물중독, 충동장애를 심신미약으로 인정한 사례도 있다.

심신미약을 인정받으려면 충남 공주시 국립법무병원 치료감호소에 입원한 뒤 짧으면 2∼3주, 길게는 한 달 정도 정신과 전문의와의 면담한다. 뇌파, 행동검사, 다면적 인성검사와 함께 다른 환자와의 교류 등 감호소 생활도 다양한 각도로 평가한다. 이 때 담당 주치의는 정신질환이 있는 척하는 경우를 염두에 두고 관찰하는 게 중요하다. 이후 모든 검사를 종합해 최종적으로 정신감정서를 작성하게 된다. 감정엔 정신과 전문의 7명과 담당 공무원 2명이 심의위원으로 참여한다. 다만 심신미약 판정은 의학적인 판단일 뿐이며 감정 결과를 수용할지 말지는 재판부가 결정한다.

2010년 조철옥 탐라대 경찰행정학과 교수팀이 발표한 ‘강력범죄자의 정신이상 항변에 관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정신장애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 75명 중 44명(58.7%)이 ‘심신상실’, 26명(34.7%)은 ‘심신미약’, 5명(6.6%)은 ‘책임 능력이 있다’고 감정됐다.
반면 법원은 ‘심신상실’ 16명(21.3%), ‘심신미약’ 44명(58.7%), ‘책임 능력이 있다’ 15명(20%)으로 판정했다.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의 피의자가 우울증 진단서를 내는 것만으로는 형법상 심신미약 상태를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은 여기에서 나온다.

법무부 통계 결과 2014~2016년 1심에서 피고인 측이 심신장애를 주장한 1597건 중 법원은 305건(19%)만 심신미약으로 인정했다. 심신미약이 인정된 정신질환으로는 조현병이 42%로 가장 많았고 지적장애가 15%, 정동장애(조울증) 14%, 알코올의존증 7%, 망상장애 7% 등이 뒤를 이었다.

형법상 심신미약이 인정되려면 ‘심신장애’ 외에 ‘사물 변별능력 또는 의사결정 능력 미약’이 존재해야 한다. 형법에서 ‘사물을 변별할 능력’으로 표현되는 심신장애자의 판단력은 대법원 판례상 ‘사물의 선악과 시비를 합리적으로 판단해 구별할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된다. 예컨대 같은 조현병 환자라도 판단력이 저하된 것으로 평가되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심신장애로 판정될 가능성이 높다.

심신미약이 인정됐더라도 형량이 무조건 감경되는 것은 아니다. 2015년 경기 수원의 PC방에서 흉기를 휘둘러 1명을 숨지게 하고 3명에게 부상을 입힌 이모 씨(42)에 대해 법원은 피의자가 조현병을 앓은 점을 인정하면서도 1·2심에서 모두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법원은 “이 씨가 흉기를 미리 준비했고 피해자 수가 많은 데다 부상자들이 대인기피증에 시달리며 고통받고 있다”며 중형을 선고했다. 다만 살인죄는 법정 최고형은 사형이라 형량이 감경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 봉직의협회 관계자는 “정확한 사실관계가 밝혀지기 전 정신질환 환자의 소행이라는 자극적인 보도와 소문이 잇따르면서 사건과 관계없는 선량한 정신질환 환자가 오해와 편견으로 고통받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며 “심신미약은 정신의학이 아닌 법률상 형법상의 개념으로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과는 전혀 다른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어 “심신미약 상태의 결정은 단순히 정신질환의 유무가 아니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진단과 심도있는 정신감정을 거친 뒤 법원이 최종판결을 내리는 전문적이고 특수한 과정을 거친다”며 “정신질환 자체가 범죄의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니며 범죄를 정당화하는 수단은 더더욱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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