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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건강
‘우유주사’, ‘건망증주사’ 프로포폴 애물단지된 이유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8-06-08 09:15:20
  • 수정 2020-09-13 15: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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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뇌 GABA수용체 작용해 수면 유도 … 부작용 덜하지만 도취감 느끼려 반복투여시 중독
프로포폴 오·남용이 반복되면 수면 도중 무호흡 상태에 빠져 자칫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최근 강남 M피부과의원에서 시술 전 프로포폴을 맞은 환자 20명이 집단 패혈증 증세를 일으키는 사건이 발생했다. 질병관리본부 조사결과 이상 증상을 보인 환자 20명 중 5명의 혈액, 주사기내 미투여 프로포폴, 프로포폴 투여에 사용된 주삿바늘에서 같은 유전자형의 판토에아 아글로메란스균이 검출돼 프로포폴 주사액 오염이 유력한 원인으로 지목됐다.

M의원은 환자가 요구하면 프로포폴 투여량을 늘리는 등 프로포폴 주사를 남용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M피부과가 2015년부터 올해 3월까지 제약사로부터 공급받은 프로포폴 ‘프로바이브주1%’는 총 22만6800㎖로 전국 피부과의원 평균(2만5103㎖)의 9배에 달했다.

보관 상태도 좋지 못했다. M의원은 프로포폴 엠플을 여러 개의 주사기에 넣은 뒤 약 60시간 동안 고장난 냉장고에 상온 보관했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프로포폴은 지방 성분이 포함돼 상온에서 보관하면 변질되기 쉽고, 한 번 세균에 감염되면 급속도로 세균이 불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프로포폴은 1977년 영국의 화학회사인 ICI가 화학 합성으로 개발한 수면마취제다. 페놀기가 붙어있는 화합물로서 물에 녹지 않아 물 대신 대두유에 약품을 녹여 주사약으로 만들었다. 이 대두유로 인해 탁한 흰색을 띠어 우유주사로 불리기도 하지만 실제 우유와는 무관하다. 페놀계 화합물로서 실온에서 물에 잘 녹지 않으므로 대두유(콩), 난황레시틴(계란 노른자), 글리세롤 등 용매와 섞어 사용한다. 콩이나 계란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사용시 주의해야 한다.
 
프로포폴은 정확한 용법과 용량을 준수하면 유용하고 안전한 정맥주사 마취제로 평가된다. 대뇌의 ‘감마아미노부틸산(GABA)’ 수용체에 작용해 ‘억제성 신경전달’을 항진시킨다. 즉 대뇌 기능을 떨어뜨려 수면을 유도한다.

일부 수면마취제는 근육 같은 곳으로 흘러가거나 체내에 쌓일 수가 있어 마취에서 깨어나는 게 더디고 개운한 느낌이 덜하다. 하지만 프로포폴은 마취시 마취 유지시간이 짧고 각성이 빨라 마취에서 깬 후 골치가 아프지 않고 2~8분이면 거의 완전히 회복된다. 신체에 쌓이지 않고 간에서 대사돼 소변으로 모두 빠져 나와 몸에 남지 않는다. 아울러 다른 마취제를 사용할 때같이 구역질을 일으키지 않아 각광받고 있다.

유용한 만큼 문제점도 있다. 프로포폴을 투여하면 수면신호를 주는 물질인 감마아미노부틸산 수치가 높아져 뇌내 ‘가바 수용체’가 활성화된다. 이로 인해 음이온이 뇌세포 안으로 쭉 들어가면 흥분상태였던 뇌 세포가 잠잠해지면서 잠이 들고 의식이 사라진다. 이 때 뇌에서 행복감과 쾌감을 높이는 ‘도파민’(dopamine)이 분비돼 마치 마약을 한 것처럼 극도의 쾌감과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단 프로포폴을 맞는다고 무조건 마약처럼 중독되는 것은 아니다. 프로포폴로 마취돼 잠이 든 상태에선 도파민 분비로 인한 도취감을 느끼지 못한다. 즉 어쩌다 한 번 내시경시술이나 성형수술을 받는 과정에서 프로포폴을 맞는 것은 중독될 위험이 없다.

문제는 이 도취감을 느끼려고 마취되지 않을 정도로 양을 줄여 맞는 것이다. 장기간 적은 양의 프로포폴을 주기적으로 맞다보면 결국 중독되고 만다. 프로포폴에 중독되면 처음엔 조금씩 맞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양을 점차 늘여나가고, 나중에는 끊고 싶어도 강력한 충동과 갈망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사용하게 된다. 암페타민(amphetamine)이나 헤로인(heroin) 등 환각성 마약에 중독되는 것도 같은 이유다. 프로포폴 투여시 나오는 도파민 양은 다른 향정신성 의약품인 미다졸람 주사를 맞았을 때보다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단기적인 기억상실증상 등 부작용을 유발해 ‘건망증 우유’로도 불린다.

또 프로포폴을 오·남용하면 수면 도중 무호흡 상태에 빠져 자칫 사망에 이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수술에 대한 부담감 탓에 거리낌 없이 수면마취를 요구하지만 그 위험성은 간과한다. 시술 중 환자가 통증을 호소하면 의료진은 프로포폴 용량을 늘려 깊은 진정상태를 유도하는데, 이 과정에서 기도폐쇄나 호흡억제 등 의료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김덕경 삼성서울병원 순환기내과 교수팀이 2009년 7월~2014년 6월 국내 의료기관에서 발생한 마취 관련 의료분쟁 중 대한마취통증의학회가 자문한 105건을 분석한 결과 수면마취로 인한 사망률은 전신마취와 크게 차이나지 않았다.
마취 관련 의료사고를 당한 환자 105명 중 82명(78.1%)이 숨졌으며, 나머지 환자들도 영구적인 장애를 입었다. 주목할 점은 일반인들에게 전신마취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알려진 수면마취(진정)로 인한 사고가 105건 중 39건(37.1%)으로 적지 않았다.

수면마취 사고로는 수면마취제의 과용량 주사로 인한 기도폐쇄 및 호흡부전이 24건으로 가장 많았다. 특히 수면마취 사고 39건 중 30건(76.9%)에서 환자가 사망했는데, 이는 전신마취 사고의 사망률 82%(50건 중 41건)와 비슷한 수준이다.
사고로 이어진 수면마취에 사용된 약물은 대부분 프로포폴이었다. 김 교수의 연구에서도 프로포폴로 발생한 수면마취 사고가 39건 중 35건(89.7%)으로 가장 많았다. 이런 위험 탓에 프로포폴은 2011년 2월 마약류인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됐다.

엄 교수는 “자신도 모르게 프로포폴주사를 맞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중독 위험신호”라며 “평소 우울감·불안 등 정서적 증상이 있거나, 밤낮이 바뀐 생활로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약물의 유혹에 넘어갈 우려가 높아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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