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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건강
한반도 덮친 지진공포, 심장질환 초래 … 서울 여의도·한강 일대 액상화 위험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7-11-27 10:57:40
  • 수정 2020-09-13 15:4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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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반 약해져 건물기초 붕괴, 규모·진도와 다른 개념 … 지진대비 만성환자 약 미리 챙겨야
진도가 높을수록 심근경색 발생률이 상승하고, 지진 발생 후 한달 이내에 심근경색 환자가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지난 15일 경북 포항시 북구 북쪽 9㎞ 지역에서 규모 5.4 지진이 발생하고 여진이 끊이질 않으면서 한반도 전역에 지진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인근 도시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땅이 흔들린 것을 느꼈을 만큼 지진이 강했고, 국내에서 최초로 액상화 현상이 발견돼 충격이 컸다. 한반도 전역이 지진 안전지대가 아님을 알리듯 지난 24일엔 인천시 옹진군 연평도 인근 해역에서 규모 2.6의 지진이 감지되기도 했다.

한반도 지진 관측 사상 역대 두 번째라는 이번 포항 지진의 규모는 5.4로 지난해 9월 발생한 경주 지진(5.8)에 비해 약했지만 진도는 6으로 같았다. 규모(magnitude)와 진도(seismic intensity)를 혼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둘 다 지진 강도를 나타내지만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규모는 지진의 세기를 나타내는 ‘절대적’ 개념이다. 규모 1.0은 폭약(TNT) 480g과 같은 에너지를 내며 수치가 1 올라갈 때마다 지진에너지가 30배 증가한다. 예컨대 규모 6의 지진은 규모 5의 지진보다 30배가량 강력하다.

지진 규모가 3.5 미만이면 흔들림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지진계에만 기록된다. 3.5∼5.4에선 창문이 흔들리면서 물건이 떨어지고, 5.5∼6.0은 벽이 균열되는 등 건물이 일부 손상되고 가만히 서 있기 힘들어진다. 6.1∼6.9에선 전체 가옥의 30%가 파괴된다. 7.0∼7.9은 대부분 가옥이 파괴되고 교량이 무너지며 지각균열과 산사태가 동반된다. 규모 8 이상에선 대부분의 건물이 파괴된다. 
2011년 2만여명의 사망 및 실종자를 낸 동일본대지진은 규모 9.0으로 1960년 발생했던 칠레 대지진(규모 9.5), 1964년 알래스카 지진(9.2), 2004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지진(9.1)에 이어 1900년 이후 네 번째로 강력했다.

같은 지진이라도 진앙과의 거리에 따라 체감 강도가 달라진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사용하는 개념이 진도다. 진도는 지진이 일어났을 때 지표면의 흔들림을 나타내는 ‘상대적’인 수치다. 진원·진앙에 가까울수록 수치가 커지고 멀수록 작아진다. 진앙과의 거리뿐만 아니라 지질 상태와도 연관돼 전세계적으로 다른 단위가 사용된다. 국내에선 비교적 지질 조건이 비슷한 미국 서부의 ‘수정 메르칼리 진도(modified Mercalli intensity scale)’를 사용하고 있다. 

수정 메르칼리진도는 지진의 세기를 12단계로 구분한다. 보통 진도 1은 규모 1.0~2.9, 진도 2~3은 규모 3.0~3.9, 진도 4~5는 규모 4.0~4.9, 진도 6~7은 규모 5.0~5.9, 진도 7~8은 규모 6.0~6.9, 진도 8 이상은 규모 7.0 이상에 대응되지만 완벽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국제적으로 지진 규모는 소수 1자리까지 아라비아숫자, 진도는 로마숫자로 표기하는 게 관례다. 예컨대 이번 포항 지진은 규모 5.6, 진도 Ⅵ으로 표기하는 게 맞다.

특히 이번 포항 지진은 지표면의 액상화(Liquefaction) 현상이 특징적으로 관찰됐다. 이 현상은 지진에 의해 지하수의 수압이 높아지면서 지하수가 퇴적물 상부를 뚫고 올라와 지반이 늪처럼 변하는 것을 의미한다. 경도가 낮은 퇴적물이 층을 이루는 지표 20m 깊이에서 잘 생긴다. 서울에선 여의도를 비롯한 한강 주변이 액상화 위험지역으로 꼽힌다.

퇴적물이 지하수와 섞이면 마치 반죽 같은 형태를 띤다. 단단했던 지표면 위로 물렁물렁한 흙이 쌓이면서 지반의 경도가 낮아진다. 지반 자체가 약해진 것이어서 내진설계가 아무리 잘 된 건물도 기초부터 통째로 붕괴되거나 금이 갈 수 있다.

1964년 알래스카, 1976년 중국 탕산(唐山), 1995년 고베 대지진 때에도 액상화로 인해 희생자가 늘었다. 국내에선 조선 현종 치세인 1643년 ‘부산 동래 쪽에서 큰 지진이 발생했고, 경상도 합천의 초계에서는 마른 하천에서 탁한 물이 솟아 나왔다’, ‘울산에서 지진이 발생했는데 마른 논에서 물이 샘처럼 솟았고, 물이 솟아난 곳에 흰모래가 나와 1~2말이 쌓였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이런 액상화 현상을 국내 전문가들이 실제로 관측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실내에 있을 때 지진이 발생하면 위에서 떨어지는 물건으로부터 머리를 보호하는 게 우선이다. 책상이나 식탁 아래로 들어가고, 마땅한 곳이 없으면 방석이나 이불로 머리를 보호해야 한다. 머리를 가릴 게 없으면 실내에서 비교적 안전한 벽 모서리, 타일벽 때문에 상대적으로 지지력이 강한 화장실이나 목욕탕 등으로 몸을 피해야 한다. 흔들림은 길어야 1~2분 정도 지속된다. 흔들림이 멈추면 당황하지 말고 화재에 대비해 가스와 전깃불을 끄고 건물 밖으로 나간다.

건물 밖으로 나갈 땐 엘리베이터가 아닌 계단을 이용해야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다가 지진이 다시 발생하면 꼼짝없이 갇히거나 화재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될 수 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지진이 일어난 경우 모든 층의 버튼 눌러 가장 먼저 문이 열리는 곳에서 내린 뒤 계단으로 이동해야 한다. 건물 밖에서도 가방·외투 등으로 머리를 보호하고 최대한 건물과 멀리 떨어진 공터로 이동한다.

주변에 가까운 공원이나 넓은 공간이 없다면 가장 신축 건물 안으로 대피하는 게 바람직하다. 최근에 지은 건물일수록 내진 설계가 잘 돼있다. 2005년부터 3층 이상 건축물을 내진설계를 의무화하고 있으며, 올해부터는 2층 이상으로 내진설계 대상이 확대됐다. 담장이나 전봇대는 지진으로 지반이 약해져 넘어지기 쉬우므로 기대지 말아야 한다.

지진대피소는 국가공간정보(www.nsdi.go.kr) 및 공공데이터포털(www.data.go.kr)이나 스마트폰앱인 ‘생활안전지도’ 및 ‘안전디딤돌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대피장소에 도착한 후에는 라디오나 공공기관의 안내 방송 등에 따른다. 보통 지진이 발생하면 통신기기 사용이 폭주해 일시적인 통신장애가 발생할 수 있어 라디오로 정보를 듣는 게 바람직하다.

운전 중 지진을 감지하면 라디오부터 켜 지진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운전 중 큰 지진이 나면 마치 타이어가 펑크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럴 땐 소방차나 구급차 같은 긴급차량이 통행할 수 있도록 교차로를 피해 길 오른쪽에 차를 세워둔다. 도로에 차를 두고 몸만 대피해야 할 땐 차키를 꽂아둬야 한다. 지진 이후 구조작업이나 복구 작업시 누구라도 차를 이동시킬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지진은 개인의 건강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꼭 타박상이나 골절 등 직접적인 외상이 아니더라도 지진에 대한 공포감과 스트레스 탓에 각종 질병의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 평소 만성질환을 앓던 환자는 증상이 급속도로 악화되기도 한다.
일본의 경우 2011년 동일본 대지진 후 반경 50㎞ 내에서 급성심근경색 발생률이 34%, 뇌졸중은 42% 증가했다. 1995년 한신 아와지 대지진 때에도 급성심근경색은 57%, 뇌졸중은 33% 늘었다. 흡연자, 고혈압 및 당뇨병 환자는 심근경색과 뇌졸중 발생률이 더욱 높았다.
 
신상도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한신 아와지 대지진 당시 반경 50㎞ 이내 고혈압 환자의 수축기혈압이 11㎜Hg, 이완기혈압이 6㎜Hg 정도 증가했다”며 “지진 발생시 만성질환 환자는 대피할 때 복용약을 꼭 챙겨 평소처럼 약을 복용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진도가 높을수록 심근경색 발생률이 증가하고, 지진 발생 후 한달 이내에 심근경색 환자가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경향이 나타나므로 지진을 크게 느낀 만성질환 환자는 지진 후 예방적 차원에서 병원 진료를 받아보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지진 발생시 의료기관과 약국 등이 파괴될 수 있어 여진이 반복되거나 지진 고위험지역에 거주하고 있다면 미리 여분의 약을 처방받도록 한다. 2012년 허리케인 ‘샌디’로 막대한 타격을 입은 미국 뉴욕과 뉴저지주 일대는 전체 병·의원의 90%가 강풍과 홍수로 문을 닫아 의료 대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또 정신적 증상으로 불안, 불면, 급성 스트레스장애가 동반될 수 있고 심하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우울증·알코올장애로 악화된다. 지진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면 불안감부터 떨치는 게 중요하다. 채정호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지진으로 단시간에 죽을 수도 있는 공포를 겪은 상황에서 여진까지 지속되면 두려움과 불안감이 머리에서 계속 맴돌아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며 “의식적으로 부드럽고 규칙적인 호흡을 지속하고, 근육을 이완시키는 맨손체조를 해주면 불안감과 두려움을 줄이는 데 도움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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