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값 5배 높게 책정, 환자 적어도 규모 6000억~1조원 … 연평균 11.1% 성장, 질환 95%는 미개척
전세계적으로 희귀의약품 개발 지원제도가 시행되고, 분자생물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희귀질환치료제 시장이 블루오션으로 부상하고 있다. 희귀의약품은 환자가 적어 임상시험 진행이 어렵고, 수익성이 낮아 제약사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뜻에서 ‘고아약’(Orphan Drugs)이라고 부른 것은 옛날 얘기다.
희귀의약품은 다른 처방의약품에 비해 약값이 5배가량 높게 책정되고, 임상연구 비용이 4분의 1수준으로 적게 든다. 미국·유럽 등 선진국은 새 희귀질환치료제에 6~10년간 시장독점권을 부여하고 있다. 미국·일본은 연구개발비의 일부분에 대해 조세를 감면해준다. 이에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승인받은 신약 중 희귀의약품 비중은 2006년 17.2%에서 2015년 36.8%로 늘었다.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도 환자수가 2만명 이하이고, 대체의약품이 없거나 기존 약보다 안전성·유효성이 현저히 개선된 치료제를 희귀의약품으로 지정해 시판후 3상 임상자료를 제출하는 조건으로 신속허가를 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 희귀의약품 생산 규모는 약 476억원으로 전년(약 491억원) 대비 소폭 감소했지만 2012년 약 105억원에서 증가하는 추세다.
녹십자의 헌터증후군치료제 ‘헌터라제’(성분명 이두설파제베타, idursulfase-β)는 지난해 233억원어치가 생산돼 이 회사의 실적에 효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헌터라제는 지난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청구액이 약 157억원으로 2014년 대비 42.7% 증가한 반면 2012년 이 약이 출시되기 전까지 세계 유일한 헌터증후군치료제였던 샤이어의 ‘엘라프라제’(이두설파제)는 같은 기간 22% 감소한 약 92억원을 기록, 두 약제간 처방액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제2형 뮤코다당증’으로 불리는 헌터증후군은 X염색체 열성 유전병으로 남아 10만~15만명 중 1명꼴로 발생한다. IDS효소(이두로네이트-2-설파타제)가 결핍되면서 글로코사미노글리칸(산성뮤코다당)이 비정상적으로 세포 내에 축적돼 골격이상·지능저하 등이 나타난다. 전세계 환자가 2000여명(국내 70~80명, 미국 500여명)에 불과해 판매량이 적지만 희귀질환의약품 특성상 가격이 비싸 시장은 약 6000억원 규모로 형성돼 있다.
헌터라제는 6㎎ 용량 기준 급여가가 약 225만원으로 환자체중(㎏)당 0.5㎎을 주 1회 투여, 연간 약제비가 약 3억원에 달한다. 녹십자는 세계 두 번째 헌터증후군치료제인 헌터라제의 글로벌 시장 50% 점유를 목표로 해외 진출에 나섰다. 이 약은 2013년 미국 FDA로부터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됐으며, 최근 현지 2상 임상을 마쳤다.
이수앱지스는 희귀질환 바이오시밀러 개발업체로 지난해 생산액 기준 국산 희귀의약품 상위 5품목 리스트에 3개를 올렸다. 2위 고셔병치료제 ‘애브서틴’(이미글루세라제, imiglucerase)은 약 47억원, 4위 파브리병치료제 ‘파바갈’(아갈시다제베타, agalsidase-β) 약 30억원, 5위 항혈전치료제 ‘클로티냅’(압식시맙, abciximab) 약 24억원을 기록했다. 3위는 32억원어치가 생산된 종근당의 간질성 방광치료제 ‘펜폴’(펜토산폴리설페이트나트륨, pentosan polysulfate sodium)이었다.
고셔병 및 파브리병은 유전성 대사질환으로 특정 효소 결핍으로 비정상세포가 골수·간·비장 등에 축적되며, 국내 환자는 각각 100여명으로 집계된다.
애브서틴은 사노피젠자임의 ‘세레자임’(이미글루세라제), 파바갈은 사노피젠자임의 ‘파브리자임’(아갈시다제)의 바이오시밀러로 각 질환 치료제로서는 전세계 세 번째로 개발됐다. 이들 오리지널 품목은 지난해 전세계 매출이 각각 1조원에 달했다. 이수앱지스는 글로벌 시장 30% 점유를 목표로 애브서틴과 파바갈의 미국·유럽 진출을 준비 중이다.
헌터라제, 애브서틴, 파바갈 등은 특정 효소가 결핍된 환자에게 외부에서 만든 효소를 주입하는 효소대체요법(ERT, enzyme replacement therapy)으로 사용된다.
글로벌 의약품 시장조사기관 이밸류에이트파마(EvaluatePharm)에 따르면 올해 희귀의약품 시장 규모는 136조원으로 향후 5년간 연평균 11.1% 고성장해 2022년엔 전체 의약품 매출(230조원)의 21.4%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희귀의약품은 허가절차가 비교적 간소해 신약후보물질 발굴부터 FDA 허가를 받기까지 걸리는 기간이 평균 10.5년으로 다른 처방의약품(12.6년)에 비해 2년 짧다.
희귀질환은 총 7000여종에 달하지만 이 중 약 5%(400여종)만 치료제가 개발됐고, 대부분은 완치가 어려운 유전성 질환으로 평생 동안 약을 투여해야 해 시장잠재성이 높다는 평가다. 전세계 희귀질환자는 약 1억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