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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플레이스·대학가 점령한 ‘해피벌룬’ … 직접 불어보니
  • 정희원 기자
  • 등록 2017-06-02 14:27:19
  • 수정 2017-06-21 19:2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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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릴랙스한 느낌, 표정변화는 글쎄? 다음날 ‘건조한 목’ … 오남용시 저산소증 우려
기자는 몇 달 전 평소 ‘트렌드세터’로 손꼽히는 친구 A로부터 “풍선 불러 가자”는 다소 엉뚱한 이야기를 들었다. 소문의 풍선인 ‘해피벌룬’(happy ballon)엔 특수 가스가 들어 있어 이를 흡입하면 잠깐 동안 기분이 ‘하이’(high)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단다. 

풍선 속 가스를 흡입한 뒤 자기도 모르게 웃는 얼굴로 불린다고 해서 이같은 이름이 붙었다. 라오스나 태국 등 클럽과 휴양지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어느새 한국까지 들어왔다는 게 A의 설명이었다. 해피벌룬은 몇 달 전만 해도 동남아에서 클럽 좀 다녔거나, 그들이 지인에게 소개해 ‘아는 사람만 아는’ 놀잇거리였지만 어느새 대학가까지 퍼지며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당시 A는 “분명 식약처가 조만간 관리할 것 같은데, 불법되기 전에 미리 해보는 게 나을 것”이라며 “합법적일 때 한번 해보고 끝내자”는 그럴 듯한 논리를 들이댔다. 유혹과 호기심을 뿌리치지 못한 기자는 ‘해피벌룬 원정대’를 꾸려 한국에 처음 이를 도입한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바로 향했다.

오후 10시,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도착한 바는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지역 특성상 방문객들의 다소 높은 연령대가 특징적이었다. 의외로 점잖은 분위기다. 샴페인 한 병과 소문의 해피벌룬을 주문했다. 개당 4000원, 주문 가능 개수는 무한대다. 직원은 해피벌룬 부는 법을 보여주며 몇 번 흡입하면 잠깐 ‘붕 뜬’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온갖 극찬에 대체 어떤 느낌일지 두근두근했다. 풍선을 건네받은 뒤 숨을 들이키고 내쉬다보니 한창 술이 올랐을 때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이 드는 것과 유사했다. 확 들뜬다기보다 편안하고 릴랙스한 느낌이어서 ‘나쁘지 않다’. 직원은 “술을 마시면서 시끄러운 음악을 들으면서 벌룬을 쓰면 진짜 마약에 취한 듯한 환각상태를 경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당 직원이 마약을 해본 게 아니고서야 ‘진짜 마약’의 기분을 알 리가 없지 않겠는가. 

오히려 ‘에게. 이게 마약 느낌이라고? 시시하다’는 게 기자의 ‘솔직한 후기’다. 환각도, 환청도 없다. 밴드가 연주하는 음악과 노래 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듯한 느낌은 괜찮았다. 딱히 해피벌룬을 분다고 얼굴에 웃음꽃이 피지는 않았다. 

반면 처음엔 풍선을 부는 것조차 숨을 들이쉬는 타이밍을 놓쳐 ‘뭐가 뭔지’ 모르겠다던 친구B는 뒤늦게 벌룬의 매력에 빠졌다. B는 “오르가슴이 이런 게 아닐까, 몸이 찌릿찌릿, 뜨거워진다”고 “은근히 생각이 나긴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한두번 더 해피벌룬을 찾았지만 ‘건강에 위협적이다’는 다수의 기사를 보고는 바로 벌룬을 포기했다. 해피벌룬 원정대가 느낀 또 다른 공통점, 해피벌룬을 쓰고 난 다음날 이상하게 목이 건조하고 부은 느낌이 들더라는 것. 편도염에 종종 시달리는 기자는 굳이 해피벌룬을 찾을 생각은 없다.

최근 유행처럼 번져가는 해피벌룬 속 특수가스는 온실기체 중 하나인 아산화질소(산화이질소, N₂O)다. 커피 등에 올라가는 휘핑크림을 만들 때 쓰이고, 치과 마취를 하거나 전신마취 시 보조요법으로 활용된다. 10~20초가량 들이마시면 술 취한 듯 몽롱한 기분이 드는 게 특징이다.

‘색깔이 없지만 달콤한 맛과 향을 갖고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특별히 아무런 맛이나 향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최승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일반적으로 역한 냄새를 풍기는 마취제와 달리 부드럽게 넘길 수 있어 아직도 치과에서 어린이를 마취할 때 산소와 아산화질소를 1대1 또는 1대2 비율로 섞어서 쓰고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신마취를 할 경우 아산화질소를 다른 흡입마취제와 같이 사용하면 마취 유도가 빨라지고 흡입마취 용량을 줄일 수 있어 마취보조제로 사용한다”며 “최근에는 효과적인 마약류 진통제와 정맥마취제가 보급되면서 아산화질소의 사용은 줄어들고 있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아산화질소가 이처럼 기분 좋은 마취현상을 유발하며 ‘웃음가스’로 통하는 것은 흡입 후 흥분을 전달하는 신경전달물질인 글루타메이트의 수용체와 결합하기 때문이다. 체내 자극 전달을 방해해 신경마비의 효과를 일으켜 들이마시면 기분을 진정시키고 통증을 줄여준다. 실제로 200년 전부터 고통을 줄이는 마취제이자 쾌락을 주는 유사 환각제로 쓰였다고 알려져 있다. 치료 목적으로는 1840년대에 한 의사가 마취수술을 시연할 때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최근엔 정신과에서도 활용된다. 피터 나젤 미국 워싱턴대 교수는 “치료효과를 장기적으로 체크하지는 못했지만 아산화질소 치료가 우울증환자에게 신속한 효과를 보인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와 관련된 ‘아산화질소가 중증 우울증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를 2014년 논문으로 발표한 바 있다. 우울증 환자를 대상으로 아산화질소를 흡입하게 했고, 두 시간 만에 3분의 2에 해당하는 환자들에게서 우울증상의 개선효과가 나타났다.

다만 건강한 일반인이라면 굳이 이를 가까이 둘 필요는 없어 보인다. 최승호 교수는 “아산화질소를 과도하게 흡입할 경우 체내 산소 농도가 떨어져 질식, 호흡곤란, 기억상실 등 부작용과 이에 따른 2차적 외상이 발생할 수 있다”며 “장기간 노출되면 피를 만드는 조혈기능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고 비타민 B12결핍증, 말초신경병증, 척수병증등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성욱 경희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아산화질소는 쉽게 확산되는 성질로 산소보다 더 빨리 체내에 들어가 산소가 체내에 흡수되는 걸 방해해 자칫 저산소증을 일으킬 수 있다”며 “이렇다보니 병원에서도 아산화질소만 단독으로 쓰지 않고 의사의 감독·지시 하에 산소와 같은 비율로 환자에게 투여한다”고 말했다.
이어 “심지어 임산부에겐 자연유산과 기형 발생을 유발할 우려가 있어 임신 3기 이전에는 이를 사용하는 것을 자제한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위험성에도 식약처는 아산화질소에 ‘중독성이 없다’는 이유로 마약류나 위험화학물질로 분류하진 않는다. 경찰 마약단속반도 마약류에 해당하지 않는 만큼 이를 단속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아산화질소는 현재 의약품·식품에 정상적으로 쓰이는 물질이라 판매자·사용자를 처벌하는 기준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며 “중독성이 없어 마약류로도 처벌할 근거는 없다”고 말했다.

아산화질소 제품 유형은 ‘화학적합성품식품첨가물’로 분류돼 있다. 화학물질관리법에 아산화질소를 규제하는 법조항은 없다. 현재 법적으로 누구든지 손쉽게 집에서도 아산화질소를 흡입할 수 있는 것. 전문가들은 이를 다량 흡입하면 신경전달체계를 방해해 심각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며 규제의 필요성을 어필하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아산화질소의 판매와 유통을 금지하고 있다. 식약처는 현재 해피벌룬이 이슈가 되자 대응 방안을 협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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