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강사 양모 씨(38·여)는 최근 딸아이의 생일선물 문제로 고민이다. ‘무엇이 받고싶느냐’는 말에 어린 딸은 로드샵에서 나오는 틴트와 쿠션 팩트를 사달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 고작 6학년인 딸이 화장을 한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며 “내가 어린 시절과는 많이 다른 분위기여서 적응이 되지는 않지만 모두가 그런다니 무작정 막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이모 양(12)은 “아이들은 자신들이 보기에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을 놀리고 괴롭힌다”며 “예뻐지면 기분이 좋고, 아이들도 잘 대해주기 때문에 화장을 계속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화장하는 것 자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기성세대는 ‘학생다운 게 최고로 예쁘다’는 종래의 입장을 굽히지 않는다. 하지만 정작 아이들은 이미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혼자 ‘수수한’ 모습을 유지하는 것 자체를 도태됐다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 이 양의 신세대 담임교사 최모 씨(27·여)는 “화장하는 것 자체를 불량한 행동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사실 나조차 중학교 졸업앨범 속의 옛모습이 촌스럽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예뻐지고 싶은 건 애나 어른이나 다 똑같은데 어른들이 규정한 ‘수수한 모습’ 때문에 위축돼있는 것보다 원하는 대로 꾸미되 학업에 열중하게 유도하는 게 더 나을 것”이라는 전향적인 입장이다.
최근 초등학생 사이에서 등교 전 화장을 하는 게 하나의 ‘또래문화’로 굳어지고 있다. 새학기 여자 아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뷰티 유튜버’ 이야기를 하거나, 엄마 몰래 샀다는 틴트나 아이라이너 등을 공유하며 친해진다. 여선생님에게 ‘어느 브랜드의 화장품을 쓰냐’고 묻는 경우도 많다. 기본적으로 초등학생에겐 흰 피부를 만드는 비비크림, 입술 색을 붉히는 틴트, 눈매를 또렷하게 그리는 아이라이너 등이 필수 아이템이다.
요즘 한국 초등학교 여학생 10명 중 4명 이상은 색조화장을 한다. 2014년 ‘청소년들의 화장품 사용실태 및 구매 행동에 관한 연구’ 논문에서는 중학교 1학년 여학생 중 32.7%가 초등학생부터 색조화장을 시작했다고 응답했다. 또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2015년 발표한 ‘화장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 보고서에서도 초등학교 4~6학년 여자 어린이의 약 45%가 ‘화장을 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에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오는 9월부터 화장품 유형에 ‘어린이용 제품류’를 추가할 계획을 밝혔다. 어린이용 화장품은 만 13세 이하의 초등학생이 사용하기에 적합한 로션·크림·오일 등이 포함되며 립스틱·섀도우 등 색조화장품류는 제외된다. 식약처 관계자는 “초등학생이 화장품과 접하는 나이가 어려져 안전관리 강화 차원에서 유형 기준을 마련하게 됐다”고 말했다.
일부 학부모도 아이들 화장을 막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겨 차라리 불량 화장품 대신 인증받은 화장품으로 건강하게 화장하는 게 낫다고 여긴다. 오히려 뜨악할 듯 엉망인 화장을 고쳐주는 ‘현실적인’ 여자 형제나 엄마들도 있다. 대구의 한 초등학교는 이를 반영하듯 부모에게 ‘학생 화장 허용 동의서’를 발송해 허락을 받은 아이에게 화장을 허용하기도 했다. 나아가 어린이들이 막상 화장하는 데만 신경쓰고 사용법은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많아 이를 제대로 교육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가진 사람도 많다.
아이들이 성인용 화장품을 과도하게 쓰는 것은 제지해야 한다. 박귀영 중앙대병원 피부과 교수는 “어린이는 성인에 비해 피부장벽이 미성숙하고, 체표면적이 작아 같은 양의 화장품을 바르더라도 흡수되는 양이 많아 성인 대상으로 나온 화장품을 과도하게 쓰면 피부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이들의 건강한 화장을 생각한다면 어떤 인공색소가 들어있는지 체크해본다. 만약 적색 2·3호 등이 보인다면 과감히 내려놓을 것을 권한다. 이들 색소는 지나치게 저렴한 틴트 등에 많이 들어 있있다. 적색 2호는 발암성 탓에 미국에서 사용이 금지됐다. 타르계 적색 3호는 미국·한국 등에서 모두 화장품에 쓰면 안 되는 성분이다. 단기 독성실험에서 갑상선기능에 악영향을, 장기 독성실험에서는 갑상선종양을 유발하는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2015년 10월 식약처 조사 결과 국내에서 적색 3호를 이용한 화장품이 발견돼 행정처분을 받기도 했다.
흔히 ‘파라벤’이 나쁘다고 하지만 사실 화장품에 기본적으로 많이 들어가는 성분이다. 대표적인 게 메칠파라벤으로 내분비장애를 유발해 접촉성 피부염이나 알레르기 등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는 논란으로 아이들이 쓰기엔 부담이 크다. 파라벤 프리 제품이나 유기농 화장품으로 대체해본다.
강재헌 인제대 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색조화장품은 성인 기준으로 안전성 테스트가 이뤄진 만큼 아이들에게 마구 권하기엔 부담이 크다”며 “파라벤 등은 어릴수록 흡수율이 더 높아 이들 성분이 몸에 축적되기 쉬운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